Auschwitz, Poland. 출처: Ryan Faulkner, Unsplash
나치 독일은 기본적으로 소련에 의해 패배했다. 그 전쟁에서 조국을 방어하기 위해 소련 국민이 치른 희생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서방 국가들은 이 사실을 지우고 나치 독일의 패배가 자신들의 노력 때문이라는 주장을 내세우려 했다. 초기에는 이러한 대안 서사를 밀어붙이는 시도가 그리 뚜렷하지 않았고, 전쟁을 직접 경험하고 그 진행 과정을 잘 알고 있던 서방 국가 국민들, 심지어 서방 지식인들조차도 별로 그 서사에 동조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케임브리지 세미나에서 누군가 소련을 과도하게 비판할 때마다, 좌파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로 유명한 조안 로빈슨(Joan Robinson) 교수가 “소련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이렇게 앉아 있을 수도 없었을 거야”라고 여러 번 말했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유명한 영국 장군의 딸이었고 결코 공산주의자도 아니었지만, 이러한 인식을 두고 있었고 실제로 전쟁 이후 오랫동안 많은 서방 학자들이 이와 같은 인식을 공유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 진실을 지우려는 시도는 점점 힘을 얻었고, 전쟁을 직접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면서 그 시도는 점차 성공을 거두었다.
할리우드도 아마 의도치 않게 이러한 진실을 지우는 데 일조했다. 할리우드는 『최후의 날』(The Longest Day), 『나바론 요새』(The Guns of Navarone), 『라이언 일병 구하기』(Saving Private Ryan)와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작하면서 서방 국가들이 나치와 맞서 싸워 용감하게 승리하는 모습을 주로 그렸다. 이 영화들은 물론 서방 관객을 대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런 스토리라인을 택한 것이지만,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서방 세력과 나치 및 그 동맹국 간의 싸움이었고 서방이 그들을 물리쳤다는 서사가 퍼지는 데 영향을 주었다.
전쟁 동안 영국이 군인과 민간인을 포함해 50만 명 미만의 희생자를 냈고, 미국은 이보다 약간 적은 수였던 반면, 소련에서는 2,7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서방 대중의 기억에서 점차 잊혀다. 물론 희생자 수를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규모와 상관없이 모든 희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여기서 논의되는 것은 소련 국민의 엄청난 희생을 점점 잊고 있는 서방 대중의 기억이 지닌 불공정성이다.
이러한 진실의 왜곡은 서방 국가들의 냉전 목표에도 부합했다. 실제로 서방은 소련이 파시즘을 물리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련이 서유럽을 노리는 팽창주의적 침략 의도를 가진 국가라는 거대한 거짓말까지 퍼뜨렸다. 방금 전쟁을 끝낸 국가가 2,700만 명의 희생자를 내고 엄청난 파괴를 겪었음에도 침략적 야욕을 품고 있을 리 없다는 점은 편리하게 잊혔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같은 제국주의자들이 이끄는 서방의 선전은 유럽의 지배계층이 전후 심각한 위기에 직면한 상황에서 그들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소련의 위협이라는 허구의 서사를 의도적으로 만들어냈다. 그 위협은 국내에서는 복지 국가 수립이라는 양보로, 해외 식민지에서는 독립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표출되었다. (후자의 경우 처칠은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소련은 반파시스트 동맹국들이 야타(Yalta)와 포츠담 회의에서 합의한 사항들을 철저히 지켰고, 그리스 혁명 당시에도 개입을 자제하면서 결국 그 운동이 패배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반면 제국주의 세력은 소련의 위협이라는 서사를 계속 퍼뜨리면서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지지를 모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식민지 인도, 특히 벵골 지역이 강제로 치른 희생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서방 국가들이 감당한 희생보다 훨씬 컸다. 예컨대 일본에 맞선 동부 전선에서의 영국의 전쟁은 상당 부분 식민지 인도 정부의 막대한 ‘적자 재정’으로 자금이 조달되었다. 이 중 일부는 인도 식민 정부의 자체 전비로 쓰였는데, 인도는 국민의 동의도 없이 전쟁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영국이 동부 전선의 연합군 전비를 충당하기 위해 인도에서 강제로 빌린 자금에 대해, 돈을 찍어내는 형태로 충당되었다. 이 자금은 ‘스터링 잔고(Sterling Balances)’라는 형태로 인도의 대영 청구권으로 기록되었고, 외환보유고처럼 간주되어 통화 발행의 근거가 되었지만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오랫동안 인도가 실제로 이 자금을 인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런 방식의 재정 운영은 특히 곡물 가격의 급등을 불러왔고, 농촌 지역에 식량 배급제가 전혀 없었던 상황에서 이는 300만 명 이상이 사망한 벵골 대기근을 초래했다. (이는 전쟁 기간 내내 영국에서 사망한 50만 명보다 훨씬 많은 숫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스털링 잔고조차 전쟁 및 전후 인플레이션, 그리고 1949년의 파운드 평가절하로 인해 거의 전부 가치가 사라졌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도 않았던 벵골의 300만 명은 모든 면에서 전쟁 희생자였다.
소련의 역할을 지우려는 시도는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러 극에 달했다. 그는 소련이 나치 독일과 싸운 주역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미국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고 뻔뻔하게 주장했다. 어떤 이들은 트럼프의 이러한 황당한 주장을 무지 때문이라고 해석했지만, 그는 1946년생으로 전쟁 이후 시대를 직접 경험했고, 그 과정에 대한 충분한 지식도 흡수했을 법한 나이다. 그의 뻔뻔한 주장은 전쟁 직후부터 서서히 퍼져온 서방 제국주의의 거짓말이 트럼프식으로 대놓고 표현된 극단적인 예일 뿐이다.
서방 국가들이 모스크바에서 열린 나치 독일 패배 80주년 기념식을 보이콧한 결정은, 표면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푸틴의 책임 때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제 정설처럼 굳어진 이 허위 서사에 기인한 바가 크다. 물론 푸틴은 소련과 무관하고, 그 기념식을 통해 소련의 영광을 가로채려는 의도가 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푸틴과 소련 사이의 어떤 구분도 제시하지 않은 채 보이콧을 감행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단지 중국, 베트남, 쿠바 같은 나라들뿐만 아니라, 브라질, 베네수엘라, 부르키나파소(현재 프랑스-미국의 신식민주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음) 등 글로벌 사우스의 여러 국가가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사실이다. 예견된 일이지만 인도는 불참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현재 힌두뜨바 정치 세력의 전신은 무솔리니와 히틀러를 열렬히 추종하며 대다수 세계 민중과 반대편에 서 있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파시즘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부활하는 상황에서, 80년 전 파시즘에 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것조차 이제 서방 국가들에겐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대부분의 서방 정부는 스스로 파시즘적인 성향을 띠고 있거나, 새로운 파시즘 정당과의 연합을 모색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전자에 속하고, 그의 동료이자 측근인 일론 머스크는 독일의 노골적인 신나치 정당인 AfD의 공개 지지자다. 우크라이나 정권은 러시아와의 전쟁 중이면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데, 그 정권 내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과 협력했던 악명 높은 스테판 반데라(Stepan Bandera)의 추종자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푸틴은 비록 소련의 영광을 차지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적어도 그 영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알고 있다. 하지만 서방 제국주의 세력은 그렇지 않다.
[출처] Obliterating the Truth about Nazi Defeat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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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바트 파트나익(Prabhat Patnaik)은 인도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이자 정치 평론가다. 그는 1974년부터 2010년 은퇴할 때까지 뉴델리의 자와할랄 네루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 연구 및 계획 센터에 몸담았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