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참새가입
|
로그인
|
비밀번호찾기
뉴스
전체기사
노동
사회
정치
경제
문화
국제
오피니언
논설
칼럼/연재
기고/주장
카툰/판화
사진
영상
기획
광장
Home
뉴스
전체기사
edit
이름
비밀번호
또 한번 이 파동이 시작되었군요. 벌써 좌파는 이사건을 문화의 상품화-전 문화 영역 개방의 전초전이라는 선정적인 용어들을 사용해서 스크린 쿼터를 반자본주의 운동과 연관 시키고 있네요. -> 참세상 논설 딱한일입니다. 스크린 쿼터의 본래 취지가 흥선대원군의 정책이 아닙니다. 즉 스크린 쿼터는 국수주의적 사고에서 나온 단순한 자국문화보호 정책이 아니라 문화의 다양성을 자본의 공세로부터 지킨다는 것이 원래의 취지 였습니다. 따라서 스크린 쿼터의 축소냐 현상 유지냐를 따지기 이전에 한국 영화에 다양성이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하겠죠.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장악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는 진짜 다양성을 가진 영화들(즉 어느정도 작품성이 된 문화와 예술이라는 말을 합당하게 쓸수 있는 영화들)은 전혀 스크린쿼터의 혜택을 못입고(조기 종영으로) 선정적인 B급 영화들만이 상영되고 그것만이 스크린 쿼터의 혜택을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대자본이 장악한(멀티플렉스, 배급사) 이 한국영화의 현실이죠. 따라서 한국의 문화는 한국내의 자본에 의해서 이미 장악되었다고 볼수 있습니다. 따라서 스크린쿼터문제는 자본(스크린쿼터제 해지)과 문화(스크린쿼터제 존속)의 대결이 아니라 자본과 자본의 대결 즉, 세계자본(스크린쿼터 해지)과 한국자본(스크린 쿼터제 존속)의 대결입니다. 이것이 스크린쿼터 문제의 본질입니다. 오직 흥행을 목적으로한, 헐리우드식의 자본공세에 한국의 쓰레기 문화를 덧씌운 이 영화들만이 스크린 쿼터의 혜택을 입고 수많은 한국의 영화 기업들이 그것을 뒷받침해서 한국의 (영화)문화를 하향 획일화 시키는 이 현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것입니다. 아까 지적했듯이 스크린 쿼터제는 (국가)자본과 (세계)자본의 대결문제인데 국가자본을 수호하기 위해 세계자본을 막는것,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바로 1`2차세계대전 반발 전에 셰계시장의 무한경쟁에서 국가자본 수호를 애국심이란 명목으로 호도해서 전 세계 노동자를 전쟁의 광기로 몰아 넣었던 논리입니다. 자본은 무국적적입니다. 한국자본이라고 한국의 노동자들이나 일반인들에게 도움을 주는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개방이 안된다면 그 개방을 안한 거에 대한 모든 불이익은 국민(노동자)이 뒤집어 쓸것이며 한국의 대자본만 이득을 취할 것입니다. 현재 한국 농민이 파탄난 이유는 통상조약같은 개방정책에 따질게 아니라 6~70년대 고도성장과정 중 국가자본수호의 대가를 농민이 뒤집어 썼다는 사실(저 곡가 정책 등)에서 찾아야 할겁니다. 현 상태에서의 스크린 쿼터 유지는 국수주의에 의해 한국의 대자본(멀티플렉스등)을 보호해주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스크린 쿼터는 대기업들의 흥행위주의 영화제작 스타일에 큰 힘을 주어서 한국의 영화문화를 축소된 헐리우드로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니 그럴수 밖에 없습니다. 이미 전개되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간 스크린 쿼터제라는 제도는 한국의 대외무협상에서 항상 큰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그러 걸림돌은 항상 노동자에 의해서 감당 되었습니다. 그렇게 노동자의 피땀으로 수호된 스크린 쿼터-자국문화의 발전과 다양성을 위한 제도를 대기업들은 문화의 하향 획일화(오직 흥행논리에 따른)로 보답 했습니다. 그것(흥행 논리에 따른 하향 획일화)은 스크린 쿼터제가 (방어를 위해)겨냥했던 그 천박한 헐리우드영화 바로 그것입니다. 따라서 위에서 논한바와 같이, 스크린 쿼터제와 같은 제도-현 시점에서 문화보호제도는 결국 국가대기업에 의한(세계자본을 대신한) 문화파괴 현상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습니다. 크게 보더라도 좁은 시야를 갖고 사회운동을 하는 대한민국 좌파들....이들에게 개방은 세계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현실을 그들(대한민국 좌파)에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시야를 넓혀줄것이며 그들의 머릿속에 국제주의를 깊이 새겨줄 것입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국제주의와 그 시야를 갖춘 올바른 형태로 재배치 될겁니다. 그럼으로써 대한민국의 좌파는 고립된 협소한 정책에서 벗어나 세계적 연대라는 공산당 선언의 마지막 구절을 실천적으로 확인할 것입니다. 스크린 쿼터제-국가자본은 결코 소악(小惡)이 아닙니다. 그것은 세계자본이란 대악(大惡)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도출시킵니다.(자본은 그 크기와 관계없이 파괴를 통한 이윤추구라는 특성을 언제나 보여줍니다) 인제 쓸데없는 논쟁은 집어치우고 세계자본에 맞선 노동대중운동의 재정립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최신기사
남북관계 및 조미관계의 근본변화와 자..
[안내]
월간지..
노동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 싸웁니다
우리가 투쟁해야 시장을 변하게 만들죠..
60년 전통의 서면시장에도 노동조합이 ..
서면시장번영회의 주먹구구식 운영은 직..
기획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렇다면, ..
돌봄 노동자-이용자가 희생되는 ‘공멸..
“공적 체계 안에서 요양보호사 보호하..
초고령화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라이프 온 마스, 화성 사회주의
논설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 문제는 탐욕이..
전세사기, 대중의 금융화가 불러온 사..
'오세훈표 범죄와의 전쟁', 그리고 ..
첨단산업 육성전략은 재벌 특혜 전략
“연준아~ 브라보! 멋지다 연준아!”..
사진
재난 연극
신디케이트
영상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참세상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카툰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진보넷&참세상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판화
들위에 둘
이윤엽(판화가)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참세상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