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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입력하세요.총파업을 성역(聖域)도 아니고 마역(魔域)으로 만들지 말라. 금속노조의 총파업 투쟁에 온 언론이 여론몰이에 나섰다. 자본의 알바들이 금속노조 게시판을 점거했다. 그 속에서 금속노조의 총파업 투쟁은 악전고투를 하고 있다. 단결과 연대만이 숙명인 길에서 단결은 대기업의 현실 이데올로기로 비틀대고 연대는 그 어디에서도 손길이 보이지 않고 있다. 죽음이냐 항복이냐 이 강팍한 선택의 길에서 한발한발 어렵게 나가는 금속노동자들의 투쟁에 민주노총은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발뺌 공문을 보냈다고 한다.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금속노조의 총파업은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총파업을 말한 적이 없다. 다만 총력투쟁을 한다고 했을 뿐이다. 총파업 투쟁이라는 말로 민주노총의 권위를 손상하지 말라로 읽히는 민주노총의 항의 공문은 두가지를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하나는 금속노조는 민주노총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부분이 전체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분의 전체에 속하지 않는 다는 것인가. 부분이 전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조중동의 하나인 동아일보가 사주(社主)는 그 기자를 해고했으면서도 자기 역사의 자랑으로 일장기 없는 손기정 사진을 자랑한다. 하나를 통해 전체를 알고 돌파하는 것이 노동자 민중 투쟁의 전형이다. 그런데 일상도 아니고 전장의 한 가운데서 민주노총의 상층이 금속노조의 투쟁을 부정했다. 가롯유다가 예수를 부정했다는 말은 들었서도 예수가 유다를 부정했다는 말을 우린 알지 못한다. 투쟁하는 동지, 고통받는 동지, 앞장서 나가는 동지의 발걸음에 딴죽을 거는 민주노총의 행위는 가장 비극적인 자해행위에 해당된다. 둘째는 총파업은 민주노총의 위신을 손상시키는 행위라는 것이다. 총파업을 선언하지 않고 총력 투쟁(?)을 하는 민주노총의 위신은 하늘을 찢고, 총파업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위신에 땅에 추락한 것인가. 민주노총 결의단위에서 결정을 한 바 없기 때문에 이를 항의한 것이라고 해도 이것은 아니다. 특히 정권과 자본의 금속노조 죽이기의 한 복판에서 이런 행위는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앞뒤를 못 가리는 어처구니없는 바보짓이다. 장기적으로 가장 큰 문제는 언제부턴가 민주노종의 역사에서 총파업을 사장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전투적 노조는 낡았다는 둥 뭐 하면서 파업 자체를 금기어로 만들기 시작했다. 총파업 투쟁을 남발하지 않겠다는 공약이 등장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 아예 총파업이라는 이름을 낡고 무모하고 또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 가는 음모가 구체화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다 든다. 총파업을 조직하지 못하고 그래서 조국과 민중의 운명이 파국에 빠지는 심각한 한미FTA 저지 투쟁에 총파업 투쟁을 선언하지 못한 민주노총이 힘과 권위가 없는 것이지 투쟁의 선언조차 하지 못하는 민주노총이 힘과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금속노조의 총파업 투쟁이 민주노총의 대의원 대회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 해도 정상적이라면 금속노조의 총파업 투쟁을 지지하며 즉각적으로 함께하지 못하는 현실을 슬퍼해야 한다. 총파업 투쟁의 전선에 민주노총의 이름을 올려 준 것에 대한 항의 공문도 항의가 아니라 사실정정과 민망함에 대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총파업을 역사의 박제물로 만들지 말라. 총파업을 역사의 박물관의 유물로 만들지 말라. 아래로부터 옆으로부터 총파업을 해서 신자유주의가 신자유주의적 인식과 인간형에 이렇게 난리를 치는 것인가? 아니다. 총파업을 제대로 못해서 아니 총파업 투쟁을 하지 못해서 생긴 문제다. 나를 바꿔 세상을 바꾸자고 할 때 우리는 주체를 바꾸는 혁신의 과제가 대상을 바꾸는 변혁의 과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세상에 적응하는 패망의 길로 가는 수사가 아닌지 걱정했다. 우리의 걱정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그 첫 번째 희망으로 이 따위 자기 정체성을 배반하고 자기 미래의 무기를 녹슬게 하고 투쟁한 부분에게 절망을 주는 자발없는 짓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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