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채증, 통제는 있고 자유는 없다 ①

근거도 제한도 없는 채증, 시민의 기본권을 옥죄고 있다

지난 6월 반값등록금 집회가 한창이던 시기 김준한 서강대 총학생회장은 6.10 반값등록금 집회에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김준한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디(CD)한 장을 주며 “뭘 하고 있든지 간에 다 채증하고 있으니 바른대로 말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시디(CD)속에는 김준한 씨가 집회에 참석한 사진뿐만 아니라, 청계광장을 걷고 있거나 광화문 역 근처에 있는 것까지 일거수 일투족이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경찰은 김준한씨의 일상까지 감시하고 있었다. 에세이 작가이며 문화평론가인 수잔 손탁은 ‘사진’이 정보기록 수단인 글을 통해서는 꿈조차 꾸지 못했을 막강한 ‘통제능력’을 갖고 있다고 간파한 바 있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사진기록은 이미 잠재적인 통제수단이 되고 있다. 집회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집회참가자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댈 때, 무엇에 주목해야 할까?

꼭꼭 숨겨진 경찰의 채증활동

경찰의 채증활동은 3급 비밀로 분류되어 활동 방법, 내용, 지휘 체계에 대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국정감사와 법령, 경찰의 사적·정치적 이용을 통해서 그 내용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전북 부안 핵폐기장 설치 반대집회 관련 결정에서 “경찰청장 훈령인 ‘채증활동규칙’을 개정하여 경찰관의 불법행위도 의무적으로 채증 하도록 하고, 비밀(3급)로 분류된 동 규칙을 일반 문서로 재분류할 것”을 권고하여 채증규칙에 대한 공개를 촉구하였다. 그럼에도 경찰은 현재까지 채증활동규칙을 3급 비밀로 유지하고 있고 이는 단적으로 채증활동의 밀폐성을 보여준다.


채증은 인권침해 예방활동??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의하면 경찰의 채증활동은 ‘현시점에서 구체적 사건이 발생할 우려가 없으나 장래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정보수집활동’으로써 각종 집회나 시위 및 치안위해사태의 발생 시에 범법 정황을 촬영·녹화, 녹음하여 정확한 상황파악과 사법처리를 하기 위한 경찰 활동이다. 이는 경찰청장 훈령인 「채증활동규칙」제1조 “경찰은 각종 집회·시위 및 치안위해 사태 발생 시에 범법 정황을 촬영하여 정확한 상황파악 및 사법 처리를 위한 자료를 확보하기 위하여 채증하고 있다”에서도 나타나 채증이 경찰의 정보활동임을 명시하고 있다. 또한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88조(채증활동)에서는 “집회시위 관련자의 인권침해 예방과 사후구제를 위한 증거수집활동”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최근 채증활동의 인권침해에 대한 문제제기는 지속되고 있으며 지난 9월 21일 경찰의 불법채증에 대해 공안기구감시네트워크(이하 공감넷)에서는 이성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감넷에서는 경찰이 예방적 정보수집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나, 과도하고 무자비한 채증과 정보수집은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고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기검열을 하도록 하여 집회와 시위에 대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한 채증활동

경찰의 예방적 정보수집은 「경찰관직무집행법」제2조 “치안정보의 수집”과 「경찰청과 그 소속기관등직제」제14조에 따라 정보국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정보국은 치안정보업무에 관한 기획·지도 및 조정과 집회·시위등 집단사태의 관리에 관한 지도 및 조정을 하여 국내공안업무에 대한 정보수집을 목적으로 활동 하고 있다. 즉 인권침해 예방과는 무관한 공안 정보수집만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정보국에서 시행하는 정보채증교육과정에서도 드러난다. 2011년 국정감사자료에서 채증요원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경찰은 채증요원에 대한 촬영, 동영상 기술교육 등을 외부에 위탁하고 있으나 채증 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에 대한 예방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또한 국정원 예산을 통해 채증교육이 이루어져 채증이 공안의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찰은 공안활동으로 채증을 하기 때문에 집회 현장에 비밀스럽게 출입하여 채증활동을 펼치고 있다. 집시법 제19조에 의하면 집회 또는 시위의 장소에 경찰관은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에게 알리고 그 집회 또는 시위의 장소에 정복을 입고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채증활동을 하는 경찰 중 일부는 사복을 입고 시위대에 섞여 촬영을 하고 있으며 이는 집회참가자의 사후처벌과 공안활동의 영역에서 정보수집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채증당한 인원, 3년간 1만 3,321명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이후 ‘집회시위 관리지침’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현장채증팀∙채증분석실’ 운용, 불법행위 구증을 위한 채증 강화가 추가되었다. 2009년에도 고성능 채증장비 보강, 채증분석실 확대 및 채증요원 전문교육과정 개설을 통한 채증전문요원 양성 등의 지침으로 점차 채증역량을 강화했다. 2010년에는 야간집회 채증을 위한 고성능 조명을 확대 보급하는 지침을 세웠다.

채증 관련 장비구입 예산도 과감하게 책정되고 있다. 2005년 1억 720만원을 채증장비 구입에 사용한 이후 2006년 1억 5천만 원, 2007년 3억 3천 9백만 원, 2008년·2009년 각 2억 5천만 원, 2010년 4억 9천만 원의 채증장비를 구입하였다. 또한 개당 250만원 상당의 고성능카메라를 구매함으로써 채증장비를 지속적으로 보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채증장비와 집회시위 관리지침의 강화 이후 경찰은 채증을 통해 집회 참가자를 옥죄고 있다. 2011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8년 3,564명, 2009년 5,520명, 2010년 2,329명, 2011년 8월까지 1,908명이 채증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경찰은 채증된 사진을 바탕으로 집회참가자들에 대해 출석요구를 발부하였다. 2008년 광우병쇠고기 촛불집회 이후 네티즌 79명에게 출석요구를 발부하고, 지역 촛불참가자 30명에게 출석요구를 발부하였다. 이후 2009년 3.7 용산추모집회 참가자 80여명에 출석요구를 하였다. 2011년에도 경찰은 5월~7월 중 등록금 집회에 대해 224명 출석요구를 하였으며, 한진 사태 해결을 위한 희망의 버스 행사에서도 채증을 통해 356명에게 출석요구를 하였다.

2010년 국정감사에서 경찰은 ‘합법집회가 불법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기에 합법집회에도 채증을 한다’며 현재 채증활동이 자의적 정보수집임을 인정하였다. 이는 법령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은 빈틈을 활용한 불법적 행위에 불과하다. 경찰이 근거로 제시하는 채증활동규칙은 예규로 행정기관의 기준을 제시할 명령에 불과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법적 근거가 되지 못한다.

현재 채증활동에 대한 법적근거는 1999년 대법원 판례에 불과하다. 그 내용 또한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함에 있어서 현재 범행이 행해지고 있거나 행해진 직후이고, 증거 보전의 필요성 및 긴급성이 있을 경우에만 영장 없는 사진촬영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도적 제한 없이 경찰의 자의적 수사와 범죄예방이라는 미명 아래 채증이 남발될 경우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기본권 침해가 심각하게 지속될 수 있다. 따라서 채증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조속히 마련되어야 한다.


출처: 주간 인권신문 [인권오름]
덧붙이는 말

훈창․병원 님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