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대한민국]열심히 사랑한 그대, 떠나라!

귀화 러시아인 박노자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초상

변은숙(노동자의 힘 회원, 출판노동자)

『한겨레 21』을 읽으며 친숙해진, 하지만 처음엔 너무도 얼굴과 일치시키기 어리둥절했던 이름이 있다. 바로 박노자라는, 여성도 토종 한국인도 아닌, 귀화 러시아인 남성의 이름이다.
고교 때 '형제와 같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영화 <춘향전>을 보고 처음 코레야를 만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 '블라디미르 티노호프'는 대학의 조선역사학과 재학 시절, 소련 사회주의의 몰락과 소·북 관계 악화 덕분(?)에 서울의 고려대학교로 한국어 연수를 오게 되며 본격적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게 된다.
한국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운명을 같이하고자 귀화하여 박노자(朴露子)가 된 그가 본 한국은 아름다운 시정(詩情)을 간직한 나라, 아기자기한 산과 언덕, 푸른 산과 바닷가 갯벌이 사랑스런 나라이면서 동시에 중세의 비민주적인 복종과 충성이 대학사회에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나라, 국가와 제도의 폭력이 충만한 나라, 전국민적인 배타주의와 패거리 의식이 팽배한 나라다.
'투사'는 엊그제까지만 해도 재벌 타도를 외치다가 며칠 사이에 '충복'으로 변신하고, 재벌은 엊그제의 투사를 집나간 자식 받아들이듯 순순히 받아들이는 '기적'이 일어난다. 못 들어가서 환장하는 대학에는 공부를 위한 공부가 사라지고 학점을 따기 위한 숙제와 커닝이 만연해도 선생도 학생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다. 영어를 잘 하는 백인에게는 무조건 친절하고 피부색이 다른 제삼세계 노동자들에게는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다.
그의 질책과 원인 분석은 설득력 있게 차근차근 이어진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을 서구(특히 미국)는 곧 근대라는 도식을 반성 없이 맹목적으로 추종한 결과이자, 근대를 가장한 전근대적 의식과 장치들을 온존시킨 결과로 보고 있다. 특히 군대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폭력은 결국 보수 정치인과 언론, 재벌로 구성된 한국 지배 계급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인간형을 생산하기 위한 적절한 훈련기제로 보며, 반드시 의무 징병제에 의한 폐해가 극복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안으로써 모병제를 주장하는 데에는 안타까움과 간절함이 절실하게 배어 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아직도 감옥에 있는 모든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는 헌사로 시작한다.
북한과 남한 사회의 체제 모두를 잘 아는 그는 박정희와 김일성의 통치 체제를 비교하여 보여줌으로써 그 기저-전체주의-는 같다는 것을 알려준다. 남한은 패거리식 사이비 민주주의고 북한은 병영식 사이비 사회주의일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가려운 다리를 남이 긁어주는 듯한 느낌이다. 이방인이었다가 한국인이 된 그가 쏟아내는 질책은 후련하다. 하지만 온전히 후련해할 수만은 없다. '속이 다 시원'한 한편 부끄럽고 불편하고 복잡해진다. 노동 현장에서 적어도 노동조합에서, 우리 의식 속에서 적어도 우리 가정에서 크고 작은 비리와 모순이 용인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볼 일이다.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가 던진 화두는 곱씹어 생각해볼만하다.
한국과 인연을 맺은 지 13년, 한국에서 생활 약 3년 3개월에 불과한 귀화 러시아인이 구사하는 능숙한 한국어와 한국사에 관한 깊은 이해, 그가 살짝 귀띔해주는 한시(漢詩)의 맛은 이 책의 독서가 제공하는 빠트릴 수 없는 즐거움이다.
한국에 있는 시간이 곧 대학에 있는 시간이었던 만큼 한국의 대학을 절실하게 경험한 그는 특히 비정상적인 한국 사회의 단면을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 대학이라고 단언한다. 결국 그를 한국에 올 수 있게 했던 대학은 그를 한국에서 떠나게 만든다.
전임강사 시절 찾아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수의 연구실에서 그는 조교를 노예처럼 부려먹는 '한국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진보적 지식인'을 보았다. 그 자리에서, 그 현대판 노예주 앞에서, 항의하고 밖으로 나가버리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하며 불면의 긴 밤을 보낸 끝에 두 가지 사실을 인식했다고 한다. 자신이 그 교수보다 도덕적으로 나은 점이 없다는 것과 언젠가 한국을 떠나야 한다는 것. 한 인간이 다른 인간 위에서 이처럼 군림하는 모습을 보다가는 미치거나 신념을 지키지 못하는, 착취자와 똑같은 인간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가. 그는 지금 노르웨이의 오슬로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을 떠나지 못하거나, 떠날 수 없거나, 떠나지 않고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가출해보지 못한 청소년은 100살을 살아도 어른이 못 된다"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고 한다. 민족으로부터 가정으로부터 일상의 나로부터 가출해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이방인이 되어 두고 온 내 모습을 응시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