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중심에 여성이 있다

[인터뷰] 박경주 사진작가, "이주노동자 독립미디어가 필요해요"

지난 18일부터 조흥갤러리에서는 이주 여성의 삶을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 본 사진전이 열렸다. 사진전이 열리는 장소에서 박경주 사진작가를 만났다. 박경주 씨는 1999년 이후로 '이주'를 테마로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해왔다. 이번 전시회는 박경주 씨가 2004년 한 해 동안 한국사회 속에서 소수자 중에 소수자라고 일컬을 수 있는 이주 여성 10명의 삶을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담아 열렸다.

나는 이미 가해자

박경주 씨는 독일에서의 8년간의 유학시절 피해자의 입장에서 독일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는 간호사, 광부들의 이야기들을 사진으로 담아왔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전혀 다른 시각에 당황하고 말았다. 자신은 이미 가해자 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박경주 씨는 "내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전혀 다른 상황으로 던져 진 제 모습은 받아드리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작업을 완성시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삶을 고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며 잔잔하게 한국에서 시작한 작품활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에 와서 답답했던 것은 이주 노동자들의 투쟁은 있었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문화적으로 해석하고,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한 문화를 만들어내는 부분은 하나도 없더라구요"라며 작가로서, 문화를 만들어 가는 사람으로서의 이주 노동자들과의 만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여성으로서, 이주 노동자로서의 이중적 차별

박경주 씨의 사진에서는 이주 여성의 목소리가 담겨져 있었다.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주 여성의 숫자는 2001년 이미 20만명이 넘었다. 이는 전체 이주노동자의 64%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여성으로서 이주 여성과의 만남은 박경주 씨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공간에서든 그렇지만 여성은 소수자 중 또 소수자에 해당하잖아요. 이주 여성들도 노동자로서의 삶은 물론이며 가사노동에, 육아에... 이중, 삼중의 고달픈 삶을 살고 있어요. 노동을 하더라도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고요. 저도 여성이잖아요. 저희 어머니가 그러했듯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이 그러하듯이 이주 여성들도 이중적 차별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주 여성의 많은 부분은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온 여성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녀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종족이 한국남성이 되어버렸다. "상습적인 폭력, 약물중독, 여성을 값싼 노동자나 노예 정도로 대하는 태도 이런 것들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어요.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가정폭력으로 인해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탱할 수 없으나 이혼을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이주여성을 대할 때 였어요" 그녀의 사진 속에는 이혼으로 아이들을 만날 수 없어 아파하는 태국에서 이주한 솜제이 씨의 이야기, 3년간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눈물을 흘리며 정리하려 하는 중국에서 이주한 송미화 씨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이주노동자에게 한 표를

전시회장 한 켠에는 이주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대구, 광주, 대전, 창원을 순회하면서 진행된 이주 노동자 가상 선거유세 퍼포먼스 영상이었다. 이번 퍼포먼스에 참석한 이주 여성은 "선거 리플렛을 뿌리며 새로운 대한민국의 정치는 이주노동자의 손으로 하자"며 선거유세를 하고 있었다. 리플렛을 받아 본 한 시민은 만약 이주 노동자가 선거에 나오면 한 표를 주겠냐는 질문에 "이주노동자가 정치를 하면 이주 노동자를 위한 정책은 잘 만들지 않겠어? 지금은 너무 힘들잖아"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지난 총선 때 모든 정당에서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이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없더라고요. 비례대표 뽑으면서도 장애, 여성 할당제는 있는데 이주 노동자에 대한 할당은 없었잖아요. 거리에 붙어있는 비례대표 포스터를 보면서 빈칸에 이주 노동자의 얼굴을 그려 넣고 싶었어요.(웃음)" 박경주씨는 여성이 참정권을 가지기 위해 투쟁했던 역사가 그러하듯이 이주노동자에게도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퍼포먼스 영상에서 이주 여성은 태극기를 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저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여러분 곁을 지키겠습니다.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 피부색과 출신성분으로 차별 받지 않는 세상을 위해 제게 힘을 실어주십시오!"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갔던 영령들에게 이주노동자가 함께 살수 있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겠다는 작지만 큰 결심을 바치는 것으로 퍼포먼스는 마무리되었다.

사진은 멈춰있는 장면이 아니라 움직이는 삶의 이야기다

그녀는 이번 촬영이 멈춰있는 사진이 아니라 움직이는 삶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싶었다고 한다. "마치 영화의 스틸사진처럼 움직이는 그림의 한컷을 오려낸 것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근데 다 완성하고 나니까 몇 장의 사진 외에는 그런 느낌이 나는 사진이 없는 것 같네요. 많이 아쉬워요" 그녀의 사진에는 노동하는 여성, 아이를 낳고 기르는 여성, 어렵지만 웃음을 띠는 여성들의 삶의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이 사진들은 예술가로서 한국 땅에서 살고 있는 제가 '이주 여성'들에게 드리는 작은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사진을 선물로 받아 든 그녀들의 얼굴에 잠시라도 밝은 미소가 머물렀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순수예술가로서의 삶은 이제 저항과 행동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진 한 장에 담긴 많은 이야기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삶의 이야기로 바뀔 것이며, 이를 위해 그녀는 이주노동자들의 독립적인 미디어를 준비하고 있다. "언론들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담지 않잖아요. 노말 헥산처럼 큰 건이 터져야 불쌍하게 쳐다보고,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뭘 해준다고 난리고요. 이제 이주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중심에 둘 수 있는 이주 노동자 독립미디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길게 보고 차분하게 준비해 나갈 계획입니다. 이게 이제 저의 역할이 되겠죠" 그녀는 이주 여성들의 중심에서, 그녀들과 함께 살아가며, 그녀들의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작은 다짐을 했다. 그녀는 할 일이 너무 많다며 행복한 웃음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