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툰 부대원 총에 이라크 현지인 사망사건 발생

5개월 은폐 끝에 사건 발표한 합참 브리핑 곳곳에 허점 발견

노무현 대통령 깜짝 방문 하루전에 자이툰 부대 영내에서 이라크인 사망

  사건발생 다음날 자이툰 부대를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의 자이툰부내 깜짝 방문이 있기 하루전인 지난해 12월 7일, 자이툰 부대 영내에서 근무하던 쿠르드 민병대원이 자이툰 부대원의 총에 숨진 사실이 5개월이 훌쩍 넘은 지난 13일에야 공개됐다.

사건공개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합참관계자가 “공개하는 것을 깜빡했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아 빈축을 사고 있는 가운데 이 파문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합동참모본부는 작년 12월 7일 자이툰 부대 홍모상병이 개인화기인 K-2 소총을 점검하던 중 오발된 실탄이 함께 근무하던 제르바니(쿠르드 민병대원) 바카르씨의 복부를 관통해 아르빌시 민간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나흘 뒤 숨졌다고 13일 오전 브리핑에서 밝혔다. 이와 함께 합참은 “대통령께서 부대를 방문하기 전날 사건이 발생했고, 대통령 방문에 따른 보안조치를 강화하면서 공개하는 것을 깜빡했다”고 덧붙였다.

합참, ‘유족에게 보상한 1만달러는 현지 수준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만에 사건에 대한 합참의 설명은 바뀌기 시작했다. 오전 브리핑에서 개인화기 안전점검 중 오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한 합참은 몇 시간 후 “평소 사망자인 바카르씨와 절친한 관계인 홍모 상병이 장난을 하다가 사고를 낸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홍모상병과 바카르씨가 말다툼을 벌이다 K-2소총이 발사됐다는 전언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합참 관계자는 “홍상병이 당시 장난을 치다 탄환이 장전된 사실을 깜빡 잊은 채 방아쇠를 당겼다”고 설명했다.

홍모상병은 사고 직후 한국으로 송환돼 1심에서 과실치사등의 혐의로 1년6개월 금고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본인의 항소로 2심 재판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합참은 숨진 바카르씨의 가족에게 1만달러를 보상금으로 지급했고 그의 부인을 자이툰부대 보조요원으로 고용 월 450달러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합참은 “미군이 제정한 ‘이라크 동맹군 관련 법률 17조’에 의거 유족에 대한 보상비를 지급했으며 이는 현지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매우 큰 액수”라고 부연설명을 했다.

또한 합참은 바카르씨가 숨지기 전 “오발사고인 만큼 친구(홍상병)을 처벌하지 말아달라”고 유언했고 현지 경찰인 바카르씨의 형도 처벌을 하지 마라는 탄원서를 보냈다며 “이 사건의 경우 순직에 해당하는 만큼 유족들에게 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쿠르드 지방정부측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과 관련 합참이 “사고 사실을 지휘계통을 통해 즉각 보고돼 보고체계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지만 드러나는 문제점은 하나 둘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철저한 언론통제에 기반한 사건 은폐, 청와대도 책임 피할 수 없어

   사진출처 : AP통신
그간 자이툰 부대는 자신들이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의 장기간 영내 동숙 취재를 허용했고 몇몇 미디어를 선별해 영내 취재를 허용했을 뿐 프리랜서 다큐멘터리스트나 다른 미디어 기자들의 아르빌지역 취재 시도를 원천봉쇄해왔다. 취재 협조를 하지 않은 것 뿐만 아니라 쿠르드 지방정부에 압력을 행사, 입국자체를 막아온 상황이다.

지난 달에는 자이툰 부대가 로켓포 공격을 받았다는 뉴스가 아랍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전해지기도 했으나 외교부는 “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했고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는 국내 미디어들은 외교부 측의 발언을 일방적으로 전하는데 그쳤다. 결국 군당국이 다섯달 동안이나 자이툰 부대원에 의한 현지인 사망이라는 중대한 사건을 은폐할 수 있었던 이면에는 확실한 언론통제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카르씨 사망에 대한 합참의 브리핑이 사실에 부합되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사건 발생 다섯달이 지나고 사건당사자인 홍모 상병에 대한 일심 재판이 완료된 상황에서도 합참의 사건설명이 ‘총기점검시 오발-> 친밀한 사이에서 장난치다가 사고발생-> 말다툼 끝에 실탄이 장전되어 있었는지 모르고 개인화기를 겨눴다가 방아쇠를 잘못 당김’으로 계속 바뀌는 점 또한 의구심을 더하는데 한 몫 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군당국 뿐 아니라 청와대 역시 이 사건의 은폐 책임을 벗어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사건이 대통령의 부대 방문 전날 발생했던 만큼 사건 발생 직후 자이툰 부대측이 청와대 경호실 측에 자세한 사건 경위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군 당국 뿐 아니라 청와대 측도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섯달 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니 만큼 복부에 총탄을 맞고 사경을 헤매고 있던 사람이 죽기 직전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 다는 유언을 했다던가, 바카르의 사망 직후 유가족들이 ‘자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탄원서’를 보냈다는 합참 측의 발표 또한 미심쩍을 수 밖에 없다.

결국 합참측의 발표대로 과실치사라 하더라도 한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된 후 처음으로 한국군의 총에 이라크인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완벽하게 현지 취재를 통제하고 있는 군당국은 이 사건을 5개월간 은폐해 오다 가해자가 1심 판결을 받은 후에야 이 사실을 공개해왔고 청와대 또한 사건 은폐를 거들었다.

사건 물타기 열중하고 있는 군당국

  총에 맞은 바카르는 이 병원에서 치료받지 못했다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사건 경과 발표가 바뀌는 점은 차치하고라도 군당국은 “1만달러의 보상금은 현지 물가수준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라며 “피해자가 죽기직전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유언을 했다”는 식의 물타기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군 당국이 보상 근거로 제시한 ‘이라크 동맹군 관련 법률 17조’는 최악의 불평등 법률로 지속적인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효순이 미선이 사건과의 유사점과 상이점

한편 이번 사건은 지난 2002년 6월 미2사단 장갑차량에 압사당했던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를 전재한 오마이뉴스 독자게시판에 ‘즉각철수’라는 필명으로 글을 올린 한 네티즌은 돈 몇푼으로 무마하려는 행위는 미군보다 못한 것이라며 “그러고도 이라크의 친구로 갔다고? 미군들도 효순이 미선이한테 2억씩 배상했는데 고작 몇백달러? 사기꾼 놈들”이라고 격앙된 의견을 내놓았다. 또한 “귀에 걸면 귀걸이고 코에걸면 코걸인가...미군 장갑차사건에는 학살만행 미군 처단하자 외치며 촛불시위를 벌였는데 한많은 세상을 하직한 이라크인의 죽음에는 쥐죽은 듯 조용하고, 몇 달이 넘게 은폐해왔다니 정말 이놈의 나라는 철면피의 나라인가”라며 격분했다.

주로 사건은폐에 대한 비판과 자이툰 부대의 즉각철수를 주장하는 독자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역발산기개세’라는 필명의 오마이뉴스 독자는 “우리가 자주력을 회복할때가지 우리가 대통령을 밀어줍시다”라는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망 당시 10만명의 군중이 광화문에 모여 촛불을 들고 “장갑차 운전병 처벌,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등을 외쳤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대통령은 “반미 좀 하면 어떻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당시 미군들 조차 촛불 추모행사를 벌이고 모금을 하는등 자성의 모습을 보였다.

이에 반해 한국군은 5개월 동안 사건 자체를 은폐했을 뿐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대통령의 깜짝 부대 방문을 통해 잔치 분위기를 연출했다. 뿐만 아니라 불평등한 주둔군 관련 법안을 근거로 “보상금 1만달러면 현지 물가수준으로 엄청난 액수”라고 덧붙이고 있다.

언론이나 반전평화단체에서 합참측의 사건경과보고를 검증할 수단이 현재로서는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 사건이 유야무야 마무리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자이툰 부대 출신 제대군인들의 솔직한 증언이 시급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