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4-5일 아르헨티나의 남부 휴양도시 마르델플라타에서 "빈곤과 투쟁하기 위한 고용창출 및 민주정치의 강화"의 기치 아래 모인 제4차 미주정상회의(Summit of the Americas)는 부시의 참패로 끝났다. 부시를 포함, 34개국 서반구(남북아메리카) 정상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미주정상회의는 2000년 캐나다 퀘벡의 경우처럼 반세계화 노동자·민중운동의 저항에 부딪혔다. 11월 4일 마들델플라타의 거리를 메운 5만 명의 항의 시위행진은 월드컵 경기장에 모여 진정한 라틴 아메리카 민중의 의지를 표출하였고, 부시가 추구했던 FTAA의 사망을 선언했다.
라틴 아메리카 : 반제국주의 정치의 확산
일찍이 1973년 9월 11일 아옌데 민중연합 정권을 타도한 피노체트 쿠데타를 계기로 시작된 신자유주의 공세를 반세기를 거치면서 남미대륙을 초토화했다. 유엔의 통계에 의하면, 남미의 5억 8천만 인구 가운데 9,600만 명이 월 1달러 이하로 생존하고 있다. 2004년 남미의 경제성장률은 5.5%였지만, 여전히 2억2천만 명이 빈곤층에 속한다. 신자유주의 사반 세기가 가져온 초라한 성적표이다.
▲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4차 정상회담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http://www.congresobolivariano.org] |
이번 미주정상회담은 바로 이렇게 격동하는 정세 속에서 미국 부시정권의 라틴아메리카 정권이 시험대에 오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미주정상회담 : 5 대 29
11월 4일 오후부터 개막된 미주정상회담에 부시와 미국에 대항하는 5개국 블록이 형성되었다.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르과이의 정상들은 남미가 당면한 긴급한 문제인 빈곤과 고용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주장하면서, 부시가 제시한 FTAA 재협상을 강력하게 거부했다. 특히 브라질의 룰라와 아르헨티나의 키르치너는 미국의 농산물 보조금에 대한 미국의 확실한 입장을 요구하면서, FTAA 재협상 카드를 거부하였다.
부시와 멕시코의 빈센테 폭스를 중심으로 한 29개국은 5개국을 제외한 새로운 협상을 시도했지만, 5개국의 사실상 라틴 아메리카 인구와 GDP의 절반을 포괄하는 실세 블록이었기에 자유무역협상을 더 이상 강제할 수 없었고, 정상회의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메리카 볼리바르대안'(ALBA)를 주장하면서 원칙적 반대를 주장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조건부 반대를 주장한 브라질의 룰라 간에 일정한 의견 차이는 있었지만, 부시정권의 일방적인 자유무역협정 강요에 반대하는 블록의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었다.
전미자유무역협정(FTAA)은 지난 1994년 클린턴 정권에 의해 마이애미에서 출범한 미주정상회담의 핵심의제로서 2005년 1월 시효를 목표로 협상을 진행해 왔다. 그러나 반세계화운동의 폭발적 성장,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 무차별적 신자유주의 공세의 결과로 빈곤과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됨에 따라 FTAA 반대운동은 전대륙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볼리바리안 혁명이 이 FTAA 반대운동과 반신자유주의 전선에 동참하면서 세력관계는 변화했고, 미국의 강제하려는 '마이애미 정신'은 파산했다.
11월 1-3일, 제3차 민중정상회담
11월 1-3일 서반구 사회운동 네트워크의 주최로 열린 제3차 민중정상회담은 미주정상회담에 대응하는 민중운동의 구심점이었다. 약 600개 풀뿌리운동, 노동조합, 및 정치조직에서 온 5천여 명의 활동가들이 참가하였고, 150여 개 패널, 워크숍, 전체회의 등 연인원 12,000여 명이 참석하여, FTAA와 미 제국주의에 대항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의지를 밝였다.
개막식에서는 아르헨티나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키벨은 연설을 통해 "우리 민중들은 군대를 필요로 하지 않고, 특히 북미에서 온다면 사양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의료와 교육 자원이며, 죽음이 아니라 삶을 위한 자원을 원한다."고 선언했다.
한편 이번 민중정상회담에는 미주정상회담에 유일하게 제외된 쿠바의 대표단도 300여 명이 참여하였다. 또한 폐막식에서는 쿠바 국회의장 리카르도 알라르콘이 연설함으로써, 쿠바혁명에 대한 라틴아메리카의 연대를 재확인하였다.
금요일의 반미-반FTAA 투쟁
▲ 5만여 명의 시위대는 마르델플라타 중심가를 거쳐 3시간 동안 월드컵 축구경기장으로 행진했다. [출처: http://www.congresobolivariano.org] |
"부시 반대! 다른 아메리카는 가능하다!"(No to Bush! Another America is possible!)는 슬로건의 결집한 5만 명의 시위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의 공동투쟁의 일환이었다. 이날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브라질과 우르과이에서도 마르델 플라타의 투쟁에 연대하는 공동투쟁이 전개되었다. 특히 부시가 11월 5일 방문할 예정이던 브라질에서는 브라질의 반미시위 : 수도 브라질리아, 리우데자네이루, 발바도르, 벨렘 등의 도시와 마토그라소두술 주(파라과이 접경지대로 미군배치 예정지)에서 반미시위가 벌어졌다.
월드컵 경기장에 운집한 5만여 명의 대중집회의 중심은 당연히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였다. 그는 오후부터 개막되는 정상회담에 앞서 민중투쟁에 동참했다. 차베스는 일성으로 "전미자유무역협정은 사망했다! 우리 아메리카의 민중들이 FTAA를 매장했다"고 선포했다.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민중들이 결집한 이 곳이 진정한 미주정상회담이라고 덧붙였다.
2시간에 걸친 차베스의 열정적인 연설이 끝난 후에는 쿠바 가수 실비오 로드리게스 및 아르헨티나 가수 빅토르 에레디아 등이 참여하는 라틴 아메리카의 꿈과 사랑, 삶을 노래하는 대중콘서트가 열였다.
한편, 정상회담이 개막되는 시점에 마르델플라타 거리에서는 시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정상회담 보안을 위해 배치된 8천 명의 경찰의 삼엄한 경계에 맞서, 수백여명이 돌과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면서 실력 대결을 벌였다. 이들은 반부시 슬로건을 외치면서 경찰과 충돌했고, 시위대는 50여 개 상점을 공격했고 가구와 사무집기를 불태워 바리케이드를 구축했다. 전투 와중에 은행 하나에 화재가 발생했다. 경찰은 50여명의 시위대를 체포했다.
또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도 경찰에 맞선 가두투쟁이 벌어져 외국계 은행과 맥도널드 등을 시위대가 공격했다. 이번 정상회담에 맞춰, 좌파 노총(CTA)이 FTAA 및 미국제국주의 반대 총파업을 선언했고, 주요 교원노조들도 1일파업에 들어갔다.
전미자유무역협정의 파산과 반세계화운동
신자유주의와 자유무역협정의 확산을 아메리카 전대륙에 강제하려던 부시정권의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는 이번 아르헨티나 마르델플라타 정상회담에서 다시 한 번 파산했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휩쓸고 있는 민중운동의 정치적 승리이다. 부시가 초라한 패자였다면, 차베스는 당당한 승자였다. 그는 미주정상회담에서 라틴아메리카 민중을 대변했고, 실제로 민중투쟁과 함께 했다.
▲ "들어라, 부시 :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민중이 단결하면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 [출처: http://www.congresobolivariano.org] |
이번 미주정상회담 반대투쟁의 승리는 반세계화운동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1994년 출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전대륙적 확산을 저지한 것이다. 이는 동시에 9.11이후 확산되는 라틴 아메리카의 반미-반제국주의운동의 성장을 확인하는 것이며, 새로운 민중적 대안의 가능성을 한층 더 강화할 것이다.
또한 이번 12월 홍콩각료회의에서 WTO-DDA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를 완성시키려는 미국제국주의와 초국적 자본 및 국제금융기구들에 대한 강력한 정치적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 투쟁은 1999년 시애틀전투, 2003년 칸쿤전투에 이어, 반세계화 민중운동진영이 쟁취한 또 한 번의 승리로 기록되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
원영수 님은 노동자의힘 기관지편집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