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

[그리스 경제위기 분석](1)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

[편집자 주] 그리스 경제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을 넘어서는 가운데 위기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연착륙하고 프랑스도 위협하고 있다. 유럽 정부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긴축을 펴며 위기에 대응했지만 오히려 이는 또다른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남유럽 민중은 정부들의 수탈에 맞서는 한편 부상한 좌파는 정치적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민중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남유럽 민중의 위기에 대해 박석삼(진보전략회의)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좌파의 과제를 살폈다. 진보전략 창간기획호 9월호에 실린 그의 글을 세 번에 나눠 연재한다.

(1)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
(2) 그리스 긴축정책과 민중의 고통 및 투쟁
(3) 그리스 총선과 좌파의 대응 및 쟁점


2008년 시작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2009년 말 그리스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하자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으로 전파됐다. 유로존의 안정이 흔들리자 트로이카(EU, ECB:유럽중앙은행, IMF)는 2010년 5월 1,100억 유로의 1차 구제금융에 동의하면서 긴축정책을 강요하기 시작햇다. 긴축정책은 참으로 가혹했고 이에 그리스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총파업과 투쟁으로 저항했다. 그리고 2012년 5월 총선과 6월의 재선거에서는 부채 재협상과 긴축철회 등을 앞세운 좌파선거연합인 시리자(Syriza)의 부상을 가져왔다.

이상이 언론에 보도된 그리스 위기의 대략적인 전개과정이다.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대부자와 채무자간의 싸움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을 파악하는 입장과 해법에 있어서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고, 좌파 내에서도 해법과 투쟁전략에 있어서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글은 그리스 부채위기와 투쟁의 실상을 추적하고 이를 둘러싼 여러 쟁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그리스의 부채가 생성된 이유와 급등한 원인에 대하여는 다양한 입장과 설명이 있다. 좌파는 현재의 위기가 지난 30여 년간 지속된 신자유주의와 2008년 발발한 세계경제위기의 필연적 결과임과 금융자본의 책임을 강조하는 입장인 반면, 우파 혹은 자본의 측에서는 그리스의 특수성과 그리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또 한편으론 유로존의 잘못된 설계에 이은 그리스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강조하는 관점도 있다. 그리스의 계급투쟁은 공장과 거리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온갖 계급적 입장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그들이 벌이는 투쟁이기도 하다.

[출처: http://www.neues-deutschland.de 화면 캡처]

그리스 경제위기 원인에 대한 첫 번째 입장, “경제구조 취약론”

인구 1,130만 명의 소국인 그리스의 GDP와 1인당 GDP는 2010년 기준 각각 2,273억 유로, 21,900 유로이다.1) 그리스의 평균 경제성장률을 보면 1991~2000년 2.36%, 2001~2007년 4.11%, 2008~2011년 –3.45%이고, 산업별 구성을 보면, 2차 산업은 12%, 농업은 3%인 반면 서비스업이 85%를 차지하고, 특히 관광과 해운(그리스는 세계적인 해운 대국이다)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종사자수(총 497만 명)가 각각 18.2% 84만 명, 15% 16만 명에 이른다.2)

이처럼 산업별 구성과 종사자 수를 보면 산업생산력이나 기술력이 낮고 따라서 연료를 비롯한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하며 서비스 부문이 기형적으로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좀 더 살펴보면 2000년대 초반 그리스는 관광, 해운, 농업 그리고 나중에는 부동산에 의존하고 있었다. 새로운 기술과 다른 산업분야에는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특히 이 시기에 관광과 해운은 행운이 뒤따랐다. 가장 큰 외화 가득원인 관광은 2000년대 초반 알카에다 요인으로부터 혜택을 봤다. 9.11 이후 무슬림 국가에 대한 관광이 줄자 그리스의 연간 관광객은 1,000만 명에서 1,7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또한 금융적, 법률적, 기술적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수요와 많은 일자리를 낳는 해운 분야는 원재료를 운송하는 중국으로의 운송 붐에 힘입었다. 농업은 EU 평균 3.5%(2006년)에 비교해 12.5%를 고용하고 있고 그만큼 생산력이 낮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EU의 보조금 혜택을 받아왔다. 그리고 유로존 가입에 따른 낮은 이자율의 덕분으로 2000년에서 2008년 사이에 부동산 가격이 두 배가 되는 부동산 붐을 겪었다.

또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등을 계기로 교통과 통신의 현대화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고, EU 가입으로 기반시설 개발을 위한 구조개선자금을 이용할 수 있게 돼 사회기반시설, 대중교통, 고속도로 등에 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첨단 관광시설에 대한 투자도 이어졌다. 이것은 광범위한 부동산 투기 붐을 일으키고 독일과 북유럽 사람들에게 별장 구입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그리스는 취약한 경제구조와 낮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2001년 EU에 가입함으로써 화폐가치가 절상되어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상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신용도가 올라감으로써 낮은 금리의 차입이 가능했으며, 이 차입이 생산적 분야보다는 주로 교통과 통신 그리고 부동산 투기에 사용되었다.3)

따라서 양호한 경제성장률이란 취약한 경제구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유로 통합에 따른 낮은 금리에 의해 지탱되는 투기적 수요와 투자에 의한 것인데, 특히 관광과 해운 그리고 부동산에 의존한 성장정책은 세계경기 변동에 극히 취약한 구조였고, 이는 필연적으로 붕괴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구조 취약론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 입장, 잘못된 유로존 설계: 강대국과 빈국 간의 누적된 모순

또한 유로존의 잘못된 설계 혹은 독일과 같은 강대국과 빈국 간의 누적된 모순으로 설명하려는 입장이 있다.

통화단일동맹(EMU)인 유로존은 GDP의 연 3% 이내의 재정적자, 60% 이내의 총 국가부채를 가입조건으로 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에 기반해 1999년 출범했다.

그동안 국제수지의 불균형은 통화정책이나 재정정책을 통해 균형을 맞출 방법이 있었으나 유로존은 재정정책은 통합되지 않은 채 화폐발행주권의 양도로 성립됐기 때문에 각국 정부의 유효한 개입수단을 제약했다. 그리고 화폐 가치가 동일했기 때문에 그리스처럼 경쟁력이 약한 나라도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화폐가치의 절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소비를 할 수 있었다.

반면 독일이나 네덜란드처럼 경쟁력이 높은 나라는 화폐가치가 절하되어 더 높은 수출경쟁력을 갖게 되었고 신용도가 높아지고 자금이 유입됐다. 이것이 유로존 내부의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하는 악순환이 되었고, 독일 등은 유로존의 이익에서 번 돈을 대부해 적자국의 소비 즉 자신들의 수출을 유지해 왔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위기를 낳은 여러 요인 중의 한 요인을 설명하는 것으로는 설득력이 있는데 이처럼 유로존 자체의 모순을 강조할 경우 그 해법은 유로존의 설계변경이나 보완 혹은 유로존 해체의 함의를 담고 있다고 하겠다.

세 번째, 그리스인 책임론

한편 그리스의 경제위기는 그리스인이 흥청망청 소비한 결과라든지, 가난한 나라가 과도한 복지부담 때문에 위기에 처한 것이라는 관점이 있다.4)

가장 대표적인 예가 『혐오스러운 그리스 부채』라는 책을 쓴 마놀로포울로스(Manolopoulos)인데, 이 책은 권력자와 힘있는 자들의 결탁에 의한 낭비와 조세 탈피, 부패 스캔들, 뇌물 등과 같은 수많은 예를 들어 혐오감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는 자가 소유율이 유럽에서 가장 높다. 그리스는 고급차 특히 포르쉐 카엔의 가장 큰 고객이었다. 지난 5년 동안 고급 4륜 구동차의 판매가 두 배에 달했고, 2010년에만 GDP의 3.5%에 해당하는 80억 유로의 차량구입대출이 집행되었다”라든지, 공식은퇴연령, 퇴직 전 총임금 대비 연금수혜액 비율이 OECD 평균은 각각 63.2세와 60.8%인데, 그리스는 58세와 95.7%이고, 풀 연금 근속연수와 연금 내 임금 비중이 독일은 45년과 46%인데, 그리스는 35년과 80%라는 OECD 자료를 인용해 그리스 노동자의 처지가 독일 노동자보다 우월한 것처럼 주장하기도 한다.5)

이러한 그리스인 책임론은 “왜 게으른 그리스인을 위해서 독일 납세자들이 부담을 해야 하느냐?”는 배외주의와 국제 독점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발전되기도 한다. 그런데 Manolopoulos가 인용한 사례나 수치들은 객관성이 있고 특히 OECD 통계자료에 따르면 GDP 대비 정부지출과 사회복지 지출이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수준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주장에는 보다 정교한 반론이 필요하다.

왜곡된 통계의 실상: 그리스 노동자, 경제위기 전부터 신자유주의 공격에 허덕여

   <정부 지출 중 사회보장 지출이 GDP에 차지하는 비중(단위 %)>
이 자료는 Eurostat의 현물 이전을 제외한 사회보장 정부지출 통계(Social benefits (other than social transfers in kind) paid by general government % of GDP)이다. 한편 OECD의 2011년 최신 통계(Government social spending : Total public social expenditure as a percentage of GDP)는 2007년까지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2007년 그리스의 공적 사회적 지출은 21.3%이고, 프랑스 28.4%, 스웨덴 27.3%, 오스트리아 26.4%, 벨기에 26.3%, 덴마크 26.1%, 독일 25.2% 등으로 되어 있고, 현물이전을 제외한 수치는 그리스 13.9%, 프랑스 17.1%, 독일 14.6%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지출의 범위와 내용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 글에서는 환율 가공을 거치지 않은 순 정부지출을 비교하기 위해 Eurostat의 자료로 분석한다. [출처: Eurostat]

따라서 OECD의 객관적 통계자료가 숨기고 왜곡한 그리스 노동자계급의 실상을 구체적으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그리스는 제조업의 비중이 기형적으로 낮기도 하지만, 교육, 의료, 대중교통 등 공공부문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크고, 해운과 통신 등을 제외하면 변변한 대기업이 없다. 총 취업인구 중 피고용자는 65%에 달하고 자기 고용은 22%이며 90% 이상이 10명 미만 사업장에 속해있고 그 중의 상당수는 비공식 부문에 고용되어 있다. 이것이 OECD 평균과 비교해 정부 예산, 공적지출, 사회보장 등의 비중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다.7)

“1998년부터 2007년까지 그리스의 성장률은 유럽평균보다 높은 4.2%였고, 이 수치는 아일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이 기간 중에 실업률도 12%에서 8%로 떨어졌다. 2001년 유로존 가입으로 상품가격이 점차 평준화되자 그리스,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주변국들의 인플레율이 평균보다 높았다. 평균 실질임금도 상승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임금분배율과 불평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실질임금이 오른 것은 사실이지만 이 기간 중에 노동생산성은 더 높았고, 더구나 INE 연감에 따르면 노동소득분배율은 1983년부터 2008년 사이에 10%나 하락하였다. 당시의 그리스 노동자계급의 공통적인 슬로건은 “우리는 임금 수준이 아니라 생활비의 지출 수준에서 유럽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독일 역시 2003년 슈뢰더가 주류 노조와 최소임금요구에 합의하면서 임금을 억제하여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졌다. PIIGS의 단위당 평균노동비용은 90년대 중반 이후 점진적으로 높아진 반면 독일은 정체하였다. 이것이 독일의 경쟁력과 무역수지 초과와 주변부 국가에 대한 대출로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실업률이 1999년 12%에서 2008년 8%로 떨어졌지만 새로 생겨난 일자리는 임시직, 시간제, 무등록 고용, 저임금 등 비정규직으로 채워졌고, 특히 청년들에 대한 훈련기간과 인턴쉽(stagiaires)을 고무하는 정책이 있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신규채용을 stagiaires로 메꾸었다. 이외에 파견제와 하청제, 외주화가 광범위하게 이루어졌고, 하청제는 특히 저임금 서비스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Eurostat 통계에 따르면 2009년 임시직이 12.1%에 달하고, 여성과 청년은 14%와 27%에 달했다. 2006년 새로 생긴 일자리의 70%는 시간제였다. 이 수치들은 GDP의 30%에 달하는 비공식부문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고, 이 부문은 저임금이 압도적이다. 그리스는 EU 15개국 중에서 포르투갈 다음으로 평균임금이 낮다. 정규직의 1/4은 저임금으로 분류되는 1,000유로 미만이고, 평균임금 대비 최소임금은 1990년부터 2006년 사이에 54%에서 45%로 오히려 악화되었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를 비교하는 소득불평등률은 EU 25개국 중 꼴찌에서 네 번째이다. 빈곤선 아래의 인구는 21%이고 라트비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노동빈곤층은 EU 15개국의 두 배인 14%였다(2006년).”8)

이처럼 그리스 노동자계급은 경제위기 이전에 이미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삶이 허덕이고 있는 상태였다. 따라서 OECD나 Eurostat의 통계상 복지지출이 크다는 것은 공공부문이 크고 통계에 잡히지 않은 비공식 부문이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뿐 별 의미가 없다.

그리스 정부 부채, 어떻게 생성되고 급증했는가?

그렇다면 그리스 정부의 부채는 어떻게 생성되고 급증했는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반나치투쟁으로 성장한 KKE(그리스 공산당)는 세력이 20만 명에 달했고 이는 1946~49년 내전으로 이어졌다. 영국과 미국의 지원을 받은 농촌 초토화 작전으로 수백만 명이 그리스를 떠나거나 수도 아테네로 이주해 인구의 절반이 아테네에 몰려 살게 되었고, 노조지도자가 공공연하게 총살당할 정도로 노동운동과 좌파는 궤멸적 타격을 입었다.

당연히 1950대와 1960대에 다른 유럽국가에서 성립된 사회적 타협에 의한 복지는 없었다. 2차 대전 이후 우파 정권이나 1967년에 성립한 군사정권은 노동자계급과 농민을 배제하였고, 가족경영이나 전문직 그리고 60년대 이후 새로 생겨난 관광부문의 소자산가 등 소부르주아지에 의존하였다. 이 계층은 1950~60년대에 지방을 지배하던 보수당의 특권적인 연고기반이었고 이들은 조세면제, 공공일자리, 교육 등에서 특혜를 받았다. 소부르주아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컸기 때문에 임금노동자층은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다수가 되었다. 좁은 조세기반과 사회복지의 결여는 비대한 억압기구를 제외하면 국가의 규모를 작게 만들었다.

1974년 군사정부가 무너진 뒤 권력을 잡은 신민주당(ND:New Democracy)은 사회적 타협을 도입하였고, 1981년 집권한 PASOK9) 정부는 전국민 의료, 임금과 연금 인상, 공공서비스, 교육 등 빈약한 복지수준을 확장하였다. 그리스는 다른 유럽 국가들이 신자유주의로 전환하던 1980년대에 복지국가에 합류하였다. 하지만 PASOK은 대자본가와 중간계급에 대한 조세부담은 늘리지 않았다.10)

PASOK은 진보적인 노동입법과 대학교육을 추진하면서 공공부문의 ‘관대한’ 임금인상을 허용하였고 이것은 사적부문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한 급여인상과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의 도입은 공적 부채의 급증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비용은 수십 년간 군사독재 하에 억눌려 온 노동자계급의 요구에 직면하여 착취체제의 재생산을 유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이기도 하였다.

1985년 이후 PASOK 정권은 반격에 나서 ‘배부른 월급쟁이들’이라는 비방 하에 12.5%의 임금 삭감 등에 나섰지만 노동자계급이 얻은 모든 것을 빼앗지는 못했다. 공적 부채는 1980년 GDP 대비 22.9%였는데, 85년 57.8%, 1990년 79.6%, 1995년 97%, 2002년 97.4%, 2004년 100%에 달했고, 이후 급증하였다. 2000년대 이후 정부부채가 가파르게 상승한 데에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위한 과시적 투자나 2008년 경제위기 후 무리한 주택대출로 은행권이 위기에 처하자 GDP의 11.5%에 달하는 28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고 그 후에도 4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한 것이나, 조달 금리의 폭등 등의 영향이 컸던 것은 사실이다.11)

복지로 인한 재정악화 인정하기 어려워

  <GDP 대비 재정적자 등의 추이> [출처: Eurostat(단위: GDP는 100만 유로, 1인당 구매력은 유로, 다른 수치는 %)]

흔히 그리스의 사회보장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것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번째 표에서 보듯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선 2008년 이후의 수치는 성장률과 세수 감소로 인한 요인과 연금 등의 경직성 지출과 실업수당 지출의 급증 등의 요인으로 비중이 커 보이지만, 경제위기 전인 2005~2006년까지는 유로 16개국 평균 수준이고, 사회보장지출과 사회보장기여금(고용인과 피고용인 등이 부담)과의 차이는 불과 2~3%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높은 수준의 복지부담이 재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

그리고 2002년부터 경제위기 전까지 그리스의 세입과 세출은 각각 GDP 대비 40%와 45%였고, 매년 5% 이상 적자예산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국가부채가 GDP의 100%에 달하면 이자만 매년 GDP의 3~5%에 달한다. 이것은 정부차입의 대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충당되었을 뿐 늘어난 정부지출이 국민들을 위해 쓰여진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리스의 국가부채의 2/3는 해외에서 차입한 것인데 특히 프랑스의 차관은 무기도입에 충당된 것이 많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그리스는 25대의 미라쥬 2000 제트기와 26대의 F16전투기를 구입하였고, 이것은 총수입의 40%에 육박하였다. 그리스는 세계 5위의 무기수입국이었다.”12) “1989년 49%였던 법인세율은 2010년 20%로 감소했다.13) 법인세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1%에서 2007년 2.6%로 낮아졌다. Global Tax Justice Network에 따르면 그리스인이 소유한 역외회사의 주식은 5,000억 유로를 넘으며, 전 세계 선박 톤수의 15%를 점하는 그리스인 소유의 3,760척의 선박 중 862척만 그리스 국적을 가지고 있다. Spiegel지에 따르면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그리스인들의 예금이 GDP의 세배인 6,000억 유로에 달한다.”14) 그리스는 조세회피율이 40%에 달하고 비공식 부문이 30% 이상이다.

따라서 경제위기 전에 이 부문의 개혁만으로도 균형예산에 도달할 수 있었고 국가부채를 축소할 수 있었음에도 이를 게을리 한 권력(PASOK과 ND)의 책임은 면할 수는 없다. 그리스 위기를 부자들과 부패한 정치인의 탓으로 돌리는 정서는 여기에서 기인한다.

남부유럽 정부부채의 위기,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의 필연

그러나 그리스의 사회보장제도나 높은 정부부채, 비공식부문, 조세회피율, 정치인의 부패 등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고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것임을 감안할 때,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에서 정부부채의 위기로 발전한 것은 세계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즉 2000년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비롯한 버블경제가 형성되고 버블을 지탱할 수 없게 되자 금융위기가 오고 이를 구제하기 위해 공적 자금이 투여되면서 국가부채가 급상승한 것은 단지 높은 조세 회피율이나 부패라는 그리스만의 특수성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높은 조세회피율이나 부패와는 상관없는 두바이, 아일랜드, 스페인도 부동산 버블과 그에 이은 공적 자금 투입과 국가 부도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또한 경제구조 취약론이나 유로존 모순론(결함론)은 계급적 요인을 사상한 일국적 관점 혹은 국가 대 국가의 관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EU나 유로존 그 자체가 유럽 독점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기획이며, 크게 보면 그리스를 비롯한 남부유럽의 부채위기가 80년대 이후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축적체제’의 필연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지난 30여 년간 진행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자본의 이동과 투자, 투기의 자유를 위한 장벽을 없애는 것이고 이것은 개방 또는 세계화로 표현됐다. 또 한편으론 노동은 유연화(구조조정, 비정규직과 파견직 등 불안정 노동의 양산)됐고 복지는 축소됐다. 이것은 후진국의 저임금과 시장을 노리는 생산시설 등의 이전에 힘입어 선진국 내에서 만성적인 실업 즉 산업예비군을 낳았고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처지를 억제하거나 후퇴시켰다.

이러한 모든 것은 자본의 착취율 증가와 이윤율 회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의 낮아진 소비력은 경기의 회복을 어렵게 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소비조장과 대출조장 정책이 진행됐다. 또 한편으론 자본가계급을 위한 부자감세 정책이 진행됐다. 그리고 공공재를 사유화하고 복지를 민영화했지만(이 또한 상대적 과잉자본의 투자와 투기처를 제공하기 위한 이 축적체제의 필연적 공격이다) 노동자계급이 쟁취한 모든 것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각국의 정부부채가 늘어난 것은 경기부양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삶이 벼랑에 몰린 노동자계급의 반발에 직면해 착취제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지출인 사회보장비(예를 들어 실업수당 등)를 지속적으로 증가시켜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였고 이는 부자감세에 의해 더욱 악화됐다. 이것은 선진국의 공적 부채가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증가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2000년대 이후 세계 각국의 소비와 대출 조장정책, 부동산 투기 조장정책이나 공적 부채의 증가 그리고 남부 유럽에서 보듯 구조가 취약한 나라의 금융위기와 공적 부채 위기는 독점자본의 이윤율과 착취율 회복을 위해 성립한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의 필연이었던 것이다.

한국도 김대중 정권 시절 카드 남발과 같은 소비조장(결국 대출조장) 정책이나 노무현 정권 성립 후 지속적인 부동산 투기조장정책이 시행됐지만, 2008년 세계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로 표현되는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이나 두바이, 아일앤드, 그리스, 스페인 등 전 지구적으로 부동산투기 조장정책이 시행된 것은 바로 거대하게 성장한 상대적 과잉자본-금융독점자본의 필연적인 운동 때문이다.

투기조장은 금융자본의 요구이기도 하였지만, 성장동력을 잃고 경기후퇴에 직면한 즉 이윤율의 경향적 감소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부양정책과 맞닿아 있다. 한편에는 노동과 복지에 대한 공격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대중의 낮아진 노동소득분배율과 소비력을 낮은 금리의 대출로 보충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 역시 지난 20여 년간 집요한 신자유주의적 공격과 함께 대출과 투기의 조장정책이 관철됐던 것이고, 경제구조가 취약하였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불황에 노출되자마자 성장률과 세수가 급락하고 은행권에 대한 구제금융 등의 투입과 맞물려 국채 조달금리가 폭등하면서 디폴트 상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 스페인 등을 비롯한 남부유럽의 재정위기나 금융위기란 특정 국가의 국민이 흥청망청 낭비했기 때문에 생성된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라는 현단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운동의 필연으로 관철된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16)

이러한 인식은 경제위기의 부담을 노동자계급을 포함한 그리스 민중이 아니라 투기조장정책을 관철한 국제금융자본과 이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아 빼돌린 자본가계급에게 지울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그리스의 경우 원론적으로는 긴축의 취소, 부채지불거부와 부채의 탕감(국내외 금융자본의 부담)17), 도피한 해외재산과 탈세의 환수, 자본가계급의 부담의 요구로 이어지지만 현실의 선거국면에서는 다양한 슬로건이 제시됐다.

[출처: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6816418]

[발행처]타흐리르(02-2278-8828)
[편집인]진보전략 편집위원회
[각주]

1) Eurostat, at http://epp.eurostat.ec.europa.eu/tgm/table.do?tab=table&init=1&language=en&pcode=tec00001&plugin=1

2) OECD와 그리스 통계청 자료. Wikipedia, “Economy of Greece” at http://en.wikipedia.org/wiki/Economy_of_Greece#cite_note-GDP_by_sector-4에서 재인용.

3) Jason Manolopoulos, Greece’s Odious Debt, 2011, Anthem Press, p. 16.

4) 국제자본가계급의 이러한 유의 악선전에 대해서는 Stephan Kaufmann의 소책자에 잘 논박되어 있다. Stephan Kaufmann, 20 Popular Fallacies Concerning the Debt Crisis, 2011, Rosa Luxembrug Foundation.

5) Jason Manolopoulos, op. cit., p. 88.

6) 이 자료는 Eurostat의 현물 이전을 제외한 사회보장 정부지출 통계(Social benefits (other than social transfers in kind) paid by general government % of GDP)이다. 한편 OECD의 2011년 최신 통계(Government social spending : Total public social expenditure as a percentage of GDP)는 2007년까지 밝히고 있는데, 여기에 의하면 2007년 그리스의 공적 사회적 지출은 21.3%이고, 프랑스 28.4%, 스웨덴 27.3%, 오스트리아 26.4%, 벨기에 26.3%, 덴마크 26.1%, 독일 25.2% 등으로 되어 있고, 현물이전을 제외한 수치는 그리스 13.9%, 프랑스 17.1%, 독일 14.6%로 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지출의 범위와 내용이 다르기 때문인데 이 글에서는 환율 가공을 거치지 않은 순 정부지출을 비교하기 위해 Eurostat의 자료로 분석한다.

7) TPTG, “Burdened with debt: ‘Debt crisis’ and class struggles in Greece” in Revolt and crisis in Greece, Antonis Vradis and Dimitris Dalakoglou(ed), 2011, AK Press & Occupied London, p. 255.

8) Yiannis Kaplanis, 2011, “An economy that excludes the many and an ‘accidental’ revolt”, op. cit., pp. 216-21.

9) 정식 명칭은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nhellenic Socialist Movement으로 집권 당시에는 사민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정책을 폈지만 점차 유럽의 다른 사민당처럼 신자유주의적 공격에 충실했고, 장기간 집권하면서 부패했다.

10) Stathis Kouvelakis, “The Greek Cauldron” in new Left Review 72 (nov dec 2011), p. 21. 대자본가와 중간계급에 대한 조세부담을 늘리지 않은 점에서 PASOK을 포퓰리즘적이라고 규정하기도 한다.

11) TPTG. op, cit., p. 255.

12) “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in 2006–10”, Kouvelakis, op. cit., p. 22에서 재인용. 이런 점에서 부당한 부채의 거부는 근거가 있다. 1차 구제금융 때에도 나토 방위비 분담과 무기구입이 메르켈에 의해 강요되었고, 군인들의 급여는 삭감했지만 수십억 유로의 무기구입비는 삭감대상이 아니었다.

13) ND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법인세를 15%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하였다.

14) Marxistiki Foni Editorial Board, “Greece: Ten programmatic points for a Left government – our proposal – Part Three” (15 Jun. 2012) at http://www.marxist.com/ten-programmatic-points-for-Syriza-3.htm.

15) 1980년대를 거치면서 성립한 ‘신자유주의세계화 축적체제’란 1차 대전 이전의 자유경쟁 자본주의 체제나, 2차 대전 이전 배타적 식민지와 전쟁을 필연으로 하는 제국주의체제나, 2차 대전 이후 사회주의권의 영향과 장기호황에 힘입어 선진국 내부에서 지배계급이 상당한 타협적 분배를 했던 시기와는 달리, 1970년대 이후 축적위기에 몰린 자본이 노동과 복지를 공격하고 투자와 투기를 위한 개방의 강요에 나설 수밖에 없는 체제였다. 즉 신자유주의 세계화란 자본의 천국을 위해 노동과 민중의 삶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고, 이는 노동의 유연화, 복지의 축소, 무역만이 아니라 지적재산권과 금융, 투자와 투기의 분야까지 개방을 관철하는 것이고, 그 배경에는 거대하게 성장한 상대적 과잉자본이 있다. 이들이 금융투기자본으로써 온갖 투기와 버블을 일으켜 왔다.

16) 세계경제 위기와 국가부채 위기에 대한 이러한 설명 방법론은 그리스 자본주의의 내적 필연적 운동이 경제위기라는 외적 계기를 통해 폭발한 것으로 보지 않고, 현단계 세계자본주의의 총체적이고 필연적 운동이 아일랜드나 그리스나 스페인과 같은 약한 고리에서 먼저 폭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17) 2001년 디폴트 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에서는 원리금 상환을 정지하고 부채 조사 후 부당한 부채를 거부하여 65%나 국가부채를 탕감받은 사례가 있다. Éric Toussaint, “You can cancel the debt” in IV Online magazine : IV449 - June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