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오름

[인권오름] [벼리] 구의역 사망재해 사고에 대한 진상보고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이 낳은 참사

지난 5월 28일 서울메트로 하청업체 소속 청년노동자가 구의역 9-4 승강장 선로 쪽에서 ‘스크린도어’(승강장 안전문)를 고치다 전동차에 치여 숨지는 참변(이하 구의역 사고)이 발생했다. 고인의 작업가방에서 발견된 뜯지 못한 컵라면과 숟가락은 안전과 재해에 둔감해져버린 우리들에게 노동을 생산비용으로만 생각하는 사회가 노동자들을 얼마나 위험으로 내몰고 있는지 성찰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구의역 사고 이전에 발생했던 성수역, 강남역 사고 또한 모두 하청업체 소속의 작업자가 선로 쪽 고정문 위치에서 ‘스크린도어’의 장애물검지센서를 닦다가 일어났다. 반복되는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임을 강하게 암시한다. 6월 7일 고인의 사망원인에 대한 진실규명을 요구한 유족과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서울메트로 사이에 진상조사단 구성과 진상조사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위 합의에 기초해 지난 6월 27일 서울시, 운영기관(서울메트로․서울도시철도공사), 시민단체(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그리고 노동조합 등 4자가 참여하는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이 출범하였고 약 2개월에 걸쳐 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상조사가 진행됐다.


사진설명구의역 참사 현장에 붙은 추모의 글들

구의역 사고는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의 결과

진상조사 결과, 구의역 사고는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기인한 것임이 밝혀졌다. IMF 외환위기 이후 자유방임경제와 규제완화를 중시하는 신자유주의 기조가 범람하면서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공공정책의 목표와 가치마저 ‘경영효율’과 ‘비용절감’으로 치환되고 구조조정과 인력감축이 상시화 됐다. 안전을 위한 규제정책은 기업 경영의 걸림돌인 것처럼 ‘암덩어리’로 취급받은 반면, 비용절감을 위한 인력감축은 최고의 선으로 장려됐다. 안전은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하는 것임에도 ‘안전 = 비용’으로만 간주되어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명박 정부는 공기업 선진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철도산업인 지하철에서마저 인위적인 구분에 따라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로 나누고 주변 업무에 대해서는 민간위탁이나 외주화를 강행했다. 그 과정에서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업무는 주변업무로 밀려나 부차적인 업무로 전락하고 안전을 위한 기준과 규제는 완화되거나 축소됐다. 우리 사회는 공공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비용 절감이라는 명분으로 한편에서는 안전에 필요한 인력을 감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유해위험업무를 외주화해 인건비를 줄이는 정책을 강요했다.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할 일터에서 사망재해가 일상화되고 그 사망재해가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경제정책과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광고수입을 고려한 졸속적인 스크린도어 도입과 부실시공

이처럼 구의역 사고는 안전을 비용으로 간주하고 비용절감의 대상으로 삼은 ‘공공부문 경영효율화(합리화) 정책’의 결과임이 확인됐다. 경영효율과 비용절감을 앞세운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정상화 정책과 그 연장선에 있는 서울시, 그리고 그 산하기관의 경영혁신 추진 계획과 방침은 여러 방면에서 안전을 저해하는 원인을 만들어내고 안전사고들을 야기했다. 경영효율화 정책으로 포장된 속도와 성과 중심의 행정은 1) ‘스크린도어’ 도입과정에서부터 민간자본의 광고수입보장을 위한 고정문 설치, 기술표준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졸속적인 사업 승인, 2) 최저가 낙찰과 감리의 부재에 따른 시공 과정에서의 총체적 설비 부실, 3) 그로 인해 연간 1만 건이 넘는 너무도 잦은 장애와 고장, 4) 열차운행과 ‘스크린도어’ 사이의 상호연계 부족으로 인한 안전시스템의 결여, 5) 안전업무 주변화로 인한 안전인력의 무리한 감축과 외주화, 6)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업무에서의 절대적인 안전인력 부족, 고용관계에서의 차별 및 소통단절로 인한 안전사각지대의 발생으로 이어졌다.

부족한 인력, 외주화로 관제소와 소통 불가

부실시공에 기인해 빈발하는 장애와 고장,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상황은 2인 1조 근무원칙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었고 수리 노동자들은 자신의 속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광고판 설치를 위한 고정문은 승강장 쪽에서의 개방이 불가한 관계로 선로 쪽 작업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외주화로 차등화된 노동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종합관제소와의 소통마저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최말단의 외주하청 노동자들은 지하철의 정시운행 목표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작업속도에 의존해 ‘스크린도어’를 수리하고 전동차를 피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두 개의 진상조사기구

서울시는 구의역 사고가 터지자 이를 위한 대책의 하나로, 6월 7일 서울시장이 직접 나서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참여하는 시민·전문가 중심의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해서 사고경위 및 원인을 철저히 밝히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7월까지 진상규명을 완료하고 그 결과를 시민들에게 발표할 예정임을 알렸다. 서울시는 위 발표를 위해 유족과의 합의를 서둘렀고, 같은 날 서울시 교통본부장이 입회한 상태에서 유족과 서울메트로 사이에 합의문이 작성됐다. 유족과의 합의문 제2항에 “사고의 구조적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해” 앞서 본바와 같이 4자가 참여하는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을 구성하고 진상조사를 실시하는 것으로 명기했다. 이로써 두 개의 진상조사기구가 병존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사진설명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규탄 기자회견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주도하는 진상조사의 한계

진상규명위원회는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사회적으로 매우 명망 있고 개혁적인 전문가 중심으로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난 7월 28일 구의역 사고 조사보고회를 가졌는데 구의역 사고의 원인을 안전수칙을 위반한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안전관리 시스템의 부재와 안전업무의 외주화에 기인한 것으로 진단했다. 그리고 대책 또한 안전시스템의 구축과 안전생명 업무의 직영화로 나타났다. 공기업 안전사고에 대한 기존의 접근방식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진일보한 결과였다. 하지만 진상규명위원회는 지나치게 짧은 조사기간으로 인해 서울시 감사위원회에서 감사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울시 공무원들로 구성된 진상조사반의 원인규명에 의존하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서울시 감사위원회가 주도하는 진상조사는 필연적으로 현행 규정과 작업수칙에 천착한 사고원인 조사에 집중될 것이 명백했기 때문이다. 또한 감사 목적의 진상조사는 일방통행식 조사로 이루어져 안전업무 담당자와 노동조합의 참여가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로 인해 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조사활동은 구의역 사고 책임의 정점에 서있는 중앙정부와 서울시 그리고 이들이 추진해온 정책의 문제점에 접근하지 못했다. 또한 서울시와 운영기관 사이의 수직적·관료적 통제문화, 안전을 위한 적정인력의 충원문제, 직영화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인사노무관리 문제 등에 대해서 간과하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책임의 정점에 있는 중앙정부와 서울시의 정책에 대한 문제제기와 현장성을 갖는 대안들에 대한 보완문제가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의 몫으로 남았다.

매뉴얼이 아니라 주체들의 참여와 안전을 담보할 조건 마련이 시급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지난 8월 25일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앞서 살펴본바와 같은 내용으로 ‘구의역 사고 진상조사 결과 시민보고회’를 가진바 있다. 이제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은 10월말을 목표로 지하철 안전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일정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환기해야 할 것은 안전은 매뉴얼의 문제가 아니라 주체들의 참여와 안전을 담보할 조건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안전의 문제를 참여의 관점에서 인식하기보다 여전히 수직적인 통제와 현실적 제약 하에서의 물질적 개선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결국 지방공기업 예산편성지침과 경영평가를 무기로 한 중앙정부의 경영효율화정책에 굴복하는 것으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시민사회가 나서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서울시의 관료적 조직문화와 중앙정부 정책에 대한 회피 태도를 비판하고, 구의역 사고의 최고 정점에 있는 중앙정부의 공공부문 경영효율화 정책과 지침을 폐기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권영국 님은 구의역 사망재해 시민대책위 진상조사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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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주화 , 구의역 스크린 도어 사망사건 , 공공부문 효율화와 지하철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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