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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조종사 노조를 난도질하는 자본의 속내

83호 투쟁의 현장

새빨간 거짓말
몇 년 전부터 임단투 시기만 되면 언론을 장식하는 카피가 있다. '경제가 어려운데 웬 파업이냐', '귀족노동자들의 배부른 파업' 등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현대자동차 노조 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투쟁사업장 중에서 그나마 높은 임금을 받는 정규직 사업장을 집중공략하는 양상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가 7월 17일부터 파업에 돌입하자, 연일 신문과 방송에서는 난리 블루스다. '억대 연봉 귀족노동자의 배부른 파업', '귀족노조의 집단이기주의'… 아시아나 항공 조종사 노조가 핵심적으로 주장하는 '안전운항'과 관련된 얘기는 일언반구 없으면서, 마치 그들의 파업이 불법인양, 사회양극화를 부추기는 원인인양 왜곡·편파보도 하고 있다. '국민의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사측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거짓말을 남발하며 자본과 정권의 시다바리인 '언론'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7월 18일 경총은 '양대항공사 조종사노조 불법파업에 대한 경영계 입장'을, 19일 전경련은 '항공사 노사의 합리적 단협을 위한 제언'이라는 보고서를 각각 냈다. 이들은 조종사노조의 요구를 싸잡아 비난하고 '항공운수사업에 대해 쟁의의 사전적 제한 조치가 가능한 필수공익사업으로의 지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면서 사측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 징계책임, 무노동무임금 원칙 적용 등을 철저히 하라고 주문하기까지 했다.
언제 여·야당이 노동자의 편을 들은 적이 있었는가 마는 이제는 아예 대 놓고 자본편 들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이목희 의원은 "고임금의 상대적으로 좋은 근로조건에 있는 항공기 조종사라면 파업이 아닌 다른 방법을 통한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며 직권중재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나라당도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노조의 과도한 요구가 서민에게 박탈감을 주고 양극화를 가중시킨다"면서 노조의 양보를 주장했다.

왜곡된 사실의 실체
정부와 자본, 언론이 떠들어대는 것은 크게 다음과 같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별다른 근거를 갖지 못할 뿐더러 사실과 크게 다르다.
1) 귀족노동자의 배부른 파업은 자제하라
물론 노동자들의 평균임금에 비해 조종사 노동자들이 월급이 조금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비정규직들의 파업에 대해서 자본은 어떤 태도였던가? 정당한 파업이라며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었던가? 아니다. 월급이 많던 적던 노동자들의 파업은 무조건 안 된다는 것이 자본의 생각이다. 고소득 직종 종사자는 파업권이 제약받아야 된다는 것은 노동법 어디에도 없다. 소득 수준과 노동법에 따른 파업권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임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파업이란 노동자들이 자본의 독선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평소의 고액연봉자라고 선망의 직종이 되곤 하는 조종사들도 분명한 자본으로부터 착취당하는 노동자이고, 단결해서 투쟁하는 것 밖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는 노동자들일 뿐이다.
또한 조종사들의 파업이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노동자 내부의 불평등의 심화는 노동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며, 오히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비정규직의 양적 증대가 노동자 내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킨 중대한 원인이다.
게다가 이번 파업은 단협과 관련한 것이다. 조종사들이 고소득을 받는다는 것이 공공의 해를 끼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이번 파업에서는 노조가 안전운행이라는 공익적 요구를 핵심으로 내건 데 비해 항공사측은 이에 따른 기업 이윤의 축소나 조종사들에 대한 통제적 약화를 마치 공공의 이익을 해치는 것으로 호도한 것이 문제다.
2) 불법파업 못 하게,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하라는 주장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투쟁은 모든 쟁의행위 절차를 준수한 명백한 합법 파업이다. 파업 장기화의 주범은 교섭해태를 하는 항공사측에게 있다. 자본이 주장하는 '불법 파업'은 법적인 근거는 하나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자본의 이윤에 치명타를 입힌다는 것만이 그 근거인 셈이다. 그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자본의 요구사항인 '긴급조정'이니 '필수공익사업장 지정'등의 주장이다. 이는 헌법에 부여된 노동자의 노동 3권을 무력화시키고, 노조의 단결력·투쟁력의 초기에 봉쇄하고자 '직권중재'를 운운하는 것이다.

안전 운항을 위한 요구가 핵심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핵심요구사항은 비행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조종사의 비행시간을 단축하자는 것이다. 현행 항공법에서는 조종사 개인의 비행시간이 연간 1,000시간을 넘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연 1,000시간을 초과하게 되면 조종사의 피로가 누적돼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들도 대부분 연 1,000시간 미만만 비행한다. 문제는 747기장들의 비행시간, 747기장들은 편승시간(다음 비행을 위해 항공기를 조종하지 않고 해외로 동승해서 나가는 시간)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포함하면 연 비행시간이 평균 1,200시간에 이른다는 점이다. 직접 조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비행시간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 이 편승시간을 포함해 연 1,000시간을 제한하자는 것이 노조의 요구다.
노조에서는 안전 운행을 위해 비행시간을 국제적 규정에 맞추어 줄 것을 요청했고 이것은 전혀 무리가 가는 요구가 아니다. 또한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요구한 편승시간을 비행시간에 포함해 줄 것과 연간 휴무일 120시간 요구는 대한항공에서 이미 2001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이 편승시간을 포함시켜 비행시간의 상한선을 정하고 있다. 대한항공 연 1,000시간, 일본 ANA항공 960시간, 에어캐나다 940시간, 브라질 VARIG 850시간을 노사합의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더구나 아시아나 조종사노조는 비행시간을 단축을 2년 뒤부터 시행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인력확보 시간까지 주고 있다. 안전 운행과 관련한 부분은 승객들의 생명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물론 항공기가 다른 운송 수단에 비해 안전하다고 하지만, 다른 사고와는 달리 항공사고는 탑승객 전원의 사망을 가져오는 대형사고로 귀결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실제로 근로조건의 개선이 항공사고 위험을 줄인다는 것은 대한항공의 경우 조종사 노조가 출범하고 근로시간을 줄인 2001년 이후로 항공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다. 지하철이던 버스이던 비행기이던 운전자가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야 안전운행이 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장기파업의 진짜 주범, 아시아나 자본
노조는 연간 비행시간 제한 등 안전운항과 관련된 13개 핵심 주장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 회사 역시 조종사 자격심의위원회 및 징계인사위원회에 노조원 3명 의결권 부여 등 회사의 인사·경영권과 안전운항에 관한 18개안에 대해서는 못 받는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노조의 이번 파업은 임금협상 결렬에 따른 것이 아니다.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단체교섭 과정에서 나온 파업이다. 그것도 2004년에 9월에 요구했던 단체협약을 갱신하기 위한 것이다. 2000년 노조를 설립하고 그 해 12월에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지만, 법외노조라는 이유로 사측이 회피하는 바람에 단체협약 갱신이 이뤄지지 않았다. 올 1월 20일 노사가 첫 상견례를 시작으로 파업돌입 전까지 39차례의 교섭을 벌였지만, 사측은 계속 교섭을 해태하고 있다.
아시아나 항공은 17일 파업돌입 이후 26일까지 국내선은 1,675편 중 779편이 결항됐고, 화물 노선은 50편 중 35편의 운항이 취소됐으며 국제선은 1008편 중 인천-시드니 노선에서 결항이 4편 발생했다. 아시아나 항공사는 파업으로 인해 엄청난 매출손실을 보고 있다고 울상이면서도 정작 교섭은 해태하고 있다. 실제 결항 된 항공기의 경우 적자를 보는 국내선만 결항되었고, 수익성이 높은 국제선은 정상운항 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회사는 정부, 자본, 언론의 든든한 사랑 속에서 '시간 끌면 파업대오는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교섭해태를 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의 교섭해태,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원들은 강고한 파업대오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의 파업 참가 대오는 첫날인 17일 총 조합원 527명 가운데 315명이 참여했으며, 24일 기준으로 해외 체류 조합원 30명을 포함 400명에 이른다. 노조는 23일 투쟁명령 6호를 통해 해외체류 중인 조합원들에게 귀국해 투쟁대오에 합류하도록 했으며, 24일 영종도 인천연수원에 집결돼 있던 파업 대오를 속리산 신정유스타운으로 이동시켜 당분간 파업 대오는 흐트러짐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 항공사는 똑똑히 알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언론과 정부, 자본의 태도는 조종사 노동자들의 단결력과 투쟁력을 더욱 높일 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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