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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시설 문제에 대한 기초적인 언급

2005년 4월20일, 420 장애인 차별 철페 투쟁의 날을 맞아 ‘사회복지시설 민주화와 공공성 쟁취를 위한 전국 연대회의’(약칭, 시설민주화연대)가 출범할 예정이다. 시설 민주화 연대는 지난 2003년 공대위와 민주이사진에 의해 현장이 장악된 후 일단락 된 바 있는 에바다 투쟁을 전후하여 정립회관, 청암 복지재단, 성람 복지재단 등 사회복지 현장 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복지시설의 비리와 비민주적 운영 사례에 대하여 각 현장에서 발생하는 투쟁을 전국화 하고, 이를 사회복지시설의 민주화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하나의 전국적 흐름으로 만들어 가는 것은 물론 제도적 개선을 위한 입법투쟁까지 다양한 활동을 할 계획으로 있다.

이러한 흐름에 붙여 나는 이 칼럼을 통해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어떠한 접근이 필요한 지를 서술해 보고자 한다.

출범을 앞두고 있는 시설민주화연대를 비롯하여, 각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주체들을 통해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문제제기 중 가장 주된 것은 ‘비민주적인 운영’, ‘시설비리’, ‘인권유린’의 3가지 문제로 요약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지금까지 사회복지시설에서의 모든 현장 투쟁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어 왔으며, 실제로 거의 대부분의 사회복지시설들이 이 세 가지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 만한 시설은 ‘아직도’ 가물에 콩 나듯 할 것이라 추측된다.

그러나 나는 이 세 가지의 문제를 열거하는 것으로 이 글을 쓰고 싶진 않다. 그런 말초적인 문제제기는 아직까지 제기되지 않은 ‘원인’에 따른 ‘결과물’에 지나지 않으며, 사실 에바다 투쟁이 승리로 마무리되기 훨씬 이전부터 수많은 사례를 통해 열거된 바 있으며, 지금도 열거되고 있고, 앞으로 수많은 현장 투쟁에서 승리한다 하여도, 또 다른 현장에서 유사한 사례로 발생할 것이 거의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이 글을 통해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이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 것인지를 서술코자 한다.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규명과 그에 맞는 처방이 없다면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는 ‘시설민주화연대’의 출범과 같은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추적 60분’류의 방송에 보도되어 대중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여 한국 사회의 관음증이나 충족시키다가, 갖가지 사회 이슈들 속에 용해되어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시설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위의 세 가지 즉, ‘비민주적 운영’, ‘인권유린’, ‘비리’와 같은 문제는 사실 결과물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청계천을 콘크리트로 덮었다가 덮은 일부를 들어냈을 때 이미 썩을 대로 썩어버린 생활하수로부터 폭발적으로 올라오는 악취와 같은 그런 결과일 뿐이다. 나는 이러한 결과들의 원인으로서 무엇보다 ‘빈곤’과 그에 대한 사회적 대응책의 부재를 거론코자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사회적인 것이라 생각한다. 자본주의 착취구조가 가진 불안정성은 항시적으로 빈곤을 양산할 가능성을 가지며 그것의 표출은 때로는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이거나, 때로는 불안정 노동의 양산, 실업률의 증가 등의 형태로 드러난다. 한국에서는 1950년의 한국전쟁이나,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화된 신자유주의의 관철 등을 통해 빈곤이 급격히 양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생삭양식이 한국 사회에 자리를 잡는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산업재해와 환경오염, 교통사고 등 사고위험의 급증 등은 갖가지 장애를 유발시키는 요인이 되어 이로 인한 빈곤의 양산 역시 무시 못 할 수준일 것이다.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개인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발생한 ‘사회적 빈곤’인 것이다.

이와 같은 사회적 빈곤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1960년대 이래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사회복지시설(생활시설)을 통한 ‘빈곤 인구의 수용’에 급급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도 1960년대 이래 ‘공적부조’ 제도로서 ‘생활보호법’이 있긴 하였으나 이는 일제 시대의 ‘조선구호령’을 그대로 베낀 것에 불과하여 실질적인 어떠한 빈곤 대응책도 되지 못해왔다. ‘공적부조’는 199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이 본격화 되면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제도로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도입되면서 뭔가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듯 선전되기도 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일을 통한 복지’라는 컨셉과 ‘까다로운 수급 조건’, ‘빈약한 생계지원’으로 최소한의 생계비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빈곤에 대한 기본적인 사회보장 대책이 거의 무용지물인 가운데 ‘빈곤’층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시설에의 수용’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극빈층으로서는 자신 또는 자신의 가족 중 다른 가족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부(장애인, 노인 등)를 시설에 위탁하여 그 생계를 유지하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 세상에 폭로되어온 수많은 사회복지시설의 비리, 인권유린의 사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시설에 수용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바로 이런 한국 사회의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빈곤에 대한 어떤 대책도 강구하지 않고 있는 한국의 부르주아 정부에게 있어 사회복지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던 이들은 마치 ‘천사처럼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빈곤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치부를 적절히 은폐해 줄 뿐만 아니라, 빈곤에 대해 어떤 대책도 세울 수 없는 부르주아 정부를 대신하여 그 무능을 감싸주는, 마치 청계천의 덮개와 같은 고마운 존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자들은 ‘천사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를 보여주는 표본이 되었고, 그들의 업적은 부르주아 정부에 의해 선전되고 장려되어져 왔다. 결국 사회복지시설의 운영자들과 부르주아 정부는 유착관계로 이어지고, 설령 전에는 유착관계가 없다 할지라도 시설의 문제가 폭로되면 더욱 더 유착하게 되는 기묘한 현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뿐인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미신고 시설의 문제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를 양성화 하겠다는 정부의 어이없는 대책과 폭로된 미신고 시설의 인권 침해 사례 역시 바로 정부에 의해 은폐, 축소되고 있질 않은가..

또, ‘자본주의 사회 - 빈곤 - 부르주아정부 - 사회복지시설 운영자’ 간의 함수관계는 복지를 ‘시혜’, ‘동정’, ‘사랑’ 등의 결과물로 변질시킴으로서 한편에서는 비민주적 시설 운영을 부추기고 사회복지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들에게는 ‘주는 것도 감지덕지’하라는 이데올로기적 억압기제로 작용함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양자를 모두 질곡에 빠뜨리고, 비민주적 운영과 비리, 인권 유린 등을 옹호하게 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이와 같은 현실에서 사회복지시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확인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첫째, 빈곤은 결코 개인의 빈곤이 아닌 자본주의 사회가 유발한 사회적 빈곤이다. 따라서 극심한 빈곤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은 그에 대해 자신의 생활을 보장 받아야 할 분명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둘째, 위와 같은 이유로 빈곤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국가의 절대적인 책임이며, 이를 개인의 능력이나 사적인 조치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의 책임방기이다.

셋째, 그리고 이러한 국가의 책임 방기가 계속될 경우 사회복지시설 또는 미인가 수용시설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비리, 비민주적 운영, 인권유린은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넷째, 시민사회 대중들의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대한 참여를 통한 사회복지시설 운영의 실질적 민주주의 확보가 없이는 그 어떤 패러다임의 도입도 미봉책일 수 밖에 없으며, 그 어떤 시설의 공공성도 담보할 수 없다.

정리해 보자면, 빈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이를 통한 극빈층의 생활보장을 위한 제도 개선 노력이 필요하며, 이로부터 빈곤에 대한 대응책으로서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야 말로, 원천적으로 시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일 것이며, 이와 함께 현재 갖가지 문제가 돌출되고 있는 시설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의 대중들이 확인하고 참여할 수 있는 운영구조를 확보함으로서 민주화 시켜 낼 수 있을 때만이 그 공공성 또한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말

주간 민중복지 제 99 호 이 승 헌(민중복지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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