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투쟁, 핵심은 결정기준과 방식이다! [27호|특집2]

2004년 6월 어느 아침 상황.
작년 6월 말 강남구 논현동 한복판에서 노숙농성이 벌어졌다. 1,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모여 ‘최저임금 현실화’를 요구하는 노숙 투쟁을 벌였다. 예년에 비해 더없이 커진 집회 규모는 노동운동 내에서 최저임금 투쟁이 그만큼 크게 자리 잡았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흥겨운 분위기도 잠시 그 다음 날 아침에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최저임금이 13.1% 인상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집회 대오의 한 쪽에서는 ‘최대의 인상률’이라며 기뻐하는 반면 다른 한 쪽에서는 ‘이런 식으로 노동자위원이 합의해주면 어떻게 하냐’며 단상 위로 올라가 거세게 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최대의 인상률이라는 소식에 환호하던 집회 참가자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했다. 이 정도면 잘 한 건데 왜 항의를 하는 거지? 그리고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의 이런 사태는 모두의 기억에서 금세 잊혀져갔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이슬 맞으며 자느라 피곤하긴 하지만 중요한 투쟁을 함께 했고 성과를 거뒀다는 뿌듯함으로 돌아간 이들이 더 많을 것이다. 굳이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의 ‘작은 소란’을 상기시키는 것은 이제는 최저임금 투쟁의 원칙과 방향에 대해 노동운동 전체가 논쟁해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노총은 2004년 최저임금 요구안인 77만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노동자위원이 퇴장하고 집행부는 열린우리당 항의농성에 들어가며 최저임금위원회 노동자위원들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농성을 한다는 전술을 마련했다.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들은 노동계의 77만원 안이 너무 높다고 하면서 7~13% 사이에서 수정안을 내지 않으면 사용자 안을 지지하겠다고 위협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공익위원의 숫자놀음 속에서 정해지는 최저임금의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퇴장했어야 했다. 그러나 공익위원이 제시한 인상률만 쟁취해도 어디냐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노동계는 본래의 요구안에 미달하는 수정안을 내고 말았다. 결국 2005년 최저임금은 13.1% 인상되는 것으로 결정되고 말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의 의의, 방향, 요구 등을 둘러싼 쟁점들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이는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는 방식으로는 10년이 가도 최저임금이 현실화될 수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인상 투쟁이 저임금 근절을 위한 투쟁의 전부가 되어선 안 된다.’고 하며, 다른 이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아예 무시하는 방식은 무책임하다’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최저임금 결정 시기에만 반짝하는 투쟁을 극복해야 한다’는 평가도 많아서 ‘노동운동 전체의 결의를 통해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중소영세사업장, 여성노동자의 조직화의 계기가 되도록 최저임금현실화 투쟁을 전체의 사업으로 받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최저임금 문제가 노동운동의 주요 현안으로 대두된 것은 워낙 노동자 전체의 임금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이 확대되면서 최저임금을 사실상의 최고임금으로 주는 사업장이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이후에 저임금 노동자들이 많이 조직되면서 투쟁으로 자신을 선언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민주노총과 각 산별연맹이 산별교섭을 진행하려고 하는데 ‘최저임금’이 그런 협상의 중요한 매개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사실상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투 수준으로 최저임금 문제가 인식될 확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투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계를 보장하는 임금을 주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권리를 법제화하는 정치적인 투쟁인 것이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2004년 투쟁

2004년 당시 노동계가 공익위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평가하는 것은 최저임금 결정방식과 기준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결정방식의 문제는 곧 최저임금위원회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와 연결된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선 똑같은 모습이 벌어진다. 사용자와 노동자 측에서 현격하게 차이가 나는 인상안을 제시하면 공익위원이 조정을 한답시고 양쪽을 어르거나 협박하는 광경이 벌어진다. ‘괜히 무모한 인상안을 고집하다간 아예 사용자 안을 지지할 수 있다’는 협박에 공익위원 쪽 조정안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노사 동수인 상황에서 공익위원이 사실상 결정권한을 쥐고 있기에 이들의 위협이 통하는 구조이다. 전년에 노동자측 요구를 들어주면 다음 해엔 사용자측 요구를 들어주는 것이 관례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구조 속에서 최저임금이 그 목적에 맞게 현실화되는 것이 가능할까.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안에는 임금위원회와 생계비위원회가 있으나 생계비위원회의 논의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대한 고려, 국가경쟁력에 대한 고려 등이 우선되고, 사실상 노동자들의 생계비가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인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노사정 협상구조에서는 최저임금의 현실화란 불가능에 가깝다.

2003년엔 최저임금 현실화를 주장하면서 노동자위원 및 공익위원 일부가 사퇴했는데 이 전술에 대해서도 평가가 분분하다. 한 쪽에선 ‘일반 임단협과 달리 합의가 되지 않으면 표결로 결정하기 때문에 표결에서 이길 확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번의 결정이 수백만 노동자들의 임금을 결정하기에 1%도 중요하다. 노동자위원이 빠지는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주장한다. 다른 쪽에선 ‘현장에서 보기에는 8.3%인상이나 11.4%인상이나 턱없는 저임금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올해만 하고 말 투쟁이 아니기에 투쟁의 효과적인 조직을 위해서는 강력한 전술도 고려해야 한다.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제의 목표를 무시하고 숫자 놀음하는 걸 끝내기 위해서라도 강력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결국 2004년에는 ‘평균임금의 50%인 77만원 쟁취’라는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하다 13% 수정안을 내지 않으면 사용자 안이 채택된다는 이유로 노동자위원이 13.1% 인상에 합의한 것이다.1)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한 결정은 절대로 최저임금을 현실화할 수 없다.

이 논쟁을 보면 ‘최저임금위원회를 통한 결정’이라는 방식에 대해 운동진영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 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방식 아래서는 공익위원이 사실상 결정권을 쥐게 된다. 9:9 동수의 노사 위원이 있고 공익위원들이 있다 보니 공익위원의 판단이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최저임금연대회의 등에서는 경제학, 경영학 교수 중심이 아니라 노동법, 사회복지학 교수, 전문가가 공익위원으로 선출되어야 하고 비정규직, 장애인, 여성 등을 대표하는 심의위원을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노동법, 사회복지 관련 전문가를 선출한다 해도 전문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최저임금이 좌지우지 될 것임은 여전하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이름만 공익을 추구하는 공익위원들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기한다는 최저임금제의 목적에는 관심이 없다. 경제성장률, 노동생산성, 기업의 경영 상태 등등을 근심하느라 바쁠 뿐이다.

노무현 정권 출범 첫 해니까 최저임금을 13%로 대폭 인상해보자는 청와대의 제안을 한 칼에 거절한 것도 공익위원이었다고 한다. 기업의 경제활동에 너무 부담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한다. 이렇듯 최저임금 결정 방식이 공익위원 개인의 성향과 판단에 좌우되는 지금의 방식으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한다는 최저임금제의 목적은 실현될 수 없다.

많은 이들이 그렇다면 ‘공익위원’을 선출하는 방식을 바꾸면 되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익위원의 선출방식이 핵심이 아니다. 최저임금이란 노동자들의 권리이다. 절대로 이 이하로 임금이 내려가서는 안되는 최저선을 정하는 것이고, 노동하는 자들은 과연 얼마의 임금을 받아야 하는가 하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그것은 노사간 협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또한 최저임금위원회 안에는 임금위원회와 생계비위원회가 있으나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 생계비위원회의 논의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최저임금이 고용에 대한 고려, 국가경쟁력에 대한 고려 등이 우선되고, 사실상 노동자들의 생계비가 무시되는 것이 일반적인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노사정 협상구조에서는 최저임금의 현실화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을 ‘최저임금위원회’와 같은 구조에서 결정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 결정 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최저임금 결정방식의 문제는 곧 결정기준의 문제와 직결된다. 현행 제도는 사실상 노사간의 협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협상의 범위는 이미 공익위원의 손에서 결정되어 있다. 즉 일정한 수준의 범위 안에서 노사가 조율하여 결정하는 방식인 것이다. 최저임금법에서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근로자의 임금 및 노동생산성을 고려하여” 정해야 한다고 한다.2) 그러나 근로자의 생계비 실태가 어떠한지, 유사근로자의 임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고려하지 않는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에서는 29세 단신근로자 실태생계비를 계측한다. 04년 9월부터 8월까지의 시기 동안 실태생계비가 109만원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최저임금은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계측한 실태생계비의 51.2% 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 1인이 살기 위해 지출하는 비용의 반 밖에 안 되는 수준인 것이다. 그리고 전체 노동자 임금평균과 비교해도 37.1%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수치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몇 %를 올리느냐 하는 숫자놀음만 하게 되는 것이다. 노동자들의 생존과 삶을 고려하지 않는 몇% 인상이라는 숫자놀음은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킨다. 어차피 결정기준으로의 영향력도 없는 실태생계비를 계측하는 비용이 아까울 뿐이다.

최저임금이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최저임금위원회 안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놓고 협상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결정기준을 법제화해야 한다. 최저임금제는 말 그대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해 이 정도 이상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최저수준을 정하는 제도이다.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임금 수준은 경제성장률, 생산성과는 별개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다. 최저임금법에서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임금 수준을 결정하기 위한 기준(경제적 기준이 아닌)을 정해놓으면 이에 따라 산출하면 되는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등에서는 ‘전체 노동자 정액급여 평균의 50%’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도 법제화의 한 방법이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다른 노동자와의 임금격차 문제여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은 생계비를 기준으로 해야 하는 것이다. 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면 생산성과 경제성장률 등의 다른 요소가 반영될 여지를 없애게 된다. 최저임금을 생계비 중심으로 결정한다면 해당 목표를 어떤 단계로 달성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결정기준을 법제화함으로써 노사정간의 협상이라고 하는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는 자연스럽게 힘을 잃게 되고 노동자들의 명백한 기준에 입각하여 투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3) 최저임금은 가장 열악한 조건에서 일하기에 가장 보호가 필요한 집단을 대상으로 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책임지고 개입을 해야 한다. 노동자와 국가 간의 교섭을 통해서 결정되고, 그것의 일부 책임을 국가가 담당할 때에야 현실화가 가능한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를 대리하여 임금협상을 해준다고 생각하지 말라!

위와 같은 기준으로 봤을 때 2004년 최저임금 결정은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의 원칙을 져버렸다고 볼 수 있다. 7~13% 사이에서 수정안을 내지 않으면 사용자편을 들지 모른다는 공익위원의 압박 속에서 민주노총은 수정안을 내버린 것이다.
혹자는 ‘결렬시켰다면 10% 인상 밖에 안 됐을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에게 시급 100원, 200원은 절실한 문제이다. 수백만 노동자에 대해 책임져야 할 문제이기에 섣불리 할 수 없다', ‘당사자인 여성연맹 등이 적극 주장했는데 어떻게 반대할 수 있는가’라고 말한다. 물론 저임금 노동자들의 현실을 걱정하는 노동자위원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결정적인 문제를 갖고 있는 바, 최저임금 투쟁을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협상을 대리해주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 최저임금이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핑계가 되어서도 안 된다. 모든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그것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즉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만드는 저임금 구조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투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최저임금으로 노동자 임금을 지급하도록 만드는 최저가낙찰제도나, 이런 방식을 양산하는 용역제도의 문제를 폭로하고 이에 맞선 투쟁을 하면서 저임금 노동자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 최저임금을 몇 푼 올림을 통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대신하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몇 푼 올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의 결정기준을 왜곡시키지 않고 노동자들의 권리로서 생계비 원칙에 충실하도록 만들어나가는 투쟁이 중요한 것이다.

저임금 노동자들은 그 권리를 위한 투쟁에 함께하기를 요청한 것이지, 자신들을 대리하여 임금협상을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최저임금 투쟁은 전체 노동운동이 책임져야 할 과제로 그에 걸맞는 투쟁이 계획되고 조직되어야 한다. 또한 협상을 결렬시킴으로써 최저임금 결정제도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이를 통해 최저임금위원회를 압박하는 전술을 쓸 수 있었다. 왜 그리 서둘러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을 정리하고자 했는지 냉정한 평가와 비판이 필요하다. 당사자를 핑계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의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려 놓고 이후 최저임금 투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결정기준과 임금수준 사이에서의 혼란을 극복하자.

작년 최저임금 투쟁을 보면 민주노총이 ‘전체노동자 임금 평균의 50% 기준을 법제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텅 빈 수사였다. 이 요구에서 핵심은 ‘법제화’이다. 즉 임금의 결정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므로 최저임금위원회에서의 투쟁도 이러한 결정기준에 입각하여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것을 못 박고 그 요구를 중심으로 투쟁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상의 내용은 그렇게 계산된 ‘77만원’이라는 데에 초점이 가 있었다. 즉 최저임금 결정기준이 핵심이었던 것이 아니라 최저임금의 수준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77만원’에 초점이 맞춰지다보니, 이 모든 것을 다 쟁취할 수는 없고 일정한 수준으로 협상을 해야 하니까 13.1%라는 안을 받아들이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

작년 투쟁을 평가해보건대 우리의 77만원 요구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요구였지만, 결국은 최저임금의 수준만이 부각되면서 애초의 목표였던 결정기준과 방식에 대한 투쟁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래서 결국 공익위원들의 숫자놀음에 놀아나고 만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이 현실화되기란 앞으로도 불가능하다.

이것은 민주노총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에서도 그 한계가 나타난다. 이 개정안은 ‘전체 노동자 임금 평균 50% 법제화’라는 내용과 ‘공익위원 선출방식 개선안’이 담겨있다. 만약 임금평균의 50%가 법제화된다면 사실상 최저임금위원회는 무력화된다. 굳이 ‘공익위원’의 선출방식을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그 기준 법제화를 요구하면서도 공익위원 선출방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마치 공익위원만 바뀌면 그 기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노사정합의기구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서로의 협상력이 중요해지고 주고받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공익위원을 바꾼다 하더라도 대폭적인 인상은 불가능하다. 핵심은 공익위원을 바꾸어서 우리에게 유리한 교섭환경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결정기준과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총이 개선안에 둘 다를 제출한 것은 여전히 임금 수준과 결정기준 사이에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이다.


후속작업 없는 산별최저임금

04년 보건노조와 금속노조가 체결한 산별최저임금협약 역시 재평가되어야 한다. 산별최저임금협약은 산별교섭을 안정화시키는 중요한 단계로 평가될 수도 있고, 그런 면이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을 산별협약 안에 넣었을 것이다. 현재의 법정최저임금으로는 최저임금제도의 본래 목적인 ‘인간다운 최저생활의 실현’이 보장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 축으로는 법정 최저임금의 결정기준과 방식을 바꾸어서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지금 수준에서는 법정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의 산업별 최저임금을 협약을 통해 쟁취함으로써 노동자들의 저임금에 맞선 투쟁을 벌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건의료노조는 법정최저임금이 결정되기 이전에, 그것도 노동계의 요구인 77만원에 훨씬 못 미치는 산별협약을 맺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법정 최저임금의 가이드라인을 13%로 묶어두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금속노조는 최저임금협약을 맺기는 했으나, 이에 따른 후속작업을 벌이지 않았다. 산별최저임금협약에 근거하여 관련 비정규직에 대한 위반사례를 조사하고 협약을 준수하도록 하기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하지만 이런 후속작업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금속노조의 경우 이 협약의 적용을 받는 하청노동자가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나 실제 적용투쟁을 벌인 사례는 보고되지 않았다. 현장에서의 조직과 투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산별최저임금협약은 종이 위의 문구에 그치고 말 것이며, 이 협약은 단지 산별협약을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한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몇 년 사이에 최저임금 투쟁의 규모는 몰라보게 커졌다. 최저임금위원회 앞 집회 규모만 보아도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그러나 6월이 되면 금요일 오전에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집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하고 선전전을 하고, 결정 당일에는 노숙농성을 하는 이런 방식으로 최저임금 현실화가 가능할 것인가? 사회복지학, 노동법 전공자를 공익위원으로 뽑으면 되는 것인지,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양 노총 조합원 5천명이 집회를 하면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최저임금 현실화, 저임금 근절, 생존권 쟁취를 위한 전략이 있는가. 최저임금 투쟁 관련해서 운동사회 내 논쟁이 있기나 한가. 최저임금위원회 앞 노숙농성을 위해 상경한 노조 간부들은 어떤 생각으로 와있는 것일까. 행여나 아직도 ‘6월 한 달 힘 실어주면 되는 남의 투쟁’이라고 시혜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투쟁이 운동진영의 중요한 투쟁과제로 자리잡고 있지 않다는 것은 그간의 모든 논의와 투쟁이 최저임금 결정시기인 6월에, 그것도 최저임금위원회와 관련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이제까지 우리의 투쟁은 어떻게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인상률을 높이느냐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최저임금 결정시기에 대한 논쟁도, 최저임금위원회를 뛰어넘는 큰 구상이 논의된 적도, 실행된 적도 없다. 이러한 한계는 그동안의 최저임금 투쟁을 평가하는 이 글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이 글도 작년 6월 결정시기에 어떻게 대응했어야 하는가 하는 논의 중심으로 서술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철폐연대에서는 최저임금 현실화, 저임금 근절이라는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운동진영의 요구는 무엇이어야 하고, 이 요구에 근거한 투쟁계획은 어떤 것인지 논의할 것을 제안한다. ‘결정기준 법제화’가 우리의 요구이고 그 요구에 근거해 투쟁계획을 배치해야 한다는 철폐연대의 입장에는 아직 채워야 할 부분이 많다. 예컨대 결정기준 법제화라 했을 때 그 결정기준의 내용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도 여전히 남는 문제이다. 생계비를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 생계비를 어떻게 측정할 것이며, 전체 노동자와의 임금격차 문제나, 최저임금을 최고임금으로 만들어버리는 저임금 구조에 어떻게 맞설 것인지 등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나 많다. 또한 6월 한 달 최저임금위원회에 한정되지 않는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 계획에 대해서도 우리의 지혜와 경험을 모아야 한다. 그것이 거칠지만 이 글을 제출하는 문제의식이다.


1) 퇴장 전술은 최저임금 결정방식의 문제를 폭로하고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평가되어야 할 것은 퇴장 이후의 투쟁계획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04년 최저임금 결정 당시 벌어졌던 비슷한 전술논쟁 역시 핵심은 ‘결정시기인 6월말에 반짝하는 투쟁이 아니라 결정기준 법제화를 요구하는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투쟁으로 배치할 의지와 계획이 있느냐’의 문제였다. 노동운동에 있어 최저임금 투쟁은 6월 한 달 힘 모아주는 시기별 사업 이상이 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 [다시 읽던 곳으로 돌아가기]
2) 이번 4월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최저임금법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어 ‘소득분배율’도 결정기준에 포함된다. [다시 읽던 곳으로 돌아가기]
3) 최저임금을 ‘전체노동자 정액급여 평균의 50%’로 정한 민주노총 요구안에 대한 문제제기와 최저임금 결정기준에 대한 입장에 대해서는 [질라라비] 같은 호 특집인 ‘최저임금 투쟁! 과연 제대로 가고 있는가?’(유기만)를 참조할 것 [다시 읽던 곳으로 돌아가기]


필자|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부장 구미영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알고싶어요. (3)

Q.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어떤 사람이 가입해야 하나요?
A. 불안정노동을 철폐시키는 정치적 기획 속에서 함께 투쟁할 동지면 다 가입할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 철폐와 노동기본권 쟁취투쟁에 복무하려는 모든 사람이면 됩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의 일차적 주체인 비정규직 노동조합 뿐 아니라, 정규직 노조의 주체들, 각 연맹과 지역본부의 활동가들, 다양한 노동, 사회, 정치단체의 활동가들 모두가 가능합니다. 이러한 모두가 오며 전국적 수준에서 상호 교류하고, 지속적인 연대활동을 조직하는 것이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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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 공익위원 , 최저임금위원회 , 결정기준 , 법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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