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반노동자적 교섭주의 아래 흐르는 노동자 계급대중의 고통과 투쟁

여름 현장활동투쟁 다녀왔습니다.

민주노총의 이수호집행부는 투쟁회피를 위한 교섭주의 방침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가 독단적으로 사회적 교섭주의로 돌아선 이후 6월 열린우리당은 노골적인 비정규직 개악법안을 강행하려고 하였었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울산플랜트 투쟁의 반노동자적 합의 이후에 합의에 대해 30여명이 구속, 263명의 불구속 입건, 30억원의 손배소, 그리고 현장출입거부 등 부당노동행위를 가했다. 그리고 경찰 측은 레미콘 노동자들의 투쟁의 현장에서 김태환 충주지부장 살인만행을 저질렀으며, 김대환노동부 장관은 연이은 막말을 하였다. 그리고 무기력한 관료산별인 보건 산별노조에 정부는 직권중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와 한국노총 권용득은 기껏 김대환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서명 받는 투쟁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는 군사독재시절의 긴급조정권을 아시아나 조종사 파업에 대해서 발동하였다. 그러나 민주노총 이수호 집행부는 세치 혀를 나불댈 뿐 전혀 투쟁을 조직하지 않았다. 이 노조관료는 투쟁은 모리배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장관과 마주하고 기업가들과 마주하여 노동정책에 대해 논의함으로써 마치 정부의 장차관 관료로 행세하고 싶은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이목희나 방용석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호가호위하고 있듯이 말이다. 이런 민주노총 관료주의 지도부의 사회적 합의주의와 반노동자적 투쟁방기 아래 현장 노동자들의 고통은 심화되고 있었으며, 동시에 투쟁은 고립적으로 그리고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전노투와 전철연 그리고 전해투는 자본의 공세와 민주노총의 투쟁방기라는 조건 속에서 고립분산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투쟁을 지원하기 위해 8월30일부터 9월 3일까지의 여름 현장활동 투쟁을 조직하였다.



첫날: 노사정위 및 한나라당 규탄, 현대기림 오피스텔 그리고 KCC 상경투쟁 연대


여름 현장투쟁은 바로 이런 이유로 여의도 사회적 합의주의의 상징적 기구인 노사정위원회 앞의 집회 투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50여명 여름 현장활동 투쟁단 외에 전철연 동지들을 비롯하여 300여명의 대오가 노사정 담합규탄을 중심으로 한 집회를 열었다. 여름 투쟁단은 노사정위원회 앞에서 자본과 정권의 공세에 맞서 투쟁을 조직하지 않고 여전히 사회적 합의주의에 빠져있는 노동운동 내의 사회적합의주의 세력들을 폭로하고 그 본산인 노사정위원회를 규탄했다. 이후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 앞으로 이동하여 철거민들에 대해 폭압적인 공격을 자행하는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을 규탄하는 집회를 가졌다. 열린우리당의 무자비한 반노동자적 폭압적 공격과 한나라당의 노골적 친자본적 정책 사이에 한국 노동자계급과 프롤레타리아 빈민들의 삶이 압살당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전철연 동지라고 하였지만, 실은 가난을 걸쳐 입은 우리네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왜소한 동네 아저씨들이었다. 그래서 투쟁의 시작 즈음에는 철거민동지들을 가난한 서민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4박5일이 끝날 즈음에는 투쟁의 전면에 나서고 있는 전철연 동지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일원이라는 생각으로 정리되었다.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노조관료들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 동안에 미조직된 하층민중들은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 투쟁을 조직하고 있었다. 꽃다발대신 마늘 다발을 들고 있는 박근혜 플랑카드가 걸려 있는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한나라당의 반민중적인 성격을 규탄한 뒤에 여름투쟁단은 현대기림오피스텔 노동조합 동지들이 천막농성을 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현대기림노동조합은 말 그대로 오피스텔 시설을 관리하는 노동조합이다. 이 현대기림 오피스텔은 강남 소비와 유흥지의 한가운데이자 거대한 빌딩사이에 있었고, 그 현대기림 오피스텔 정문에 노동자들의 투쟁 천막이 있었다. 현대기림노동조합은 5월 3일 사측의 용역전환에 대항하여 파업을 시작하였으며 벌써 4달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현대기림노동조합의 조합원수는 6명이었다. 우리가 현대기림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는 각지에서 온 100여명의 연대대오가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조끼를 입고 참가한 경찰고용직 공무원 노동조합이 우선 눈에 띄었으며, 전국시설관리노조에서도 집회에 조직적으로 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단 6명으로 천막농성을 사수할 수 있으며, 그리고 4개월여를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사실 놀라왔다. 그러나 이내 현대기림 노조위원장과의 간담회에서 그 해답은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현대기림노동조합은 2002년 현대기림 자본의 용역화에 맞서 천막농성을 하면서 용역회사를 몰아냈었다. 즉, 현대기림지회장과 조합원 모두 이미 승리한 투쟁경험을 가지고 있었으며 자본 측의 본질에 대해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4개월 동안 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시설관리노조차원의 직접적인 재정적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빌딩마다 고립적으로 존재하는 환경미화 및 경비 노동자를 포함한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연대체를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몇 천 원씩을 결의하여 산별차원에서 투쟁기금을 지원하고 있었다. 돈이 없어서 투쟁을 접는 일은 없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집회에 실질적인 연대와 투쟁재정지원이 이들의 투쟁을 강고하게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보건의료노조 같은 단사 노조를 억압하는 산별, 교섭을 위한 교섭주의 산별이 아니라, 필요한 것은 바로 해당사업장이 더욱 강고한 투쟁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연대하는 것이라는 점은 작지만 큰 현대기림오피스텔 노동조합의 투쟁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기림 집회가 끝나고 투쟁단은 잠시 KCC(고려금강화학그룹) 상경투쟁단이 있는 본사 앞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상경투쟁중인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도 뒤늦게 함께 했다. KCC상경단 동지들 3명이 모여 있었다. 강남의 고층빌딩 앞에서 20-30여명의 현장활동투쟁단은 이들 KCC 동지들의 투쟁 상황과 내용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도심 한복판에서 차량이 내는 소음, 가로등, 네온사인 아래 진행되는 논의는 집중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모임은 가끔씩 지나가는 행인의 시선을 끌기는 했지만, 그 소시민들의 관심이 호기심 이상이 아님은 분명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뭔가 이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의 해답은 다음날 금강화섬에서 코오롱정투위(정리해고투쟁위원회)동지들과의 논의속에서 확인되었다. 즉, 노동자들의 투쟁은 바로 투쟁동력이 있는 현장에서 진행되어야만 한다. 현장동력을 강화하지 못하거나 공장을 멈추지 못하는 상경투쟁은 순전히 소모적인 투쟁에 불과하다. 



둘째날: 한국통신비정규직노조, 현자비정규직 울산 연대집회, 구미의 금강화섬과 코오롱


우리의 일정은 한통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출근투쟁에 대한 결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목동 경기장 앞 KT 건물 앞에서 퇴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선전전을 중심으로 하였다. ‘2일차 투쟁은 오전 08시 KT목동전화국 정문 앞에서 통신산업비정규직 노조 동지들의 출근투쟁에 결합했다. 이 투쟁의 자리에는 서울지역통신산업비정규직노조 동지들과 31일 금속노동자결의대회에 참석하는 동지들이 결합했다. 이곳이 어디인가? 이곳은 바로 517일 동안 장기투쟁을 했던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 동지들의 한과 설움, 분노와 고통이 서려 있는 곳이다. 눈보라가 날리고 찬바람이 살을 파고드는 한 겨울에 한국통신계약직동지들은 한국통신 목동전화국을 점거하고 비정규직철폐를 외쳤다. 한국통신계약직 동지들의 투쟁은 패배했지만 그 투쟁은 노동자계급의 집단적인 기억이 되어 사내하청노동조합 동지들의 투쟁으로 되살아났다. 서울통신산업비정규직 노동조합 동지들은 한통계약직 전사들의 후예다. 여전히 KT내에 있는 동지들은 비정규직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결의는 그들 못지 않아보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이미 경찰 1개 중대 정도가 KT내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의 연대대오는 크지 않았으며 함께 참여한 비정규직 동지도 3인밖에 없었다. 그리고 출장 나가는 비정규직동지들에게 전달되는 유인물의 수도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이들 비정규직은 저임금뿐만 아니라 출장 가는 유류비도 자비로 부담한다고 들었다. 거대한 KT자본과 폭력경찰앞에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작으며, 이 악조건 속에서 투쟁하는 비정규직동지들의 의지는 얼마나 많은 결연함을 요구하는가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동일한 업무를 하면서도 차별의 고통 속에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투쟁으로 조직될 것이며 또한 이들의 투쟁은 결국 전체노동자들의 투쟁의 불꽃으로 살아 오르는 뇌관일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노동자들의 더욱 커다란 연대투쟁이 필요하며, 이에 앞서 투쟁을 회피하는 협조주의 노조관료집단을 극복해야만 한다.

우리는 이런 점을 울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9시 30분까지 함께 선전전을 마치고 8월 31일 울산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개최된 금속노동자결의대회에 참여하기 위해서 내려갔다. 전세버스에 함께 몸을 싣고서 중간에 함께 식사를 하면서 투쟁단은 조금씩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는 부수적인 결과를 얻었다. 출발이 약간 늦었기 때문에 울산의 3시 집회에 늦게 도착했으나 다행히도 집회는 계속되고 있었다. 현자 사내하청 비정규직 동지들뿐만 아니라 기아 및 대우 비정규직동지들을 포함하여 수천의 노동자들이 함께 모였다. 그들은 현자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투쟁을 위해서 전국에서 집결했던 것이다. 그러나 집회는 집회로 끝이었다. 투쟁을 위한 집회가 아니었다. 단지 연대 동력이 확인되었을 뿐이었다. 현대자동차공장 점거나 진입투쟁 혹은 파업 등 물리력이 수반되지 않은 곱게 차려진 집회였다. 이수호의 허장성세의 연설에 짜증이 나지 않을 수 없었고, 집회대오의 투쟁동력을 아스팔트위 땀방울로 소진시키는 집회절차도 개 같았다. 집회를 주관한 금속연맹과 민주노총의 머리에는 점잖은 관료들의 투쟁 방식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모두가 타고 온 관광버스를 타고 흩어져 버렸다. 투쟁을 회피하는 민주노총관료들과 연맹관료들이 개입하는 투쟁은 모두 패배하고 만다. 전형적인 결과가 2002년 발전파업으로부터 엘지칼텍스 노동자들의 투쟁 그리고 울산플랜트 노동자들의 투쟁 등등 이었다. 우리는 이런 폐해를 그날 밤 구미에서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과의 논의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심을 건너뛰었던 투쟁단은 울산에서 집회를 마치고 구미 금강화섬으로 가는 도중에 3천5백 원짜리 뷔페를 즐겼다. 푸짐한 메뉴와 맛있는 음식에 모두가 즐거워했으며, 전철연 동지들이 가장 좋아했고 총무를 맡았던 나도 기뻤다. 투쟁이 아니더라도 울산에 가면 다시 들르고 싶다. 그러나 일이 좋게만 이어지지는 않았다. 전세버스 타이어가 펑크가나서 길거리에서 2시간 정도를 허비하고 금강화섬에는 11시가 다되어 도착했다. 금강화섬동지들과의 간담회는 취소되었고, 코오롱 정투위 동지들과의 대화는 소수만이 참여하고 비공식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날 나는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개입에 의한 합법적 투쟁방식, 예컨대 국정감사를 위한 자료취합 그리고 현장과 유리된 상경투쟁 등에 대해서 정투위 동지들에게 가혹하리만치 냉정하게 비판을 가했다. 왜냐하면 이것은 마치 엘지칼텍스 노동자들의 무기력한 소시민적 투쟁의 재판이었으며, 지도부만의 ‘소영웅적’ 투쟁의 재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미 지난호에서 밝힌 것처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과 백강욱 화섬연맹위원장이 참여한 합법적인 그러나 동시 굴욕적인 문밖 코오롱위원장 이취임식에서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무기력한 집행부를 도대체 어떤 조합원이 믿고 따를 수 있다는 말인가? 합법적으로 당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코오롱 자본의 불법시비에 묶여 용역깡패들의 현장통제 제지조차 뚫지 않고 법원의 가처분에 따르는 합법주의적 투쟁, 그리고 그 결과 답답하게 돼 버린 현장을 외면하면서 진행되고 있는 상경투쟁 그리고 국정감사에 의존하려는 의회주의적 투쟁은 폐기되어야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정투위 동지들은 무엇보다도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타협적 관점에 입각한 ‘합법주의적’ 방침과 단절하는 것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관료지도부와 민주노동당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데 대해서는 정투위 동지들도 의견을 같이 한 것으로 기억한다.



세쨋날 : 이주노동자연대투쟁, 하이텍, 상도동 철대위


우리는 다음날 아침 금강화섬동지들과 아침식사만을 한 채 서울로 떠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금강화섬동지들은 화섬연맹차원에서의 지원 없이도 공장을 점거하고 523일차의 투쟁을 전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한편 어찌 화섬연맹이 전국시설관리노조 만큼의 연대도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인가? 그리고 금속산별노조와 보건산별노조의 무기력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바로 대사업장에 뿌리 내린 관료집단의 폐해의 산 증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운동진영의 앞으로의 주요한 과제중의 하나가 노조관료집단의 제거에 있음은 분명하다. 9월 6일 경한자본은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금강화섬노동자들에게 1인당 19억3천만 원의 손배가압류를 저질렀다. 자본 측이 다시금 손배가압류라는 망령을 불러들일 수 있는 것도 노동진영 상층부의 투쟁회피적 기회주의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울로 온 뒤 개인적인 일정으로 목동 집회는 참여치 못했고 하이텍 알씨디 집회는 늦게 도착했다. 이 부분은 여름투쟁단 속보로 갈음하고자 한다.


“여름 투쟁단은 금강화섬에서의 투쟁을 마치고 상경하여 이주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는 서울출입국관리소 앞에서 14 : 00 시경에 이주노조와 함께 ‘아노아르위원장 즉각 석방과 단속추방 분쇄를 위한 서울출입국관리소 규탄대회’를 개최했다. … 강제추방 위험을 무릅쓰고 이주노조 동지들이 참석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이주노조 깃발이 노동자국제주의를 더욱 실감나게 해주고 있었다. 이주동지들은 폭력적인 강제단속과 8명을 수용할 보호소에 2-30여명의 이주노동자들을 짐승처럼 가두어놓고 CC TV로 24시간 감시하는 감옥 같은 보호소를 폭로하고 아노아르 위원장 석방을 외쳤다. 이주노조 교육선전국장 동지는 남한 자본가 정권이 만든 허울 좋은 고용허가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을 강제추방하고, 20명 이상의 이주노동자를 자살로 몰아간 21세기 노예제도라고 외쳤다. 건설자본의 무자비한 폭력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철거민들과 자본의 탄압에 의해 현장에서 쫓겨난 해고자들 그리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강제단속과 노동3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자본이 갈라놓은 국적, 인종, 성, 고용형태를 단숨에 뛰어넘어 하나가 되었다.

출입국관리소 앞에서 집회를 마친 여름 투쟁단은 17시 근로복지공단 앞에서 산재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라고 외치며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 금속노조하이텍지회 동지들의 투쟁에 결합했다. 무기한 결사단식 16일차, 릴레이단식자 82명, 단식일수 161일, 단식끼니 483끼니라는 숫자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 이 동지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투쟁하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노동자의힘> 김정곤 동지는 자본이 말하는 산재라는 말이 산업화 과정에서 숙명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자본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노동재해라고 불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정곤 동지의 말처럼, 산업재해는 이윤추구 과정에서 자본이 노동자를 죽고, 다치게 만드는 명백한 노동재해이고 기업살인이다.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재해를 은폐하기 위한 자본의 주구에 불과하다. 30년 노동운동을 했다는 방용석 이사장의 뻔뻔한 모습에 대해 동지들은 더욱더 심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근로복지공단의 보상차장은 재해노동자에게 ‘산업쓰레기’라는 모욕적인 언사를 쓴다고 했다. 국민건강관리공단의 이성재 이사장이 사회보험노조 동지들에게 더욱더 악독하게 굴듯이 방용석 이사장은 더욱더 철저한 노동자의 적이다. 여름투쟁단은 하이텍 동지들의 처절한 투쟁을 보면서 지금까지 제대로 연대투쟁을 해오지 못한 점에 대해서 반성을 하고, 이후 여름투쟁이 끝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이 투쟁에 결합하기로 했다.”1)


하이텍지회 노동자들의 집회가 끝난 후에 우리는 상도동 철거민 대책위원회로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름투쟁단이 상도동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접하자 재개발측에서 용역깡패들을 불러들였다. 우리는 사태를 정확히 파악한 후에 봉고차에 나누어 타고 상도동철대위에 신속하게 진입함으로써 상도동 철거빈민과의 연대를 시작했다. 들어오는 길에는 정보과 형사들이 쫘악 깔려 있었고, 용역깡패와는 별도로 철거지역에는 재개발측이 고용한 대학생 알바생들이 주민들을 감시하고 격리하고 있었다. 경찰과 용역깡패와 알바 학생들을 고용하는 것은 건설자본임에 틀림없었다. 자본에게는 ‘폭력경찰과 깡패’라는 모순된(?) 두 세력을 모두 동원할 ‘자본의 힘’이 있음이었다. 상도동 지역은 도심 속의 산골이자 전형적인 달동네였으며, 이미 상당지역이 철거되어 있었다. 우리는 철거민 동지들이 차려준 저녁 식사 후에 전체적인 간담회에 들어갔다. 이동수 전철연 조직국장과 상도동 철대위원장이 상도동지역의 상황과 주택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었다. 건설자본은 재개발법망을 피해서 재건축으로 바꾸면서 철거민들을 위한 가수용 시설과 임대주택을 짓지 않으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지역은 원래 국유지이며, 세입자나 소유주나 모두가 10여년 이상을 살아왔던 삶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한양대학교 사학자본이 국유지를 매입하고 나서 일방적으로 내쫓으려고 하고 있었다. 한양대 교육자본은 그 국유지를 헐값에 매입했음에 틀림이 없으며, 건설자본이 막대한 이익을 얻을 것도 확실했다. 이동수 전철연 조직국장은 철거민 동지들의 주거권의 문제를 노동자계급의 주거권 문제와 관련지어 설명하였으며, 더 나아가 철거민이 노동자계급과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임을 강조했다. 그렇다. 자본주의의 주택문제에서 자본이 취하는 입장이라는 것은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계급의 주거권의 압박인 바, 이를 위해서 철거민들의 주거권을 박탈하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주택문제의 본질을 지적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과거 노동운동이 제대로 투쟁하고 있을 때는 철거민 투쟁이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협조주의적 노조 관료집단에 의한 무기력한 투쟁에 일침을 가했다. 참여한 학생동지들은 강단의 교수들의 허울 좋은 학문이라는 위선으로 포장된 자본주의의 체제 이데올로기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실제 사실을 확인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진리는 계급적이다.



넷째날: 사회보험노조, 신길운수, 용산철대위


4일차 현장투쟁은 사회보험노조, 즉 국민건강관리공단 로비 점거 연대투쟁으로 시작되었다. ‘국민건강관리공단 이사장인 이성재는 이른바 운동 물 먹었다는 작자로 사회보험노조 역사상 가장 악질적인 노조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사회보험노조 내에는 무려 170명에 달하는 징계해고자가 발생하고 무자비한 현장탄압이 자행되고 있다. 전국 사업장 중에서 가장 잘나가는 사업장 중의 하나였던 사회보험노조는 이제 지부 사무실에 대자보 한 장 붙이지 못하고, 현장에서 조끼조차도 입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심지어 가장 열심히 투쟁하고 있는 해고 동지들에게 출입금지가처분신청, 명예훼손금지가처분 신청서 등으로 민원인들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단 출입 자체도 가로막고 있다. 사회보험노조 김흥수 집행부는 공단의 무자비한 현장탄압과 구조조정에 협조주의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노조의 모든 투쟁의 성과를 공단에 고스란히 헌납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집행부는 자진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로비농성은 해고 동지들의 분노를 담아서 힘차게 진행됐다.’2)

우리는 사회보험노조 해고자동지들과 함께 사회보험노조 사측을 규탄하고 노조위원장을 비판하는 집회를 열고 있는데, 간부급으로 이루어진 구사대 몇 놈이 민방위 복장을 하고 다가와서 70여명 집회대오를 해산하려 했다. 평소에 얼마나 안하무인으로 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여름 투쟁단은 즉각적으로 이들을 몰아냈으나, 이들은 다시 돌아가서 50여명 정도의 구사대를 데리고 본격적으로 몰아내려고 하였다. 그리고 경찰들도 몰려오고, 폭우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투쟁단은 이 물리적 충돌을 주도했던 구사대에 맞서 로비를 사수하고 이들을 온 몸으로 몰아냈다. 이 작은 물리적 충돌 속에서도 오만한 자본 측과 폭력 경찰들에 대한 강고한 투쟁만이 승리를 가져다 줄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사회보험노조 동지들과 투쟁단의 대표들은 같은 건물에 있는 노조사무실로 올라가서 노조위원장을 데리고 왔다. 그는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같은 건물 로비에서는 해고자동지들이 사측 구사대와 충돌하고 있는데, 사태가 다 끝난 뒤 내려온 노조위원장의 모습은 노조관료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예정시간보다 늦게 사회보험노조를 떠나 한국노총소속 신길운수 버스사업장으로 갔다. 신길운수는 전해투 조직국장인 박한용 동지가 해고된 사업장이자 복직투쟁을 하고 있는 사업장이었다. 박한용동지는 운행을 마치고 무거운 돈박스를 들고 버스에서 하차하다가 넘어져 다쳤는데, 사측은 산재신고를 하지 못하도록 했으며, 산재치료를 받고 오자 이에 앙심을 품고 해고를 시켰던 것이다. 신길운수는 박한용동지 뿐만 아니라 산재치료를 받은 또 다른 조합원도 퇴사를 시켰다. 박한용동지는 중노위에 이의 신청을 하였지만, 사용자측 위원만이 참가한 중노위에서 이의신청은 기각됐다. 또한 이런 와중에 사측은 박한용동지를 구타하고 나서도 오히려 박한용 동지를 폭력행위로 허위 신고하여 벌금약식 재판결과 70만원을 받도록 했다. 박한용동지는 이에 대해 정식재판을 청구하였으나 사법부는 50만원의 선고를 유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와 행정부라는 국가 기구가 자본가의 집행위원회 이상이 아님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길운수 회장의 사위 둘이 검사라고 하며, 신길운수가 경찰과의 연계가 있음은 박한용 동지의 연행과정에서도 확인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신길운수자본은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구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길운수자본은 기사들을 8시간을 넘어 9-10시간 운전을 강요함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에 대한 지불을 하지 않고 있었고 운행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청소 등의 차량관리를 하도록 했다. 그리고 노조위원장이라는 놈은 조합원 모두를 재입사시킴으로써 자본 측의 퇴직금 부담을 없애고, 오직 자신만이 재입사하지 않은 채로 그대로 남아있었다. 이 어찌 인간말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름투쟁단은 이런 신길자본과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선전과 집회를 마치고 용산철거민 집회를 열고 있는 용산구청으로 이동했다.

 용산지역 철거민 7세대는 지난 7월 14일 기습적으로 철거당한 후 가족공원앞에서 천막생활을 벌이며 주거권쟁취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런데 용산구청측은 도로변 구청건물에 커다란 플랑카드와 홈페이지를 통해서 용산지역철거민들에게 임대주택을 주기로 했음에도 철거민들이 더 커다란 이익을 위하여 이를 거절하였다고 거짓 선전을 하고 있었다. 이들의 왜곡은 바로 그들의 철면피한 행동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었다. 또한 용산구청 공무원들은 철거민아주머니들이 구청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여 구청 앞에 노상방료를 하도록 강제하기도 하고 이것을 즐기기조차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경찰도 지역에 상주해있던 철거깡패들에게 철거민들이 집단폭행을 당했을 당시엔 보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신변보다도 철거깡패들의 폭력을 비호했었다. 국가공무원인 이들이 폭력적 국가기구의 도구라는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집회 자리를 통해 이런 사실을 규탄하고 정당한 주거권 쟁취를 위해 계속적으로 투쟁할 것을 결의한 후에 1.5km 정도 떨어진 철거지역까지 행진을 하였다. 용산철거민들이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쪽 앞에는 5m정도 높이의 펜스가 처져 있었고 안쪽에서는 삼성과 현대건설자본이 열심히 부유층을 위한 고층건물을 짓고 있었다. 한나라당의 친자본가정책과 열린우리당의 투기정책 그리고 자본가세상의 합작품아래 빈민대중의 주거권은 짓이겨지고 있었다. 우리는 공사장 옆에 텐트를 치고 철거민 동지들과 함께 노숙 하룻밤을 보냈지만 철거민 동지들은 벌써 40여일째였다.



마지막날: 신길운수 그리고 민중연대 한마당


마지막날은 토요일이었으며, 코오롱 본사 앞의 집회가 코오롱 동지들의 일방적인 철회로 취소된 터라, 대신 전날 신길운수 집회가 교대시간을 놓친 채 진행되었기 때문에 다시금 신길운수에서 집회를 한 후, 서울대로 가서 여름 현장활동투쟁단 해단식 및 민중연대 한마당을 갖기로 했다. 신길운수에서 전날과 마찬가지로 사측과 어용노조를 규탄하는 집회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어용노조위원장은 노조사무실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집회대오를 사진 찍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신길운수조합원이 알려왔고, 우리는 즉각 노조사무실로 달려들어갔다. 노조간부들이 사진을 찍지 않았다고 오리발을 내밀며 오히려 먹고 있던 짜장면 그릇을 던졌다. 이런 실랑이 과정에서 책상은 흐트러졌고 그 중에 지출내역 장부가 보였다. 수십만 원씩의 지출 액수는 이들이 바로 노동자 조합원들에 기생하는 기생충들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도망갔다 잠시 후 태연히 들어온 노조위원장의 뒷주머니 카메라폰에서는 집회대오가 일일이 찍혀져 있었다. 노조위원장이라는 놈이 바로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집회대오의 사진을 찍는 사측의 개역할을 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조직적으로 강력히 항의하였고 이 어용노조집행부는 꼬리를 내렸다. 집회를 마치고 떠나오는 길에 들은 얘기지만 조합원 상당수가 속이 시원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신길운수투쟁을 마지막으로 서울대 노천강당 옆에서 해단식과 한마당을 진행함으로써 그간 투쟁을 총화하고, 서로의 노고를 보듬어 안는 자리를 가지는 것으로 투쟁을 마쳤다. 



마치며: 노조관료들에 대한 전면적 투쟁이 필요하다


여름 현장활동 투쟁이후 그리고 현자 정문 집회 5일 만인 9월 4일 현자비정규직 류기혁동지가 비정규직으로서의 삶과 투쟁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런데도 현자 정규직 민투위 이상욱집행부는 9월 8일 불법파견문제를 뒷전으로 미룬 채 임단협을 종결지어버리면서 ‘노동형제들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나 이것은 실수가 아니며 본질적인 것이다. 사회공헌기금 갹출, 국내자동차 산업보호 등의 투쟁을 전개한 이상욱 반노동자적 집행부에 대한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그리고 이 노조관료들이 비정규직 불법파견투쟁을 임단협 이후로 미루는 방식으로 비정규직동지들을 배신할 것이라는 것은 이미 8월 31일 집회에서 경고되었고3)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노조관료임을 입증하였다. 현자정규직노조가 불법파견문제를 뒤로 미룬 것이 투쟁을 회피하기 위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들의 일련의 작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현자정규직 노조관료들은 올해 초 비정규직노조가 집단폭행, 집단해고, 위원장, 사무국장 구속 등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을 함께 할 것을 호소했을 때, 임단투와 병행해야 조합원의 힘이 실리고 강력한 투쟁을 할 수 있다고 뒤로 미뤘다’4)는 것이다. 9월 10일 화물연대 비정규직 김동윤 동지가 분신을 했다. 그리고 경찰고용직 김은미 강원지부장과 문정영 부위원장이 적들의 진압과정에서 투신하였다. 비정규직들을 포함한 이들 노동자들이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게 된 근원은 바로 투쟁을 내팽개치고 사회적 합의주의 노사정위로 뛰어든 이수호 집행부에게 있다.


“노사정위참여가 아니라 총파업투쟁을 조직했어야 했으며, 표결로 노사정참여를 강행하려 했던 3월 15일 대의원 대회 투표를 저지한 것이 올바랐음은 이수호집행부가 노사정을 독단적으로 참여한 이후의 진행상황이 입증하고 있기도 하다. … 6월 임시국회에서 지속적으로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차별을 심화시키는 법안을 강행처리하려고 하고 있다. … 사회적 교섭의 결과가 비정규직철폐를 쟁취할 수 있기는커녕, 개악된 법안을 ‘합법적인’ 회의절차를 막는 방식으로 막아내는 데 급급한 것이 작금의 수세적 상황이다. …이수호집행부가 노사정참여와 함께 ‘총파업조직’ 선언을 공문구로 만들 것임을 우리들은 지속적으로 경고해왔다. 실제로 노사정교섭국면과 함께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의 불법파견 투쟁 등 전국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할 투쟁이 민주노총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방기되었다. 그리고 오히려 울산플랜트노조의 파업 등에서처럼 아래로부터의 연대투쟁은 민주노총 상층부에 의해서 어처구니없이 봉합되기조차 했다. … 사회적 합의주의가 파탄난 현시점에 조차 민주노총 이수호집행부는 노동자들의 7·8월 투쟁도 말아먹기 위하여, 다음 정기 국회시기인 9월까지 사회적 교섭을 계속하려고 작당하고 있다.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고통이 지속되고, 그들의 분노가 조직화되지 않고 무력화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이들의 작태를 규탄한다. 당장에 사회적교섭이라는 계급협조주의는 철회되어야 하고, 반대로 7·8월 공세적인 대투쟁이 조직되어야 한다.”5)

 

그러나 이후에도 이수호 집행부는 연신 계속되는 긴급조정권 발동, 직권중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대환퇴진 서명이나 받고 있다. 김대환이 퇴진하면 다시금 사회적 합의주의 교섭주의에 뛰어들 것이다. 이수호가 류기혁 열사 추모대회에서 “이것저것 돌아보지 말고 현대자본과 정권을 향해 비수를 찔러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어선생님의 문학적 표현인가? 파업 없이 투쟁 없이 어떻게 자본과 정부에 비수건 바늘이건 찌를 수 있겠는가? 이수호와 이상욱 등등 노조관료주의자들을 규탄한다. 적과의 투쟁과 함께 내부의 적인 노조관료들과의 투쟁이 절실히 절실히 요구된다.  ≪노사과연≫


반노동자적 교섭주의 아래 흐르는 노동자 계급대중의 고통과 투쟁

―여름 현장활동투쟁 다녀왔습니다.



김두한∣연구위원장∣ 




1) 「여름투쟁단 속보」, 전노투 자유게시판 http://jjnotu.jinbo.net/


2) 「여름투쟁속보」, 상동


3) “12월이면 노동조합은 12대 임원 선거에 들어간다. 지금 불법파견철폐 정규직화쟁취 투쟁을 외면하고 그 때가서 ‘고용안정’ ‘투쟁하는 민주노조’를 외친다면 현 집행부는 물론 현장 제 조직과 활동가들은 조합원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면치 못할 것이다.” 노동해방 인간해방 현장권력 쟁취 투쟁위원회(현장투) ,「머리띠를 묶으며」,2005. 8.31.


4) 현장투, 상동.


5) 「사회적합의주의자들의 반대세력에 대한 고소고발을 규탄한다!」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 2005년 6월 25일.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5호 (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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