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산별노조의 역사적 제한성과 공장별 노동자조직

2005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본의 분리차별에 의해 처절하게 죽어가며 투쟁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 민주노총 소속 관료조직 상층부는 우습게도 산별노조, 산업내 노동자들 차이를 넘어서는 연대라는 ‘진보적인’(?) 요구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이들이 현실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전면적인 투쟁으로 나서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산별노조에 대해서만은 지속적으로 집착해왔다. 2005년 금속산별노조의 투쟁은 조합원들의 높은 파업결의에도 불구하고 흐지부지 파탄났으며, 보건 산별노조는 자본의 요구에 따른 정권의 직권중재에 무기력하게 투쟁을 접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었다. 그 뿐 아니라 특히 보건 산별노조의 경우 10장 2조, 즉 산별협약으로 단위 노조들의 단체협약 성과를 후퇴시키는 규정을 강제하였으며*1), 그 결과 전체 보건 노동자들의 삶을 후퇴시키고 노동자계급 전체의 힘을 약화시키는 협조주의 산별을 실현하였다. 이에 대해 평조합원들의 요구를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는 단위 노조인 서울대 병원 노조 등 4개의 병원노조가 보건산별을 탈퇴하고 연맹체계로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연맹은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주요한 사업으로 제기하였으며, 공공연맹도 올 상반기 산별노조 건설을 핵심사업으로 제기했었다. 산별노조의 무기력성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연대 투쟁은 거부하는 노조관료들이 왜 산별노조를 추구하려고 하는 것인가.



차별적 직업별 노조에서 연대와 투쟁을 위한 산별노조로


소위 산별노조 건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산별노조형태가 노동운동역사의 발전과정에서 가진 의의를 들먹인다. 최초의 노동조합은 산업별로 이루어진 조합이 아니라 직업별로 이루어진 숙련공들을 중심으로 한 직업별 노동조합이었다. 그리하여 이 직업별, 예컨대 주물공, 건축공, 기계공이라는 직업별로 노동조합을 만들었으며, 비숙련공의 가입이 배제되어 있었다. 직업별 노조는 전체 노동자계급 간 경쟁과 차별에 바탕을 둔 노동조합의 구조라는 것이며, 이로 인해 동일한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계급 전체가 동시적으로 파업을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2) 그런데 숙련공 중심의 그리고 직업별로 나뉘어진 노동조합은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불가피하게 해체되고 만다. 왜냐하면 숙련공과 비숙련공이라는 구분은 기본적으로 매뉴팩쳐적인 고정된 위계적 생산조직하에서 존재하였는데, 노동자들의 숙련을 대신하는 기계의 도입은 이러한 숙련에 따른 직종의 위계를 파괴하고, 전체적으로 노동과정을 동질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시에 교통체계가 발달하고 자본이 집중화되어 지역적 조직에 입각한 해당 지역 전체의 숙련공의 임금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더욱더 어려워졌고, 지역 직종별 노동자들의 파업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게 되어갔다. 그리고 직업별로 별도로 이루어지는 고립적 파업의 문제에 직면하여 노동자계급은 직업별 노조를 넘어서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추구하게 된다.***3)

산별노조로의 재편은 직업별 차이를 넘어서는 단결을 가능케 하였으며, 직업별 조합의 투쟁력 분산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조건도 마련하였다. 다시말해 직업별 노조의 산별체계로의 전환은 산별전체적인 파업과 산별 지부의 동시적 파업을 통해서 이제는 해당 기업 그리고 해당 산업에 속한 기업들 전체에 동시적인 전면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이 역사적 과정은 기본적으로 직업별노조의 개량주의적이고 협조주의적인 한계를 극복해가는 과정이었다. 예컨대 미국의 산별노조(CIO)는 미국노동총동맹(AFL)의 계급협조주의와 관료주의를 넘어서서 자본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전개되었다.****4) 하지만 그렇다고 직업별노조 모두가 개량주의적이거나 산별을 주장하는 쪽이 급진적이지만은 않았으며, 산별노조가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투쟁적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관료적 산별노조의 노동자계급 대중의 혁명성 압살


산별노조는 현장 평조합원의 이해에 대해 직접적으로 부담을 갖지 않는 상층중심의 노조로의 탄생을 의미하기도 하였다*****5). 따라서 직업별 노조의 산별노조로의 전환은 실제로 문제의 하나의 해결인 동시에 다른 문제를 초래하였다. 즉, 역사적으로 산별노조에는 관료주의와 반노동자적 계급협조주의적 경향이 나타났으며, 산별노조와 평조합원 계급대중과의 투쟁이 발생하게 되었다.*6)

이런 점을 먼저 산별노조의 전형적 예로 제시되는 독일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독일의 경우 산별노조의 반노동자적 성격은 이미 1차대전을 전후로 등장하였다. ‘1891년에는 오늘날의 독일 금속노조(IG Metal)의 전신이자 독일 최초의 산별노조라고 할 수 있는 독일금속노동자연맹(DMV)이 결성되었다. 금속의 뒤를 이어 섬유 산업노동자들(1891년)과 목재 산업노동자들(1893년)도 산별노조를 결성했다. 노동조합의 조직 발전과 관련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1892년 3월에 열린 자유노조 제1차 대회였다. 그러나 1895년 당시 베를린의 자유노조 조합원의 45%는 여전히 독립적인 지역단위 노동조합소속이었는데, 이들은 정치투쟁은 사회민주주의당, 경제 투쟁은 노동조합이 담당할 것을 주장하는 전국 조직들에 대해, 그리고 파업 발의권이 중앙의 권한이 되면서 지역의 자율성이 상실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다.’**7)

이렇게 등장한 독일 자유노조는 관료주의적으로 변질되어 사민당과 함께 정부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협조하는 태도를 취했다. 자유노조는 전쟁 중에 모든 노동쟁의를 중지할 것임을 사용자 단체들과 합의했고 병역법에 협조했으며 군수 산업분야에서 군과 협력했다. 이런 관료적 산별노조의 상층부가 사이비 노동자정당인 독일사민당과 함께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주도하고 있는 동안에도 평조합원들은 파업을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패전 이후에는 공장 평의회 운동을 조직하며 저항하였다. 이 공장평의회운동은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근본적으로 주장하는 계급적 운동이었다. 이 혁명적 평의회 운동이 고양되자, 산별의 개량주의 지도부와 사민당이 동시에 나섰다. 즉, 이들은 노동자평의회의 혁명성을 거세하고 이에 대항하는 개량주의적인 경영참가제도를 만들어냈으며, 이것이 그 후 독일 노자관계의 기본적 특징을 이루게되는 기업별 노동자평의회로 제도화 된다.***8)

산별노조 상층부가 아니라 공장평의회가 노동자계급대중들의 의지를 직접 대변하고 있으며, 노동자계급대중의 혁명성을 담고 있다는 점은 이탈리아 노동운동사의 1919-21‘붉은 2년’에서도 확인된다. 즉 ‘그람시를 중심으로 공산주의자들이 토리노와 밀라노의 대공장을 점령하여 공장평의회를 구성하고 노동자들의 자발적 투쟁을 촉발시켰다. 이 공장점거를 기반으로 한 공장평의회 운동은 파시스트에 의한 온건개혁주의 노동총연합(CGDL)의 자진해산 이후에도 북부 대도시 대공장을 중심으로 물가인상과 파시즘 정권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하였다.****9) 그리고 미국의 산별노조인 CIO의 건설도 바로 양차대전을 거치면서 노동자계급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쟁의 결과로 건설되었다.*****10) 하지만 미국 산별노조는 자본우위의 조건 즉, 반파시즘 전쟁이라는 명목 그리고 미국 자본주의의 세계적 주도권 강화라는 조건속에서 급격히 체제수호적으로 포섭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산별노조 CIO에 대항해서 미국노동자들은 산별지도부의 방침에 반대하여 광범위한 비공인 파업(와일드 캣)을 전개하였다*11). 그러자 CIO는 전국 지도부의 권력을 더욱 중앙집중화하면서 평의회들의 자율권을 박탈하였고, 더 나아가 체제 유지에 매몰되어 빨갱이 색출이라는 극우적 행위를 자행하기에 이른다.**12) 물론 이런 반노동자적인 투쟁회피와 억압은 비단 중앙집권적인 노동조합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이비 노동자당인 독일 사민당의 혁명압살에서도 확인된다. 마찬가지로 영국노동당과 중앙집권화된 영국 노동조합총평의회(TUC)는 1926년 평조합원들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대중들의 총파업을 빨갱이로 몰아 압살하게 된다.***13) 요컨대 산별노조를 포함한 중앙집중적 노조의 경우 그 출발 이후부터 현장 노동자계급 대중의 투쟁을 압살하는 반민주적 성격을 드러냈다.



양차대전 이후 계급타협주의와 산별협약과 노동자평의회


독일을 비롯한 유럽사회의 계급타협적 체제의 형성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쌓인 노동자계급대중의 분노와 불만의 혁명적 고양과 이를 포섭하기 위한 자본가계급의 전략적 결과에 의해서 초래되었다. 그리고 이후 산별노조의 협조주의적 성격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독일의 경우 이런 사정에 별도로 나찌체제에 대하여 저항하지 못한 상태에서 영국군과 미군에 의해서 해방(?)되었다는 점으로 인해 그 포섭적 성격이 더욱 두드러진다. 독일 산별노조의 특징은 관료화를 조장하기 위한 산별협약중심의 단체협상과 현장 노동자들을 포섭하기 위해 법제화된 사업장체제의 공동결정제도이다. 독일의 산별 노동조합은 산하 단위 노조들이 존재하지 않으며 노동자들은 개인 자격으로 산별노조에 가입하게 되므로 산별 노조 자체가 단위노조가 된다.****14) 이 산별노조는 주로 노동력의 판매조건(임금, 노동시간, 고용관계의 기본 여건)을 협상하고 합의하는데, 이 산별협약은 노조원들 뿐만 아니라 산업전체에 관철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점에서 산별노조는 계급내 직업 뿐만 아니라 기업의 차별을 넘어서고 있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 그러나 독일 산별노조의 경우 정치적 파업은 금지되어 있고, 평화의무조항이 존재하며, 파업은 전체 조합원의 75% 이상의 찬성으로 가능하며, 협상이 타결된 후에 이에 대한 거부도 75% 이상의 반대가 있어야 가능하다. 상층관료중심의  독일 산별노조는 그에 대한 보충으로 협조주의 노동자평의회를 가지고 있다. 1972년 경영조직법(노동자대표법)에 의거하여 노동자평의회는 정보권 제안권 공동협의권 공동결정권 등을 갖는다고 한다. 이것은 1920년의 노동자평의회법(공동결정권, 자문․협의권, 정보권)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우선 이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협조주의를 노골적으로 그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법제화되어 있다. 이 노동자평의회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파업권 등 일체의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인 평화의무를 지는 한 마디로 어용 노사협의회와 마찬가지다.*****15) 이 노동평의회 위원들의 모든 활동자금은 자본 측이 조달하며, 임금은 평소보다 더 많으며 2배 이상되는 경우도 많아 전임자 1년이면 부패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16)

이러한 산별협약체계는 다른 유럽국가들에도 나타났는데, 이탈리아에서는 독일과는 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도 1960년대 중반까지 현장 노동자 이해대변체계는 독일과 같은 직장평의회를 통한 이원구조였다. 그러나 1969년 ‘뜨거운 가을’의 자발적 투쟁을 거쳐 공장평의회와 대의원 평의회가 구성되면서, 현장노동자들의 투쟁을 통일하고 독자적 교섭력과 실질적 협약을 체결해나가면서 직장평의회를 대체했다. 이런 경향은 1970년대 초에도 계속되어 이원구조로서의 직장평의회를 극복하고 기업전체 차원의 대의원 평의회로 확대 재편되었다. 그 결과 대부분의 노조들로부터 묵시적이나마 단협체결권도 인정받아 실제 수많은 기업별 협약을 체결해왔다. 1993년 사용자단체연합은 이런 기업별 단체협상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던 기존 입장을 포기하고 기업별 단체협상체로서 공식 성립되어, 대의원평의회 또는 공장평의회의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다.**17) 이런 이탈리아 상황이 의미하는 것은 산별노조차원의 협상이 실제로 노동자계급대중의 직접적인 의사를 수용하지 못하며, 결국 노동자계급대중이 이에 저항함으로써 직접적인 작업장별 협약을 쟁취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기본적으로 산별노조는 평조합원의 이해관계 관철이 어려워지는 문제, 즉 민주성의 압박과 관료주의라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보건산별노조가 서울대 병원을 제명한 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바로 이처럼 계급협조주의 반노동자적 관료주의로서의 성격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계급역관계의 역전과 자본의 공세: 신자유주의 시대 산별노조 토대의 침식


사실 산별협약에 따른 개량적인 성과는 자본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균형이라는 조건속에서 가능했었다. 그러나 1974년 경제위기 이래로 이 타협체제는 본격적으로 파열되는데, 한편으로는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 공세가 시작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이비 노동자정당인 사민당의 반노동자적 작태의 노골화와 노조관료주의적 친자본 협조주의로 야기된 것이다. 다시 말해 산별노조와 그 협약이 가능했던 역사적이자 계급적인 역관계, 즉 양차 대전 이래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불만에 직면했던 자본이, 일시적으로 양보했던 포섭정책을 거둬들이고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세로 전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자본공세에 무능한 산별협약이 조합원들의 이해를 대변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이는 조직률의 하락으로 나타났다.***18)

그리고 자본가계급은 한편으로 이 산별계약의 긍정성을 침식하면서도, 단위노조 평조합원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이 부여되는 것은 막고자 한다. 독일의 경우 1980년대 이후 협약이 분권화되기 시작하여 기업별 수준의 교섭이 가지는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2001년 말까지 등록된 단체협약 중에서 약 60%는 산업별 협약이었고 40%는 기업수준에서 맺어진 협약이었다****19). 스웨덴의 경우에는 단일 중앙교섭, 전국(산별)교섭, 노조분회 3단계로 이루어져 왔는데 이중 중앙교섭이 붕괴하였으며, 자본 측은 전국산별교섭마저 없애려고 하지만 다른 한편 평조합원들의 전투성이 살아날 것을 두려워하여 형식적으로 산별을 유지하고 있다.*****20)

산별노조에 대비한 현장 단위 노조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데에는 계급역관계의 변화외에 물질적 토대의 변화도 존재한다. 우선 독점에 입각한 제국주의 양차대전시기 이전에 특히 산별노조의 유의미성은 자본들 간의 카르텔과 트러스트 등 개별 자본의 결합이 그 토대였던 것이다. 이 경우에는 개별 사업장 노동자 전체가 파업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독점자본은 다른 공장에서 생산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파업투쟁의 효과는 떨어졌었다. 그러나 1945년 이후에 이런 자본 간 결합은 사라졌으며, 오히려 급속한 자본이동을 수반하면서 초국적 자본 간의 무한경쟁을 야기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에서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언급되고 있는 자본 집중의 법칙이 노동자계급을 더욱더 소수의 대자본, 즉 초국적 자본아래 그리고 동일한 자본의 공장아래 집중시킨다*21). 즉 자본이 주도하는 산업의 발달은 초기 노동의 동질화를 통해서 직종별노조를 산업별 노조로 만들었던 것처럼, 이제 자본을 집중화시킴으로써 거대 기업별 그리고 공장별 노동자의 규모를 증대시키고 있는 것이다. 전자의 성격이 산별노조라는 계급연대의 범위를 확대시켜왔다면, 후자의 성격은 노동조합을 본연의 주체인 현장의 계급대중에 기반한 운동, 예컨대 작업장 평조합원 중심적인 노동운동의 부흥을 가져오는 물질적 조건이 될 것이다. 그리고 1945년 이후 진행된 자본의 세계적 집적, 즉 초국적 기업의 등장은 공장을 세계화함으로써, 이제 산별차원의 범위를 넘어서 국제적인 계급연대의 물질적 기초가 마련된다. 즉, 계급적 연대의 범위를 넓히는 단위도 산별외에 공장별 단위가 추가된다. 요컨대 기업을 넘어서는 산별노조 혹은 중앙단일 노조로의 확대를 통한 연대와 함께 아니 이 보다 더 현장 계급대중 중심 즉 공장단위별 연대가 중요한 시기이다.



평조합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연대투쟁에서 시작해야 한다


한국 노동운동의 관료주의자들은 기업별노조의 한계를 지적하며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가 대립하는 것은 직업별노조이지 기업별노조가 아니며, 더욱이 기업별노조도 산별노조와 마찬가지로 직업별 차별을 기업차원에서 넘어선 노조 형태다. 기업별노조와 산별노조 간의 계급연대는 따라서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양적인 차이다.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에 비해 그 포괄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더 발전적이지만, 동시에 이제까지  산별노조는 현장과의 괴리라는 점에서 기업별노조에 비해 더욱더 관료적일 수 있다.

따라서 예컨대 현대자동차 노조와 같은 기업별 노조관료의 문제를 산별노조의 건설로 해결하자는 것은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이 현재 세계 노동운동은 자본의 공세로 인해 산별협약 자체가 침식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산별노조 건설 운운하며 기업별 노조의 관료의 문제와 사내하청 비정규직노동자들의 계급차별을 넘어선 연대를 회피하고 있다. 예컨대 현자 이상욱집행부가 현자 비정규직노조 그리고 기아차 남택규정규직 집행부가 기아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연대하지 않는 문제가 마치 산별로 넘어가면 해결될 수 있다는 듯 주장한다. 산별노조의 의의란 계급내차별을 넘어서는 연대인데, 이들은 산별노조의 관료체제의 폐해 뒤에 숨으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세계노동운동이 산별노조 관료주의 문제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떠안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기업별 노조관료들은 바로 그 관료주의로 숨어들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당면한 비정규직과의 연대투쟁을 던져버리는 자들이 산별연대투쟁을 조직하겠다는 것인가.

현재 한국 노동운동 및 세계노동운동은 산별노조의 기본토대인 공장별 노동자계급 대중의 직접적 민주주의 강화, 즉 기업별 노동자평의회 등의 복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업별노조를 완전히 해체하고 산별을 건설하자고 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며, 소산별이냐 대산별이냐는 논쟁도 논점을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22). 공장별 평조합 노동자계급에 기반한 기업별 차원의 연대투쟁에서 시작하여, 초국적 기업이라는 물질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 국제적 연대투쟁에서 시작해야 한다. 민주노총과 산하 연맹은 산별전환 운운할 것이 아니라 먼저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조직화와 비정규직철폐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산별노조정신에 입각한 투쟁 다시말해 기업을 넘어서는 차별받는 노동자들을 가입시키고 조직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그 핵심은 현재 비정규직노동자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현재 산별관료주의자들이 비정규직투쟁을 방기하고 산별노조로의 전환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은 그들의 관료주의적 본성을 여실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하겠다. 그들은 독일의 협약이라는 개량에 감탄해하고 있지만,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체제위협까지 전개되었던 혁명적 노동자계급대중의 투쟁의 결과임을 은폐하고 있다.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시대에는 산별노조만으로는 부족하다. 초국적 자본의 세계적 경쟁의 시대에 적합한 노동조합은 국제적 기업별 노동자들의 연대를 수반해야 한다. 투쟁의 동력은 바로 현장에 존재하는 것이다. 《노사과연》



현장 

산별노조의 역사적 제한성과

공장별 노동자 조직



김두한|연구위원장 




*) ‘임금, 노동시간 단축, 연차휴가 및 연차수당, 생리휴가는 지부단체협약 및 취업규칙에 우선하여 산별협약이 효력을 가진다’


**) “뎁스는 마음이 아팠다. 그는 하나의 노조만으로는 무력하지만 ‘만일 처음부터 시카고 벨링턴 앤드퀴시 철도회사의 기관사와 화부와 전철수 및 제동수 사이에 동맹이 맺어져 힘을 합쳐 싸웠더라면’ 파업은 하루만에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썼다”, 리차드 보이어 외, ꡔ알려지지 않은 노동운동이야기ꡕ, p. 147.


***) “건축 분야에 종사하는 온갖 직종의 노동자들이 함께 고용된 기업에서 한 직능의 동지들만 개별적으로 파업을 조직하고 요구조건을 내걸도록 하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들의 이익은 서로 얽혀 있으며 고용주는 모두를 한꺼번에 착취하는 데 말이다.”Compte rendu lle congres corporatif

   (1900).p.45, 이용재, 「노동총동맹(C.GT)의 연맹구조 개편을 둘러싼 논쟁」,

   ꡔ역사학보 제 168기ꡕ, p. 229.


****) “AFL이 추구한 노선은 처음부터 1924년 사망할 때까지 AFL의 지도권을 장악하고 있던 곰퍼스에 의해 크게 좌우되었다. 한때 사회주의를 지지하기도 했던 그는 사회주의에 대한 반대와 정치적 중립주의의 입장을 취해 AFL을 혁명적 이데올로기로부터 분리시키고자 시도했다. …이러한 곰퍼스의 노선을 따라 AFL에는 개량적인 사업조합주의가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중앙집권주의와 여기에 따르는 직업적 노동관료 및 사업조합주의와 결합하게 되었다. …노동관료에 의한 타락의 길을 걷는 경우가 자주 나타나게 되었다.” 황덕순, 「산별노조성립에 관한 일 연구」,p. 79.


*****) “금속산업의 경우, 직능별 조직의 주창자인 주물공 연맹이 금속공연맹과의 통합에 반대한 것은 연맹서기장 르누아르의 주장에 따르면 통합의 결과 탄생할 산별조직이 직종 특유의 연대성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필경 영국식 공제조합으로 전락함으로써 혁명적 동원능력을 상실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이용재, 상동, p. 246


*) “‘공장평의회는 혁명적 자발성으로 인하여 항상 계급투쟁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비해 노동조합은 자신의 관료제적 형식으로 말미암아 계급투쟁의 진전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다. 공장평의회와 노동조합이라는 두 제도가 갖고 있는 상호관계가 이러하므로, 공장평의회가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는다고 해서 노동계급이 일보 후퇴하는 것도 아니고 패배하는 것도 아니다. 즉, 공장평의회는 노동조합의 규율을 받아들이고 소화시키는 반면, 공장평의회의 혁명적 성격은 노동조합에 영향을 미쳐 노동조합의 관료주의를 해체시킨다.’… 그람시의 공장평의회에 대한 분석은, 같은 시대 영국의 직장위원회운동(shop steward movement)주창자들에 의하여 전개된 이론과 상당히 비슷하다. 예컨대 머피는, ‘새로운 조직단위로서…우리는 작업현장에 기초하여 …거대한 산업별 노동조합구조를 세울 수 있고, 진정한 민주주의 정신으로 노동운동을 고무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운동의 역사적 투쟁을 통하여 쟁취된 진정한 가치를 유지하고 옹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론은 두 가지 이유에서 계속 중요성을 지닌다. 첫째는 현장조합원 조직이 주도권을 행사한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 ‘민주주의의 철의 법칙’을 뒷받침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작업현장의 노동조합 조직이 행사하고 있는 권력과 통제가 혁명적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는 점에서, 노동조합의 통합이론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이다.”리차드 하이만, ꡔ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운동ꡕ, p. 101.


**) 최광은, 상동, p. 65.


***) “이로써 노동자계급에 의해 꾸준히 요구되어 오던 산업별 조직화가 개량적 지도부하에서 채택되었던 것이다.” 황덕순, 상동, p. 30 “혁명의 과정에서 급진화된 노동자대중에 의해 때로는 비합법 사회화가 행해졌지만, 노동조합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임시정부와 레테(노동자평의회―인용자)의 대항관계가 명백해지자, 비합법 사회화와 레테운동자체에 반대하는 태도를 확실히 하였다.” 광민사 편집부, ꡔ독일노동운동사ꡕ, p. 32.


****) 정병기, ꡔ산별노조운동의 역사와 현재ꡕ, p. 274.


*****) “파업은 계속되었다. 1934년에는 거의 150만 명이 투쟁에 참여했다. 1935년에는 115만이 참여해 1만8천여 명이 체포 구금되었다. 1934년에서 1936년 사이에 88명이 파업중 목숨을 잃었다. 노동자들이 투쟁에서 죽고 체포되는 가운데, 철강․섬유․자동차․유리․고무․전기 등의 산업에 거대한 노조지부가 결성되었다. 노동자들이 산업별 노조를 만들었던 것이다. 여러 개의 경쟁적인 직업별 조합으로 자신들을 쪼개서 한 공장내의 힘을 약화시키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리차드 보이어 외, 상동, p. 309.


*1) “이와 동시에 노동인구가 급격하게 재편됨에 따라 CIO의 자생적인 뿌리였던 수많은 사회적 연계망과 주요 노동그룹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 이제 전투력은 제 2계층의 고참 조합지도자들―-작업장 대표, 공장위원 그리고 지부조합의 간부―로 상승 이동하였고, 그 바람에 기층은 아노미 상태에 빠진 듯, 매우 불안정하게 종잡을 수 없는 상태로 변했다. …1943년 펜실베니아의 무연탄 광부들이 특히 단호한 각오로 준비한 살쾡이파업―이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루이스의 조합통제권에 도전한 사건이었다―에 직면하여, 루이스는 UMW를 파업중지서약에 공개적으로 반란하는 방향으로 이끌고 가지 않을 수 없었다. 탄광노동자들은, 파업자들을 징집하고 탄광지대에 군대를 보내겠다는 루즈벨트의 위협에 맞서 네 차례의 총파업을 단행한 끝에 ‘근무시간제’임금 요구를 쟁취했다. 언론의 악랄한 비방에도 불구하고 UMW(광산노조)의 승리는 순식간에 군수산업의 평조합원 노동자들에게 활력을 불어 넣었다.” 마이크 데이비스,ꡔ미국 꿈에 갇힌 사람들ꡕ p. 109.


**) 마이크 데이비스, 상동, pp. 120-122.


***) “노동당 당수 맥도날드는 파업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총파업과 볼셰비키주의는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나는 오직 헌법을 지지한다’고 선언함으로써 총파업과 공산주의를 동류로 취급한 바 있으며, 당시 TUC 지도자 대부분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따라서 9일째인 5월 13일 TUC 집행위원회가 돌연 총파업의 무조건 종결을 선언하고 나왔을 때, 어려운 여건속에서 파업을 끌고 가던 수많은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경악하고 분노했다. 1926년의 총파업은 오늘날까지도 영국 노동운동사에서 가장 굴욕적인 패배로 기록된다.…노동당은 이미 총파업 반년 전인 1925년의 리버풀 전당대회에서 공산당원의 자격을 박탈하는  이른바 ‘리버풀’ 결정을 채택한 바 있지만, TUC의 총파업 철회선언 이후에는 적색 음모설이 더욱 더 기승을 부렸다.”고세훈, ꡔ영국노동당사ꡕ, pp. 183-185.


****) 정병기, 상동, p. 216.


*****) “직원평의회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권한은 노동조합에게만 부여되어 있다. 직원평의회는 법률과 단체협약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내에서 사용자와 사업장 협정을 체결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또한 직원평의회에는 쟁의권이 부여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직원평의회에게는 절대적인 평화의무가 부여되어 있으며, 기업가와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할 의무가 부여되어 있다.” 박장현, 상동, p. 106.


*6) 정병기, 상동, p. 265.


**) 정병기, 상동, pp. 284-5.


***) “1980년대 중반이후 조직률의 감소를 둘러싼 ‘노동조합의 위기’가 독일 언론을 장식하는 화두로 등장하였다. 노조내에서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조직개혁논쟁이 일어났고, 그에 따라 기존의 산별분류를 포기하고 거대부문 노조 또는 대산별노조 건설이 주장되었다. …최근에도 ‘위기’현상은 가시지 않아 1990년대 후반 5년 동안 DGB 조합원 1/4는 감소했고 1980-95년간 청년들(25세)이하의 조직률도 6%나 하락하여, 통합논의는 계속되고 있다.”정병기, 상동, p. 221. “지난 1991년 이후 독일 노총은 약 삼분의 일의 조합원을 잃었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실업률의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노조가입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동독지역을 중심으로 기업별 노조가 등장하고 있는 것도 노동자 상부 조직이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최광은, 상동, p. 811.


****) “그러나 독일 기업은 산별 교섭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면서도 기업별 교섭으로 환원하고 있지 않음. 그 주된 이유는…이제까지 협력의 대상이었던 종업원 평의회에 파업권을 주거나 사업장에서의 신뢰관계를 무너뜨리는 데 주저하기 때문.” 이주희, 「산별 교섭의 현황과 과제」,ꡔ매월노동동향ꡕ,

   2003. 7. pp. 60-61.


*****) “중앙교섭에 대한 가장 강한 비판은 엔지니어링 산업협회로부터 나왔는데, 그들은 1983년에 금속노조와 직접협약을 맺었다. 이 사건은 LO 교섭구조의 분권화를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사용자는 최근에 2단계 교섭에서 전국교섭도 없애려고 한다. …노조분회의 역할이 중부유럽국가에 비해서는 상당히 크다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은 작업장에서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인수범, 「스웨덴의 산업별 노조 건설과정과 단체교섭구조의 변화」, p. 164.


*1) “그러나 공업의 발전과 더불어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지 수적으로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더 커다란 대중으로 집결되며, 그 세력이 증대하고, 자신의 힘을 점점 더 자각하게 된다. 기계가 점점 더 노동의 차이를 소멸시키며, 임금을 거의 모든 곳에서 동일하게 낮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이해관계와 생활의 처지는 더욱더 균등하게 된다.” 마르크스, 「공산당선언」,ꡔ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1권ꡕ, p. 408.


**) “임영일은 …이러한 문제제기에 근거한다면, 앞으로 건설되는 산별노조는 기업별 노조의 해체, 기업을 뛰어넘는 지부체계의 구축, …산별노조에 걸맞은 내부체계의 구축 등을 추구해야 한다. 대중조직으로서의 정체성에 걸맞는 조직체계의 구축 및 활동의 전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수, ꡔ현장에서미래를ꡕ, 2005. 9. p. 82.) “먼저 (소)산별노조의 결성이 직종․업종 단위에서조차 계급적 단결을 토대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과기노조는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산별노조를 건설하였지만, 실질적으로 정부출연 연구기관 모두를 포괄하지 못하였고…보건의료노조나 금속노조도 마찬가지이다.…셋째, 기업단위를 중심으로 하는 지부, 지회, 분회체계는 산별노조의 집중적인 지도력을 형성하는 데 한계로 작용하였다.” p. 89.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7호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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