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월급쟁이에서 주인으로?

신판 노예제로서의 우리사주제에 대해서

우리사주조합의 주식인수를 둘러싼 대립의 외관 -


10월 들어 갑자기 '우리사주제'를 둘러싼 노동과 자본 간의 갈등이 세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1997년 말 이래의 경제위기에서 대량의 '공적자금'의 투입으로 파산을 면하고 재생한 몇몇 대기업들의 매각, 즉 재사유화를 앞두고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엘지카드, 브릿지증권 등의 노동조합이 "우리사주조합 인수참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위원장 정창두 대우건설 노조위원장, 이하에서는 '우리사주공대위'로 약칭한다)를 구성, 주식인수 의지를 밝히고 있는 데에 대해서, 산업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 등 정부 측이 기본적으로 거부 방침을 내보이면서, 긴장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우건설 노조 등이 대거 우리사주조합을 통하여 기업 매각에 인수자로 참여하겠다고 나서는 다른 배경에는 증권거래법 및 근로자복지기본법의 개정으로 10월부터 이른바 '차입형 우리사주제'(ESOP)가 이들 상장대기업에까지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의 우리사주조합이 이제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차입하여 매각주식의 20%까지를 최대 20% 할인된 가격으로 인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은행이나 자산관리공사가 이들 기업의 우리사주조합에 주식매각을 꺼리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매각일정 지연'이니, '회사경영에의 부정적 영향'이니, '지배구조 및 책임경영체제의 약화' 등등 여러 가지 구차한 이유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바로 이 주식의 할인 매각 때문이다. 예컨대,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의 매각은 국민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적정가격 이하로 매각할 수 없는데 우리사주조합이 지분 인수에 참여하게 되면 자금 회수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운운하는 '자산관리공사 관계자'의 말("대우건설 등 5개사 노조 연대키로", ꡔ연합뉴스ꡕ 05. 10. 19.)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일견 '우리사주공대위' 측의 입장을 지지하여 우리사주조합에의 주식 매각을 주장하는 쪽이 노동자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진보이고, 그 반대 쪽이 독점자본의 이해에 봉사하는 수구․보수인 것 같은 대결구도로 보인다. 실제로도, ꡔ한겨레ꡕ나, ꡔ오마이뉴스ꡕ, ꡔ프레시안ꡕ, ꡔ내일신문ꡕ 등등 자칭타칭 진보적 언론임을 주장하는 쪽이 기사나 칼럼, 혹은 사설까지를 동원하여 '우리사주제'를 찬양하면서 '우리사주공대위' 쪽을 거들고 있고,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이 '특혜'니, '형평성'이니 하면서 딴죽을 걸고 있는 모양새로 나타나고 있다.



언론은 모두 친자본의 동기에서 움직이고 있다


조․중․동 등의 수구언론이 '우리사주공대위' 측의 지분 참여에 딴죽을 걸고 나서는 것은 물론, 적어도 주관적으로는, 친자본․반노동자적인 동기에서이다. 이에 대해서는 새삼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사주공대위' 쪽을 거들고 있는 이른바 진보언론 쪽의 동기는 어떤가? '반자본적'이기까지는 않더라도 친노동자적인 동기에서 거들고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론 주관적으로 명확히야 '반노동자적'이지 않겠지만, 이들 언론도 분명 친자본적인 동기에서 '우리사주공대위' 쪽을 거들고 있다. 표면적으로도 그러한 친자본적인 동기를 결코 숨기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이들 '진보언론'의 친자본적 동기는, 독점자본의 근시안적 관점을 사실상 그대로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는 수구언론의 그것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치밀하다. 그리고 노동자계급에게는 그만큼 더 위험하다. 다름 아니라 '재벌 개혁'이라는 슬로건으로 제시되는 독점자본의 합리화, 그리고 이른바 '상생적 노사관계'의 확립, 즉 노동운동의 거세가 이들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바로 총자본, 혹은 자본의 이성으로서의 국가가 '우리사주제'니 '종업원지주제'니 하는 것들을 입법․제도화하는 동기이기도 하다.)

이들 '진보언론들'이 사실상 얼마나 (비록 미필적일지 모르지만) 반노동자적이고 친자본적인 동기에서 우리사주제를 찬양하면서, 근시안적인 자본에 대해서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확대하도록, 그리고 노동자들에게는 그 쪽으로 달려 들어가도록 유도하고 있는가는, 예컨대 ꡔ한겨레ꡕ의 "월급쟁이서 주인으로...노 사 상생 '선순환'"(www.hani.co.kr. 05. 9. 20.)이라는 기사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 기사는 주로 "우리사주조합 최대 지분 쌍용건설"이 "위기 넘기며 주가 2천원→9천원대로" 뛴 우리사주제 최대(?)의 성공담을 최대의 찬사로써 소개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필시 시각의 균형을 취한답시고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우리사주제도의 성공사례 못지않게 실패사례도 많다. 엘지카드와 하이닉스반도체 등 종업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사주를 배정받아 주가폭락으로 큰 손실을 본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사주 취득자금이 대부분 종업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노 사 상생'이니, '상생적 노사관계'니, "생산적 노사관계"니 하는 허깨비를 노골적으로 지향하는 자들이니, 일단 그 점은 차치하더라도, ꡔ한겨레ꡕ는 지금 "우리사주제도의...실패사례...가 부지기수"임을 알면서도 노동자들에게 우리사주제를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엘지카드와 하이닉스반도체 등의 '실패'의 원인이 마치 "종업원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우리사주를 배정"받았기 때문인 것처럼 말하고, 문제가 우리사주의 취득자금인 듯이 말하면서 말이다. 결국 "울며 겨자먹기로"가 아니라 적극적․능동적으로 달려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며, 소위 '차입형 우리사주제'(ESOP)로 취득자금의 문제는 태반이 해결된 듯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ꡔ한겨레ꡕ는 그렇게 "우리사주제도의 실패사례가 부지기수"임을 알면서도 쌍용건설이나 "포스코, 대한전선, 케이티엔지, 대우자동차판매 등 회사출연형 우리사주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기업들의 공통점은 노사가 서로 신뢰하고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라며, 성공담으로 소개한다. 물론 여기에서 '노사가 서로 신뢰'하고 있다는 말은 노동자들이 노동자로서의 계급성을 거세당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바로 자본의 관점을 대변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러면 ꡔ한겨레ꡕ가 예시하는 경우들은 경제적으로라도 과연 정말, ꡔ한겨레ꡕ가 그토록 상찬하는 것처럼, '성공한'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아직 실패의 기회가 오지 않았고, 그리하여 실패가 유예되고 있을 뿐이다.

저 부지기수라는 실패사례는 언제 그렇게 실패했는가? 다름 아니라 주기적으로 닥치는 공황, 즉 경제위기의 시기에 그렇게 실패했다. 그리고 '성공사례'로 소개되고 있는 저들의 경우는 아직 그 공황의 불의 시련을 통과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떤 교수의 애처롭고 간절한 호소


지난 10월 28일자 ꡔ내일신문ꡕ에는 우리사주제를 둘러싼 최근의 갈등과 관련, 물정 모르는 근시안의 "유수의 국내언론과 평론가들"에게 보내는 수줍은, 그러나 참으로 애처롭고 간절한 호소문이 실려 있다. 다름 아니라 "기업사랑과 사람사랑, 그리고 ESOP"이라는 제목의, 유철규 교수(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경제학)의 글인데, 이렇게 시작된다.


부산시에 이어 청주시, 대구시, 창원시 등 다수의 지방자치단체들이 '기업사랑조례'를 만들었다는 소식과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LG카드 등을 필두로 몇몇 기업노조들이 지금 법제화과정에 있는 차입형 우리사주제도(ESOPs: employee stock ownership plans)를 회사에 도입하기 위해 공동대책위원회를 만들어 연대노력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함께 들려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유수의 국내언론과 평론가들"의 근시안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탄한다.


유수의 국내언론과 평론가들은 지자체들의 기업사랑조례가 반(反)기업정서를 완화하고 기업인의 의욕을 북돋아 투자확대와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므로 전국적으로 확산시켜야 할 일이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언론의 옆 지면에는 차입형 우리사주제도를 통한 종업원 주식소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있다. 구조조정을 피하고 경영정상화의 과실을 따먹겠다는 얄팍한 술수이기 때문이라거나 채권단의 몫을 높이고 공적자금을 최대한 많이 회수해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우리사주제 역시 '기업사랑조례'와 마찬가지로 결국 기업, 즉 자본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는 경제학 교수로서는 근시안적인 '이런 상반된 평가'가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말한다.


이런 상반된 평가가 왜 이상한 일이냐 하면 미국에서 종업원 주식 소유제도를 법제화하기 위해 가장 애쓴 사람들은, 잠재적 기업가들이 끊임없이 키워지고 창업이 활발한 활력 넘치는 자본주의를 사랑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기업소유가 광범하게 분산될수록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를 잘 이해할 것이고, 자본소유자층이 두텁게 될수록 기업하려는 사람들의 층도 두터워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사주제도, 혹은 '종업원 주식 소유제도'가, 그것을 '좌파적 정책' 운운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활력 넘치는 자본주의를 사랑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도입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우리사주조합에 참여하는 노동자가 바로 그렇게 주식을 소유한다는 이유로 유 교수의 서술에서는 "자본소유자층"의 일부로 둔갑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하고 넘어가자. 그리고 그의 얘기를 계속 들어보자.


제프 게이츠(Jeff Gates)는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미국 ESOP의 주창자이다. 국제컨설팅회사인 게이츠 그룹을 설립했으며, 1980년대에 미국의회의 상원 재무위원회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ESOP법안의 제정에 많은 기여를 했다. 그가 걱정했던 것은 미국사회에서 소유가 집중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장과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소외를 느끼고 실제로 소외된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되면 경제가 거대한 자본 소유자들끼리의 머니 게임장으로 되기 쉽고 시장의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유의 집중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알게 모르게 커지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편갈라 배타적이 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황폐화되면서 결국 그들이 사는 사유재산 경제 자체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사주제도가 반자본주의적 정서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활력 넘치는 자본주의를 사랑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본주의를 위해서 도입되었다는 것을 제프 게이츠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서 의문이 있다.

"활력 넘치는 자본주의를 사랑하고 시장의 효율성을 믿는 사람들"이 왜 "미국사회에서 소유가 집중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장과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소외를 느끼고 실제로 소외된다는 점"을 걱정해야 했던가? 결국 "활력 넘치는 자본주의나 시장의 효율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불신, 그렇게 불신할 수밖에 없는 "소유의 집중"과 모순의 격화가 ESOP를 도입하게 한 것 아닌가?

또한 그렇게 미국의 ESOP을 칭송하고 있지만, ESOP의 도입으로 미국은 과연 "소유의 집중"이나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부터 소외"가 해소되고, "거대한 자본 소유자들끼리의 머니 게임장"이 아니게 되었으며, "시장의 활력"은 높아졌는가?

게다가, 소유가 집중되면, 즉 우리사주제가 보급되지 않으면, "소유의 집중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알게 모르게 커지면서,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편갈라 배타적이 되고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황폐화되면서 결국 그들이 사는 사유재산 경제 자체도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라니, 이는 무슨 말인가? 결국 자본주의적 생산체제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도전, 항쟁이 그것을 타도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노동자계급에게 선동이 되지도, 자본가계급을 자극하지도 않는 수줍은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 다름 아니라 '자본주의'라는 말은 애써 피하면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면서 그는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는 노동자들의 성격을 "유수의 국내언론과 평론가들"에게, 즉 자본가들에게 이렇게 일깨워준다.


우리 사주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는 노동자는 여전히 우리사회와 자기가 일하는 기업에 희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사회의 안정과 기존 사유재산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의 잠재적 우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를 자처하면서도 팔 걷어붙이고 ESOP제도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바로 우리 편이야, 이 바보들아!" 하는 안타까움이 절절히 배어 있는 표현이다. 그리고 "우리 사주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나서는 노동자는...(자본주의) 사회의 안정과 기존 사유재산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의 잠재적 우군이 될 수 있는 사람들"인데,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를 자처하면서도 팔 걷어붙이고 ESOP제도를 말리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니,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며,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보수주의자'임을 선언하고 있다. 참으로, 참으로 맞는 말이다!

물론 보수주의자라고 해서 눈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사회의 안정과 기존 사유재산 질서를 지키려는 보수주의의 잠재적 우군"이니 하는 따위의, 그야말로 잠재적인 효력에 관한 이야기만으로는, 당장의 눈앞의 이해타산을 따지는 자본가들을 설득시키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유 교수는, 우리사주제를 도입하고 확대하면 자본에게 당장 어떤 이득이 오는지를 다음과 같이 속삭여 천기를 누설한다.


필자가 보기에 오히려 더 안타까운 것은 주식 몇 주 소유하고 나서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서 더 높은 노동강도, 더 긴 노동시간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 노동자의 삶의 고통이다.


그리고 나서는 자신의 이러한 발언이 혹시라도 '노동자 편'이라는 자본의 오해를 살까봐, 그리고 당연히 "그래, 노예 되기를 자청하겠다는데, 불감청이언정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라는 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그것을 감수하겠다고 연대해서 기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정부도 나서고, 시민단체도 나서고, 보수 언론도 나서고 해서 꼭 성공하도록 밀어 주는 것이 좋겠다.


바로 '우리사주공대위'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기업사랑과 사람사랑, 그리고 ESOP"이라는 이 글은 노동자들의 가슴 속에 언제나 유철규 교수라는 이름과 함께할 것이다.



우리사주제 혹은 종업원지주제와 임금 등


"기업사랑과 사람사랑, 그리고 ESOP"이라는 글에서 유철규 교수는 우리사주제도를 도입하면 노동자들이 "자본소유자층"이 되는 듯이 말하고 있는 것, 그러한 허위의식을 보았다. 이렇게 되면, 그 주식에 대한 배당금으로든, 그것의 매매차익으로든, 노동자들에게 생기는 소득은 임금이 아니라 소위 '자산소득'이 되게 된다.

부르주아적 부기와 세법에서는 필경 그렇게 분류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것은, 내가 ꡔ노동자교양경제학ꡕ(제3판, pp. 123-29)에서 소상히 설명한 것처럼, 단지 임금의 다른 형태, 혹은 은폐된 형태의 임금에 불과하다. 결국 임금, 즉 노동력의 재생산비의 일부가 '배당금'이나 '매매 차익'의 형태로 지불되는 것이지, 그 이외의 어떤 것도 아니다. 이는 '자본-임노동' 관계라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본성, 즉 무산자로서의 임금노동자라는 존재형태에서 필연적으로 그렇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것이 만일 임금이 아니라면, 노동자는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닐 것이며, 따라서 자본주의 역시 더 이상 자본주의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ESOP이 도입되어 있는 어떤 기업도 결코 자본주의적 기업이 아닌 것이 아니며, 그 노동자 역시 여전히 노동자다.

유철규 교수는 "주식 몇 주 소유하고 나서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서 더 높은 노동강도, 더 긴 노동시간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 노동자의 삶의 고통"이라고 쓰고 있지만, 보다 정확하게는 "더 낮은 임금"을 기꺼이 감수하게 된다는 점도 추가했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사주제 등 소위 종업원지주제는, 경제적으로만 말하면, 노동자들 자신의 임금의 일부로서의 '가계 준비금'을 자신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자본으로 전화시키고, 결국에는 수탈하는 기구이다. "애경사라든가, 자식의 교육, 혹은 돌발적인 사고 등을 대비해서 많은 노동자들이, 실제로 돈을 모아서든 아니면 빚을 내서든, 가계 준비금이란 걸 마련하게" 마련이고, "종업원지주제니, 우리사주제니, 국민주 제도니 하는 것들은 바로 이 가계 준비금을 끌어내서 주식을 사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식시장의 요동과 경제공황 등을 통해서 이윽고 휴지쪼가리로 전락할지도 모를 '주식'이라는 종이쪽지 혹은 명의를 대가로", "그 자금에 대한 통제권과 그것을 수단으로 한 잉여노동 착취능력을 소수의 자본가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실제로 주식시장이 요동치고, 공황 즉 경제위기가 닥칠 때마다 노동자 소유주식은 휴지조각으로 변하면서 노동자 가계에 커다란 손실을 끼치게"(ꡔ노동자교양경제학ꡕ, pp. 126-27)된다.

그 예야말로 실로 부지기수이지만, 그리고 ꡔ한겨레ꡕ가 이미 LG카드나 하이닉스반도체를 예로 들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사주공대위'를 계기로 신문에 오르내린 한 가지 경우만 더 예로 들자면 이렇다.


현대건설 직원들은 1999년과 2000년에 걸쳐 우리사주를 대거 매입했다가 회사가 채권단의 관리를 받게 되고 2차례 감자(減資)를 하는 바람에 주가가 수십분의 1로 곤두박질쳐 큰 손해를 봤다.(ꡔ동아일보ꡕ, 05. 10. 19.)



노동자의 노예화에 앞장서고 있는 민주노동당


그러나 우리사주제의 최대의 해악은 그 정치적 측면에 있다.

유철규 교수가 "주식 몇 주 소유하고 나서는 '주인의식'으로 무장해서 더 높은 노동강도, 더 긴 노동시간을 기꺼이 감수하게 될 노동자의 삶의 고통"이라고 쓰고 있고, ꡔ한겨레ꡕ 등의 '진보언론'이 '상생적 노사관계'니, '생산적 노사관계'니 하고 쓰고 있지만, '우리사주'의 소유에서 오는 소득이 임금의 일부가 되는 것도 사실은 이러한, 노동자로서의 계급성, 투쟁성을 상실한 노예적인 삶을 감수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ꡔ한겨레ꡕ가 "우리사주제도는 이처럼 노사에게 상생의 기반을 만들어줄 수 있다"며 대단히 성공적인 예로 소개하고 있는 쌍용건설과 대한전선을 보면 이렇다.


[쌍용건설의 경우]: 노사관계도 크게 달라졌다. 쌍용건설 노조는 워크아웃 졸업 이후 첫 임금협상을 지난 5월에 시작하면서 모든 결정권을 경영진에게 조건없이 넘겼다. 상생의 노사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결단이었다.(www.hani.co.kr, 05. 9. 20.)


[대한전선의 경우]: 대한전선 노동조합 위원장과 대표이사가 파격적인 거래를 했다. 노사상생의 거래는 지난달 31일 대한전선 안양공장에서 열린 '노사화합문화 정착 선포식'에서 전격 발표됐다. 임종욱 사장은 "외부 경영환경의 급변으로 영업이익률이 떨어지고 있는 회사 처지를 고려해 노조가 자발적으로 5년 동안 임금협상의 전권을 회사에 넘겼다"면서 "이에 보답하는 뜻으로 전직원들이 참여하는 종업원주식소유제도(ESOP:...)를 도입해서, 회사가 개인별 연봉의 50%에 해당하는 자금을 우리사주조합에 출연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 임금 등의 결정권을 조건 없이 자본 측에 넘겨주는 것, 노동조합의 철저한 무장해제, 그를 통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노예화, 이것이 바로 우리사주제고, 그 목표인 '상생의 노사관계'다!

그런데 이러한 노동자들의 정치적 노예화에 발 벗고 나선 '노동자 정당'이 있다. 다름 아니라, 민주노동당이다.

예컨대, 민주노동당은 지난 8월 17일 "사고뭉치 재벌 경제, '우리사주' 활성화로 고쳐야"하는 논평을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장 이선근"의 이름으로 내고 있다. "10월부터 시행될 새 우리사주제는 우리 경제에 획기적인 플러스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면서.

뿐만이 아니다. 이세종 대우조선 매각대책위 위원장(011-557-6601, 055-680-6601)과 송태경 민주노동당 정책실장, 매각대책위 자문위원(011-396-9030, 02-2077-0573)이 "담당 및 문의"처임을 밝히고 있는, 따라서 민주노동당 정책실이 깊이 개입하여 작성되었다고밖에는 믿을 수 없는, "'전체 임직원 추가희생으로 회사 지키는 게 그렇게도 나쁜 일입니까? [대우조선 매각문제를 둘러싼 다섯 가지 주요 오해]"라는 문건은, 한 올의  수치심도 없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대우조선 노동조합이 절실히 원하고 있는 것은 사원 주식소유제(새 우리사주제)를 통해 "현재의 전문경영인 체제와 파트너쉽 노사관계"의 바람직한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대우조선이 과거처럼 "재벌오너체제와 적대적 노사관계"로 회귀하는 것을 막자는 것일 뿐이며, 또한 우리사주조합은 경영이사와 전체사원들의[원문대로!] 참여하는 자치조직으로 노동조합이 경영에 참여할 방법은 없습니다. (강조는 인용자)


"사원 주식소유제(새 우리사주제)를 통해" "파트너쉽 노사관계"의 바람직한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대우조선이 과거처럼 "적대적 노사관계"로 회귀하는 것을 막자는 것! ― 조․중․동 같은 수구・파쇼 언론에서나 들을 법한 이러한 발언, 이것이 진정 명색이 노동조합이, 명색이 '노동자계급의 정당'이 입 밖에 낼 수 있는 소리란 말인가!?

민주노동당 내에 '좌파'를 자처하고, '사회주의'를 얘기하고, '해방'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가운데 누구도 노동자들의 정치적 노예화에 앞장서고 있는 당과 당 간부의 이 따위 파렴치한 행보, 파렴치한 논평, 파렴치한 경제강령과 진지하게 투쟁했으며, 투쟁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는 듣지 못했다. ≪노사과연≫



정세

월급쟁이에서 주인으로?

―신판 노예제로서의 우리사주제에 대해서



채만수|소장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7호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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