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 10월 재보선과 노동자계급의 정치

1. 개혁 노무현 정권으로부터의 민심의 이반 -


집권여당 전패라는 지난 4월과 10월의 재선거 및 보궐선거의 결과는, 무엇보다도 우선, 이른바 민심이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급속히 이반되었고, 이반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탄핵 반대'․'탄핵 규탄'을 외쳐대던, 광기와도 같았던 선동정치의 와중에서 열린우리당에 절대다수의 과반수 의석을 몰아주었던 불과 1년여 전에는 가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정치적 상황이 짧은 기간에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당연히(?) 불난 호떡집의 상황이다. 아니, 천하에 그지없이 안전하리라며 올라탔던 배가 타이타닉처럼 침몰할지도 모른다는 직감은 드는데,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뛰어내릴 데도 없어서, 서로 '너 때문에 배가 좌초됐다'고 삿대질을 하며 아우성을 쳐대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더 큰 권력으로의 도약대를 둘러싸고는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반(半)서생원들의 꼴이라고나 해야 할까?

열린우리당이란, 주지하는 것처럼, 사실상 오로지 하나, 대통령 노무현을 해바라기하면서 모인 집단이다. 그런데 다름 아닌 바로 그 집단 속에서 '대통령이 신이냐, 지도부는 왜 청와대만 따라가느냐'느니, '대통령이 너무 오만하다'느니 하는 등등, 외부의 제3자가 듣기에도 "어? 그런 소리까지 나와?", "더구나 벌써?" 하고 놀랄 만큼 막된 소리까지 주고받으면서, 그렇게 '막가면서', 불과 7개월 전에 선출된 지도부가 붕괴되었고, '친노파'가 어쨌느니, 무슨 파가 어쨌느니, 무슨 파가 어쨌느니 하는 파열음이 계속 일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자신들의 빛바랜 태양에 대한 막말과 성토가 오죽했으면, 유시민 의원님께서 "대통령이 여당의원들에 의해서 '작은 탄핵'을 당했다"고 개탄․분개하셨을까? 유 의원님이 아무리 '친노'의 선봉장을 자처하고, 또 자극적인 수사(修辭)라고 하면 일가견이 있는 분이라지만, 그런 생각, 그런 발언이 아무 상황에서나 가능한 게 아닐 터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노무현 정권은 타살된 게 아니다, 자살한 것이다"는 글을 써서 청와대를 노하게 했다는 보도가 있지만, 실제로 그렇다. (다만, 노동자․민중의 이해 대신에 독점자본의 이해를 극우적으로 대변하는 시각의 글이지만, 거두절미하고 위 문장만 따온다면, 그렇다는 뜻이다.) 오늘날 보는, 노무현 정권으로부터의 민심이반,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 동안 노무현 정권이 강행해온 반노동자․반민중적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그러한 범죄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응답이기 때문이다. 소위 '좌파'라는 자들까지 합세하여 정신없이 몰아치던 선동정치 속에서 대중이 '개혁' 노무현 정권에 가졌던 환상을 미련 없이 내던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본질을 이해하자면 몇 단계의 '복잡한 사고'가 필요한 것들을 차치하더라도, 비근한 예로,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자신들과 한나라당은 별반 다를 바 없다며 '대연정'을 제안하고 나서는 마당에, 또 실제로 농민과 의식 있는 노동자들이 그토록 결사반대하는 WTO 쌀 협상안을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만장일치'로 소위를 통과시키는 판에, 어찌 노무현 정권에 대한 환상이 유지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혹은 열린우리당이 그러한 자살행위를 멈출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반노동자적․반민중적 노선을 고집하고 강화하겠다는 결의를 보여주고 있다. 10․26 보선 이후 최근에만 해도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비정규직 확대법의 입법이나, 독점자본 위주의 농정으로 빚에 짓눌려 죽어가고 있는 농민의 이해가 아니라 독점자본과 국제 곡물 메이저의 이해를 반영한 WTO 쌀 협상안의 국회비준을 강행할 뜻을 거듭 다짐하고 있고, 이라크 파병 연장을 공언하고 있으며, 생존권과 차별철폐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하여는 수백․수천 명의 전투경찰을 동원하여 자본을 비호하고, 신자유주의의 심화를 위한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반APEC 집회․시위의 통제․금지를 다짐하면서 '반신자유주의 시민운동가들'의 입국까지 통제․금지시키고 있는 것 등등이 그것이다.

하기야, 선거에서 참패했다고 해서 저들이 제국주의와 독점자본의 이해의 수호자로서의 계급적 속성․사명을 조금이라도 버리고, 조금이라도 친노동자적․친민중적 노선을 취하리라고 기대한다면, 그거야말로 순진한 게 아니라 바보 같은 기대일 것이다. 노무현 정권 혹은 열린우리당을 위한 바람잡이를 자청하곤 하는 ꡔ한겨레ꡕ 신문은 이번에도 '사설'에 "열린우리당은 양극화 해소 등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다"(05. 10. 31.)고 써대고 있지만, 그런 공염불이야 이전에도 귀가 아프게 들어왔다.

물론 저들이 타개책을 찾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 있는 타개책이라는 것이, 방금 말한 것처럼, 왜 대중이 자신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가를 노동자․민중의 이해관계라고 하는 관점에서 점검해 보고, 그에 기초하여 노동자․민중의 이해에 기여하도록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고작 이미지 조작을 위한 정치술수요 꼼수다. 그리하여 '대권주자'인 정동영․김근태 장관의 당 복귀니 하는 수들이 들먹여지고 있다. 하지만, 보도에 의하면 자신들의 당 내부에서도 회의론이 만만치 않은 것 같지만, 정동영 대권주자님이든, 김근태 대권주자님이든, 그들이라고 사태의 진행을 반전시킬 도깨비 방망이를 가진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이라고 독점자본의 이익에 봉사해야 하는 자신들의 본분을 거역할 수 없으며, 사실은 그럴 의사가 있었다면, 지금의 그 영광스러운 자리로 나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며, 그 자리에 있을 수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들, 즉 노무현 정권 혹은 열린우리당의 상황 타개책 모색과 관련하여, ꡔ한겨레ꡕ 신문이 연 이틀, 혹은 사실상 연 3일 '사설'에서 정말로 의미심장하고 극히 흥미로운 얘기를 하고 있다.

10월 28일의 '사설'은 "‘묘수’에 기대지 말라"며, 이렇게 쓰고 있다. (강조는 모두 인용자)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10·26 국회의원 재선거 결과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참패의 책임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 발언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말이 진심이라면 해법도 당연히 그 연장선에서 찾아야 한다. ...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이 연말이나 연초께 인적쇄신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전망한다. 그 내용은 지켜볼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결코 정치공학적 접근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런 변칙적 방식은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민심을 더욱 떠나게 할 뿐이다. 이는 이미 대연정론을 통해서도 충분히 증명됐다. 노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어떤 면에 국민들이 실망했는지를 정확히 진단해 근본적인 처방을 내리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10월 29일의 '사설'은 "청와대는 ‘승부수’를 던져 당을 장악하려는 기도 따위는 일찌감치 포기했으면 한다"고 쓰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10월 31일의 '사설'에서는 "열린우리당은 로또복권식 한탕주의를 지양하고 ..." 운운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바로 ꡔ한겨레ꡕ가 "묘수"니, "정치공학적 접근방식"이니, "변칙적 방식"이니, "승부수"니, "로또복권식 한탕주의"니 하는, 경고성의, 참으로 야릇한 수사(修辭)들을 반복하는 것을 읽으면서, ꡔ한겨레ꡕ가 이미 당시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것이 국회의원 총선 대책으로 노무현 정권이 유도한 "묘수", 혹은 "정치공학적 접근방식", 혹은 "변칙적 방식", 혹은 "승부수", 혹은 "로또복권식 한탕주의"임을 익히 알고, 그 실현을 위해 발 벗고 나섰던 것*1)이라고 유추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혹은 적어도, 이제라도 그것을 알아챘는데, 결코 자기비판을 하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주장일까?**2)

각설하고, ― 바야흐로 내년엔 지자제 선거가 있다. 그리고 내후년엔 다시 대통령 선거가 있다. 그런데 집권 열린우리당에 대한 대중의 지지도는,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더 떨어지면 떨어졌지 올라갈 가망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러니 ꡔ한겨레ꡕ가 아무리, "다시는 들러리를 못 서겠다"는 암시를 강하게 보내면서 "정치공학적 접근 방식에, '묘수'에 기대지 말라"고 경고를 하더라도, 다시 어떤 기상천외한 '묘수', 기절초풍할 '승부수'가 소부르주아 대중의, 아니 맑스주의 교수님들의 영혼을 사로잡을지 모를 일이고, '좌파'를 자임하는 자들이 패거리주의에 비틀거릴지 모를 일이다. 장마다 망둥어가 나는 게 아니어서, 가능성이야 물론 그다지 커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경계를 늦출 일도 아니다.



2. 민주노동당 ― 또 다른 패배자?


한편, 울산 북구 보궐선거에서의 패배로 민주노동당 역시 충격에 휩싸여 있다.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이구동성으로 '혁신'을 얘기하고 있으니,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다.

최대의 노동자 밀집 지역, 그것도 최대의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 밀집 지역인 울산 북구에서 노동자당(민주노동당)의 후보가 당선되지 못한다면, 다른 어느 지역구에서는 더구나 그 당선을 기대하기 난망할 것이니, 실제로도 그 충격이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충격 때문에 '혁신'을 얘기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 '혁신'이란 것이 민주노동당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기대하기 어렵고, 하물며 노동자계급의 정치를 그 본래의 자리에 가져다 놓을 것이라고는 더욱더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민주노동당의 기존의 강령, 정책과 활동이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적이기보다는 소부르주아적이었고, 부르주아 정치 행태를 모방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궐선거 '패배' 후의 행적 또한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은, 그것이 전술상의 오류든, 정책이나 강령상의 오류든, 그 오류를 자기비판하고 교정하기 위해서 '패배'의 원인과 배경을 정말 진지하게 분석하고 토론하는 대신에 지도부의 '책임'(?)부터 묻고 있다. 바로 전형적으로 (소)부르주아 정당의 행태 그대로다.

'혁신'을 얘기한다는 것이 기껏 '서민' 타령이고, 게다가 '국민' 타령 역시 놓지 않고 있다. 소부르주아성을 청산하고 노동자계급의 정당으로서 거듭나겠다는 결의는, 적어도 임시 지도부의 공식적 언동에서 보는 한,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이번의 민주노동당의 '패배'의 직접적인 원인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한 데에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관련, 민노당의 핵심 인물, 총아인 노회찬 의원은 "울산에 내려가 보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갑게 닫혀 있고 민노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인정을 받는 데에 미흡했던 것 같다"(<프레시안> 05. 11. 1.)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 보도에는 다음과 같이도 쓰여 있다.


노 의원은 특히 선거패배의 원인 진단과 관련해 "국민들이 민노당에 거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그간의 누적된 활동의 문제점이 패배의 근본 원인"이라며 "저소득층인 비정규직의 지지를 상실했고 동시에 중간층의 지지도 상실해 협공을 당한 것도 패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국민들(의)...기대", "저소득층...의 지지", "중간층의 지지" ― 바로 예의 '국민' 타령이고, '서민' 타령이다. "저소득층인 비정규직(노동자)"는 있지만, 노동자계급은 없다. 그러니, 거기에서 나오는 '혁신'은 당연히 그러한 '혁신'일 수밖에 없다.

"울산에 내려가 보니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갑게 닫혀 있었다!" ― 능히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이 그렇게 차갑게 닫혀 있었던 것은 결코 "민노당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인정을 받는 데에 미흡"했기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실은 "민노당이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인정을 받는 데에 미흡"했기 때문, 아니 그렇게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민노당이 현재처럼 소부르주아성을 청산하지 못하는 한, 선거에서의 민노당의 패배는 패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자계급성이라는 더없이 강력한, 혹은 적어도 강력한 잠재력을 가진 무기를 버리고, 소부르주아성으로 싸운다면, 민노당은 너무나 취약한, 그렇고 그런 군소정당에 불과하고, 양대 부르주아 정당은 너무나 강해서 그 '패배'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청산해야 할 소부르주아성은 예컨대 다음과 같은 것이다.

보도(ꡔ조선일보ꡕ 05. 10. 26.)에 의하면, "민주노동당 천영세(千永世) 의원단 대표는 25일 국회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화해할 수 없는 빈부(貧富) 분단이 나라를 동강내고 있는데,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며 국회에 '빈부격차와 복지 확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를 제안했다"고 한다.

만일 이 보도대로라면,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화해할 수 없는"과 같은 '좌파적 수사'(?)를 빼면, 여기에는 노동자계급의 정당 대표의 연설이라고 할 만한 것은 눈을 씻고 볼래야 한 톨도 없다. 존재하는 것은 "빈부 분단이 나라를 동강내고 있는데, 정치권은 소모적 정쟁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운운하는 국가주의뿐이다. 바로 이른바 '국민통합'을 지향하는 국가주의 말이다. 그리고 그래서 요즘 노무현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국민대통합연석회의'인지 뭔지 하는 게, 아니 그것이 정식으로 일정에 오를 때 그에 대해서 민노당이나 민주노총이 어떤 태도를 취하고 나올 것인지가 여간 꺼림칙한 게 아니다.

나아가, '빈부격차와 복지 확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하자? ― 앞에서 ꡔ한겨레ꡕ 신문이 '사설'에 "열린우리당은 양극화 해소 등 노선과 정책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고 지적했지만, 민노당과 열린우리당 양당의 주장 사이에 어떤 질적 차이가 있는가? 진심이 실려 있든 아니든, 공염불이긴 마찬가지다.

민노당이 만일 소부르주아 정당이기를 그만두고 노동자계급의 정당이려 한다면, 그리고 '합법정치공간'․의회에 나아가는 목적이, 애초 '민중당' 등 합법정당운동을 시작할 때에 주장했던 것처럼, '연단의 활용'에 있다면, 민노당은 모처럼의 의회의 연단에서 '빈부격차와 복지 확대를 위한 특별위원회' 설치 따위의 소부르주아적 환상을 유포하는 대신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지속되는 한, 빈부격차나 소위 양극화의 해소는 불가능하다"고 얘기했어야 할 것이다.

민노당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 게 아니다. 노동자계급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패배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은 바로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3. 째깍 째깍 소리가 나고 있다


이 원고를 쓰고 있는 지금 이 시각, 지구 저편 프랑스의 주요 도시에서는 아프리카나 중동으로부터의 '이주민들'의 폭동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영국․독일․이태리 등등 부와 문명을 뽐내던 국가들은 그 불길이 비화될세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슬람 이주민'이라고 지칭되지만, 한 마디로 하면 신자유주의, 아니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과잉인구요, 빈민층이다.

지금 프랑스에서 전개되고 있는 사태는 극적인 것이지만, 세계의 도처에서, 그리고 이 한국에서도 독점자본과 그 국가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갈수록 도를 더하면서 강행하고 있고,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고통, 그리고 따라서 당연히 저항은 그에 따라 더욱 확대․격화돼가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극성을 떨고,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고통, 저항이 확대되고 격화될수록, 남미의 극소수 국가를 제외한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특히 자본주의 선진국에서는 더욱, 기존에 '좌파정당'이니, '노동자정당'이니 하는 정당들이 퇴조하고 있다.

역설일까?

아니다! 그 반대다.

'좌파정당'이니, '노동자정당'이니 하는 정당들이 사실은 진정한 의미의 좌파정당도 노동자정당도 아니며, 사실은 노동자계급의 이해가 아니라 독점자본의 이해에 복무하는 정당이라는 것을, 혹은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보장할 능력이 없는 불임의 정당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그들에게 더 이상 아무 것도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을 노동자 대중이, 비록 명확하게는 아닐지라도, 깨달아가고 있다는 증좌일 것이다. 좌파정당이니 노동자정당이니 하는 것들이 사실은 껍데기일 뿐이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반세기 이상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역사 속에서 이른바 좌파정당, 사민주의정당의 정책과 그 행적이, 특히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 붕괴 이후의 그것이 노동자계급에게 그러한 깨달음을 주었을 터이다.

문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노동자계급이 이러한 소극적인 깨달음은 터득하고 있으나, 혁명적 노동자계급정당은 건설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독점자본의 엄청나게 강력한 대중조작과 쏘련 등 20세기 사회주의 붕괴의 충격과 그 후과 때문일 것이다.

특히 그 충격과 후과는 오늘날 노동자계급운동 내부의 진한 종파주의와 '스탈린주의 비판'이라는 병적인 자기부정․자기혐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포스트 무슨주의 운운하는 소부르주아적 '진보', 서유럽 '맑스주의'라는 반공주의, 트로츠키주의적 종파주의․반공주의, 심지어 자율적 '맑스주의'임을 주장하는 아나키즘이 세상이 좁다 하고 활개를 치며 호령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즉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모순이 극도로 격화되면서 그 위기와 신자유주의가 심화되고, 그에 따라 노동자계급의 빈곤과 고통, 자연발생적인 저항이 격화되는데, 다른 한편에서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정당은 형성되고 있지 못한 상황은, 제1차 대전이나 제2차 대전 이상의 대파국을 향한 시계가 째깍거리며 돌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이 마치 거기에 해결이 있고, 거기에 유토피아가 있다는 듯이 찬미하고 있는 과학기술혁명! 그것은 사실은 오늘날의 자본주의적 생산의 위기 그 자체, 항상화되고 만성화되었으며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 과잉생산 그것에 의해서 추동되고 있고, 위기 그것을 더욱 가속도적으로 심화 혹은 격화시키고 있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그만큼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운명의 시계는 돌고 있고, 운명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그것도 갈수록 보조(步調)를 빨리하면서.

그 운명이 어떤 것일지는, 대파국․대파멸일지, 아니면 새로운 세상을 여는 사회혁명일지는 주요 자본주의국가의 노동자계급이, 소부르주아적 혼란을 극복하고, 그때까지 혁명적 노동자계급정당을 획득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노사과연≫



정세

10월 재보선과 노동자계급의 정치



채만수 | 소장




*) 물론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남구현이나 이해영, 최형익 교수 등에 따르자면, "맑스는 '반동적 사회주의'라고 말"할 것이니까!


**) 곁가지이지만, ꡔ한겨레ꡕ는 얼마 전에 창간 몇 주년인가를 자축하면서, 자신들이 쓰고 있다는 '한겨레결체'인가 하는 폰트(Fonts)를 '공개'했다. 물론 상당한 자화자찬과 함께. 이에 상당한 기대감을 가지고 내려받았지만, 나에게는 ―그리고 필시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랬을 것이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 전용으로 패키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는 그것을 내가 사용할 수 있도록 재패캐징할 능력도 없었지만, 그 폰트들을 사용하는 데에는 어떤 수정도 가해서는 안 된다는 조건까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지난 10월 29일의 ꡔ한겨레ꡕ '사설'의 하나는 다름 아니라 천연덕스럽게도 "시급한 ‘마이크로소프트 편중’ 해소"였다. 물론 자신들이 그렇게 그 '편중'에 기여하고 있다는 말은 한 마디도 없이! 그러니, '탄핵 정국'에서의 ꡔ한겨레ꡕ의 역할․행태와 관련하여 '자기비판' 운운하는 것이 부질없는 일일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편중' 문제와 관련해서는 그나마 "이제라도 이 회사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쓰고 있는 데에 일말의 기대를 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기야, 내 자신이 회원이자 '좌파'임을 자부하는 "노동자의힘" 역시 지난 '탄핵 정국' 관련한 이후의 행적이 그렇고, 또 현대차노조의 위원장인 이상욱 회원 관련 처리 등등등, 남이 보면 그 눈에 대들보가 박혀도 여러 개가 박혀 있을 것인데, 남의 눈의 티만 보면서 천연덕스럽게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어서 나 역시 면목이 없지만! ― "운동은 단순히 적과의 투쟁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치열한 자기와의 투쟁, 자기검증과 객관화를 위한 투쟁을 수반한다. 이런 자기검증이 붕괴된 조직은 운동체가 아니라 권위적 관료조직이자 돈과 권력을 쫓는 모리배 집단에 지나지 않는다." ("힘 이야기: 정파논리와 언론, 그리고 진짜 종파", ꡔ노동자의힘ꡕ 제89호, 2005. 10. 28. p. 1.)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7호 (200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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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한겨레결체 맥이나 리눅스에서도 잘만 쓰고 있습니다. 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 Linux에서 사용법

    한겨레가 배포한 대로는 안 될 겁니다. 리눅스에서 압축을 해제하면, 파일명이 깨져 나오니까요. 파일메니저에서 파일명을 Hankc.TTF식으로 바꿔주시고, (invalid encoding)이라는 메시지를 징워주세요. 한겨레가 수정을 금지한 것과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지만, 암튼 그렇게 하면 리눅스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겁니다.

  • 예, 한겨레에서 배포하는 형태대로는 윈도우 전용이 확실할 겁니다. 한겨레 홈페이지도 윈도우에서 설치법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맥은 모르겠고, 제 리눅스(FC4)에서는 설치가 안 됩니다. 저는 Konquor를 파일매니저로 사용하는데, 깨진 글씨의 파일명은 변경이 안되네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리고 리눅스에서의 설치법을 좀 더 자세히 가르쳐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