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유럽사회 모델’의 파산선고

헌법조약 부결에서 보는 유럽 통합의 현실

[편집자 주: 이 글은 山下勇男, "「歐州社會モデル」の破産宣告 ―憲法條約の否決に見る歐州統合の現在" (ꡔ(勞動者階級のたたかう知性をつくる[노동자계급의 투쟁하는 지성을 만드는])社會評論ꡕ, no. 143, 2005년 가을호)의 번역으로서, 유럽연합 혹은 유럽통합의 성격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신자유주의 자체의 역사적 맥락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2004년 5월 1일에 10개 국가가 새로 가입함으로써 25개국으로 구성된 확대 유럽연합(EU)이 성립되었다. 옛 쏘련령인 발트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토아니아)을 판도에 추가하여 러시아령에 육박했으며, 만일 가맹을 바라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장래 루마니아의 가맹이 실현된다면, 폴란드․슬로바키아․헝가리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구축되어 있는―철조망과 감시카메라, 불법이민 수용시설이 구비되어 있고 국경경비대가 순찰하는―동쪽의 '국경선'은 문자 그대로 선 전체가 러시아령과 접하게 된다.

경제규모는 명목 GDP(국내총생산) 9억 6천만 유로, 인구 4억5천3백만 명(2002년)로서, 미국의 그것(명목 GDP 10억9,790만 유로, 인구 2억8천9백만 명)에 육박하고, 일본(명목 GDP 4억2천4백만 유로, 인구 1억2천7백만 명)을 훨씬 앞질러 제2위를 점하고 있다.

이렇게 비대화되고 있는 EU의 현실을 평화적이고 가능성에 찬 유럽의 출현으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프랑스-독일이라는 두 축이 선도하고 미국에 대항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의 출현으로 볼 것인가로, 평가는 크게 양분되어 있다. 이 글은 다름 아니라 전자(前者)의 EU상(허상)을 후자의 관점에서 비판하면서 EU의 실상에 다가가려는 시도이다.



헌법조약의 부결이 불러일으킨 파문


유럽헌법조약의 비준을 묻는 국민투표가 2005년 5월 29일에 프랑스에서 실시되어, 찬성 45.1%, 반대 54.9%(투표율 69.8%)라는 큰 차로 부결되었다. 이어 6월 1일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도 찬성 38.4%, 반대 61.6%(투표율 62.8%)로, 찬반의 차가 더욱 크게 확대되며 역시 부결되었다.

유럽헌법은 2004년 11월 29일에 25개국의 전권대표가 서명하고, 이후 각국은 그 비준절차에 들어갔다. 비준절차는 나라에 따라서 달라서, 의회의결, 자문을 위한 국민투표와 의회의결, 국민투표의 3가지 방법이 각기 채택 되었다. 부결은 비준절차가 개시된 이후 프랑스의 국민투표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유럽헌법조약은 모든 가맹국이 비준하고, 그 비준문서를 유럽위원회(EU Commission, 내각에 해당)에 기탁함으로써 2006년 11월 1일에, 혹은 최후의 비준문서가 기탁된 다다음 달 1일에 발효될 예정이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의 부결은 유럽헌법조약이 사실상 죽었음을 선고하는 것이었다.

유럽헌법조약 부결이라는 뉴스가 일본의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 유럽통합을 긍정․지지하고, 따라서 EU를 모범으로 하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면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쪽에 선 매체, 예컨대 일본공산당의 기관지 ꡔ신문 적기ꡕ는 국민투표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현지보도하고, 부결 후에는 사실보도와 함께 부결의 요인을 해설하는 기사를 실었다.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추진하는 입장*1)으로부터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태도표명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객관적 보도에만 그친 그 자세는 사고정지(思考停止)와 판단포기가 불가피해진 결과다. 생각해보면, 일본공산당은 EU를 "룰 없는 자본주의"로서의 일본의 반대편 극에 존재하는 것으로서 관념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진지한 분석 하나조차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헌법조약을 지지하는 입장에 서는 시민파(市民派)를 대표하는 매체 ꡔ주간금요일ꡕ(週刊金曜日)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긴 하지만, 그 격렬한 좌파비판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고 낙담케 하였다. 헌법조약의 부결은 '극우의 암약'에 의한 것이고, 부결을 위한 좌파의 캠페인은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 역자]을 기쁘게 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2) 이 신문의 입장은, 한 마디로 하면, 미국의 단독행동주의에 대한 제동장치의 역할을 EU에 기대하는 데에 있지만, 우리는 그러한 분석과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한, 1999년부터 그리스 공산당이 주도하여 개최되게 된 공산당․노동자당의 국제회의(아테네회의)에 참가하는 유럽의 공산당․노동자당으로서 유럽헌법조약에 찬성한 당은 없다. 아테네회의에 참가하지 않는 당이며, 환경주의자의 일부를 포함하는 유럽의회의 느슨한 통일회파인 "유럽통일좌익․북유럽녹색좌익연합"(EUL-NGL [12개국가 15개 정당으로 구성])조차 헌법조약을 일치하여 거부했다.***3) 반대의 최대공약수는,-첫째로 헌법조약이  형성 중에 있는 통합된 군사력을 전제로 전투능력 및 작전지휘 능력의 강화를 규정하고, 가맹국들에게 군비의 증강을 의무지우고 있는 것, 둘째로 '사회적 시장경제' 하에서의 '완전고용'이나 '환경보호'를 주장하면서 신자유주의 원리의 관철에 길을 열려고 하고 있는 것―이 두 점으로 집약된다.



대외적 군사력 행사로 돌진하는 EU


일본공산당처럼, EU의 "공동외교․안전보장전략"(CFSP)이 "국제연합헌장의 원칙"을 강조한 것을 끊임없이 칭송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EU의 군사력 행사가 "역내 방위"의 틀을 넘어 그 기능을 대외적 군사력 행사로 확장하려고 해온 사실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전환점은 1991년, NATO(북대서양조약기구)가 '신전략개념'을 채택하고, '인도주의'라는 이름으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에 대한 군사개입을 정당화했을 때 찾아왔다. NATO의 주요 가맹국인 프랑스와 독일―특히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처음으로 NATO의 일원으로서 유고 공습을 감행했다. 드디어는 "긴급파병부대"의 창설에 이르는 CFSP는 이때를 경계로 '역내방위'의 원칙으로부터 명백히 공격용 군사력의 확립과 그 행사로 조준을 맞추게 되었다.

헌법조약****4) 제I부 제II장 41조 "공동외교․안전보장정책에 관한 특별규정" (1)은, "비군사적 및 군사적 수단에 의거한 작전능력"을 "평화의 확보, 분쟁의 예방 및 국제적 안전의 강화를 위한, 연합(EU) 외부에서의 임무에 사용할 수 있다"고 명기했다. 41조 1항에서 정하는 임무(특수임무)란 "공동 무장해제 조치, 인도적 임무, 구원 출동, 군사적 조언 및 지원 임무, 분쟁 예방 및 평화 유지 임무, 그리고 평화 창조 조치 및 분쟁 후의 상황 안정화 활동을 위한 위기관리 틀 내에서의 전투 출동"이고, "이들 모든 임무를 통해 테러와의 전쟁에 공헌한다"(제III부 309조)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을 '테러'(terrorism)라고 규정하는지, 헌법조약에는 규정이 없다.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애매함은, 부시의 '테러와의 전쟁'이 증명한 것처럼,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EU는 미 제국주의와 나란히, 혹은 NATO를 보완하면서, 제국주의의 세계지배의 일익을 담당하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아가, 이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방위능력의 개발, 연구, 조달 및 준비 분야를 위해" 유럽방위청이 설치된다(제III부 41조). 뿐만 아니라 가맹국은 "자신의 군사적 능력을 착실히 향상시켜야 할 의무"를 지고(같은 조), 또한 "가맹국의 군사능력 분야에서의 목표의 조사와, 가맹국이 이 능력과 관련하여 인수한 의무를 이행했는가 여부"를 평가하는 권한을 유럽방위청에 주었다(제III부 311조). "NATO가 가맹국에 요구하고 있는 규정을 넘어"(한스 모로도우) 군사력 증강으로 나아가고 있는 EU가 어떻게 평화적인가, 유럽의 좌익이 비판한 첫 번째 점은 여기에 있었다.

EU가 NATO와 거리를 둔 독자적인 군사력의 창설에 구체적으로 나선 것은 2003년 11월이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충돌한 독일․프랑스―영국 3개국의 정상이 베를린에서 회담을 갖고, "강한 유럽"을 지향하는 데에 합의한 것이다. 블레어 수상은 당시 이라크의 대량파괴 무기의 존재를 과장한 정보조작이 명백해져 반전운동이 고양되면서 지지율이 급락하고 곤경에 처해 있었다. NATO 중심의 원칙으로부터 EU의 독자적인 군사력 창설에 반대하는 미국 정부와 프랑스․독일의 관계를 블레어가 중재하는 형태로 '유럽 공동외교․안전보장전략'(CFSP)이라는 방침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이라크 전쟁을 둘러싸고 발생한 미․영―독․불 간의 균열을 수습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CFSP는 같은 해 12월 12-13일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최종적으로 합의되었고, 여기에서 '국제적인 테러나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등의 새로운 위협에 대하여, '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이라는 조건부이긴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예방적 개입"에의 길이 열렸다.*****5)



EU의 긴급파병부대와 NATO의 대응부대의 비교

 

           EU 긴급파병부대

 NATO 대응부대

     (NRF)

 헬싱키 헤드라인 목표         (HHG)

헤드라인 목표 2010

 

 

 

 

 

 

 

(총병력)

(육군)

   

육군 5만-6만(1년간 파병을 상정하면 ×3) + 공․해군

HHG 달성이라는 전제 위에서 전투부대(대대규모), 전투지원부대로 구성되는 '전투부대' 구상 (각 약1,500명, 6-10개 부대)

21,000명 (육해공 통합)     

 

(공군)

 

15개 여단=군단 수준

 

1개 여단

 

 

(해군)

약400작전기

약100척

하루 200 스트라이크 소티 규모(72기 정도) 1개 항공모함, 1개 상륙강습부대, 6-10척의 함정

대응제도

60일 이내, 적어도 1년간

10일 이내 파병, 단독으로 30일간까지(90일까지 연장가능), 그후 HHG의 대규모 부대로

5일 이내에 파병, 단독으로 30일간까지

 파견가능

 시기

2003년 파병가능태세, 마케도니아, 콩고 파병

2004년 보스니아 파병예정

2007년 전투부대 파병가능태세,

2010년 전면적 파병가능태세

2004년 10월 부분적 파병가능태세,

2006년 가을 전면적 파병가능태세

 임무

인도적 지원, 구조활동, 공동무장해제작전, 군사적 조언과 지원활동, 분쟁예방과 평화유지활동, 위기관리시 평화창조를 포함한 작전활동(수정 페터스베르크 임무)

인도적 원조, 평화유지 및 평화강제, 집단방위(초동국면)

 운용계획

a) NATO유럽연합군최고사령부 내 EU사령실(부사령관을 지휘관)(NATO의 능력․자산 사용시)

b) EU 가맹국의 전략사령부(NATO의 능력․자산 비사용시)

NATO연합최고사령부

※합동통합임무부대(CJTF)로서

 군사력

 정비계획

반년마다 평가하는 ECAP를 포함한 군사능력개발 매커니즘(CDM)

2년마다의 가이드라인과 1년마다 평가하는 군사력정비 매커니즘

[출전] 廣瀨佳一 (방위대학교 종합안전보장연구과 교수) "NATOとの協調か競合か―擴大EUの安全保障․防衛政策"(ꡔ外交フォ-ラムꡕ 2004년 8월호)


독불여단(獨佛旅團) 5,000명을 주력으로 하고, 언제나 출동 가능한 태세에 있는 EU로서의 최초의 군사력 행사는 2003년 1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옛 유고슬라비아)로의 1만2천 명의 치안유지부대의 파병에서 시작된다. 같은 해 3월에는 마케도니아(역시 옛 유고슬라비아)의 치안 감시를 NATO로부터 인계받아 350명의 경찰부대가 파견되었다. 나아가, 같은 해 6월에는 부족간의 항쟁이 격화된 콩고공화국에 1,800명의 치안부대의 파견*6)이 이루어지며 급속도로 진행된다. EU의 군사력 강화, 작전 및 지휘 능력의 향상은 헌법조약이 비준된 후에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작동된 기정사실을 헌법조약에 의해서 확정하는 것에 불과했던 것이다.

EU의 긴급파병부대를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별표 "EU의 긴급파병부대와 NATO의 대응부대의 비교"를 게재한다. 군사문제에 관한 정보와 지식이 없는 우리도 이 표로부터 EU가 독자적인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의 거대 군수산업과의 대항을 염두에 두고 유럽의 복수의 병기 제조사가 합병하여, EU의 군사력 강화를 담보하는 EADS사(뮌헨 소재)가 설립되었다. 가맹국들의 기술력을 결집하여 공동 개발된 최신예 차세대 전투기 '유로파이터'는 콕피트(cockpit, 조종사실)는 영국, 주익(主翼)은 스페인과 이탈리아, 동체(胴體)는 독일이 분담하여 제조하고, 독일에서 조립된다. 이 전투기는 최종적으로 600기가 각국에 배치된다.

EU 긴급파병부대의 약점은 대량 수송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EADS사는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C130에 필적하는 대형 수송기 'A400M'의 개발이 이미 착수했다. 이 개발과 제조, 180기의 배치에 의해서 EU 긴급파병부대의 작전능력은 비약적으로 높아지게 된다.



다국적기업=독점체의 유럽


헌법조약에 의해서 신자유주의의 원리가 EU의 '목표'의 지위로까지 격상되었다.

제I부 제3조 "연합의 목표" (3)은, "균형 경제성장 및 물가의 안정을 기초로 하는 유럽의 지속적 발전, 완전고용 및 사회진보를 지향하는 고도의 경쟁력을 갖는 사회적 시장경제, 그리고 고도의 환경보호 및 환경의 질의 개선을 지향하여 활동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차 대전 후 서독에서 내걸어 역대 정권에 의해서 계속 받아들여온 경제정책 이념인 '사회적 시장경제'**7)는 바야흐로 유럽통합의 경제정책 이념으로서 보편화되었다. 시장경제(상품경제)―즉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완전고용'과 '고도의 경쟁력'은 과연 양립할 수 있는가? 양립할 수 있다고 하는 이상(理想), 그 현실과의 괴리를 어떻게 타협하는가? 뒤에서 우리는 프랑스나 독일의 현실에 입각하여 이 과제를 검증할 것이지만, 우선 앞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하자.

이렇게 해서 고매한 이상을 선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조약 제I부 제4조 "기본적 자유 및 무차별"에서 금새 마각을 드러낸다. 제4조 (1)은 "사람, 써비스, 상품 및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 그리고 사업소 설립의 자유는 연합에 의해서, 연합 내에서, 이 헌법에 따라서 보장된다"라고, 연합이 자본의 활동에 최대한의 '자유'를 주는 것임을 거리낌 없이 말하고 있다. 이것이 신자유주의의 원리를 관철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제III부 "연합의 정책분야 및 운영방법" 제II장 "경제․통화정책"을 보면, 제177조에서는 가맹국의 경제정책에 "역내시장 및 공동목표의 결정에 기초하고, 또한 개방적 시장경제의 원칙"을 보증할 의무를 과하고 있다. 나아가, 제179조 (4)에서는 "가맹국의 경제정책이 가맹국 정상(頂上)으로 구성되는 유럽이사회가 정하는 대강(大綱)에 부적합하고, 경제․통화동맹의 기능을 해칠 염려가 있을 때", 경고와 필요한 권고를 하고, 그것을 공표할 권한을 유럽위원회에 주고 있다. 가맹국들은, 그들이 EU에 머무는 한, 독자적인 경제․사회정책의 입안과 수행, 따라서 각국의 인민이 사회의 근본적인 변혁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고, EU는 그러한 장치로서 인민의 운동을 상대하고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유럽의 통합을 긍정하고, 지지하고, EU를 본보기로 하여 동아시아의 국가들, 특히 일본이 걸어야 할 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적 유럽을 외면하든가, 보고도 보지 않은 체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원리의 관철은 전쟁을 일으키는 원인과 무관할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신자유주의적 유럽에 대한 비판을 피하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나 양국 간 혹은 다국 간의 자유무역협정(FTA)과는 형태를 달리하면서도, 유럽헌법이 그것을 명기한 것처럼, EU 역시 자본의 이동, 그 자유로운 활동을 최대한으로 보장하고 있는 것이고, 거기에서 말하는 '자유'란 제1차적으로 자본에게 있어서의 자유이다. 우리가 EU의 본질을 "다국적기업=독점체의 유럽"이라고 규정하는 이유도 실로 여기에 있다.

EU를―아니, 세계를 말할 때, 우리는 맨먼저 정치적 법률적 이데올로기적 건축물(상부구조)의 토대에 해당하는 경제구조의 변화에 주목한다. 통합의 심화과정에서 생산의 집적과 자본의 집중이 어떻게 진행되고, 세계를 대표하는 거대자본이 탄생하여 지배력을 어떻게 강화했는가를 본다.

2002년, 프랑스의 위지노르(Usinor), 스페인의 아쎄랄리아(Aceralia) 등이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철강독점 아르쎌로르(Arcelor)가 탄생했다. 1999년에 프랑스와 독일에 걸쳐 있는 두 회사의 합병으로 탄생한 아벤티스(Aventis)를 프랑스의 싸노피 쌩뗄라보(sanofi-synthelabo)가 2004년에 사들여 세계 제3위의 제약독점 싸노피 아벤티스(sanofi-Aventis)가 탄생했다. 전(全) 유럽 수준에서 병합이 진행된 결과 맥주업계의 시장 판도를 크게 바꾸는 변화가 일어났다. 1992년에는 미국(2개사), 네덜란드(1개사), 오스트랄리아(1개사), 일본(1개사)가 상위 5개사를 점하고 있었음에 비해서 2004년에는 벨기에․영국․네덜란드․덴마크(각 1개사), 미국(1개사)으로, 유럽세가 크게 약진했다.

영국의 전력시장은 자유화 전에는 12개의 지역배전회사가 있었다. 이들은 1990년에 민영화되었고, 1995년에 정부의 보호정책이 중단되자 순식간에 미국과 프랑스, 독일의 전력자본에 의해서 매수되었다. 유럽 최대의 전력자본인 프랑스의 EdF사(최대주주는 정부)는 자본금 198억 유로, 총자산 1,468억 유로, 2003년의 총매상고는 449억 유로다. 이에 E-ON사(독일), RWE사(독일)이 뒤를 잇는다. 유럽의 전력업계는 지금 국경을 초월한 재편통합, 독점체에 의한 시장지배가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독일의 RWE사처럼 전력산업만이 아니라 수도사업에 진출한 독점체도 있다. 유럽을 본거지로 하는 세계 최대의 수도자본은 프랑스의 수에즈(Suez)와 비벤디(Vivendi)다. 두 회사는 국내에서 85%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정부의 강고한 보호를 받는 유리한 입장을 기반으로 1990년대를 통해서 순식간에 해외사업을 확대시켰다. 이 두 회사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영국의 템즈 워터(Thames Water)와 아메리칸 워터 워크스(American Water Works)를 인수하여 거대화한 RWE사뿐이다.

인간의 생명 유지에 불가결한 물은 본래 이윤추구의 수단으로 삼아서는 안됨에도 불구하고 1990년대 이래 상품화․시장화가 급속히 추진되어 바야흐로 거대자본에게 있어서 석유에 다음가는 전략상품으로 되었다. 유럽의 각국 정부나 유럽위원회는 자신들이 커다란 결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계은행과 일체가 되어 개발도상국에 수도사업의 민영화를 강요하고, 거대독점의 진출을 후원해왔다. 우리는 그러한 민영화 정책의 비참한 결말을 수에즈사에 의한 마닐라시의 수도사업의 매수, 현지자본과의 합병에 의한 '마닐라드(Manilad)사'의 설립, 떼돈을 번 끝에 철수하기에 이른 전말을 통해서 알 수 있다.***8)

하지만, EU 내에 본거지를 둔 거대 자본이 역내에서의 법적 규제, 그리고 노동자․인민의 투쟁과 감시에 의한 규제가 미치지 않는 역외 국가들에서 얼마나 악랄하게 행동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기에서는 더 이상 깊이 들어가지 않기로 한다.



신자유주의적 경제․사회정책의 탐구


프랑스에서 헌법조약이 부결된 직후, 세계 금융자본의 두 개의 아성, 월가(뉴욕)와 씨티(런던)를 대표하는 매체가 부결 결과를 논평했다. 일본에서 보도된 그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6월 3일자 ꡔ월 스트리트 저널ꡕ 사설(6월 7일자 ꡔ日經ꡕ)로부터―


...실업률 10% 전후의 상태가 10년 가까이 계속되고 있는 프랑스의 경제적 허약성은 정도의 차는 있지만 "늙은 유럽" 전체에 공통적이다. 그 옛날 유럽과 미국의 지적 엘리트는 유럽의 복지국가의 경제적 효과를 칭찬했지만, 이 모델은 현재 고용, 부, 활성을 낳는 것으로 기능하지 않고 있다. EU의 관료주의는 유럽 대륙의 높은 세율, 팽창한 복지급여, 약자보호의 산업정책 등에 눈을 감아왔다. 가맹국 간에서 실질적인 다국적 간 카르텔을 만들어냈다. 유럽은 바야흐로 이 복지국가사회주의 실험 실패의 높은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


블레어 총리와의 ꡔ파이낸셜 타임즈ꡕ 6월 7일자 인터뷰(6월 8일자 ꡔ赤旗ꡕ) 등으로부터―


...수상은 "(헌법조약을 거부한 두 나라는) 고용, 경제의 지구 규모화의 영향, 안전보장, 이민, 조직범죄 등 눈앞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전진을 위해서는 명확한 회답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의 세계에 적합한 새로운 유럽사회의 모델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발언. "경쟁력 있는 경제, 공정, 공평한 사회"에 대한 대응이 "새로운 사회 모델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ꡔ파이낸셜 타임즈ꡕ의 컬럼리스트 볼프강 문샤우(Wolfgang Munchau) 씨는 이 신문 6일자에서 "유럽헌법 캠페인 속에서 유럽에서는 격렬한 중요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유럽 대륙의 유럽사회 모델의 지지자와 앵글로색손(영미류) 자본주의의 지지자 사이의 싸움이었다"며, "EU의 장래는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두 개의 논평은 뜻밖에도 유럽사회 모델―정체적인 늙은 유럽―의 파탄을 선고하면서, 새로운 사회모델―미영(앵글로색손)형―로의 전환을 촉구하고 있었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낮은 성장률(0-2%대)과 고실업률(10년 연속 10%대)의 독일과 프랑스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그렇지만 기껏 3-4%대)와 저실업률(그렇지만 고작 4-5%대)의 비교로 치환할 수 있다.

유럽의 경제․사회정책을 검토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음의 것을 언급해 둔다. 그것은 미국경제의 '강함'의 비밀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무엇보다도 우선 쌍둥이 적자(재정과 경상수지의 적자)를 싸갈겨 놓고, 기축통화국(基軸通貨國)이라는 특권을 행사하여 그 부담을 다른 국민에게 돌리는 것으로 살아가고 있는 패권국가다. 스스로는 만성적인 적자에 안주하면서 국내에서 생산하는 것 이상으로 과잉소비를 하고,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IMF를 통해서 긴축정책을 강요하고 있다. 사회적 재생산에 어떤 역할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파괴 그 자체를 목적으로 한 사회적 낭비인 침략전쟁의 수행, 그를 위한 거액의 군사지출, 군수생산의 확대조차 자본주의 경제에 있어서는 성장의 원동력일 수 있다. 미 제국주의는 가장 썩은 기생적 자본주의인데, 이를 가지고 "성공한" 사회모델로 진단하는 것이 얼마나 파렴치한가, 반드시 한 마디 해두고 싶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유럽헌법조약이 "완전고용"을 노래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ꡔ월 스트리트 저널ꡕ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EU가 "팽창한 복지급여, 약자보호의 산업정책에 눈을 감아온"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복지국가 사회주의의 실험'의 계속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EU의 성장률은 왜 낮은가? 구보(久保廣正, 고베(神戶)대학 대학원 경제학연구과 교수)는 EU가 1997년에 책정한 '유럽고용전략'을 본보기로 하여 이 문제에 답하여, ① 재량적 재정정책의 제한(단일통화 유로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도의 재정적자를 3% 이내로 억제할 의무를 진다), ② IT화의 지체, ③ '구조개혁'의 지체라는 세 가지 점을 들고 있다. 여기에서는 특히 ③이 중요하다. '유럽고용전략'이 말하는 '구조개혁'이란 임금과 고용조건, 일반적으로 고용조건의 "하방경직성"****9)의 타파, 즉 고용의 '유동화․탄력화'이고, 바야흐로 만국 공통이 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EU는 2004년 3월에 '유럽고용전략'을 확충하여 2010년의 경제․사회에 관하여 포괄적인 방향성을 보여준 '장기경제전략'(리스본 전략)을 내세웠다. 그것은, ① 고용전략, ② 전자유럽 행동계획, ③ 유럽사회 모델이라는 3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내용 생략).

EU의 최신 경제전략은 '성장과 고용'에 초점을 맞춘 리스본 전략의 개정판으로서, 2005년 2월에 발표되었다. 신전략은 유럽의 경쟁력의 강화, 2010년까지 600만 명의 고용증대를 내걸었다. "지나치게 두터운 사회보장이 재정적자를 초래함과 동시에 근로의욕을 방해하고 있다. 연금의 지급개시 연령을 올려 취로기간을 연장해야 할 것이다"라는 것을 기조로, '규제완화'의 확대나, 고용제도나 사회보장제도의 '개혁'을 통하여 고용증대와 높은 복지를 함께 실현할 수 있다(진짜 새빨간 거짓말!)고 하였다.

 경제'자유화'론자 바로조(Jose Manuel Baroso)가 위원장을 맡고 있는 유럽위원회는 홀연 유럽노련(ETUC, European Trade Union Confederation)을 필두로 하는 노동자들의 전체 유럽 규모에서의 항의행동에 직면했다. 일련의 '규제완화' 조치에는 "역내 써비스 시장의 자유화"가 포함되어 있고, 그것이 실시되는 경우 노동조건이 크게 악화되는 것은 자명했다. EU 지령안(指令案)은 3월 말에 열린 정상회의에 제출되었고, 프랑스와 독일이 국내의 여론에 밀려 반대했기 때문에 "발본적"으로 재검토되게 되었다. 헌법조약의 찬반을 묻는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 이전 단계에서는 EU의 신자유주의적 '개혁' 노선에 대한, 노동자들의 이러한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EU를 긍정, 지지하는 사람들, 예컨대 일본공산당은, EU는 미국과는 다른 자본주의 모델을 추구하고 있다고 착각하곤 한다. 자본의 존립과 세계시장을 전제로 하는 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전에서 도망칠 수 없다. 1990년대 이래의 자본축적양식의, 빈곤의 축적을 불가피하게 하는 신자유주의 원리로의 전환을 가장 먼저 수행한 미국과 영국의 자본주의, 풍부하고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진출해오는 후발자본주의(그 중 다수는 '선진국' 거대 자본의 지배 하에 있다)와의 치열한 경쟁전에서 이기기 위해서 EU 자본도 '구조개혁' 노선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개별자본에 있어서, 또 개별적인 자본주의에 있어서도, 그것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외적강제로서 작용한다. 아프리오리하게(a priori, 선험적으로), 역사조건적으로 주어진 것으로서, 자본주의에 다양한 유형이 성립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논의*****10)는 자본의 본성, 그 보편적 성격을 경시 혹은 무시하는 것이어서, 객관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연명에 손을 빌려주는 역할을 담당하게 되는 것이다.



‘복지국가'의 해체―프랑스와 독일의 경험


프랑스에서 헌법조약이 부결되었다는 보도에는, 헌법조약을 옹호하는 입장으로부터의 다음과 같은 견해도 보도되었다. 즉, 프랑스에서는 헌법조약 자체가 부결된 것이 아니라 현 정권의 국내정책이 비판되었다는 견해가 그것이다. 이는 EU의 경제․사회정책과 시라크(Chirac) 정권의 그것과의 연관을 보려고 하지 않는 잘못된 논의에 불과하다.

2003년에는 유럽 각국에서 정권의 차이를 불문하고 사회보장제도의 개악이 일제히 정치일정에 올랐다. 공격은 의료․연금․실업보장 등 사회보장제도 전반에 미쳤다. '개혁'의 목표는 "기업의 부담증대를 회피하여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 "사회보장 비용의 증가가 기업경영의 발을 잡아당기는 악순환"을 단절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에서는 1993년에 민간부문을 대상으로 연금의 수령액을 인하하는 최초의 '개혁'이 실시되었는데, 그 2년 후 당시의 쥐페(Juppé) 정권은 그것을 공공부문으로 확대하는 방안에 착수했으나, 노동자들의 대투쟁에 의해서 철회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03년에 부상한 것은 그 여운을 정리함과 동시에 민간부문을 포함, 가까운 장래의 보다 발본적인 개악을 위한 포석을 두는 것이었다. 정부의 연금제도 개악안은 공무원의 보험료 지불기간 37.5년의 민간 수준으로의 연장, 기본임금에 대한 현행 75%의 수령액의 66%로의 인하, 임금연동제의 물가연동제로의 전환 등이었다.

프랑스의 노동조합은 같은 해 5월 13일 구매력을 보장하는 연금수준의 확보, 60세에 전액을 받을 권리, 고용확대를 기초로 하는 연금제도의 유지 등의 공동요구 하에 노동총동맹(CGT), 민주노동연맹(CFDT), 노동자의 힘(FO) 등 6개의 전국조직이 총파업(제네스트)에 나섰다. 전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200만 명이 참가하는 대시위가 전개되었다. 25일의 집회와 데모는 100만 명이 모여, 빠리를 노동자들의 데모 대열로 메웠다. 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연금개악법안은 7월 24일 노동조합과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결, 성립되었다. 이 결과 프랑스의 연금수령 개시 연령은 63세로 되었다.

다음으로 슈뢰더(Schröder)가 이끄는 사민당(SPD)과 90년 연합․녹색당과 연립정권 하에 있는 독일. 발단은 2003년 4월 정부의 자문위원회가 "국가가 해야 할 것을 줄이고 개인의 자기책임과 자조 노력을 촉진"하는 "사회복지국가의 재건"안(案) "아겐다(Agenda, '협의사항'․'의사일정'이란 뜻) 2010"을 제창하면서 시작되었다. 내용에는 사회보장제도나 고용관행, 산업별 노동조합의 사회적 규제력의 일부 박탈이 포함되어 있었다. 즉, 연금수령 개시연령의 현행 65세(!)로부터 67세로의 인상, 19.5%의 보험료율의 2030년 22%로의 단계적 인상, 의료보험에 대한 진료 받을 때의 정액 부담제 도입, 실업급여기간인 2년 8개월(!)을 55세 미만 12개월, 55세 이상 18개월로의 단축, 종업원 5인 이하(법안 성립시 10인 이하)의 소기업의 해고 규제의 완화, 산업별 임금협정의 약소기업에 대한 적용 배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보장제도에 관해서 말하자면, 일본에서 수행돼온 '구조개혁'과 전적으로 동질적인 공격의 대행진, '개혁'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어조까지도 전적으로 꼭 빼닮았다.

독일에서는, 프랑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규모의 항의행동이 전개되었다. 독일노동총동맹(DGB)은, 정부가 빚을 늘려서라도 경기회복을 우선할 것, 자산세의 도입이나 상속세의 과세 강화 등의 정책을 놓고, 슈뢰더나 사민당과의 대화에 의한 미온적 해결을 꾀했다. 결국, 처음부터 투쟁에는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6월의, 사민당과 90년 연합․녹색당의 대회에서의 정부안의 승인을 경계로 항의행동은 용두사미가 되어, 일부의 노동조합과 구 동독에 기초를 둔 민주사회주의당(PDS, 현재의 좌익당), 세계화 반대나 평화운동을 추진하는 시민단체 등으로 한정되게 되었다. 12월 초순에 정부는 현안인 '구조개혁법'을 각의에서 의결. 법안 성립까지 이렇다할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의 사례에 따라서 우리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도입을 둘러싼 노자의 공방의 일단을 보아왔다. 그리고 이러한 것은 모두 과거에 ꡔ신문 적기ꡕ가 보도해온 것이다.



미국․영국과 독일․프랑스의 차이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신자유주의의 경제․사회정책을 남보다 앞서 도입하는 정권이 1980년대 초두에 미국과 영국, 일본에 차례로 성립되었다. 1970년대를 통해서 자본주의 경제는 경기후퇴국면에서의 물가상승(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전례 없는, 이전의 경제학으로는 해석할 수 없는 난문제에 부딪혀 있었다. 사회주의와의 대항을 위해서 국가의 재정․금융정책을 통해서 공황을 완만한 경기변동으로 바꾸는 케인즈 정책은 이미 벽에 부딪혀 있었다.

자본축적과 노동자복지는 균형을 취할 수 있다던 그때까지의 방침을, 신고전파의 이론에 따라서, 바야흐로 벗어던질 때가 왔다. 최초의 '규제완화' 정책은 1970년대 말 카터(Carter) 정권 하의 미국에서 운수업을 시작으로 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개시되었다. 레이건(Reagan) 정권이 착수했던 것은 철저히 쏘련을 "악의 제국"으로 간주한 '강한 미국'의 부활, 즉 초군비확장정책과 '강한 달러'(고금리정책), '작은 정부'였다. 취임 후 최초의 작업으로서 레이건은 항공관제사의 파업에 전원해고로 보복했다.

대처(Thatcher) 정권이 시작한 노동조합 부수기는 보다 철저했다. 노동조합의 임금투쟁은 1970년대 말에는 이윤을 크게 침식하여 영국 자본주의의 쇠퇴에 한층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영국병!). 대처가 노린 것은 노동조합의 힘을 꺾음으로서 영국 자본주의를 재흥시키는 것이었다. 그를 위해서 노자관계법이 개악되었다. 예컨대, 노동조합은 그때까지 집행부의 지령 하나로 파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정부의 관리 하에서 파업권 투표가 의무화되었다.

석탄과 석유, 통신, 항공 등등의 국영기업은 하나하나 해체되었다. 산업판도가 크게 바뀌었다. 영국은 금융, 부동산, 관광, 통신 등의 써비스업이 GDP의 73%를 점한다(2002년). 20세기 초두, 레닌이 '금리생활자 국가'라고 불렀던(ꡔ자본주의의 최고단계로서의 제국주의ꡕ) 것처럼, 영국은 국내의 산업기반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 하고, 오로지 자본수출, 그것도 주식․채권 등의 증권투자에 의해서 여러 외국으로부터 배당이나 이자를 빨아들이는 기생적 자본주의를 특징으로 해왔는데, 파운드화의 기축통화 지위로부터의 전락과 함께, 본업이라고도 할 수 있는 금융업도 쇠퇴하고 있었다. 대처 정권 시대의 영국은 금융거래의 대담한 '규제완화'에 나섰고, 윈블든(Winbleden) 방식*11)으로 유로 달러**12) 거래의 중심지로서 씨티를 소생시켰다. 롤스로이스와 같은, 고급 브랜드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세계 제일의 제조업은 벌써 사라진 후였다.

노동조합 부수기와 산업구조의 전환이라고 하는 이중의 타격을 받고, 영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급감했다. 노동자계급의 명운을 건, 1980년대 중반의 탄광노조에 의한 1년에 걸친 폐광반대 파업의 패배가 노자의 명암을 갈랐다. 1970년대에는 70%를 넘는 조직률을 자랑하던 영국노동조합회의(TUC)는 이제 40%대를 하회하는 데까지 쇠약해졌다.

1997년 "제3의길", 뉴레이바(New Labour)를 기치로 18년만에 정권의 자리에 복귀했을 때의 노동당은 대처리즘의 부산물이고, '철의 여성'이 가장 총애하는 자식인 블레어(Blair)가 이끌고 있었다. 노동당은 이미 노동자계급의 당이 아니었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남보다 앞서 도입한 미국과 영국,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최초로 '복지국가' 모델을 형성했던 영국에서 반자본주의의 요새인 노동조합이 척추를 꺾이고 대항력을 빼앗긴 것이, 신자유주의적 사회 모델의 '성공'―물론 자본에 있어서의 그것―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반대로,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노동자계급의 투쟁력은, 후퇴를 강요받고 있긴 하지만, 아직 강력하다. 그것은 시라크 정권이 "프랑스와의 계약"의 일환으로 금년 봄회의에서 성립시킨 법정노동시간 35시간제 '탄력화'가 노동조합의 저항에 부딪혀 실효를 거두고 있지 못하다고 보도되고 있는 한 가지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 차이야말로 미국이나 영국과 프랑스나 독일의 자본주의가 차이가 나는 근거여서, 자본주의에 미리 2종류의 모델이 있고, 이것인가 저것인가 어느 것을 고를 것인가 하는 선택의 대상으로서 그것들이 존재할 리가 없는 것이다.



교차하는 전진과 후퇴, 두 종류의 지표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는 신자유주의적 유럽에 노동자․인민의 "안돼"라는 심판이 내려졌다. 이것은 이라크 반전(反戰)에서 발휘된 광범한 공동행동과 함께, 새로운 전진을 위한 중요한 일보가 될 수 있다.

때마침, 9월에 총선거가 실시되는 독일에서 옛 동독에 기반을 두는 민주사회주의당(PDS, 현재의 좌익당)과, 사민당(SPD)을 탈당한 좌파의 중진 라퐁텐(Oskar Lafontaine)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구 서독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과 사회적 공정을 위한 선거대안'(WASG)의 공동투쟁이 실현되었다. 지지율은 10%를 넘는다.

체코․모라비아 공산당(KSCM)***13)은 작년 4월의 유럽의회 선거에서 득표율이 9%에도 못 미친 여당인 사회민주당을 앞질러 20.3%를 획득했다. 이 선거에서는 사회보장제도의 개악, 부담증가를 강요하는 집권여당에 대한 불만이 유럽 전체 수준에서 분출되었다. 집권여당은 태반의 국가에서 의석을 삭감 당했다.

블레어가 이끄는 뉴레이버는 정권의 자리에 복귀한 1997년에 당원수가 40만7천 명이었는데, 그 반노동자적 노선이 화가 되어 7년 후인 2003년에는 21만5천 명으로 거의 반감되었다. "제3의 길"은 환상에 불과했음이, 그가 추진하는 경제․사회정책을 통해서 대중적으로 폭로되었다.

그리하여 긍정적인 변화가 진행되는 한편, 동시에 부정적인 변화도 나타났다. 예컨대,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은 우파 주도로 중도좌파 '올리브 나무'에 급속도로 접근했는데, "우파연합의 베를루스코니(Silvio Berlusconi)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서"를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었다. 3월에 개최된 제6회 대회에서 지도부는 '올리브 나무'와의 대연합을 제안, 격론 끝에 찬성 59%(레르네스트[잡지명]파, 제4인터파 등 좌파 4그룹이 반대)로 채택되었다.

프랑스 공산당은 사회당 정권에 대한 매몰이 화근이 되어 당세가 격감, 이미 왕년의 위광이 없다.

유럽의 공산주의 운동은,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에 의해서 커다란 타격을 받아 그 부정적 유산이 무겁게 짓누르고, 지금 아직 혼미의 와중에 있다. 공산당․노동자당의 국제회의(아테네회의)는 그리스 공산당의 헌신적이고 끈질긴 노력, 국제주의적 이니셔티브에 의해서 유지되고는 있지만, 참여하는 당 사이에 노선상의 뿌리 깊은 대립을 내포하고 있다. 이 대립은 전형적으로 이탈리아 재건공산당과 그리스 공산당의 입장의 차이로 나타나고 있다. 양당 간에는 EU의 평가와 운동상의 위치, 나아가서는 세계구조의 인식, 따라서 혁명의 전략․전술에 미치는, 용이하게 매워질 수 없는 대립이 놓여 있다. 발표의 시기는 다르지만, 아테네회의로부터의 보고를 아래에 발췌한다.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은 1999년[제1회]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국민국가는 현실적으로 이중의 위기를 맞고 있다. 보다 유리한 조건에서 보다 빨리 세계화(globalisation)에 참가하기 위해서 ―그것은 주요하게는 경쟁의 필요성에서이지만― 분리 독립을 위해 싸우는 지역이 수많이 존재하고 있는 지금, 국가 주권은 풀뿌리 수준에서부터 저항의 대상이 되어 있다. 동시에, 유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국가 주권을 초국가적 기구에 이관하는 흐름도 확대되고 있다.

국가의 성격이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인식하고 있던 금세기의 국가에 관해서는 그렇다. 국가는 정치와 재분배의 역할을 상실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결정한, 세계시장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적용되는 장으로 바뀌고 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유럽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항축을 세우기 위해서 필요한 틀로서 보고 있다.

이 기회에 나는 미국과 유럽의 관계에 관해서 한 가지 명백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몇몇 사람들이 언급한 제국주의의 내부대립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세계화와 다국적기업에 관해서 이미 말했지만, 여기에서는 미국과 유럽의 무역의 40%가 다국적기업 내부무역임을 부언해두고 싶다. 유럽 자본주의와, 그것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미국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두 개의 적대적인 제국주의 세력 사이에서 경제적인 문제, 자원의 문제를 둘러싼 충돌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대립은 있지만, 그것은 누구나 이론의 여지가 없는 세계적인 체제라고 하는 틀 속에서 해결되는 것이다. ...("資本の'グロ-バル化'戰略に抗して(자본의 세계화 전략에 대항하여)", Information Bulletin, No. 1.)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아마 당내 우파―이 묘사한 세계상(世界像)은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의 "<제국>"론과 종이 한 장 차이―아니, 그 자체다. '9․11' 사건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는데, 그들은 미국과 EU의 관계를 제국주의 간 대립으로 파악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현대 세계에 관한 이러한 기본인식에 입각하여 그들은 투쟁의 주요 무대를 국민국가(이탈리아)로부터 EU로 옮길 것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길에 놓여 있는 이중의 곤란


이에 대해서 그리스 공산당은 3년 후[제4회]의 회의에서 다음과 같이 반론했다. 그것은 명백히 네그리의 "<제국>"론이나 이탈리아 재건공산당의 견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일국 수준의 투쟁은 막다른 골에 빠져, 세계 속에서 동시에 수행되는 세계적 규모의 투쟁을 통해서만 그것을 타파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우리는 올바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은, 이른바 세계화(globalisation)라는 구실 하에 국내에서의 투쟁을 소멸시킬 수 없음을 알고 있다. ... 계급투쟁․반제투쟁의 국제화와 사회주의를 지향한 투쟁이 한증 비중을 높이고 있음은 오늘날에는 명료해지고 있다. 또한 제국주의의 각 부문에서 동시적으로 공동의 파업을 감행할 필요성이 있음도 오늘날 명백해지고 있다. 그러나, 강력한 인민의 운동과 계급적 지향을 가진 노동자의 운동, 권력문제의 해결이나 국제제국주의체제로부터 자기나라를 분리해내려는 올바른 동맹정책을 가진 강력한 공산당이 일국 단위로 존재하지 않고는, 투쟁의 국제화는 현실적인 것으로 되지 않는다. 현재 존재하는 곤란이나 약점을, 일국 규모의 모든 것은 유효성을 잃었다거나, 국내에서의 운동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는 이론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발전의 불균등성은 오늘날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그 때문에 투쟁도 역시 각각의 길을 걸을 것이다. ...("統一戰線の構築をめざして(통일전선의 구축을 위하여)", Information Bulletin, No. 2.)


국가에 따라서 발전이 불균등한 이상, 혁명은 일국적으로 발전할 수 있고, 발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1915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나중의 쏘련 공산당)의 슬로건으로부터 '유럽합중국'을 제외하도록 제안했을 때의 레닌의 기본적인 입장이었다("유럽합중국이라는 슬로건에 관하여", 全集[일본어 판] 제21권). 레닌은 당시 '유럽합중국'이 성립될 일시적인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다. 협정․조약에 의한 국가연합이 유럽에 성립된 지금, 레닌의 관점은 적용될 수 있는가? 그리스 공산당은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우리는 이 입장을 지지해왔다.

유럽의 노동자계급이 사회주의를 향해서 전진을 재개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계급투쟁의 발전을 파악하고, 이와 결부되어 전개되는 두 개의 노선의 투쟁에 대하여 혁명적인 입장에 입각하여 결론을 짓는 것, 둘째로, 동유럽의 사회주의는 왜 벽에 부딪혔고, 해체되지 않을 수 없었는가, 그 이론적 규명과 총괄에 입각하여, 재건되어야 할 새로운 사회주의의 전망을 그려내는 것―이 두 개의 과제가 동시에 병행하여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추기] 

해명해야 할 대상으로서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결국은 수행하지 못한 세 개의 과제를 들어둔다.

1. 동유럽 국가들에서 사회주의 제도들이 실질적으로 해체된 14년간의 궤적, 특히 EU에 가맹한 국가들의, EU 기준(acquis communautaire)에의 적응과정이 안고 있는 문제.

2. 국가연합으로서의 EU가 안고 있는 내부모순―(1) 프랑스나 독일과 영국 간의 EU의 주도권을 둘러싼 상호대립(제국주의간 모순), (2) 경제발전이 앞선 나라와 뒤떨어진 나라의 관계(그것은 발전의 불균등성, 유럽헌법조약에서 표명된 통합의 이념인 '다양성 속의 통일'과 관계가 있다).

3. 이라크 전쟁에 대한 대응을 둘러싸고 미․영과 불․독이 충돌한 것의, 반전평화운동에 있어서의 의의. <번역: 편집부> ≪노사과연≫



번역

‘유럽사회 모델’의 파산선고

―헌법조약 부결에서 보는 유럽 통합의 현실



야마시타 이사오 |山下勇男, 노동운동연구




*) 유럽연합을 '룰(rule) 없는 자본주의'의 대극(對極)에 두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구상을 하고 있는 일본공산당의 EU관(觀)에 관해서는 본지 141호 「東アジア資本主義"共同體"という惡夢」("동아시아 자본주의 '공동체'라는 악몽", ꡔ정세와 노동ꡕ 제2호, 2005년 6월)에서 비판했다. 일본공산당의 최근의 정리된 견해로서는 佐藤洋(당정책위원회) 「自由貿易協定(FTA)と東アジアの地域統合を考える」(ꡔ前衛ꡕ 2005년 6월호)가 있다.


**) 프랑스에서 유럽헌법조약이 부결된 후의 ꡔ주간 금요일ꡕ의 논평은, 「ꡔ극우ꡕ의 암약으로 프랑스, 유럽헌법조약을 부결」(559호, 6월 3일), 「山口二郞(北海道大學 敎授)의 정치시평, ꡔEU헌법으로 고전하는 유럽과 미국에 응석부리는 유치한 일본ꡕ」(560호, 6월 10일), 成澤宗男(ꡔ주간 금요일ꡕ 편집부) 「EU는 프랑스에서 죽는가―네오콘을 기쁘게 한 좌파의 ꡔ역할ꡕ」(상동) 등이다.


***) ハンス․モロドウ 「歐州連合(EU)擴大の問題点と將來性」 ꡔ社會主義ꡕ 2005년 6월호 참조.


****) 유럽헌법조약은 제a부 가운데 "의정서와 보충, 최종문서"를 제외한 일본어 번역본이 6월에 御茶の水書房에서 출판되었다(ꡔ歐州憲法條約ꡕ ...). 전문(全文) 448조, 일본어 역으로 A5판 300페이지나 되는 이 조약은 한스 모르도우가 적절히 표현한 것처럼, "유럽연합 국민 대부분에게는 그 내용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물건이다.


*****) ꡔ讀賣新聞ꡕ, 2003. 12. 13.


*) 본문에서는 EU로서의 대외군사력 행사만을 다루었지만, 프랑스와 영국은 옛 종주국으로서 독자적으로 아프리카의 내전에 개입해 왔다. 프랑스는 EU군의 파견 이전에 콩고나 코트디부아르 내전의 '화평'을 중개하고, '평화유지군'을 보냈다. '옛 종주국으로서의 책임', '평화유지'가 목적이라는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라늄이나 다이아몬드 등 광물자원의 권익을 보호할 의도도 지적된다"("米歐, アフリカで權益爭い", ꡔ日本經濟新聞ꡕ, 2003. 7. 8.).


**) '사회적 시장경제'는 1948년 이후 서독의 경제질서, 혹은 경제정책의 방향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기독교민주연맹(CDU)에 의해 경제정책 이념을 표현하는 표어로서 1949년에 채용되었다. 레쎄페르(자유방임주의) 경제를 거부하고,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의 원칙과 사회적 평형의 원칙의 결합, 경쟁경제를 기초로 자유로운 창의와 사회적 발전의 결합을 지향한다(鹿島出版會, ꡔ社會科學大事典ꡕ 第9卷, 1969年). 독일민주공화국(동독)과의 대항, 사회주의 사상의 침투에 대한 방파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 수에즈사에 의한 마닐라 수도사업의 매수, 현지자본과의 합병에 의한 '마닐라드사'의 설립, 실컷 재물로 삼은 끝에 철수하기에 이른 전말에 관해서는 2005년 8월 20일에 방영된 NHK 스페셜 「ウォ-タ-․クライシス」(물위기) 제1회 "표적이 된 수돗물"이 상세하다.


****) [역자 주] 원문은 "하방탄력성"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상 명백히 착각에 의한 오타로 판단되어 "하방경직성"으로 옮겼다.


*****) 예컨대, 프랑스의 레귤라시옹('조정'이라는 의미)파의 주요 인물의 한 사람인 로베르 부아예(Robert Boyer)는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는 지역에 고유한 토양 위에서 개화한다"고 말하고, 미국을 "청교도 등 본국에서 쫓겨온 사람들이 원주민을 몰살시킨 터에 수립한" 특이한 자본주의(순수 배양의 자본주의)라고 규정한다. "봉건제라는 풍토 속에서 역사와 전통의 갈등을 거쳐 태어난 유럽이나 일본의 자본주의와 거기가 결정적으로 다르다"고 한다. 그의 자본주의관으로부터 정치가 시장을 조절하고, "평등․연대의 가치와 활력을 양립시키는" "정상적인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정치강령(수정자본주의)이 도출되는 것은 자연적인 귀결이다(「ꡔ米へ一極集中ꡕに異議―佛 ꡔレギュラシオン理論ꡕの論客に聞く」, ꡔ讀賣新聞ꡕ 2004. 12. 19.).


*1) '윈블든 방식'이란, 테니스의 세계선수권대회로 유명한 윈블든에 연관시킨 비유로서, 이곳은 지명(地名)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을 뿐, 말하자면 임대경기장과 같은 곳이다. 이 대회에서 영국의 테니스 선수가 대활약을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들은 예가 없다.


**) 미국으로부터 유출하여 본국으로 환류하지 않게 된 과잉 달러.


***) [역자 주] 영문명은 Communist Party of Bohemia & Moravia로서, 국내에는 '보헤미아․모리비아 공산당'으로 소개되고 있다.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8호 (200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