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들에 쓰인 유서(遺書)

카슨의 새


40여 년 전의 레이첼 카슨이 새소리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슬퍼했을 때 사람 소리 들리지 않는 침묵의 땅이 그려졌던 것일까. 그녀의 봄은 새도 풀도 호수도 떠나면 우리 살 곳과 내 몸 또한 사라질 것임에 목이 메인 것이었겠으나, 새나 풀은 그대로임에도 거기 사는 사람의 마지막 짐이 들어내지는 곳이 이 땅에 있다.

카슨의 새는 40년 전부터 챙겨지기 시작했고 그 행복한 새들은 올 겨울에도 고천암으로, 천수만으로 속절없이 날아들 것인데, 그 40년 전부터 이 땅에서 버려지기 시작했던 사람들은 이제 눈물을 닦을 틈도 없이 새를 두고 들을 두고 길 없는 길을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

떠나기로는 만주땅으로 무장항쟁을 위해 떠나기도 했고, 자유를 꿈꾸며 50년 전쟁의 포로들이 낯선 남지나해를 넘어가기도 했었다. 떠난 이들의 소식은 수 십 년의 세월을 헤치고서 공항이며 항구며 우리 국토의 가공의 낭떠러지를 타고 한 줌의 유골이나 빛바랜 사진이 되어 돌아오기도 했으며, 그때마다 우리는 나의 따뜻한 의복과 빛나는 음식이 그들의 삶을 빻아 만들어진 것임을 상기하고 눈물겨워했었다. 

그러나 떠나는 자들이 다 돌아오는 것도 아닌 터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흔들어주는 손도 없이 떠나야 하는 자들이 여기 있으니, 그들의 이름을 우리는 농민이라 부른다.



아무도 그들에게 떠나라고 하지 않았다


수 십 명씩 다치고 몇몇은 목숨을 버리고 목숨이 끊기고, 여의도에서, 고속도로 나들목과 이곳저곳의 군청 앞에서 해마다 자신들의 인생을 사무치게 내걸어 보아도 세상은 묵묵부답, 냉담하기만 하다. 경상도며 전라도, 충청도며 죽은 자의 초상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의 초상집 문앞에는 '쌀 박람회'(11월 26일, 코엑스) 같은 잔치판이 벌여지고, 날계란 세례 속에서도 농민을 위하겠다 언약했던 대통령은 '밥맛이 좋다, 농민들이 큰 일을 해낼 것 같다'는 딴소리나 냈다는 소식이 들리는 세상, 그러나 누구도 그들에게 떠나라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10년 전부터 세상은 일렀었다. 이 땅에는 농민만 사는 것이 아니다. 농촌의 10배 이상의 사람들이 반도체 팔고 자동차 파는 주변에서 먹고살고 있으며, 농민의 일상이 뼈와 살을 짓이기는 노역의 연속일 때 이들의 하루하루 또한 피를 말리는 쟁투의 소용돌이였다.  이 세기 삶의 방편은 '경쟁'의 틈바귀에서만 만들어지는 것이라던가. 농민들이 이 '경쟁'의 철칙을 인정하고 '개방'의 세계로 나오는 날, 방배동과 해운대 판자촌에서 날품을 팔아 연명하는 이들과 천 만이 넘는 비정규직, 30만 이상의 결식아동 등 이 나라를 음지에서 떠받치는 이들의 거친 손등에도 햇볕이 들 수 있을 것이니, 우리는 이미 지난 10여 년간에만도 100조 원 이상을 투자했고 앞으로 또 그만한 액수를 각오하면서 규모화와 SOC 확충, 고품질과 고부가가치의 '경쟁력'을 얼마나 외치고 외쳤던가. 

그러나 세월이 흐르지 않는 의구한 산천이라 했음인지, 들에 박혀있는 농민들의 세월은 분단의 다리보다 더 길게 끊겨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허구한 그날이다. 생산비 타령도 그대로요, '쌀은 생명이다'는 변명마저 경찰차를 불태우는 궁색한 연기 속에 흩어지는데, 그들은 무슨 명색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보이고 팔다리에 핏물 묻히기를 마다하지 않았는가. 



우리의 부역(附逆)


GDP에서 비중이 2%에 불과하고 60대 이상이 절반을 넘는 농업과 농촌의 생산성은 이 나라에서 사회현상으로서의 가치를 이미 잃었다. 그나마 끈이 되었던 고향에 대한 향수 운운의 것도 옛일이 된 마당에, 이 땅의 농촌에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도시민은 이제 50%를 겨우 턱걸이하고 있을 뿐이며, 그것도 하룻밤이라도 자고 오겠다는 이의 2/3는 도회적 생활환경과의 갭이 가장 적은 선선한 가을에 국한된 것이었다(농촌자원개발연구소, 6월). 청소년의 농업의 가치에 대한 평가 또한 수우미양가의 양 수준에 머문다(농촌자원개발연구소, 4월).

너저분하고 무질서하며 벌레는 득실거리는데 논밭에선 농약냄새가 그치지 않고, 목 추기던 시냇물은 발도 담그지 못하게 되어 버린 데다가, 늙은 농부들의 무지한 어거지 소리까지 거기에 빠지지 않는 농촌에서 우리가 발견할 매력은 대체로 없다. 생태체험이니 체험관광이니 하는 것도 도시 모양으로 꾸며져 있을 때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니, 환경으로서의 농촌의 의의도 도시 속의 수족관 같은 것이 되어 사회적 교환가치의 태반을 잃고 있다.

유목민처럼 집 밖을 떠도는 시간이 더 많게 된 상황에서 농경정착생활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밥 중심의 식사형태 또한 시의를 잃는다. 과연 한때 130kg을 웃돌던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80kg 내외로 급감한 반면 육류와 생선 등 단백질 식품이 그 갑절인 160kg을 넘고 있는 현실은 주식 자체가 바뀌어 버린 것이나 진배없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식사만 가지고서는 내 몸의 일상이 부딪치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함은 날이 갈수록 여실히 드러나 왔다. 때문에 그것을 메우기 위해 우리들은 현미효소, 영지버섯, 동충하초, 알로에, 헛개나무 등등의 것을 전화(戰禍)를 피해 유랑하는 피난민 대열처럼 끝이 없이 찾아내가야 했다. 그들의 농사는 이처럼 먹을거리조차 제대로 감당하지 않고 있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농약 사용량은 OECD 평균의 6.5배이며, 전세계적으로 사용빈도가 4번째로 높은 나라이다. 이것은 화학비료 등과 더불어서 이 땅을 환경오염 부하량이 가장 많은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는 중국산 농수산물의 오염사건에 경악하지만 그것은 사용금지물질이라는 성긴 잣대만 대었을 때의 얘기고, 실제 우리의 농약은 논에 뿌려지는 것만 해도 그들의 13배에 이른다. 그래도 그것이 일본의 1/6밖에 안 된다고 위안할 수도 있겠으나, 환경에 대한 지속적 이용능력을 따지는 환경지속성지수(ESI)에서 122위에 머무르는 나라가 30위의 나라를 걸고 넘어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우리 시장의 쌀값은 호주나 중국에서보다 8배나 비쌌다.

언제부터인가 신문과 방송엔 외국의 유기농업 현장에 대한 르뽀와 기사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것들은 그 나라 농민들이 얼마나 낙천적이며 신념 있게 농사일을 추슬러가고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곤 했었다. 그들이 '쌀은 생명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그들은 생활 자체로서 생명의 진지함에 감명 받으며 사는 모습이었으며, 우리는 농약과 비료라도 어떻게 해보겠다는 한 마디의 언질도 없이 개방반대의 고성만을 일삼는 이 땅 농민들이 '철밥통'은 아닌가를 의심하면서 농사란 저처럼 성스러운 것이었지, 부러워하곤 했었다.

이제 우리의 동경은 부역(附逆)에 가까워진다. 미국의 10배, 호주의 20배가 넘는 땅값과 엄청나게 폭리를 취하는 농기계, 농자재들 때문에 생산비가 비쌀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농민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값비싼 조건에서 그들처럼 시비를 걸지 않고 '세상이란 본래 이런 것이지'하면서 잘 견디고 있으며, 우리 농업이 붕괴 되고나면 수출상들의 천문학적인 폭리 요구가 엄습할 것이라 위협하는 것 또한 배추고 마늘이고 수급이 약간만 어긋나도 그것을 빌미로 하여 두 배, 세 배 값이 뛰었음을 생각하면 이 사회에서 새롭다 할 것도 없다.  게다가 수입개방이 아니라도 농민 스스로 진작부터 농촌을 버리고 떠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니 농업을 지키자는 그들의 구호는 이미 무색해져 있는 터이다. 

이러함들은 외국산 농산물이 우리의 시장을 석권한다 해서 사회의 대강에서 달라질 것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특히 생산이력제 도입이 세계적 추세임을 감안한다면 재배과정을 확인할 수 없는 것에 따르는 부담은 저으기 안정될 것이고, 유기농산물도 값싼 외국산을 통하여 보다 쉽게 취할 수 있을 것이니 우리 삶의 여건은 오히려 나아질 것이라고도 할 법하다. 

농민들이 우리에게 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값이 싸지도 안전하지도 않고, 조금이라도 돈이 덜 된다 싶으면 가차 없이 농사짓기를 그만두는 통에 매번 값은 값대로 올려놓고 중국으로 칠레로 사러 다니는 소동이 벌어지게 한 것밖에 더 있는가. 5천 년 농사의 속살을 다 깎아먹고 그동안 받아먹은 것만도 얼마인데 도심 개천의 탁한 거품처럼 미운 눈치나 보이면서 무슨 권세라고 수입개방은 안 된다며 우리 먹고 살 길을 막아서는 것인가. 뙈기밭 한 조각 없이 푸성귀 하나까지 모조리 돈을 주고 사먹어야 하는 도시의 바닥 인생들의 볼멘소리마저 보태지는 것을 보면, 이 땅의 농민들은 정녕 이제 떠날 때가 되었는가 보다. 

우리의 동경은 이처럼 합리적인 것이고, 그러나 을사오적의 변명도 이처럼 완벽하진 못했다. 



농사도 짓지 말고 도시로도 나오지 말라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트랙터로 길을 막고 몽둥이를 휘두른다 하여 한정 없이 버티지 않을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그들은 농사철이 되면 세상에 아예 없었던 자인 양 순식간에 논밭으로 다 흩어져 버린다. 농민들에게 땅이 있다 하나 그것도 돈으로 바꿔지는 무엇이 나오지 않고서야 푼돈에 허덕이기는 빈털터리 우리네와 다를 것이 없고, 게다가 그들에겐 전답을 놀리면 죄로 간다는 어쭙잖은 아집까지 있지 않는가. 이 때문에도 그들의 목청은 늘 하다 만 이야기가 되었었고 그렇게 흘러온 것이 그들의 나이만큼 오래이니, 언제나 그 말이 그 말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한때 절반 이상을 웃돌던 농업인구 비율은 7%대로 떨어졌으며, 그나마 절반 이상이 60대를 넘어섰고 30대 미만은 통계에 잡히지도 않는다. 통계는 지난 10년 동안에만 매년 21만 명 내외가 농촌에서 사라졌음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나라 연간 사망자수의 80%에 상당하는 것으로 향후 10년 내로 현재 인구의 40%가 소멸될 것으로 예측한다. 이것은 농촌이 이미 자연도태의 마지막 지점에 와있음을 적시하고 있다.

50대가 50대 이하를 통튼 수보다 많고 60세 이상의 계층이 그 50대의 2배를 웃돌고 있으니, 현실적으로 직업이동이 불가능한 50대 이상이 4/5인 상태에서 이들이 장차 내게 될 부고장은 액면 그대로 우리 농업의 부고장이 될 터이다.

이런 마당에, 이른바 10개년 농정 로드맵이라는 '농업농촌 종합대책'은 단호히 개를 친다.  그것은 정책의 인적 기반을 기존농 중심에서 신규 창업농 중심으로 바꾸고, 기존농에 대해서는 사회보험료 등의 지원액을 늘리며 농토를 버리고 '영농 은퇴를 희망'할 경우 경영이양 직불금이라는 것을 '대폭' 인상 지급해줌으로써 '농사를 짓지 않고도 농촌에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사 짓는다고 성을 가시는 일도 사라지고 벌이를 찾아 도시로 몰려나올 일도 없게 될 것이니, 이것이야말로 농촌이라는 우환도 해결하고 그 후폭풍으로 생길 수 있는 도시문제까지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야심작이다.


모집 공고

 

분야 : 농업.

대상 : 35세 미만. 경력자, 대졸자 우대.

인원 : 매년 4,500명씩 향후 10년간 총 4만 5천 명.

선발된 자에게는 최대 2억 원의 영농정착자금을 지원하며, 경영능력과 사업성을 평가하여 우수농가에게는 추후 지원을 계속함.

<추가> :10년 이상 영농에 종사한 노령자가 전업농에게 농지를 이양코자 하는 경우 최장 8년간 ha당 월 24만 천 원의 경영이양직불금을 지급함...


우리는 이제 너희를 상대하지 않겠다. 다만, 농사를 짓지 않고, 따라서 농사로 시비를 걸지 않을 자들에겐 일정 기간 모종의 혜택을 줄 수 있다. '대책'의 감춰진 서릿발은 농촌사회의 가난한 대지를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동토로 만든다. 

이래저래 보조다 융자다 하는 것이 있었던 시절에 농사를 지을 때도 못 살겠다고 해마다 여의도로 무뢰배처럼 몰려들었고, 비싼 병원 가는 것은 고사하고 몇 백 원의 버스비가 아까워 10리 정도는 걸어 다니며, 겨우내 마을회관에서 열 명 스무 명씩 모두어 살면서 없는 기름값의 시름을 잊는 사람들에게 그나마의 농사까지 짓지 말라는 것은 가히 전격의 통첩이며 회심의 발상전환이다. 게다가 있지도 않은 아이들의 양육비까지 지원해주고 도서관도 세워주고 현대식으로 학교도 고쳐준다는 '대책'의 장미빛 가시는 그들의 빈 주머니를 가득 채우면서 '대책'의 명색을 세우는데, 이제야말로 그들에게도 역사상 한 번 없었던 노년의 휴식이 주어질 판이다.

농사도 짓지 말되 도시로도 나오지는 말라! '대책'의 경구는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산야의 푸른 감옥에 그들을 몰아넣고 4만 5천 명의 젊은이들을 끌어모아 소란한 늙은이들이 소굴로 삼고 있던 농촌을 장악함으로써 기나긴 소동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우리의 '대책'은 과연 '수입개방에 대비하는' 가장 진취적인 종합대책이다. 해마다 40세 이하의 그 젊은 층이 2만 명 이상 농촌을 떠나고 있는데, 돈과 공명을 제 일의 신조로 삼는 이 사회에서 강제징집도 아닌 바에 무슨 수로 무능력과 절망의 표징으로 치부되는 농사일에 수 만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일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장사에도 구색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고, 더구나 감옥을 지키는 것이 어디 한 가지 수만이던가. 비장의 회심수가 없다면 그것은 대책이랄 수 없다.



‘친환경'이라는 비밀병기


올해 농촌에서는 '친환경농업'이라는 것이 한창이었다. 관내 논에 잡초가 있다고 목이 달아나곤 했던 군부독재 시절처럼 군수며 면장이며 바지런히 논둑 밭둑을 돌아다니고, '친환경지역'마다 김매는 소동에 하루 해가 휘었었다. 작년 '대책'이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정책 슬로건 아래 10%의 '친환경' 농산물 육성을 목표로 내세운 이후의 일이다. 심지어 전라남도 같은 경우는 그 목표를 '5년 내 30%'까지 잡고 있으니 가히 21세기의 천리마 운동이라 할 만하다.

‘친환경농업'은 '대책'에 있어서 '잘 사는 농민, 살고 싶은 농촌,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심적인 실천강목이다. 이에 있어서, '친환경농업'이 최종의 본질적 단계인 유기농업에 이르기 위해서는 작물이 병해를 이길 수 있는 튼튼한 토양학적 토대와 세밀한 관리를 위한 풍부한 노동공급원이 전제되어야 함이 철칙이요 상식이다. 그러나 누구도 우리의 '대책'을 허술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대책'은 이를 위해 최대 150만 톤의 유기질 비료와 동력 제초기 등 '친환경' 자재에 대한 보조금도 마련해놓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이것은 준비된 땅도, 훈련된 지식과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30년 전 김매고 거름 만들며 농사 짓던 시절 1,300만의 농민으로도 모자라 공무원과 군인들까지 동원해가며 한해 한 해 넘겼던 것을 이제는 오로지 농민 340만 명으로 감당해야 함을 의미한다. 게다가 그들의 절반은 늙고 병든 60대를 넘어서 있다. 천근만근의 늙은 몸을 이끌고 오리 좇고 우렁이 단속하며 김 멘다고 푸른 들에 점점이 박힌 모습을 상상해보라. 오늘의 새 농촌 풍속도는 이 시대의 오점인 양 또 다른 비애마저 보여준다.

더구나 일부에서는 주민들과 한 마디의 협의도 없이 행정관서에서 일방적으로 '친환경 농업단지'라는 것을 지정해놓고서 '보조금도 나오고 수입도 늘 것'이라며 반강제적으로 진행된 곳이 드물지 않았으니, 영문도 모른 채 일말의 확신도 없이 '받아먹어야 하는' 보조금의 덫에 걸려 땀투성이 한낮에는 육신의 허리가 휘고 영농기록장을 써내느라 밤새 인생의 허리가 휘었다. 그럼에도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날로 수족의 힘은 빠져가고 어제 쑤시고 아프던 곳이 오늘은 병원신세를 져야 할 지경이 되어 가는데, 주름진 검은 피부를 제아무리 들여다본다 한들 저 들을 헤쳐 나갈 굵은 근육이 튀어나올 리 없다. 제아무리 농사를 하늘이 내린 천직 삼아 살아왔다 한들, 들이 원수가 되는 것은 이제 단순한 시간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대책'의 올해 일진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일부러 물 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비까지 잦았으니, 풀이 안 날 것이라 한 데서 풀만 수북하여 매고 매고 또 매다가 결국 제초제를 뿌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고, 농약을 해서는 안 된다 하여 몇 배가 더 비싼 '친환경농약'이라는 것에 매달려 전전긍긍하였으나 결국에는 다 무너져가는 전답 앞에서 이전보다 훨씬 독한 농약을 퍼부어야 했던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힘은 몇 배가 더 들었음에도 소출은 소출대로 떨어지고 돈을 벌기는커녕 더 들어간 돈으로 빚만 더 쌓인 통에 '대책'의 야심찬 시도는 그들의 험상궂은 주름살이나 늘리고 말았다. '친환경' 면적을 늘리려는 당국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이탈을 외치는 볼멘소리가 벌써부터 공공연한데, 팔 데까지 마땅치 않다는 것은 '대책'의 발목을 끈질기게 잡아댄다. 하지만 여기서 주춤거린다면 이 또한 정책의 명색이 아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을 하는 이들이 보통 범상한 인물들이겠는가.



포위는 끝났다


‘친환경'은 이미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대세다. 심지어 농약의 포장지에도 '적기에 방제하여 친환경을 이룩하자'는 문구가 등장할 정도이니, 이 명패를 차지 않는다면 바퀴를 빼놓고 자동차를 달리려는 것과도 같을 일이다. 더구나 농사는 '친환경'의 원천 수원지 격이 아닌가.

농민들은 이럴 때 재빨리 하소연할 것이다. 지금의 농촌사회는 2/3 이상이 연간 1,000만 원 미만의 농업소득으로 살아가고 있다. 여기에서 현금으로 지출되는 영농비만 제한다 하더라도 가구당 월 순소득은 40만 원이 채 안된다. 저축은 고사하고, 매년 들어가는 몇 푼 안 되는 영농비조차도 연초에 한 번 기회가 주어지는 농협대출로 근근이 때우고 있으니, 한 줌의 알곡이 열매를 맺지 못하면 내 몸의 피 한 그릇이 사라지는 것이요, 한 장의 배춧잎을 벌레가 먹으면 내 몸의 살덩이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이런 지경에 무슨 수로 땅을 만든다고 농사를 거른다거나 '친환경'을 한다 하여 병해에 전답이 무너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세월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런 변명이야말로 농민들의 돌이킬 수 없는 자충수다. 그들은 이 '친환경'의 시대에 자신의 주림을 덜기 위해 독약을 풀어놓는 미필적 고의에 대하여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것을 계속할 수밖에 없음을 설득하려 한다. 그 정상은 가련하나 '친환경'에 있어 선택의 거래는 없다, 그것은 외적이 쳐들어왔는데 총이 없다고 수수방관하겠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친환경'은 우리의 미래를 담보해줄 도덕이다-이제 우리의 '대책'이 다시 근엄해져야 할 차례다.

우리는 '대책'의 작전지도가 얼마나 정밀하게 그려져 있었는지를 감탄해야 한다. 농민들은 시종 '대책'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다시 몰아넣어지고, 이제는 결코 벗어날 데가 없다. 다만,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의 밑바닥을 파먹으면서 김매고 벌레 잡으러 들로 나가거나, 아니면 남의 목숨을 빼앗아 내 배를 불리려는 파렴치한의 선고 아래 손가락질 받는 말년을 자초하거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따름이다.

무엇을 택하든 그들은 살아남지 못한다. 태반이 50세를 넘겨 농사의 짐을 벗어던질 수 없는 그들이 이 선택의 작두를 피할 길은 없다. 살아남지 못함에 있어 그들의 선택은 죽음의 장소를 고르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일에 지쳐 들에 쓰러져 죽거나, '친환경'이 못 된 부끄러움에 갇혀 어두운 방구석을 나오지 못하고 죽거나, 불행히도 농민들이 맞이 해야 할 죽음에는 은유가 없다.

어쩌면 수입개방에 대한 농민들의 항의는 이웃집 세설 듣느라 제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격일 수 있다. 농업소득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쌀은 수입쌀이 시판되기도 전에 벌써 20% 이상 값이 떨어져 있고, 이것은 금액면에서 그 어떤 천재지변의 피해라도 이에 비견될 수 없는 규모인 데다가, 앞으로 이런 현상이 상시화되는 것이라 할 때, 예견된 참상에 대한 농민들의 절규는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경제 조작의 문제라는 측면을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유동성 제로의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 쌀값은 여러 여건과 소정의 과정을 통해 더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으며, 그 지속기간이 길 수도 있고 손해를 감수하고 팔 수도 있다.

‘대책'의 노림수는 훨씬 철학적이며 따라서 더 비의적이다. 농촌사회는 자체가 생물학적 소멸의 마지막 단계에 처해있고, 이에 대하여 '대책'의 '친환경'은 도덕의 올가미를 던져 놓았다. 너희는 죽는다, 그러나 어떻게 죽을 것인가, 그것은 너희들이 결정할 사항이다. 우리는 어떤 결정이 나오든 그에 따라야 할 마련을 준비해두고 있지 않는가. 그들이 거리에서 개방반대를 외치며 헤매고 있는 사이 악역의 부메랑은 그들 몫으로 날아들었고, 집안에서는 나의 오래된 가장들이 숨 거둘 자리를 펴고 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번민하면서.

이처럼 완벽한 포위가 어느 시대에 있었을 것인가. 전야의 푸른 들은 사상 최대의 감옥이 되고, 지키는 자 하나 없고 무정한 포화가 한 발 없어도, 갇힌 자들은 단 한 명도 거기서 빠져나올 수가 없다.



농부 없는 땅의 신화


이 땅의 어디에도 젊은 대열이 농촌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는 징후는 없다. 그것은 어쩌면 일제 강점기 가족과 재산을 묻어두고 엄동의 만주땅으로 무장항쟁을 떠난 이들보다 더 가혹한 결단이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만주의 항쟁자들에겐 죽음조차도 그 생애를 빛나게 하는 것이었으나,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이 뚜렷한 당시에도 그이들은 전체의 0.5%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농사는 만주도, 항쟁도 아니다.

연간 400만 톤이 소비되는 밀의 자급율은 0.3%다. 그러나 거기에는 우리 밀 심기 운동을 벌인 15년의 성과가 포함되어 있다. 운동은 16만 명이라는 일견 괄목할 만한 수의 동참자들을 찾아내 그들의 주머니를 모았지만, 그 또한 전국민의 0.3%에 그치는 숫자인데다가, 그나마 운동은 이미 벽에 부닥쳐 생산량의 1/4이 재고로 쌓이는 악순환의 족쇄가 채워지고 있다. 동참자들은 민족의 의기와 평화를 상기하며 운동에 가담했을 터이나 그들이 밀농사까지 지으려 했던 것은 아니다. 돈을 앞세우지 않은, 이 사회의 의롭다 할 만한 이런 층에서도 농사꾼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밀 자급율 0.3%는 월 소득 40만 원 미만으로 살아가는 340만의 농촌사회가 있는 조건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러나 항쟁자 같은  간고의 길을 걸어왔던 그들에게 남겨진 것은 늙고 병든 몸과 불명예의 위협뿐이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를 치워내는 데 우리는 안달이 나있다. 그들마저 사라지고 없을 때 우리는 0.3%의 숫자로 어떤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 우리는 상상을 그만 두어야 한다.

결국, 회복능력으로서 이 사회가 보여주었던 자급율 0.3%조차 다시 도달할 수 없는 하나의 신화로 남아 버릴지 모른다. 그리고 그 신화는 잡초가 우거지고 풍우에 무너진 빈 들에 쓰일 것이다. 빈 들의 참상은 역사가 증언한다. 침략과 약탈로 부귀를 구가했던 로마제국이 그들의 식민지를 상실했을 때 그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입과 입에서 나오는 다툼의 소리와 부러진 칼뿐이었다. 땅은 있되 농토는 없었으며, 사람은 있되 농부가 없었다. 그 결과 극단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굶던 끝에 분열되고 멸망한 셈이었다.

농업은 공장 짓듯이 하루아침에 뚝딱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괴멸의 마지막 몸부림을 보이고 있는 농촌사회는 단순한 인적 청산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드물지 않게 보이는 귀농자들은 10년이 지나도 농부티를 못내기 십상이다. 농부는 사는 지방에 따라 각기 고유한 방식으로 기술적으로 단련되어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농사에서의 기술은 교과서로 쓰일 수 없다. 그것은 특히 비농업자 출신에게 있어서 아만에 찬 자아를 벗어나 풀도 나무도 나와 똑같은 생명임을 볼 수 있는 정서적 토대 위에서 시작된다. 어떤 인문학도 이 철학적 명제와 자연과학적 실재가 연결된 교본을 만들지는 못했다.

뿐만 아니라 농사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자연현상 속에서 진행된다. 강물은 그 속에 들어가야 속내가 드러나며, 지나가 버린 물을 볼 수가 없고 아직 오지 않은 물은 알 수가 없다. 농사는 전답의 공간 위에서 이루어지지만 과거에서 미래를 향하는 시간 속에서 성취된다. 오늘 나온 싹은 내일의 열매를 알려주며, 지금 떨어져버린 꽃송이는 어제의 잎색깔에서 그 연유를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때문에 농사는 볼 수 없고 알 수 없는 그 물같은 자연의 역사를 총괄하고 있어야 한다. 작물생리학이나 식물유전학, 농업기상학 등속은 이 과정의 지극히 표피적인 일부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결국 농업에서의 교과서는 오직 부단히 관찰하고 사유하는 농부의 거친 손바닥에 쓰일 수밖에 없다.

농토 또한 만만한 것이 아니다. ‘친환경농업' 때문에 농민들이 허둥대었던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농토로 가꿔진다는 것은 범상하지가 않다. 땅이 물리적, 화학적 속성에 아울러 작물과 공생할 미생물상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농토라 부른다. 농토는 지극히 미세하면서도 매우 방대한 체계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춤을 추듯 매 순간 변한다. 작물 또한 그 숱한 형상만큼이나 다양하게 각기 고유한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토양의 유동성과 작물의 편향성이 만나는 접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유지시키며, 경제적 수준까지 접점의 면적을 넓혀 나가는 것이 농업이다.

그러나 과학은 세포 하나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일부를 흉내 낼 수 있을 뿐이며, 그 효율 또한 자연계에 비교할 수 없이 낮다. 농업 역시 과학이라 한다면 그것은 비가시적인 영역을 다분히 포함하고 있는 광대한 과학이다. 때문에 과학과 농업의 차이는 링거액으로 연명하는 것과 밥상을 놓고 밥을 먹는 것과의 차이에 비견될 수 있다. 링거액을 아무리 많이 맞는다 해도 우리의 주림은 덮어지지 않는다. 그리하여 농토는 아스팔트 포장하듯이 단번에 만들어지지 않으며, 훼손된 농토는 부서진 집을 다시 고쳐 세우듯 단순히 시간이 걸리면 복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륙봉쇄로 절체절명의 기근을 몇 차례 겪었던 영국이 경작 가능한 모든 토지에 대하여 수리시설과 토양 유기물 등 작토로서의 기본요건을 항상 유지하게끔 법으로 강제하고 있는 것은 이에 대한 착실한 반성문이다.

이렇듯, 농부는 농업을 구성하는 요소의 하나일 뿐임에도 그것은 농업의 시작이요 끝이다.  농부가 사라졌을 때 농업의 교과서도 땅도 모두 사라질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농부들을 없애서 얻는 이득의 몇 배 대가를 치르더라도 양식조차 얻지 못하는 비운을 맞이하게 될 지 모른다. 위대한 로마처럼.



땅 위의 농사는 사람농사다


더구나 농업이 비단 먹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것에서 그 책무를 끝내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이 땅의 농민에 대한 우리의 망념과 농부 없는 사회에 대한 어두운 미련을 각성시켜 준다.

어느 문명 문화에서나 그 출발은 농업이었고 그 종말 또한 농업이었다. 사회가 전개되면서 농업의 상대적 가치는 낮아져가지만, 그것은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여 그것의 가치가 없어졌다고 하지 않는 것과도 같이, 농업은 사회의 심부 깊숙이 그것의 음덕을 숨겨갔을 뿐이다. 그로부터 농업은 자연재해든 전쟁으로 인한 것이든 존망의 위기가 닥쳤을 때 사회를 복원해내는 힘을 그 순간 발휘한다. 농업은 사람이 하는 일 가운데 유일하게 인간관계가 아닌 자연현상을 직접 상대한다. 때문에 그것은 모든 방면에 있어 자주 자립의 발판이 된다.

농업은 사람살이에 대하여 제 1의적 의의를 가지는 양식을 만들어내며, 불필요한 이해관계가 부가되지 않는 것으로 하여 사회에 평화를 안겨주고, 노동을 통하여 자기 존재에 대한 신뢰와 희망1을 쌓아낸다. 뿐만 아니라, 자연과의 교섭과정에서 체득되는 자기 밖 세계에 대한 인식은 희생과 헌신의 정서를 낳음으로써 그 사회의 도덕적 원천을 이루게 된다. 이러함이 모였을 때 그것을 우리는 문화라 부르며, 이 문화적 시각을 통하여 비로소 한 세상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이었다. 

나아가 그것은 사회관계와는 달리 어떠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그 틈을 타 보복하는 일이 없으며, 우리의 자존을 훼손하거나 헛되이 아만을 부추기는 일도 없다. 그리하여 우리는 마음 놓고 탐구하고 마음편히 익힐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배움의 터는 달리 없다.

우리는 땅속을 들여다보면서 내 의식 밖의 영역에 무수한 존재가 실재하며 그것들이 얼마나 존엄하게 살아가는가를 알 수 있고, 이를 통하여 가련하거나 험상궂은 내 이웃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살펴보는 세밀한 애정의 힘을 키울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비바람과 하늘의 해와 달의 세계에 들어감으로써 내가 얼마나 미소한가를 자각함과 동시에 나의 삶이 사람과 자연의 낱낱 모두를 의지 처로 삼고 있음에 감읍하게 되고, 그것들의 덕을 기리는 것으로부터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내다보는 인생의 포부를 키워낼 수가 있다. 나아가 농사가 풀과 나무와 돌과 물 등속을 다루는 것으로 하여 하찮은 것까지도 우리의 생애를 빛내줄 수 있는 것이라는 각성을 낳고, 이것은 지극히 검박하고 활기찬 일상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농업은 자기 존재에 대한 세밀한 자각과 외부세계에 대한 따뜻한 인식, 그리고 이 양자를 평화와 희망으로 연결시키는 행동규범까지를 하루에도 수 백 번씩 반복하여 보여주는 것이니, 이보다 세련된 학교는 이 땅에 더는 없다. 이에 더하여 잘만 하면 알곡까지 얻을 수 있는 것이 농사가 아닌가. 그리하여 농업은 양식과 노동으로써 서로 돕는 사회의 오늘을 유지시키고, 그 세계가 뿜어내는 도덕심과 교육적 덕목으로 하여 후대를 기르며 앞날을 예비케 해준다.

우리의 전답 중 논만 해도 연간 강우량 가운데 지표로 흐르는 것의 45%를 처리해주는 이 땅의 방주다. 또한 그것은 5,800만 명이 1년간 숨쉴 수 있는 양의 산소를 만들어내고, 연간 2,600만 톤의 토양 유실을 방지하여 국토의 원형을 유지시켜주는데, 여기에 밭까지를 포함하면 그 능력은 1억 톤이 넘는다. 이것들의 경제적 가치는 몇 십 조 원 단위로 계산된다. 그러나 역으로 그것이 돈으로 계산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돈과 돈의 물리화학적 기술로써 대체가능하다는 암묵의 평가절하 속에 묻혀버리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농업의 위와 같은 사회사적 의의는 다분히 대체불가능하다. 농업은 그에 있어서 다른 모든 것을 실패했다 하더라도 적어도 우리 먹을 알곡은 남긴다. 더구나, 우리의 관념을 농업처럼 명확하게 객관세계로 끌어내주는 것은 없으며, 관념을 현실에 밀착시킴으로써 우리 삶의 가닥을 정리해내는 것에 있어서도 농업만큼 바지런한 것이 없다. 때문에 농사를 버리고 약탈을 사회관계의 기본으로 하였던 족속들은 수 천 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침략의 피비린내를 양식으로 삼으면서 세상의 숱한 이웃들을 괴롭히고 있으며, 농업을 버린 사회가 쟁투의 칼날만을 등불로 삼을 때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거짓과 결탁이 능력으로 치부되는 패륜의 나락에 허덕이게 된다.



들에 쓰인 유서


가난한 자의 불운은 돈으로 씻어질 수도 있으나 가진 자의 불행은 돈에 의해 잊혀질 수 있을 뿐이고, 주린 자의 배는 밥상이 달래줄 것이나 배부른 자의 고통에 대하여 돈의 세상은 답을 해주지 못한다. 세상에서 지친 자가 세상 밖을 향해 볼 때, 우리는 희망을 찾아 강변의 빛나는 만찬에 마음을 의탁해보기도 하고, 잠시 먼 산에서 홀로 지는 푸른 잎을 벗삼기도 한다.

그러나 용맹한 병사인 양 황금빛 볏날을 곧추세운 가을들이 없다면 붉고 노란 산그늘막 단풍이 무슨 수로 그렇게 눈에 찰 것이며, 거리의 가로수가 시절 따라 갖은 형색을 내놓아본들 한 발 밖 산과 들이 잡초의 난장으로 대꾸도 안 한다면 우리의 발걸음은 또한 얼마나 무거울 것인가. 나의 몸은 비록 농부의 허리를 꺾고자 달려드나, 우리의 마음은 갓난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찾아내듯, 하릴없는 산새가 천둥번개가 다가옴을 알아보듯, 언제나 푸른 들을 찾고 있다.

거기에서만은 안식이 있고 평화가 있으며 그리하여 희망을 상기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가꾸는 이 없는 들에 평화와 희망의 아름다움을 익힌 자들은 없다. 들풀이 이웃을 억누르고 갉아먹는 것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왜 그들을 잡초라 고쳐 불렀겠는가. 세상 속은 잡초 같고 세상 밖은 잡초의 세상이다. 우리에겐 쉴 곳이 없고, 쉼을 다스려줄 교과서도 교사도 없다. 그때 가서야 우리는 빈 들 앞에서 몸서리칠 것이다. 죽고 사라진 것은 그들의 몸이나, 그들이 쓰지 못한 한스런 유서는 오늘의 내 마음이 써내려감을.

"평생 힘쓴 값도 못 건지는 '시장경제' 속에서 삶의 여력을 소진당한 채 늙고 병든 자들이 여기 있어, 그로 하여 불명예의 칼을 쓴 채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를 애도하는 자가 있다면 빈 들을 바라보라. 평생을 시키는 대로 하였다가 시키는 대로 죽은 자들이 여기 있으니, 후일 빈 들을 설워하는 자가 있다면 그가 애써 죽음을 내린 자일 것임에 우리가 갈 수 없는 저 빈 들은 이를 슬퍼하리라."

그러나 그들은 아직 살아 있어, 지난 모진 여름에도 수 십 가마씩의 나락을 키워내었었고, 오늘은 눈 내리는 들판으로 쟁기를 매고 보이지 않는 봄을 향해 늙은 발걸음을 무심한 듯 옮기고 있다. ≪노사과연≫




특별기고

들에 쓰인 유서(遺書)



김현인|농민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8호 (2005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