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현시기 비정규직 투쟁의 위치와 의미

기아자동차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아산으로부터 시작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울산에서의 5공장 점거 투쟁의 장기화에도 불구하고 상승곡선을 쉽게 그리지 못했다. 전국 투쟁전선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이었지만, 실제 울산의 투쟁은 5공장 농성대오와 나머지 공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의 투쟁대오로 결집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한 공장의 투쟁, 한 업체의 투쟁의 형태로 드러나면서 그 의미는 축소되거나 혼란을 겪어야 했다.

주체의 조직력, 투쟁방향과 전술을 둘러싼 내부의 입장 차이와 대립,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관계 속에서 노동조합을 건설하고 시작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3년여의 투쟁은 일단락을 짓고 새로운 투쟁 준비에 들어갔다.

원하청 자본의 탄압과 주체들의 대응에 있어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이 보여준 다양한 문제들은 다른 사업장에서도 그 폭의 차이만이 다를 뿐 동일하게 드러났다. 



기아자동차비정규직 투쟁이 남긴 것

비정규직 투쟁의 한 결절점으로서의 현자 비정규직노조의 투쟁 이후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것은 기아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이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6월초 노조를 건설하고 5개월의 투쟁 끝에 단체협약을 체결하였다. 23개 업체를 대상으로 한 집단교섭 요구와 함께 다양한 파업전술, 그리고 자본의 폭력적 탄압 속에서 원청자본이 사내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사용자임을 폭로해내었다. 단체협약의 적용 대상에서 2, 3차 하청노동자들이 배제되었다는 한계를 갖고 있지만, 사내하청노동자 투쟁 결과 ‘기본협약’이 아닌 ‘단체협약’을 체결했다는 의미와 함께 전국적 투쟁의 지형을 바꿔놓는 계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단체협약 체결을 가능하게 한 힘은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있다. 주역들은 바로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상집으로부터 현장위원, 그리고 자본의 폭력 앞에 몸을 사리지 않고 투쟁한 조합원들이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결합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있었다. 잔업, 특근 거부 투쟁을 뛰어넘어 6~8시간의 전면적인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전체 생산공정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보여주었다. 한 두 명의 작업거부라 할 지라도 단결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굳건한 대오는 자본의 이윤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 것이다.

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존재를 인정받고, 자존심을 획득해가는 과정이었다. 모멸과 멸시 속에서 참아야만 했던 힘없고 나약한 노동자가 아니라 당당한 생산의 주체이며, 노동자계급의 일원이라는 것을 전체 운동 속에 알려내었다.

목숨을 건 라인점거 투쟁에서 비록 원청자본과의 직접적인 교섭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에 의해 대리된 교섭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승리의 경험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파괴력 있는 ‘파업’을 사수했던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투쟁 막바지에 자본의 업체계약해지 협박으로 조직력이 대거 이탈되는 것을 막아내지 못하고 흔들렸고 라인점거 투쟁 또한 원청과의 직접 교섭을 요구하는 힘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최대한의 공격이 가장 뛰어난 방어”이지만, 자본이 진행해 온 조직력 파괴 공세를 막아내기 위한 전술배치가 부족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따라서 가장 강력한 파업투쟁을 벌였지만, 그에 비하면 성과가 미약하다는 현장의 평가를 가능하게 하였다.

하지만, 지난 1년의 투쟁을 돌아보는 언론의 보도 어디에도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보이지 않는다. 자본이 가장 두려워하는 생산거부로써 거대한 공장의 기계소리를 멈추게 해버린 기아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성과가1 전국 전선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기 위한 자본의 개입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이후 비정규직 투쟁, 특히 06년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의 양상을 규정할 만큼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비록 원청자본이 사용자성을 인정하는 성과를 끌어내지는 못하였다 하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 인정과 단체협약 쟁취’가 불가능한 요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최소한의 권리를 확보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실의 이해에 멈추지 않고 ‘비정규직 철폐’라는 목표로 나아가는 데 전진의 요소로 작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여기서는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노동자계급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위치,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 투쟁과의 관계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의 투쟁에 대한 평가는 지회투쟁의 성과와 한계, 그리고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 등의 측면에서 여러 가지 글들이 제출되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루지 않는다.)*1)



비정규직투쟁의 위치

96년 노동법 개악 저지 전선에서 민주노조 진영은 총파업투쟁으로 대응했으나 결과적으로 ‘정리해고제’와 ‘파견근로제’를 수용해야만 했다. 그 이후 자본의 공세에 대한 저항에 있어 노동조합운동이 더 이상 노동계급 운동의 전진을 담보하지 못하고 사업장에서의 ‘고용안정’ 확보라는 수세적인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민주노조운동 전반은 개량주의․기회주의적 지도부와 경향들에 주도적인 위치를 잠식당해 왔다.

노동자계급의 투쟁이 뚜렷한 발전의 징후를 보여주지 못하며 관료주의의 급속한 확산과 함께 노동조합주의적 투쟁, 즉 ‘경제투쟁’에 머무르면서 노사협조주의의 날개 밑에서 현장의 분노는 억눌려와야만 했다. 이렇듯 남한 노동자계급운동의 전진의 상징이었던 대공장 운동이 침체 혹은 정체하면서 자본의 노동에 대한 공격―노동의 유연화, 구조조정의 전면화―의 한 형태로 등장한 비정규직의 양산을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된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본에 의해 도입되었지만, 결국 자본가계급을 향한 대규모 공격부대를 형성하는 결과를 낳았다.

2000년경부터 폭발적으로 등장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보여준 양상은 그 이전의 운동에 대해서 ‘대공장 정규직 운동’이라는 대립적인 규정을 짓게 만들었다.

이랜드, 한통계약직 투쟁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은 그 장기전과 전투성으로 인해 노동계급 운동의 전면에 부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비정규직 투쟁의 전투성은 전진의 기미보다는 침체되고 점점 조합주의의 틀에 갇혀왔던 노동조합운동의 활력소이자 혁신의 핵심으로 의미부여 되었다.

그러나 5년여에 걸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대부분이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구속, 해고, 손배 등은 기본이고 장기전 속에서 목숨을 내던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늘어만 갔다. 계속되는 열사정국에서도 승리의 조짐은 쉽게 보이지 않았고, 투쟁주체를 둘러싼 내외부적 조건들을 다시금 확인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의 조직으로 단결하고 투쟁한 사업장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남기기도 하였으나, 한통계약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하나의 자본에 맞선 투쟁에서 ‘정규직 운동’과의 관계, 즉 정규직 노동조합, 활동가들과의 결합의 정도에 따라 투쟁의 승패가 달라질 수 있다는 뼈아픈 경험을 남겨주었다.

기존 ‘노동조합으로의 직가입’이라는 계급적 원칙은 ‘현실적 정서․조건’ 속에서 무너지고 힘겨운 독자전선을 세우면서부터는 ‘이중의 적’이라는 명확한 표현 속에서 보여지듯이 자본과의 생사를 건 싸움과 함께 운동 내부의 또 다른 전선에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특히 대공장(대사업장)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조직화 초기부터 정규직과 일정한 갈등이나 공유과정들을 반드시 겪게 된다. 그 결과 비정규직 주체의 단결의 힘에 의지한 전진만이 아닌 외부적―물론 운동 외부적 조건은 아니지만―조건에 의해 주체들의 투쟁의지와 방향이 왜곡되지 않고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비정규직 투쟁이 부딪히는 한계는 현재 남한 노동자계급운동의 상태를 반영한다. 기존 ‘조직 노동자’운동이 계급투쟁의 대열에 다시금 자신을 밀고가지 않는다면, 비정규직 운동의 활력만으로는 전체 운동의 전진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재의 조건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정규직 운동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상호 간에 영향력을 미치며 더욱 계급적인 내용과 실천을 조직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



비정규직 ‘투쟁’의 ‘운동’으로의 정립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인간선언으로 투쟁에 돌입하던 시기의 요구 또한 생존권 확보와 노동조건 개선이 주된 것이었다. 주어진 조건에서는 노동력 재생산마저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삶의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건설하였다. 곧바로 자본이 해고와 탄압으로 대응하면서 투쟁의 목표와 요구가 노동조건 개선, 원직복직을 넘어 정규직화로 상승되었다. 그 과정에서 ‘정규직화’ 투쟁은 개별 자본의 능력이나 시혜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가 계급, 국가가 투쟁의 대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초기 경제적 요구로부터 시작한 투쟁은 급속하게 전진하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계급 내의 다양한 층들의 의식이 어떻게 전진하고, 계급투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결합의 수준은 상급단체, 정규직 노조와 활동가들이 그 동안의 주장과 선언을 넘어 실천으로 스스로의 투쟁성을 입증해야 했다. 결과는 조합주의의 틀 안에 안주하려는 경향들과 노동자계급의 선진부대가 누구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냈다. 현재 운동이 가지고 있는 약점과 과제들을 다시금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투쟁 또한 약점과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사내하청노동자들이 투쟁의 결과 정규직과 직고용 계약직이라는 성과를 남기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투쟁이 승리를 점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금호타이어비정규직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규직 노동조합, 활동가들과의 연대투쟁으로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성과를 낸 것이다.

그러나 이 투쟁들은 ‘성과’ 이후 더 많은 한계들을 드러냈다. 정규직으로 전환한 비정규직들이 노동자로써 어떻게 살며, 투쟁할 것인가를 보여주기 보다는 ‘정규직’으로의 신분상승에 자신들의 요구와 투쟁을 멈춰버리고 아주 일부만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이것마저도 일부 예외적인 사업장에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정규직화 이후 어떻게 비정규직 투쟁을 전체 노동자투쟁으로 확산시키고 남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새롭게 세워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과 계획을 갖지 못하고 정리되어 버렸다. 비정규직 투쟁의 요구가 정규직화 쟁취를 전면에 내거는 순간, 아니 정규직화를 쟁취하는 순간 비정규직노조는 종이노조로 전락할 여지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러한 노조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간다.

이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화’ 쟁취에 멈춘 결과이다. ‘모든’ 비정규직 철폐는 자본이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며, 그 투쟁을 승리로 이끈다는 것은 자본의 숨통을 끊을 수 있는 계급적인 요구였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하나의 사업장에서 ‘정규직화’ 쟁취로 협소화될 때 가질 수 있는 한계인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과 투쟁의 힘을 온존히 유지하면서 전진하기 위해서는 독자적인 운동으로 스스로를 조직해야만 하는 상황에 부딪히게 되었다. 노동자계급을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가르고 분리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비정규직 철폐가 단지 구호가 아니라 현실의 노동자계급운동이 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 운동’으로 자기선언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라는 요구로 노동자계급을 단일한 투쟁전선으로 묶어내고 자본가계급과의 투쟁 속에서 노동해방을 쟁취하고자 했던 바람은 ‘조직노동자’들의 의식수준과 운동의 상태를 반영하면서 목표와 다르게 방향을 전환하게 된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조합을 건설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 투쟁의 결과 노동조합을 인정받는 것이 왜곡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노조의 인정’이라는 수준의 합의 또한 정규직 노조와 같은 활동의 인정이 아니다. 현재의 조건들은 노동조합을 인정받는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인 노동조합으로서의 안정적인 구조를 획득하는 것은 어렵다. 정규직 노조와 같이 유니온샵이 아닌 조건에서 노조 인정 이후 자본의 공세, 조합원 탈퇴공작과 현장통제, 정리해고 등이 지속되어 비정규직 내부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인정, 안정화라는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은 대중과 활동가들이 비정규직 투쟁에 부과되는 의미보다는 일상적인 권리의 확보, 확대에 더 쉽게 눈 돌리게 만든다. 투쟁의 피로감으로 파업이 아닌 ‘노사협의회’ 등을 통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정규직 노조와 같은 ‘교섭틀’의 안정화를 꾀하는 순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자본은 바로 그 틈을 노리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업체별 차이와 사안으로 분리시키기 위한 계략으로 다시금 공세를 펼친다. 비정규직 운동에 ‘조합주의’가 파고들 여지는 이로부터 발생한다.

자본의 선전선동에 흔들리지 않고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굳건히 단결하여 투쟁을 확대해 가는 것, 그것은 주체의 조직력이 어느 정도 튼튼하고 두텁게 형성되어 있는가에 달려있다.



다시 조직화의 기초

비정규직 투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의 조직화이다. 초기에는 투쟁의 방향을 제시하고 단일한 대오를 구축할 수 있는 지도력을 확보한 소수가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후에는 현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새로운 투쟁부위가 등장하게 되며 이들이 투쟁지도부로, 노동조합의 간부로 선출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 또한 가장 적극적이고 치열하게 투쟁한 노동자가 상집간부와 현장위원으로 올라오면서 조합원을 조직하는 역할을 해왔다. 교육과 토론을 통해 이후 투쟁이 나아갈 방향을 공유하고 파업기간 동안에는 ‘쟁대위’에의 참여폭을 확장해 논의와 결정을 해왔다.

투쟁은 앞선 활동가들을 밀어 올린다. 대중 속에 있으면서 대중과 함께 전진하는데 있어 한 걸음 앞서게 되는 이러한 활동가들의 양성이야말로 비정규직 투쟁이 전진하고 승리할 수 있는 보증이다. 자본과의 대립, 용역깡패와 구사대와의 충돌 속에서 자본의 힘과 적대성을 체득하고, 파업으로 라인을 중단시키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파괴력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인다. “투쟁하는 것이 이렇게 즐겁고, 이제야 사는 의미를 느낄 수 있다”라는 50대 조합원의 말이 이를 표현해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점 또한 드러내었다.

비정규직 내의 투쟁 주체들의 불균등한 의식 수준이 민주적 의사결정과 참여과정에서 오히려 역작용을 드러낼 수도 있다. 활동가들, 조합원 대중의 의식을 향상시키기 위한 활동이 ‘노동자의 학교’ 파업 기간에 진행되었다면 자본의 공세가 조합원들을 파고 들 때 최소한의 방어막과 복구의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에 대한 반발 만큼이나 의존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조합원들의 투쟁력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을 때는 정규직에 대한 의존보다는 독자적으로 전진하려는 태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자본의 이데올로기 선전과 고용을 둘러싼 협박 등으로 조합원들이 흔들리기 시작할 때는 현장위원․상집간부들 또한 흔들리면서 정규직에 대한 의존, 혹은 정규직의 기조에 맞추어 나아갈 것을 요구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자신들의 투쟁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조의 힘과 활동가들의 적극적인 연대가 절실하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인 것이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입바른 구호로써가 아니라 투쟁을 엄호 지지하기 위한 활동가들의 무조건적인 연대를 바라면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수준에 미치지 못할 때는 정규직 운동의 한계로 이해해버리는 양면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여러 번의 투쟁 속에서 어떻게 투쟁의 약점을 보강하고 힘을 더 축적할 것인가를 경험하지 못한 조건 속에서 한번의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최대한 집중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조건에 놓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기아지회의 경우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나서도 상집, 현장위원들 간에는 투쟁 승리에 대한 만족감보다는 지켜내지 못한 요구들로 인해 이견이 발생했다. 패배한 투쟁일지라도 대오 내부가 투쟁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확인하고 다음의 투쟁을 결의한다면 조직력을 회복하는 것은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내부의 문제제기들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하고 마무리된 투쟁은 ‘요구의 쟁취’와 무관하게 조직력의 훼손이라는 현실적인 패배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 번의 격렬하고 장기간의 투쟁으로 최소한의 요구를 쟁취하고 난 뒤의 대오는 빠르게 정리된다.

투쟁의 시기와 일상의 시기를 분명하게 정리하는 법을 노동자들 스스로 깨닫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 파업기간 동안의 임금 손실분을 만회하기 위해 잔업, 특근을 해야 하고 주말이면 이러저러한 업무들이나 휴식을 위해 자신의 생활리듬으로 돌아간다. 여기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가진 약점이 또 하나 드러난다. 단협 체결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담보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직적인 투쟁력을 유지하면서도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갖는 의미가 명확하게 공유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여기에는 앞서 지도력을 발휘하고 있던 부위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파업 사수를 위해 모든 힘을 쏟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조합원들의 흔들림을 최대한 막아내는 활동을 해야 하는 활동가들을 강화하기 위한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



정규직 운동과의 조우―노동자계급투쟁으로써의 의미

기아자동차 비정규직 지회의 투쟁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조와 다른 조건들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정규직과의 관계일 것이다.

정규직 노조의 투쟁방기, 소수의 활동가들만의 결합이라는 조건하에 독자적인 파업투쟁을 전개하는 것도 힘들었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와 달리 기아자동차에서는 정규직 활동가들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구축되어 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을 통해 조직해내고, 그 결과 단결의 구심을 형성한 기아자동차 비정규직은 3년여의 투쟁기간 동안 정규직 활동가들과의 공조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의 의미를 기아자동차 전체로 확산시켜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투쟁 시기 제 현장조직들은 ‘현장공투’를 구성하여 비정규직 투쟁을 엄호하고 현장통제를 분쇄하는 것을 결의하였다. 현장공투라는 연대투쟁기구는 자본의 현장장악에 맞서 제 조직 간의 이해차이를 떠나 공동투쟁을 해가는 하나의 실험기구이다. 원청노조가 ‘3원칙’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자신들의 통제 하에 두고자 할 때 현장공투의 역할은 중요한 것이었다. 파업시에 대체인력 투입―용역 투입은 막겠지만 관리자․일반직이 대체 투입될 경우에는 대응할 수 없다는 것과 실제 용역깡패의 투입 이후 본관 앞 집회를 ‘절차적’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등―과 원청자본과의 ‘중재자’로써 비정규직지회와 ‘교섭’을 자처한 원청노조의 태도에 대해 분명한 비판과 폭로가 이루어져야 했다.

그러나 현장공투에 참여한 조직들의 의식과 결합의 정도에는 편차가 있었고 투쟁요구와 방향 또한 개량주의적, 노자협조주의적 입장들에 의해 희석되기도 하였다. ‘공동투쟁’을 깨지 않기 위해 인정되는 지점에서의 비판으로 머무르고 만 것이다.

‘공동결정, 공동투쟁, 공동책임’이라는 원칙이 노조 간에 그리고 현장투쟁 속에서 제대로 서기에는 아직 부족한 지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단지 현장에서의 공동투쟁의 가능성만을 확인한 것이다.

현장공투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던 일부 활동가들의 경우 비정규직 투쟁의 모든 곳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1월부터 시작된 비정규직 투쟁에의 적극적 결합으로 파업기간 동안에는 주야간을 버티며 같이 투쟁을 사수하고 자본의 폭력적 탄압이 갖는 본질을 알려내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로서 계급적 부위가 몸으로 보여주는 투쟁이 무엇이며 어디로 더 나아가야 하는 지 알 수 있게 하였다.

비정규직 투쟁에서는 이러한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연대가 조합원들에게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든든한 현실적 방패막이 되어주었으며, 조직력이 하락하는 것을 방어하는 역할도 하였다. 하지만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이 과대하게 설정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에 대한 의존이 많아지고, 스스로의 투쟁으로 만들어내는 데 소극적일 수 있다는 것을 현자에서의 ‘부흥회’를 통한 조직화 결과가 보여준다.

또한 비정규직 투쟁에의 결합의 과정에서 제기된 주요한 문제제기가 주요투쟁 방향과 전술을 논의할 때의 활동가들과의 소통의 문제였다. 변하는 상황에 따라, 특히나 정규직 노조의 태도변화에 따라 전술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활동가 단위와의 논의와 소통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소통의 부족은 정규직 활동가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전개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으로 수동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형성하기도 한다. 지회와의 초기 논의 속에서 투쟁방향을 설정하였고 그에 따라 정규직 활동가들이 자신의 활동으로서 현장을 조직하는 임무, 정규직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현장을 강화시켜 내는 과정으로 나아갈 수 있기 위해서는 지회와의 전술공유가 긴밀하게 논의되었어야 한다.

투쟁 과정에서, 그리고 투쟁 마무리 이후에도 정규직 활동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지점이 바로 소통의 문제였다. 이에 대해서는 정규직 활동가들과 비정규직 지회 상호 간에 적극적으로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비록 정규직 노조의 견제 속에서 ‘독자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하지만 정규직 활동가들을 ‘대상화’시키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결정사항을 최대한 따르면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투쟁방향과 전술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정규직 활동가들과의 솔직한 논의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계획들 또한 도출해내야 한다. 물론 이 역할은 정규직 활동가들에게 전적으로 중요한 것이지만, 비정규직 투쟁만이 ‘모든 투쟁’으로 제기되거나 활동가들의 ‘한계’로만 지적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서로가 가진 장점과 약점―투쟁의 경험들과 현재 투쟁의 격렬함으로 표현되는―을 솔직히 드러내놓고 장점으로 발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투쟁의 급박함이 서로를 조직하기 위한 노력의 방치에 대한 변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속에서 정규직 노동자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하나의 이해만을 갖게 될 것이다.

교섭과 투쟁에 대한 이해 속에서 정규직 노조, 활동가들은 절차에 매이는 경우를 보여주었다. 투쟁의 교훈을 정리하고 결과로 남기기 위한 규약, 규칙들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정규직 노동자와, 이제야 노조를 만드는 조건 속에서 무엇이든지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사이에는 현실을 규정하고 판단하는 갖가지 제약조건들, 틀들이 달랐던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행동이 정규직 노동자에게는 달리 읽히는 것, 즉 정규직 운동이 그동안 판단해왔던 기준, 관점으로는 아직 부족하기만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해 강한 비판보다는 이제 최소한의 권리를 획득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에 반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절차를 중시하는 태도―총회와 투쟁일정 결정 등에서 보여준―들이 관료적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한편에서는 급속하게 ‘절차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게 하는 여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의 한편에서는 정규직 노조 운동이 87년 이후 그리고 97년을 거치면서 체계안정화와 고용보장을 중심으로 한 수세적 투쟁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부분이 ‘조합주의적’ 틀 안에 갇혀어 있음을 반영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비정규직이 더 이상 자신들의 ‘고용안정판’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의 공세가 단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을 향해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전면적인 파업투쟁으로 노동자의 힘을 보여준 것은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그와 같은 투쟁이 아니고서는 자본의 구조조정, 현장통제 등 착취와 탄압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여기에 정규직 활동가들의 역할이 다시 한번 제기된다.

‘현장공투’와 같은 활동의 경험 속에서 제 현장조직들이 자신들의 역할을 확실하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반 투쟁사안에 있어 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그 결과로써 투쟁을 확대하는 것을 통해서 정규직 노조는 직접적인 현장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연대’의 의미만이 아닌, 기아자본에 맞선 기아 노동자들의 단결된 투쟁이 확대될 때 그 힘은 정규직노조의 태도를 견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야 개량주의적 노조지도부들은 ‘정규직 조합원의 이해’라는 무책임한 태도로 비정규직 투쟁을 방기하고 ‘조합주의’의 틀 안에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침체와 한계를 뛰어넘어 더 나아갈 것인가를 결정해야만 할 것이다.

후자의 방향으로 선진활동가들의 활동이 힘을 발휘할 때 ‘정규직 운동’이 침체를 넘어 전진하는 계기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또한 전체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 노동자들의 힘을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비록 현재는 정규직 노동조합운동과 비정규직 운동이 평행선을 그으며 혹은 엇갈리며 가고 있지만, 투쟁으로부터 얻은 교훈, 잘못된 과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선진적 활동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노동자운동은 다시금 하나의 투쟁전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노사과연≫



현장


현시기 비정규직 투쟁의 위치와 의미

―기아자동차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이은영|노사과연/노정협 회원




*) 기아자동차비정규직 투쟁 평가와 관련해서는 아래 글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백철현,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1) 기아차 화성공장 투쟁에서 - 비정규직 투쟁을 중심으로 펼쳐진 기아투쟁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현장에서 미래를] 114호, 한노정연.

   김인식, 「쟁점: 정규직과 비정규직(1) 기아차 화성공장 투쟁에서 - 비정규직-구분해서는 안된다.」, [현장에서 미래를] 114호, 한노정연.

   「기아차비정규직 투쟁은 무엇을 성취하고, 무엇을 잃었는가?」, 노동자정치신문 창간11호, 노정협.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9호 (2006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