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후퇴

양 항공조종사 노조의 파업, 긴급조정권, 그리고 민주노총의 후퇴

1. 누가 노무현 정권을 개혁적이라 하는가?

작년 11월 15일, 농민들은 쌀개방을 반대하며 시위를 열렸고, 경찰은 폭력적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그리고 이 집회에서 두 농민이 사망했다. 12월 11일, 정부는 대한항공조종사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3일 만에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으로 국민 경제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며 긴급조정권을 발동했다. 69년‧93년 단 두 차례만 발동하였던 악법을 소위 ‘참여정부’에서는 한 해 두 번씩이나 발동한 것이다.

한 시위에서 두 명의 농민을 때려죽이고, 한 해 2차례나 긴급조정을 망발하는 노무현 정권, 이제 누구의 입에서 노무현 정권이 ‘개혁적’이다 말할 수 있겠는가?



2.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과 긴급조정, 그리고 민주노총의 대응

2-1.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파업의 배경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는 2000년 6월 7일 설립, 12월 첫 단협을 체결한 이후, 노조설립 인증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측과 제대로 된 단협을 한번도 가지지 못했다. 2004년 3기 김영근 집행부는 “노동조합=단체협약=노조필증”을 슬로건으로 총력전을 선언한다. 2004년 11월 12일 법원판결에 의해 노조가 합법적으로 인증되고, 2005년 1월 21일부터 단체협상에 들어간다.

하지만 사측은 처음부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6월 2일 30차 교섭이 결렬된다. 6월 22일~28일에 걸쳐 진행된 ‘04년 단협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찬성84%, 반대 15%로 가결되고, 6월 30일 간부파업을 시작으로, 7월 5일 24시간 시한부파업으로 거쳐, 17일 총파업에 돌입하게 된다.    

아시아나항공조종사 노조의 역사를 보면, 이 파업이 얼마나 기다려온 파업이었는지 알게 된다. 노조 결성 이후, 법외 노조라는 것을 구실로 제대로 된 단체협상을 거부당해왔으며, 임금협상 과정에서도 기장과 부기장 간의 갈등 등을 겪으며, 많은 질곡이 있어왔다. 2005년의 ‘04년 단협 투쟁’은 2000년 12월 첫 쟁의행위 찬반 투표(98%투표율, 96.6%찬성) 이후, 실로 4년 반만의 일이었다. 그들의 표현대로 “참을 만큼 참았다. 이제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였다. 그래서 그들은 25일간의 파업 기간동안 흔들림 없이, 더욱 단결했던 것이다.


2-2. 민주노총의 대응(1) : 긴급조정에 맞선 연대파업 방침

파업이 일주일을 넘기면서, 사측은 “긴급조정권 발동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재계와 언론에서도 긴급조정권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25일 당정협의에서 법적조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이러한 분위기에 7월 28일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열어 “외부개입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며, “만에 하나라도 긴급조정권이 발동된다면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의 상급단체인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즉각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이며, “우선 대한항공조종사 노동조합은 즉각 연대 파업에 돌입할 것”이고, “아울러 공공연맹 운수분과를 중심으로 철도, 지하철, 도시철도 공사의 연대파업을 조직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또한 “민주노총 차원에서도 총력을 다해 대응을 조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혀 둔”다고 발표한다.

하지만 8월 3일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긴급조정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힌다. 이에 8월 4일 민주노총은 성명서를 통해, “‘긴급조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민주노총의 총력대응은 올해들어 정부와 노동부가 보여준 반노동자적 작태에 대한 강력한 응징의 집결장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리고 “노사정관계에서 망언과 협박만이 노동부장관의 직무로 착각하고 있는 김대환장관을 즉시 물러나게 하는 것이 진정한 노-정관계의 시작임을 빨리 인식하기 바란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8월 7일 정부는 노동부장관 주재의 긴급대책회의에서 재차 “긴급조정권 발동을 포함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선언하고, “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 회의를 열어 긴급조정권 발동의 의미를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8월 8일 건설교통부도 브리핑을 통해,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등 적극적인 대책 강구를 관계부처에 요청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8일 민주노총은 “긴급조정권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아시아나 노조는 결코 긴급조정에 굴하지 않고 계속 투쟁할 것이고 민주노총은 금호그룹 전체에 대한 강력한 연대투쟁으로 발전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9일 민주노총 운수연대 긴급회의 결과, ▲“대한항공은 긴급조정발동 시 24시 혹은 48시간 이내 전면 총파업 돌입”, ▲“철도노조는 결항으로 인한 추가수송작업 일체 거부”, ▲“화물연대, 민주택시연맹 대규모 차량시위 전개”, ▲“전조직 현수막부착 및 언론광고”, ▲“8월 11일부터 강력한 대중집회 개최”, ▲“통일 투쟁[8월 14일 ‘6‧15 공동선언 남측준비위 노동본부 출범식’ 등] 시 강력한 규탄집회 전환”이 결의되었다.

그러나 10일 오후 6시, ‘12년 만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었다. 그 시각 민주노총에서는 비상중집(긴급투쟁본부대표자회의)이 열리고 있었는데, 본래 회의에 제출된 안은 9일 발표된 안에서 공공연맹 차원의 연대파업까지 추가한 안이었으나,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의 복귀가 선언되면서, ‘11일 연대파업안’은 철회되고, 회의는 “대정부투쟁 기조는 유지하면서 8월 중에 최대한 조직하여 노동부장관 퇴진과 긴급조정권 발동 규탄 정치파업을 벌이자”는 수준으로 마무리 됐다. 그리고 “14일 대정부규탄집회, 10월 ILO 아태지역 총회 불참” 등의 투쟁 계획을 발표하였다.

11일 오전, 민주노총은 기자회견을 통해 “긴급조정을 초래한 원인에 주목하고자하”며, “아시아나사태의 결말은 재벌기업들의 전근대적 경영방식과 정부의 신자유주의의 합작품”이라고 선언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긴급조정이라는 악법반대투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초래한 사회정치적 지배구조에 대한 전면적 대응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 “총력을 다해 잘못된 사회구조를 뜯어고치고 건강한 노동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구체적인 일정으로는 ▲“삼성그룹을 필두로 유착된 경제관료들에 집단소송을 전개함과 동시에 X파일의 내용공개를 위한 특별대책위원회를 꾸리고”, ▲“[11일]오후 2시 광화문 집회를 시작으로 8월 14일 통일대행진을 총체적 정부노동정책반대투쟁과 재벌해체투쟁으로 조직하고 8월 중 대대적인 총파업을 조직”, ▲“ILO아시아 총회를 전면 거부” 등을 발표하였다.

11일 2시 광화문 집회에서 이수호 위원장은 “정부의 긴급조정 협박에도 아시아나조종사 노동자들은 정말 잘 싸웠다”며 “이번 투쟁을 교훈 삼아 최후의 승리를 위해 하반기에 새로운 투쟁을 시작하자”, “앞으로 진행될 투쟁에 공공연맹과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양경규 공공연맹 위원장은 “현장에 복귀해 공공연맹을 중심으로 민주노총과 함께 노정권과 전면전에 나서야 한다”고 선언했다. 김영근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 위원장은 “파업을 접고 업무에 복귀할 것이지만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며, “함께 투쟁해 온 민주노총, 공공연맹 동지들에게 머리숙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대회를 마친 뒤,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는 김포공항으로 이동하여 해산식으로 가지고, 12일 업무에 복귀했다.

12일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한번 김대환 장관의 퇴진과 현정권의 노동정책팀 개편을 촉구”하고, “ILO 아태지역 총회에 불참”할 것을 발표했다. 14일에는 당초 예정대로 양노총이 모여 월드컵공원에서 대정부규탄 결의대회를 가졌다. 19일에는 대한항공조종사노조, 아시아나항공일반노조의 협상 타결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항공사노조 투쟁승리를 위한 공공연맹 결의 대회’가 진행되었다. 25일 공공연맹은 여의도에서 1500여명의 조합원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가졌다. 이후 규탄집회, 중노위 앞 1인 시위, 대국민 선전전 등 다양한 투쟁이 진행되었다.


2-3. 민주노총의 대응(2) : 연대파업에서 하반기 투쟁으로

민주노총은 정부의 긴급조정권 발동 위협에 대응해, 시종 연대파업 방침을 밝혔다. 10일 오후 4시부터 진행된 비상중집(긴급투쟁본부대표자회의)에서 ‘정부의 긴급조정권 대응 및 김대환 장관 퇴진 투쟁 건’으로 올라온 민주노총 투쟁계획은 9일 결정됐던 내용에 더해 공공연맹 차원의 연대파업을 추가로 설정했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복귀 방침이 회의에 보고되고, 회의는 투쟁 수위 판단을 놓고 길어졌고, “아시아나조종사노조가 업무복귀결정을 한 상태에서 파업을 조직하기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에 따라, 당장의 연대파업 방침은 철회되고, “대정부 투쟁 기조는 유지하면서 8월 중 최대한 조직하여 노동부 장관 퇴진과 긴급조정권 발동을 규탄하는 정치파업을 벌이자”는 수준으로 마무리 되었다. 이렇게 정부의 긴급조정권에 대응한 민주노총의 연대파업 방침은 10일 중집에서 ‘8월 중’으로 유보되었다.

이에 대해 이수호 위원장은 11일 오전 한국방송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김인영입니다>에 출연해 “민주노총은 복귀 선언을 한 아시아나 조종사 노조의 판단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며 “아시아나 노조가 복귀를 선언한 마당에 당장 연대파업에 들어가는 것은 저희들로서 부담이 있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리고 11일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나사태의 결말은 재벌기업들의 전근대적 경영방식과 정부의 신자유주의의 합작품”이라고 선언하고, “이것을 초래한 사회정치적 지배구조에 대한 전면적 대응 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재벌그룹을 그냥 두고서는 희망이 없”으며, “X파일의 전면적 공개와 부정부패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이 문제는 “단순한 악법철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지배구조의 전반적 부도덕성과 잘못된 패러다임을 바꾸는 투쟁”이라고 주장했다. 즉, 이 날 기자회견을 통해,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한 대응은 당장의 연대파업이 아닌, 하반기 투쟁, 나아가서는 내년 ‘세상을 바꾸는 투쟁’으로 연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 [11일 기자회견에서 10일 비상중집에서 결정된 8월 중 정치파업을 언급하기는 한다. 하지만 실제 8월 중 정치파업은 없었다.] 이는 10일 비상중집 후, 이수봉 교선 실장의 “긴급조정권 발동 등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 근본에 대한 투쟁이 필요하지만 곧바로 파업 등을 벌이기는 힘들다는 인식아래, 하반기 제도개선 투쟁을 전반적으로 준비하자는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라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다.

이후 18일과 19일, 대한항공조종사노조와 아시아나항공일반노조의 협상 또한 잠정합의에 이르게 되었고, 양 노조의 수위를 보고 투쟁방침을 결정하기로 운수연대 역시 연대파업조직이 쉽지 않았다. 그리하여 10일 비상중집에서 ‘8월 중’으로 유보된 파업은, 24일 열린 19차 중집회의에서 완전히 ‘하반기 투쟁’으로 넘어가게 된다.


2-4. 민주노총의 후퇴와 복귀 이후의 부당노동행위

2005년 파업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에 있어서는 사실상 첫 파업이었다. 또한 ‘귀족노조’니, ‘휴가철 항공 대란’이니 하며 언론의 집중포화 속에 있었다. 따라서 민주노총 차원의 지원이 절실했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긴급조정권에 대항한 어떠한 연대파업도 조직해내지 못했고, 하반기에 두고 보자는 말 뿐이었다. 긴급조정권에 대항한 투쟁은 규탄집회, 1인 시위 등으로 진행되었다. 복귀한 노조는 쌍방 고소‧고발을 취하하고, 조합원 식별용ID줄을 회사ID줄로 교체하는 등의 노‧사 상생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으나, 돌아오는 것은 조합간부에 대한 기장승격 훈련입과 누락, 부기장 강력 및 비행정직, 쟁의대책위원 전원 처벌, ID줄 관련 110명 조합원에 대한 부당한 서약서와 팀장면담 등의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탄압이었다.

9월 9일까지 1달간의 파업금지 기간을 잘 참아온 조합원들은 임협을 통해, “한 번 더 붙어보자”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11월 11일 3%인상에 합의하고, 21일까지 진행된 투표를 통해 2005년의 임‧단협 투쟁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는 2005년 단협 투쟁을 통해, 한층 강화되었으며, 노동자임을 자각하고 있다. 파업 기간 중 보여진 정부의 모습, 언론의 왜곡보도, 사측의 태도를 통해 스스로 자각한 것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내년에 다시 한번 싸워보자”는 분위기에 있다.

그렇지만, 긴급조정권에 맞서지 못한 민주노총의 후퇴는 향후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에는 불과 3일 만에 긴급조정권이 발동된다.



3. 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파업

3-1. 대한항공조종사노조 파업, 어제와 오늘

1999년 8월 30일, 대한항공운항승무원노조는 설립 총회를 갖고, 31일 노조 설립 신고서를 제출하지만, 당시 청원경찰의 신분으로 인해 신고서는 반려된다. 2000년 1기 이성재 집행부는 ‘청원경찰 해지’와 ‘합법성 쟁취’를 위한 총력 투쟁에 나서고, 5월 28일 파업 찬반 투표는 투표율 93.4%, 찬성 98%로 통과된다. 5월 30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자, 노동부는 31일 아침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내주었다.

이후 2000년 10월의 임‧단투는 16시간 파업 끝에 잠정합의되고, 2001년 6월 12일에 시작된 파업도 14일 종결된다. 하지만 2001년 파업을 통해 구속자가 발생하고, 파면 등의 중징계가 발생한다. 2002년 임협은 비공개로 잠정합의에 이르고, 찬반 투표에서 53.9%찬성, 45.6%반대로 통과된다. 2003년, 2004년, 2005년은 파업 찬성에도 불구하고, 파업 전 잠정합의에 이르게 된다. 특히 2005년 단협은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긴급조정권 발동 이후, 파업 돌입이 예고되었으나, 8월 18일 잠정합의에 이르고, 9월 8일 투표에서 68.2%투표율에, 63.9%찬성, 35.3%반대로 통과된다. 이 투표의 투표율은 이전 노조의 투표율 중 가장 낮은 투표율이며, 반대 역시 2번째로 많은 것이었다. 이에 3기 신만수 위원장은 “조합원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성명서를 발표한다.

2005년 10월 17일 임협이 시작되고, 그 중간에 4기 위원장 선거에서 신만수 위원장이 재선된다. 3기 위원장 당선 때의 66%지지보다 낮은 55%의 지지였다. 사측의 교섭해태로 지지부진하던 임협은 12월 6일 79.7%의 찬성으로 파업이 결정된다. 12월 8일 총파업에 돌입하지만, 11일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서 노조는 복귀를 결정하게 된다.


3-2. 긴급조정권 발동과 노조의 복귀

12월 7일, 건설교통부와 산업자원부 장관은 대한항공조종사노조 파업에 대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노조가 아직 파업에 돌입하지도 않았는데, 정부는 ‘긴급조정’ 운운이다. 이 같은 정부의 태도는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의 긴급조정권 발동에 대한 민주노총의 후퇴가 어떠한 결과를 낳았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작년 12월은 ‘비정규권리입법 쟁취를 위한 총파업’ 투쟁이 진행 중일 때였다. 그러한 중에 또 다시 긴급조정권이 발동되었을 때, 민주노총의 대응은 어떠하였는가? 당시 민주노총은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로 인해 4기 이수호 집행부가 퇴진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계로 운영되고 있었다. 상황은 위기였으나, 집행 동력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상태였다. 특히, 대공장의 동력이 그랬다. 총파업 투쟁뿐만 아니라, 13일 진행된 ‘권리보장 입법쟁취, 대한항공조종사노조 긴급조정권 발동 규탄 결의대회’에서도 100여명의 조촐한 집회로 진행되었다. 노조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규탄집회, 1인 시위, 행정소송 등이었고, 양 항공사노조 위원장은 단식에 들어갔다.

하지만 복귀한 노조를 기다리는 것은 18명의 전환‧승격 조종사를 원기종으로 복귀시키고, 서약서를 강요하는 등의 노조탄압과 부당노동행위였다.



4. 민주노총의 후퇴

긴급조정권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아시아나항공조종사노조‧대한항공조종사노조의 힘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작년 8월 긴급조정권에 맞서는 투쟁을 전개하지 못한 민주노총의 후퇴는 12월 또 다시 긴급조정권 발동을 불렀다. 이제 철도, 지하철, 운수, 병원, 통신, 발전, 공무원, 교사 등 어떤 사업장이라도 긴급조정의 압력에 안심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그 동안) 한 발, 한 발 물러선 결과이다.

96-97년 노동법‧안기부법 개악에 반대한 총파업은, 지도부에 의해 수요파업으로 수위가 조절되더니, 총선으로 심판하자며 물러났다. 98년 민주노총 1기 지도부는 노동법상 해고요건 완화에 합의하고, 불신임을 받았다. 그리고 ‘정리해고 반대 총파업’을 지도한 단병호 비대위는 불과 며칠이 지나지 않아 파업을 철회했다. 98년 7월 2기 이갑용 집행부 역시, 총파업을 하루 앞두고 파업을 철회했다. 그리고 노사정위원회로 복귀했다. 2001년 상반기 단병호 위원장은 ‘김대중 퇴진’을 내걸고 파업을 하였으나, 계속되는 파업 연기 방침에다, 대공장(현대차) 등의 참여 부족 등으로, 김대중의 약간의 양보만을 얻어내며, 자진 출두 후 구속되었다. 2002년 발전 파업은 민주노총 지도부에 의해 유린당했다. 4‧2 연대파업은 유보되고, 항복문서에 서명하였다. 2003년 철도 파업은 어떠한가? 83%의 기관사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음에도 노조는 파업을 철회하였다. 열사‧분신 정국에서 노조 지도부의 투쟁은 어떠하였는가? 11월 6일 4시간 파업과 12일 하루 파업!!! 열사‧분신 정국에서 민주노총 지도부가 보여준 전술이었다.

2004년 1월 16일 민주노총 4기 이수호 위원장이 당선된다. 이수호 위원장은 선거 때부터, “교섭을 강화해야 한다”, “2006년 준비된 총파업을 하겠다” 운운하더니, 궤도 투쟁을 허무하게 마무리하고, 공무원 노조의 투쟁을 방기하고, ‘사회적합의주의’의 색채를 여실히 드러내었다. 2005년에는 거듭된 대의원대회의 무산에도 불구하고, 직권으로 노사정 대화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비정규직 투쟁을 방기하고 교섭‧대화에 열중하였다. ‘비정규직 철폐’는 사라지고, 어느 순간 ‘비정규권리입법 쟁취’였다.   

이렇게 한발, 한발 물러선 결과가 오늘 민주노조의 현실을 낳은 것 아닌가?



5. 혁신

지금 현재의 민주노총의 현실을 두고, 너나없이 ‘혁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혁신’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진행 중인 민주노총선거를 보라. 사회적 합의주의 세력은 “단결을 통한 혁신” 운운하며, 아직도 부끄럼 없이 그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노동자계급의 기본은 무엇인가? 계급성과 혁명성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만족해하는 임금노예”로 살기 위한 투쟁을 해왔다.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본관계”에 대한 지양보다는 생활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만족해하는 임금노예”가 되기 위한 투쟁 말이다.*1)

그러기에 ‘사회적 합의주의’니, ‘유럽식 사회협약’이니 하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방향타가 되고, 우리는 ‘무상의료’니, ‘무상교육’이니,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니 하는 말에 현혹되어 왔다.

하지만 지금 유럽 노동자의 투쟁**2)은 그러한 것이 다 허울뿐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생산관계의 근본적인 변혁이 없는 한, 임금노예는 임금노예일 뿐이었다.

이제 올바른 전망을 가질 때이다. 그리고 계급성과 혁명성을 복원할 때이다. 이제 겉만 “세상을 바꾸는 투쟁”이 아니라, 진정 “세상을 바꾸는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우리는 너무 오래 “만족해하는 임금 노예”를 위한 투쟁에 익숙해져왔다. 또 지도부와 대중과의 거리는 너무나 멀다. 그리고 올바른 전망을 제시해줄 이론은 안개 속에 가려있다.


천천히 가자! 하나하나 새로운 역사를 쓰자!

올바른 전망을 획득하고, 대중의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자!

지도부는 철저한 투쟁을 통해, 약속을 지키는 투쟁을 통해 다시 대중의 신뢰를 회복하자! ≪노사과연≫



현장 

후퇴

―양 항공조종사 노조의 파업, 긴급조정권, 그리고 민주노총의 후퇴



김해인|회원






*) “...노동자보호법의 입법과 노동조합의 조직이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개선하는 데 적절할 것이라는, 브렌타노 씨가 항상 되풀이 해댄 주장은 결코 그의 독자적인 발견이 아니다. [영국 노동자계급의 상태] 및 [철학의 빈곤]으로부터 [자본론] 및 나의 최근 저술들에 이르기까지 맑스와 나는 이 점을 몇 백번이고, 그것도 여러 가지 조건을 달면서 말해왔다...보다 중요하지 않은 조적은 제쳐두더라도 입법에 의한 보호도, 숙련공조합의 저항도 제거해야할 주요한 것, 즉 자본가계급과 노동자계급 사이의 대립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자본관계를 제거하지 않는다. 임금노동자 대중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임금노동의 고통에 처해 있고, 근대의 대규모 산업이 모든 생산부문을 점차 장악해감에 따라 임금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심연은 한층 더 넓어진다. 그러나 브렌타노 씨는 임금노예를 가능하다면 만족해하는 임금 노예로 두고 싶어 했기 때문에 노동자보호, 숙련공조합의 저항, 하찮은 사회입법과 그 밖의 것 등등을 과장하여 근사한 것으로 꾸미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그의 이러한 과장을 간단한 사실로도 반박할 수 있기 때문에 역정을 낸다...(밑줄은 인용자)”(F. 엥겔스, 「브렌타노 대 맑스의 논쟁에 관하여」, MEW, Bd. 22, SS. 95-96.)(K. 맑스, F. 엥겔스, [맑스‧엥겔스의 노동조합이론], 새길, 1988, p. 159.에서 재인용)  


**) 2002년 3월 2일 이탈리아에서는 ‘해고 유연화 법안’에 반대하며, 50만 명의 시위가 있었고, 4월 16일 1천 1백만이 총파업에 참가하였다. 스페인에서는 EU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며, 1천만 명 이상이 파업에 참가하였다. 2003년 프랑스에서는 사회복지 제도를 개악하려는 정부에 맞서 2백만 명이 파업에 참가하였다.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0호 (2006년 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