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3)

5. 정부의 역할 -

제국주의의 의미를 둘러싼 다른 논쟁 분야는, 제국주의의 주도자로서든, 제국주의를 폐지할 잠재적 주체로서든, 정부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두 극단은, (1) 정부를 단지 대기업과 대은행 등의 직접적인 종복으로 간주하는 사람들과, (2) 정부를 이해의 갈등을 조정하고 정책결정에서 광범한 선택의 자유를 가진 독립적인 권력으로 보는 사람들이다.

이 두 개의 관점 중 어느 것도, 내가 보기에는, 올바르지 않다. 복합적인 사회에서의 정부의 활동은, 정치권력을 유지해야 하는 부담과 그에 적합하게 행동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에, 사회를 특수하게 분열시키는 성격을 갖는 정치구조를 발전시킨다. 그 때문에, 정부는 특정한 기업이나 산업의 요구에 어느 정도 민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술상의 차이를 차치하면, 지배집단의 행동은, 어떻게 하는 것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좋은가 하는 판단에 의해서뿐 아니라, 과거의 정치적 경험과 훈련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아무리 어떤 특정 산업이나 기업의 요구에 민감한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유능하고 성실한 정권이라면, 정권유지의 기반이 되는 계급이나 계급들의 전반적이고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그러한 압력에 저항할 것이다.

한편, 지배집단이 누리는 자유의 정도는 자유주의자들이 일반적으로 믿는 것보다 훨씬 더 제한되어 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권이나 경제가 성공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그리하여 당장 경제적․재정적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일하지 않으면 안 되며, 다른 정책을 "취한다면 어떻게 될까" 따위의 한가한 공상을 좇을 수는 없다. 보다 선견지명이 있고 공세적인 정권들―경제를 활성화시키는 주요 수단들을 아는 정권들―일수록 그 경제체제를 더욱 성장시킬 것이다. 그들은 도로와 항만, 운하, 철도, 상선단(商船團)을 건설하고, 상업을 장려하기 위해 식민지를 획득할 것이며, 항로를 통제하여 자신들의 상업을 보호하기 위해 투쟁할 것이고, (18세기 및 19세기에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공세적으로 자신들의 영토를 확장할 것이다. 정권이 무능하면, 특히 지배집단 간에 권력투쟁과 내적 갈등이 많은 경우에는, 그 경제가 비틀거릴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것처럼, 때때로 정부는, 국내의 불황이나 경쟁국가들의 압력에 의해 자극받고 그것들을 상기하면서 어렵사리, 그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지탱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를 터득하기도 한다.

정권이 채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 제국주의의 역사를 통해서 갈수록 명백해졌다. 여기에서 우리는 새로운 제국주의를 탄생시킨, 혹은 그것을 준비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두 가지의 발전을 잊지 않아야 한다. (1) 열강 내부의 기득권 집단 간의 갈등은 대공업과 이들 공업의 자본가들에게 유리하게 해결된다. 세 가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a) 남북전쟁 후 미국에서의 북부 자본가들과 남부 보수주의자들 간의 타협, (b) 독일에서의 대지주와 대자본가의 타협, 그리고 (c) 일본에서 메이지유신이 대규모 중공업 발흥을 위한 조건을 강조한 것이 그것이다. (2) 대공업의 성공적인 발전은 권력을 더욱 더 집중시켜간다.

각 사회구조가 일단 주요 산업의 요구에 성공적으로 적응되자, 이후의 경제발전 경로는 매우 협소하게 규정되었다. 더욱 거대해진 정부는, 이전에는 대자본가 편이 아니었던 정부조차도, 동일한 경로, 즉 주도적인 산업자본가들이나 금융자본가들에게 유리한 환경, 이들 이해집단이 활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만큼 가능한 한 널리 세계로 뻗어나가는 환경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 국내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이러한 환경을 가장 잘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결정은 정치적․군사적 지도자들에 의해서 내려졌고, 군부 지도자들의 야심과 이데올로기가 거기에 반영되었다. 아무튼, 정부의 역량―그 정치적․군사적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궁극적으로 시험하는 것은 경제적 성공 여부이다. 어떠한 복지정책도 완전하고 안정적인 고용이나 공장의 가동, 원활한 금융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경제적 성공은 대기업과 대금융의 성공에 달려 있다. 공황으로부터의 탈출구로서의 대외무역 확대에 대한 강조, 전쟁 물자를 생산해야 하는 필요에 직면했을 때의 '충직한 기업'(대기업을 통렬히 비판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사용한 용어)과의 현금거래 등, 프랭크린 루즈벨트 개혁 행정부의 실천이 그 좋은 예다. 자본주의 사회의 자유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정권들의 실천으로부터 배우는 것 역시 교훈적이다. 그들은, 보수 정당들과는 달리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에 특수하게 연루되어 있거나 장기적으로 유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때로는 독점기업의 구조를 개선하는 데에 더욱 효율적이다. 그들은 결코 대기업의 근본적 이해에 반하는 개혁은 떠맡지 않는다.



6.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없이도 근대 제국주의가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주의의 종언이 결코 제국주의의 종언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설명하자면 이렇다. 직접적인 군사적․정치적 지배로서의 식민지주의는 수많은 종속국가의 사회적․경제적 제도들을 식민본국의 필요에 맞게 개조하는 데에 필수적이었다. 이러한 개조가 일단 이루어지고 나자, 모국과 식민지 간의 지배․착취관계를 영구화하고 강화하는 데에는 경제적인 지배―국제적인 가격․거래․금융체계들―그 자체로서 충분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떤 근본적인 변화 없이, 그리고 애초에 식민지를 정복하게끔 했던 이해관계를 심각하게 훼손함이 없이, 식민지에는 형식적인 정치적 독립이 주어질 수 있었다.

식민지주의가 거저 폐지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 대중반란, 혁명의 위협, 사회주의 세계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다른 제국의 식민지 지역에 군대를 주둔시키려는 미국의 책략 ― 이러한 모든 것이 제2차 세계대전 후 식민지주의의 쇠퇴를 가져왔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필연적인 식민지의 소멸이, 모국의 이익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그리고 과거 식민지의 진정한 독립을 지향한 사회혁명을 저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모국-식민지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한 사회경제적 토대가 유지될 수 있는 한, 식민지 지배로부터 얻었던 대부분의 이해관계가 위협을 받지 않으리라는 승산이 여전히 있었던 것이다.

근대 제국주의의 특징인 모든 지배․종속관계에 이러한 관점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적합한 사회적․경제적 제도가 이미 존재하던 일부 독립국들은 직접적으로 열강 중 하나의 경제적 지배를 받게 되었고, 그리하여 식민지 단계를 거치지 않고 종속국이 되었다. 이러한 경제적 종속국가들 중 일부는 자신의 식민지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포르투갈은 오랫동안 영국의 종속국이었고, 포르투갈 제국은 실제로는 제국 속의 제국이었다. 따라서 제국주의의 형태와 그 정치적 종속의 정도가 역사적으로 다양하다고 해서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노골적인 식민지주의가 쇠퇴하는 시대에도 왜 식민지주의 시대에 존재했던 것과 같은 제국주의의 주요 측면들이 존재하게 되는가를 대강 이해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데, 이는 (1) 식민본국의 독점적 대기업 구조, (2) 물질적 자원과 시장을 확대하고 통제해야 할 식민본국의 필요, (3) 지속적으로 식민본국의 필요에 복무하는 국제적 분업, 그리고 (4) 서로 상대방의 시장과 전세계에 걸쳐 수출 및 투자기회를 확보하려는 산업열강들 간의 국가적 대립이 여전히 제국주의의 주요 결정요인이기 때문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 내부에 공포를 불러일으키면서 제국주의체제의 유지를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만든 새로운 요인이 여기에 추가되었는데, 다름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의 성장과, 제국주의적 무역․투자 네트워크로부터 자신들의 국가를 분리하려는 민족해방운동의 확산이 그것이었다.

식민지주의의 쇠퇴는 물론 제국주의 본국들에게, 부분적으로는 익히 알려진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새로운, 다음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제기했다.

1. 정치적 독립과 더불어 수많은 기대가 야기되고 행동의 자유가 확대될 예속국가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경제적, 금융적 종속성을 가장 잘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2. 과거 식민지 지배국가들의 경우, 어떻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경제적 지위를 유지하며, 라이벌 국가들이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3. 미국의 경우, 어떻게 해서 과거 식민지 본국들이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지역으로 그 영향력과 통제력을 확대할 것인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로운 환경에서 경제적 종속성을 유지해가는 문제는 쏘련과의 대립에 의해서, 그리고 일부 신생 독립국가들의 반발에 의해서 더욱 복잡해졌다. (일부 신생 독립국가들의 반발은 부분적으로는 대중적 압력에 의한 것이었고, 부분적으로는 보다 커다란 행동의 자유를 확보하려는 새로운 지배자들에 의한 것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 때문에 제국주의 열강에게 새로운 전술이 요구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의 시대에도 경제적 종속구조는 본질적으로 지속되었다. 중상주의 시대부터 시작되어 장기간의 역사를 통해서 성숙하고 자리 잡은 종속관계를 근절하기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식민지 및 반(半)식민지 경제는 무역이나 금융적으로 여러 발전단계를 거치면서 갈수록 식민본국의 부속물로서의 역할이 강화되어 왔다. 가격 구조도, 소득의 분배나 자원의 배분도, 시장이라는 맹목적인 힘에 의해서뿐 아니라 군사적인 힘의 도움을 받아서, 종속성을 계속 재생산하도록 발전했다.

이 점을 특히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경제학자들은 가격-시장체제를 불편부당한 경제적 조절기구, 최대의 효율성을 발휘하도록 자원을 분배하는 조절기구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언제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효율성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현실적으로는 사정이 다르다. 자원의 배분은 수많은 역사적인 힘들이 작용한 결과이다. 몇 가지만 예로 들더라도, 전쟁, 식민지주의, 국가가 재정이나 기타 정책을 구사해온 방식, 유력한 상인․산업자본가․금융자본가들의 (그때그때의) 조작, 국제적 금융협정 등이 바로 그러한 힘들이다. 그 과정에서 임금이나 가격, 무역관계가 경제적 자원의 기존 배분구조를 재생산하기 위한 효율적인 도구가 된다. 그리고 구(舊) 식민지 세계의 경우, 이는 종속적 경제관계의 재생산을 의미한다.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이들 국가들은 기존의 국제무역 패턴을 정밀분석하고 자신들의 산업 및 금융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한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는, 식민지로서든 아니든, 기존의 경제적․금융적 틀이 여전히 유지되게 된다. 많은 반식민지 국가들이 채택한 강력한 보호주의적 정책을 통해서도 그 종속성을 탈피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러한 정책이 어느 정도까지는 국내 제조업을 발전시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수익성이 좋은 다른 많은 분야에서는 해외의 제조업자본이 관세장벽의 보호를 받으면서 공장을 열었고, 그리하여 현실적으로 외국의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발달한 시장관계만이 종속상태를 떠받치고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종속국의 정치적․사회적 권력구조에 의해서도 지탱되고 있다. 가장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이들 국가의 지배계급은 세 개의 구성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대지주, 외국자본과 긴밀한 관계를 가진 기업집단들, 그리고 외국자본과 거의 혹은 전혀 특수관계를 갖지 않은 기업가들이 그것이다.*1) 민족주의적 정신이, 많든 적든, 이들 세 집단 모두에게 스며들겠지만,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자립경제를 위해 요구되는 경제구조 개편을 후원할 만큼 강한 동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대지주나 외국자본과 특수관계를 가진 기업집단들의 이익은 자립을 위한 단호한 움직임에 의해서 크게 손상될 것이다. 경제자립으로부터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 집단은 민족자본가들, 즉 그 사업이 외국자본과의 특수관계에 달려 있지 않고, 자립의 결과 새로운 기회가 열릴 자본가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 집단은 너무나 작고 약해서 이들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두 집단의 지배력을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고, 그들 두 집단의 권력을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한 투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위한 혼란기 내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될 것이고, 이는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동원해야만 가능할 것인데, 대중이 자신들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하고 있는 시대, 사회주의 혁명이 곧바로 일어날지도 모르는 시대에 이는 위험천만한 모험일 것이다.

그리하여 정치적 독립을 달성한 이후에도 구 식민지의 경제적․정치적 구조는 으레 경제적 종속을 영구화하게 된다. 그리고 구 식민지의 권력구조의 불안정성이라는 하나의 약점을 제외하면, 새로운 상황에서도 제국주의의 요건은 충족될 수 있게 된다. 그 권력구조의 불안정성은 식민지 체제 자체에서 연유한다. 과거에 많은 식민지에서 지배권력은 전통적인 지배집단들을 와해시켰고, 그들의 정치권력을 파괴했다. 나아가, 식민모국들은 심리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외국의 지배자들에게 종속적인 엘리트들을 창출하고, 후원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병합한 국가를 제국 내부에 유지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방식이었다. 그 약점은 그것이, 자신의 명의로 권력을 잡고 그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경제를 개편할 자신감과 힘을 가진 세력의 등장을 방해했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정치권력을 인수받기 위해서 결성된 제 세력 간의 동맹은 잠정적이었고 필연적으로 불안정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독립이라는 변화는, 특히 독립투쟁이 대중적으로 벌어졌던 나라들에서는, 생활조건의 개선에 대한 거대한 기대를 유발했는데, 그것은 신생 독립국가의 정권으로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정도의 기대였다. 식민지의 인민들은 식민지주의를 외국에 의한 폭정과 동일시했을 뿐 아니라 식민지 권력과 결탁하고 협조한 사람들에 의한 착취와도 동일시했다.

그리하여 식민지 독립 이후에 구 식민모국이 그 영향력과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에는 특별한 배려가 요구되었다. 중점적으로 사용된 ―일부는 이미 알려진, 그리고 일부는 새로운― 수법은 몇 가지 범주로 나뉠 수 있다.

1. 가능한 곳에서는, 이전의 경제적 특수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공식적인 경제적․정치적 협정. 이에는 특혜적 무역협정과 통화 블럭의 유지가 포함된다.

2. 식민모국의 특수 영향력을 유지하고 사회혁명을 예방하기 위한 조작과 현지 지배집단 지원. 여기에는, CIA 식의 공작 외에도, 군사원조, 장교단의 훈련, 그리고 현지 군대에 필요한 도로와 공항 등등을 위한 경제원조가 포함된다.

3. 경제발전의 방향에 대한, 그리고 자원의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정부의 결정에 대한 가능한 한 최대한의 영향력과 통제력의 확립. 쌍무적인 경제원조협정이나, 세계은행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정책과 그 집행이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활동은, 경제발전의 방향 설정에 영향력을 미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식민모국의 자본시장에 대한 피원조국의 금융상의 종속성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다.

식미지 없는 제국주의의 시대에 중심적인 것은 미국의 새로운 역할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 따른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와해 및 그와 동시에 성장한 강력한 혁명운동 때문에 미국은 긴급히 제국주의 체제를 재구축해야 했고, 또 자신에게 유리하게 제국주의적 지배를 확장할 기회를 가졌다. 전쟁에 의한, 그리고 전후 초기의 경제적 와해의 결과로 미국이 얻은 최대의 이득은 필시 달러화가 지배적인 국제통화로 된 것과 뉴욕이 주요 국제금융센터가 된 것이었을 것이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들과 제3세계에 수출을 확대하고 자본투자와 국제금융을 증대시킴으로써 미국 기업의 경제적 기반을 확장할 수 있는 금융상의 메커니즘이 그렇게 해서 창출되었던 것이다.

자신의 새로운 경제적 금융적 힘을 사용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1) 군사적․경제적 원조의 주요 공여국이 됨으로써, 그리고 (2) 전세계에 걸쳐 군사기지와 군주둔지를 건설함으로써, 미국은 구 식민지 열강의 세력권 속으로 진입하려는 노력을 강화했다. 광대한 체계를 갖춘 군사기지들은 사회주의 국가들을 위협하고, 잔존 제국주의체제를 구성하는 국가들의 균열을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세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은 (그 동맹국들의 군사력과 함께), 그리고 (베트남에서처럼) 이들 군사력을 적극적으로 전쟁에 동원하는 경향은,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체제를 유지하는 실질적인 정치적 힘으로 되어 있다. ≪노사과연≫



번역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3)***2)


해리 맥도프

번역: 편집부





*) 어떤 특정 국가를 분석하는 데에 이용하기에는 이러한 일반화는 분명 너무나 광범하다. 어떤 특정 국가의 계급적․사회적 구성은 이렇게 세 집단으로 나누기에는 훨씬 더 복합적일 것이고, 따라서 특정 지역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알기 위해서는 국가별로 특수한 분석이 요구될 것이다. 그리하여 일부 국가들의 경우에는 소지주나 부농, 그리고 농촌의 대금업자들과 상인들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시의 기업집단들 역시 본문에서 얘기한 것보다는 더욱 계층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상업자본과 공업자본의 구분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이들 어느 자본이나 그 정도에서 다양하게 식민지 본국의 공업 및 금융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이 글은 92세를 일기로 지난 1월 1일에 세상을 떠난 해리 맥도프(Harry Magdoff, 1913-2006)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논문 "Imperialism Without Colonies"(1970)을 그의 저서 Imperialism: From the Colonial Age to the Present, Monthly Review Press, 1978, pp. 117-47에서 3회에 나누어 번역하는 것이다. 페인트공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이미 10대 말인 1932년에 시카고에서 설립된 '전쟁과 파시즘에 반대하는 전국 청년․학생동맹'(National Students League and the Youth League Against War and Fascism)에 참여, 그 전국적 기관지 [학생평론](Student Review)의 편집인을 맡는 등 활동을 하다가 뉴욕시립대학(City College of New York)에서 쫓겨났고, 1936년에 뉴욕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48년까지는 미국방성 산하기관과 상무성 등 미 정부기관에서 일했으나, 1948년 미 의회의 '비미국적 행위 조사위원회'에 소환된 후 해고되었고, 그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제국주의와 미 자본주의의 위기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다가 1969년에 Monthly Review에 합류, 폴 스위지(Paul Sweezy, 1910-2004)와 함께 공동편집인을 맡아왔다. 그의 저서 [제국주의의 시대](The Age of Imperialism, 1969)는 지난 1980년대에 한국에도 번역․소개되었다. 미국의 대부르주아 신문 [뉴욕타임스](2006. 1. 9.)가 784단어로 구성된 그의 부음기사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3달러 95쎈트를 지불하라며 인터넷에 보여준 처음 50단어는, 흥미롭게도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 "15살에 맑스주의 사상에 심취하여 유력한 사회주의 경제학자, 저술가, 평론가 ―어떤 사람들은 쏘련 간첩이라고 말한다―가 된 해리 맥도프가 1월 1일 버몬트주 벌링톤의 그의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는 92세였다. 그의 아들 프레데릭(Frederick)은 그의 죽음을 ...라고 발표했다...." -- 마지막 3회째이다.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12호 (2006년 4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