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패전 60년과 개헌 저지 투쟁

―신자유주의와의 대결, 그리고 사회주의

특집

곧 패전 이후 60년이 다가오고 있다.1) '60년'이라고 하는 시간의 경과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는 없다. 그러나 60년 전에 패전했다가 그 후 조선전쟁을 지렛대로 하여 급속히 부활한 일본 제국주의가 60년 후인 오늘날 우리 노동자계급의 눈앞에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가, 거기에서의 활동가 집단의 과제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 현실의 힘 관계 속에서는 상황은 자주 절망적으로 보이고, 무력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러할 때에 역사에서 ―설령 그것이 패배의 역사이더라도― 배우는 것은 투쟁의 전망을 열어가는 데에서 불가결한 작업이다.

이 글의 목적은, 그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일본의 노동자계급의 목전에 닥쳐 있는 긴급한 정치과제―헌법 개악 공격―를 다루고, 그것이 어떠한 역사성과 성질을 갖는 공격이며, 우리는 그것과 어떻게 싸워야 할 것인가에 관한 해명을 시도하고자 하는 것이다.



고이즈미가 '급진적'으로 보이는 이유


현재 2기 째를 맞은 고이즈미(小泉) 정권은 역대 자민당 정권에 비해서 곁에서 보기에도 그 반동성을 쉽게 알 수 있는 정권이다. 2001년 취임 직후부터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공식참배를 계속하고 있고, 중국이나 한국을 필두로 한 아시아 여러 나라 인민의 항의행동은 물론, 그들 국가의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항의를 받고도 이를 멈추지 않고 있다. 취임 후 곧 일어난 9․11 사건 후에는 가장 재빨리 미국의 '보복전쟁'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입법을 강행함으로써 패전 후 최초로 자위대 함정의 해외(인도양) 파견을 실현시켰다. 2003년 11월에는 각료회의 의결을 통해 테러대책특별조치법의 효력을 2년 연장시켜 자위대 함정을 인도양 상에 머물게 한 채, 그해 3월에 미군에 의해 개시된 이라크 전쟁에 그 함정을 보냈고, 나아가 지상군(육상자위대)을 파병, 2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 조각의 정당성도 없는 미국의 군사점령지배를 직접 돕고 있다.

이 정권은 또한 취임 직후부터 개헌의 필요성을 공언하고, 실제로도 그 대문을 밀어제친 내각이다. 특히 9조2)를 바꾸어 자위대를 합헌화하고,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에 의한 전쟁 참가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2000년에는 전후['제2차 대전 후'를 의미함 ― 역자] 최초로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 헌법조사회를 설치했고, 조금 전에는 그 헌법조사회의 보고서가 나왔다. 이번 국회에는 제출되지 않았지만,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법안도 이 내각에서 검토되었다.

후안무치하다 할까, 확신범이라 할까? 부르주아 국가의 수반으로서 지켜야 할 헌법을 지키지 않고, 존중해야 할 의회민주주의를 당당히 얕보고 있다. 이러한 일이 왜 버젓이 통하는 것일까? 이러한 현상은 고이즈미 수상이 특수하게 역대 [다른] 자민당 수상보다도 호전적이며 거리낌을 모르는 비상식적인 정치가임을 의미하는 것일까?

2000년에 발족한 헌법조사회가 '조사'란 말뿐이고, 개헌을 위한 땅고르기를 하는 장(場), 미리 결론을 전제하고 있는 비민주적인 장임은 누가(어떤 세력이) 이 헌법조사회를 설치했는가를 생각해보면, 혹은 현재 국회 내의 정당․정파의 구성을 생각해보면, 쉽게 상상이 간다. 그 중의원․참의원 양원의 헌법조사회가 금년 [2005년] 4월에 발표한 보고서(일단, 대립의견을 병기[竝記]하는 형태를 취하고는 있다), 작년 [2004년] 6월의 자민당 헌법개정 프로젝트에 의한 논점 정리, 11월의 자민당의 헌법개정 초안 대강(大綱)과 나란히 보게 되면, 거기에는 확연히 공통적인 사상이 존재한다.

국민주권, 평화주의, 기본적 인권이라고 하는, 현행 헌법에 관철되어 있는 3대 원칙을 내던지고, 국가에 의한 국민의 관리와 통치를 강화하고 자위대를 군대로 인정시켜 전쟁 참가를 합헌화할 뿐 아니라, 내각 기능의 권한강화나 지방분권이라고 하는, 신자유주의 개혁을 후원하는 방향이 그것이다. 일본국 헌법은 국가가 두 번 다시 침략전쟁을 벌이지 못하도록 지배자의 수족을 묶어 놓고 있다. 헌법에 의해서 철주(掣肘 ['간섭하여 멋대로 하지 못하게 한다'는 뜻 ― 역자]를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국가이지 인민이 아니다. 개헌이 노리는 것은 그것을 역전시키려는 것이다.

이 개헌의 선봉을 담당하고 있는 매스컴은 인민에게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시키지 않는 기만적 보도―객관적 보도를 가장한 정부 광고―로 일관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헌법 개악의 문제점을 역사적․논리적으로 정확히 지적하고, 이에 분명히 반대하는 세력은 소수다. 더욱이 반대의견은 있으나 마나 한 정도로밖에는 매스컴에 등장하지 못한다. 개헌문제가 논의되면 논의될수록, 이미 개헌이 기정사실인 것과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어 간다.

노동조합의 집회에선 으레 이 문제를 직장에서의 투쟁 과제로 삼는 것이 곤란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임금이나 기타 구체적인 노동조건이나 사회보장의 강화 등, 실제의 투쟁을 통해 자본의 공격의 본질을 이해하고 투쟁에 의해서 그것을 반격한 경험이 없는 젊은 세대 노동자는, "개헌? 그런 거라면 TV에서 가끔 얘기하는 것 같더군" 하는 식으로, 마치 남의 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소수이지만, 이것이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결정하고 바꿀 정도로 중대한 문제이며, 따라서 반대하고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노동자도 있기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분노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투쟁으로서 조직되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상황은 확실히 이렇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 활동가는 이미 무언가를 해도 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위로부터의' 개헌을 받아들여 투쟁을 방기해버려도 좋은가? 결단코 아니다.

고이즈미 내각의 '급진성', 곁에서 보아도 두드러져 보이는 반동성은, 고이즈미 수상의 개성도 무엇도 아니고, 현재의 일본 제국주의의 위기의 심각성, 바꾸어 말하면 그 궁지에 몰린 상태가 정책 선택의 자유를 극히 제약하면서 이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인민 전반의 현단계에서의 무지․무자각․무관심 상태는 노동자․인민을 주체로 만들려는 투쟁이 이미 무의미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반대로, 매스컴에 의해서 부르주아 이데올로기가 일상적으로 주입되는 가운데 개개인으로 분단되고, 과로사로, 그리고 전쟁으로 내몰리는 상황에까지 조작당하고 있는 노동자․인민의 의식을 노동자계급의 일원의 의식으로 재생시키는, 그러한 곤란한 투쟁으로, 다름 아니라 활동가와 그 집단이 그 노력을 각별히 강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개헌을 요구하는 지배계급의 위기감과 노동정책


1980년대 말부터 90년대 초두에 걸쳐 계속된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는 제국주의의 전면적 지배라고 하는 새로운 세계를 출현시켰다. 고이즈미 내각의 그칠 줄 모르는 갖가지 반동정책은 20세기 말에 세계구조가 변화하는 가운데 일본 자본가계급의 옴짝달싹 못하는 위기감을 배경으로 한 구체적 요구에 기초해 있다.

1974-75년의 공황에서 탈출하기 위해 악전고투한 일본의 독점자본은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일관해서 규제완화(철폐) 노선, 즉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개해왔고, 그것과 불가분의 관계 하에서 군비확장․전쟁참가 노선을 추진함으로써 그 위기를 극복해왔다.

신자유주의에 기초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은 레이건, 대처, 나카소네(中曽根) 등과 같은 제국주의 열강의 두목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1996년에 그러한 노선을 이어받아 출범한 하시모토(橋本) 내각이 규제완화 노선을 선명하게 내건 최초의 내각이다. "6대 개혁"이라는 이름 하에 지금까지 완화 내지 철폐된 규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규제완화'의 잊을 수 없는 구체적 사례의 하나는 1997년의 노동기준법3)의 여자보호규정 철폐와 지주회사를 전후 최초로 '합법화'시킨 독점금지법이다. 2개의 개악법안이 연달아 국회를 통과한 것은, 규제완화란 무엇인가, 거기에서의 지배계급의 노림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독점금지법을 개악한 결과, 그룹의 여러 기업을 묶어 거대한 이윤을 빨아올리면서도, 개개 기업의 경영방침이나 거기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고용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마치 ‘흡혈귀'와 같은 '지주회사'가 합법화되고, 제2차 대전 전의 재벌과 같은 종류의 대독점이 다시 활개 치게 되었다. 진입규제의 철폐나 자유경쟁을 기치로 내건 규제완화가 초래한 것은, 이러한 정책을 앞서 실행한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극단적인 집중․과점이다. 이리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자본주의가 집중의 도를 높여가는 가운데 그 모순은 노동자계급에게 전가되고, 희생은 그 어깨를 짓누르게 되었다. 노동기준법의 여자보호규정 철폐의 영향은 단지 여성노동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이 여자보호규정의 철폐야말로 그 후의 노도(怒濤)와 같은 노동법 개악의 계기가 되었다.

노동 분야 규제완화의 견본이 된 것은 일본경제인연합이 1995년에 발표한 "새로운 시대의 '일본적 경영'"("新時代の'日本的經營'")이다. 핵심적인 직무를 담당하는 일부 노동자를 제외한 노동자 다수를 기한부 계약직으로 바꾸고, 더욱이 그 대부분을 점하는 전문성이 낮은 노동자는 시간제, 임시고용, 파견 등, 불안정․저임금․무보장의 고용으로 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를 통해서 인건비를 극한까지 억누르고자 하는 것이 독점자본의 노림이었다. 독점에 의한 이 '새로운 시대'의 고용의 불안정화․저임금화․무권리화 공격은 그 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지배계급의 노동정책의 기조를 이루고 있고, 이제는 민간기업의 모든 산업의 구석구석에까지 침투해 있다.

모든 노동자에 대한 재량노동제4)의 적용, 파견노동의 원칙적인 자유화, 기한제 계약의 상한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 등, 노동법의 개악은 일일이 열거할 겨를이 없다. 지금은 모든 노동자의 3할, 여성노동자의 경우에는 절반 이상이 이러한 기한제 노동자로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도 역시 경영자에게 노동시간 관리의 의무를 지우지 않는 '화이트칼라 엑젬프션'5)이나, 경영자 측의 '노사위원회'에서 과반수가 합의하면 권리남용에 대한 재판 등을 하지 않게 되는 '노동계약법'의 도입이 후생노동성의 위원회 차원에서 검토되고 있다.

카스트로 쿠바 수상의 말을 빌리면, "신자유주의란 어느 날 갑자기 노동자를 발가벗긴 채 거리로 내모는 정책"인데, 거의 그대로의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은 1987년 나카소네 수상 시대의 "임시조치․행정개혁"에 의한 국철(國鐵)의 분할민영화였다. 그 과정에서는 연일 매스컴을 대량 동원한 '국철노조 두들겨 패기'(國勞叩き)가 이루어졌다.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근 '오야카다히노마루'(親方日の丸) 의식‘"6)이 의도적으로 날조되고, '국민여론'을 배경으로 민영화에 반대하는 노동조합원을 "국적"(國賊)이라고 부르면서 이들 조합원 1,047명을 [민영화 후의] 새로운 회사에 채용하지 않았고, 조합 내부의 투쟁하는 부분을 철저히 탄압했다. 노동자의 희생으로 피 칠갑을 하고 발족한 JR은 '협조적인' 조합의 이해와 협력 하에, 노동하는 사람의 인권도, 승무원의 안전도 모두 희생시키면서 거대한 이윤을 탐하고 있다.

일전의 JR 후쿠치야마선(福知山線)의 탈선사고7)는 분할민영화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초래된 인재(人災)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JR 경영에 있다. 신형 ATS를 장착해 속도를 규제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전혀 아닌 것이다. 사고가 나고 나서 1개월여가 지나 이 선의 운행이 재개되었을 때에 희생자의 유족 가운데 한 사람이 했다는 말이 [아시히신문](朝日新聞)에 실렸다. "사고가 나기 전에나 후에나 모두 당신들(JR) 마음대로 해나가고 있는 것 아닙니까?"

전적으로 그대로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여 놈들이 "마음대로 해나가고 있는" 상황을 그렇지 않은 상황으로 방향을 바꾸느냐 하는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고만 있어서는 사태는 바뀌지 않는다.



전쟁정책의 진행


일본 제국주의는 노동자가 '투쟁하지 않는' 것을 기화로 인민의 권리를 가능한 한 박탈하고, 홀가분하게 되려 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전세계적인 규모에서 격화되고 있는 자본 간 경쟁을 극복하고 세계로 진출하고 있는 일본 자본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군사력의 증강을 도모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개혁, 그것은 그 필연적 귀결로서 일본 국가의 군국주의화를 초래하고,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헌법 개악을 추진하게 하는 근본요인이 되고 있다.

위에서 본 노동법 개악, 인민의 생활 기반을 빼앗는 규제완화의 진행과정은 지금 그대로 일본 국가의 전쟁체제 수립의 길로 연결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의 군사행동에 대한 무조건 지지를 약속한 안보 [개념의] 재정의(再定義)가 1995년. 1999년 제145차 국회에서는 "주변사태법"과 히노마루(日の丸)와 기미가요(君が代)를 국기와 국가로 정하는 "국기․국가법"을 강행 입법했다. "기미가요, 히노마루"를 법제화할 때 정부가 말했던 "강제하지는 않는다"는 약속은, 염려했던 대로, 법률의 성립과 동시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지금 교육현장에서는 사상의 자유라고 하는 헌법상의 규정에 따라서 [국기에 대한 경례 및 국가 제창 시에 --- 역자] 기립하지 않는 것을 관철시키려고 한 교육노동자에 대한 처벌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그 한 사람인 도쿄도(東京都)의 네즈 기미꼬(根津公子) 씨는 법제화 후 맨 처음 이 문제로 '정직'(停職) 처분을 받았는데, 싸움이 계속되고, 매일 정규취업시간 중에 자신을 방출한 학교 앞에 서서 처분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있다.

지배계급이 '유사'(有事) 체제를 일상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이용하는 것은 조선의 '유사‘이다. 매스컴은 매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를 무서운 나라"로서 묘사하고, 공화국이 일본인 '납치' 사건을 정식으로 사죄했다며 그 공격을 계속 더욱 확대․강화하고 있다. TV․신문․주간지 등에서는 흥미 본위로 조선을 폄하하는 보도가 되풀이되고 있고, 일본인이 이 나라를 업신여기고 적대시까지 하도록 만들고 있다. 자기나라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조선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 조선 사람들을 문자 그대로 속인다든지 위협한다든지 하여 노동력이나 군인의 성노예로 연행(납치)한 것에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은 채, 결국 자신들의 전쟁책임은 선반 위에 올려둔 채, 조선의 "납치"만을 문제 삼는 파렴치. 일본인 전체의 무지와 피해자 의식에 편승한, 의도적이고 악랄한 매스컴의 반(反)'북' 캠페인에 의해서, 같은 일본에 사는 조선인이 얼마나 상처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지배계급은 이 조선 '학대'(bashing)을 자신들의 군사대국화 노선의 지렛대로서 사용해왔던 것이다.

역사를, 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60년으로 잊혀질 수 있을 만큼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의 식민지 지배, 침략전쟁의 죄과는 가볍지 않다. 동시에 패전 후 60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일본 정부에게 그 책임을 지도록 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 인민의 책임도 명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야스쿠니 참배나 '만드는 회'의 교과서에 항의하는 조선이나 중국 사람들의 행동을 비난할 자격이 일본인에게는 없다. 하물며 일본국을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넣자?



'국민여론'에 기대도 좋은가


적(敵)의 개헌 공격의 진척 상황에 비해서, 반대하는 쪽의 논리와 실천은 말이 되지 않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 왜 그러한가?

개헌에 관한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9조의 개헌에 대해서만 물으면, 국민의 과반수는 그에 반대한다고 한다. "9조 개헌 No"라는 국민감정은, 그것이 비록 제2차 대전에서의 체험을 기초로 한 '피해자 의식'이긴 하지만, 전쟁만은 싫다고 하는 소박한 생각의 표현이기 때문에, 그것은 그 나름으로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론'에 운동이 의존하고, 자신의 주장을 거기에만 고정시켜 한 걸음도 발전시키지 않게 되면, 문제는 다르다.

개헌저지 운동을 추진하는 일본공산당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이 "전쟁은 싫다"이기 때문에 "9조 개악도 싫다"고 하는 '국민여론'이다. 운동의 출발점으로서는 당연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공산당이 힘을 쏟고 있는 '9조 모임'은 이러한 사람들을 포함하여 9조 개악에 반대한다고 하는 한 점에서의 결집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9조 모임'은 각지의 운동을 묶어 전국적인 통일행동을 조직하는 중심적 기능은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하지 않고, 각지, 각 현장의 아래로부터의 독자적 행동에 맡기는 것이 '9조 모임'의 운동인 듯싶다.

공산당 내의 개헌 저지투쟁의 중심은 '헌법개악반대투쟁본부'이다. 공산당과 투쟁본부의 기본인식은 [전위](前衛) 2005년 7월호의 인터뷰 기사 "헌법문제와 일본공산당 ― 개헌반대를 어떻게 호소할 것인가"(회답자는 이 투쟁본부원으로서 정책위원회 부책임자인 和泉重行 씨)에서 읽을 수 있다. 이 '호소'의 기본․대전제는 어떻게 하면 '국민'이 폭넓게 결집할 것인가이고, 적의 공격의 성격이나 투쟁의 고비, 운동이 극복해야 할 약점 등은 전혀 문제로 되고 있지 않다.

결국, 결론 부분에서는 '국민여론'에 기대는 다음과 같은 운동지침(?)이 피력되어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전후에 재출발하면서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서 발(發)한 '평화선언', 즉 헌법 제9조 그것을 '죽은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저지하고, 헌법 9조를 살리는 정치로 방향타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가 직면한 최대 과제입니다. 그 조건은 충분합니다. 국회 내의 세력관계만을 보면, 자민․민주․공명당이라는 개헌파가 8할 가까운 의석을 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여론은 앞에서 본 것처럼 '자위대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포함해서 '해외에서 전쟁을 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한 9조 개악에는 반대하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전쟁을 하는 나라' 만들기에 반대하는 국민적 운동에 압도적 다수의 국민의 소리와 힘을 모으는 것은 실제로 가능합니다."

이 당의 "9조는 '일본국민의 보배'"라는 식의 파악, '일본국민'이라는 식의, 지배계급이 즐겨 사용하는 말을 몰이론적으로, 무신경하게 사용하는 발상 자체에야말로 문제가 숨어 있다. 헌법을 제정할 당시 일본정부가 조선민족을 비롯한 전인민의 권리로서 이 헌법을 적용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거부한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총괄하고 있는 것인가? 이 한 사실을 보더라도, 이 당이 얼마나 내쇼날(national)하게밖에8) 사고(思考)하고 있지 않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시아와 세계를 향해서 발(發)한 '평화선언'"? 도대체 그것을 발(發)한 주체는 누구인가? 헌법이 성립될 당시의 일본정부인가? 점령통치한 미국정부인가? 일본의 지배계급은 언제부터 평화주의자가 되었던가?

우리는, 일본국 헌법이 일본 제국주의의 패전과 그에 앞선 반제․반파시즘이라는 장기에 걸친 세계인민의 투쟁에 의해서 결실된 것이라는, 역사의 진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현재의 개헌 책동도 국제적인 시야에서 파악하지 않는 한, 결코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혼고문화포럼 워커스 스쿨(本鄕文化Forum Workers' School; HOWS)의 강사인 고세키 쇼이치(古關彰一) 씨는 그의 저서 [신헌법의 탄생](新憲法の誕生)에서, 사회주의의 세계적 진전을 저지하려고 하는 미 제국주의의 이해, 즉 맥아더의 지령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데, 그 성립과정에서는 패전국 일본의 구지배층의 강렬한 저항이 있었음을 1차 자료에 의해 밝히고 있다. 일본을 무장해제시키지 않고는 '국제사회'가 이 나라를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맥아더의 정세인식과, 전쟁책임을 면할 수 없는 천황을 어떻게든 지키고 천황제를 잔존시키기 위한 일본 지배층의 생각이 일치하고, 오키나와의 미국통치와 그 땅에 미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인정한 결과, 일본국 헌법이 생겨난 것이다. 전전․전후의 그러한 계급투쟁의 역사를 무시한 헌법 옹호론은, 적의 공격의 본질을 잘못 보게 할 뿐더러, 운동의 발전을 방해하는 이론으로 될지도 모른다.

[전위]의 이 인터뷰가 '9조 모임'에 관해서, "재빨리 국민적인 공감을 호소하고, 이 모임의 호소에 찬동하는 조직은 발족 1년이 채 못되어 전국적으로 약 2,000개나 결성되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공산당은 개헌반대의 '국민적 운동'을 '9조 모임'의 발전으로 상상하고 있는 듯하다. 공산당은 '도쿄도의회선거'의 공고를 앞두고, [당 기관지인 일간 --- 역자] [아카하타](赤旗) 지상(紙上)에서 "모든 여당 대 공산당"(オール與黨對共産黨) 식의 극히 통속적인 선거운동을 개시하고 있다. 공산당은 여전히, 선거에서 표를 호소하기만 하면 지배계급의 반동정책에 의해서 고통 받고 있고, 현실정치에 분노나 불안․불만을 안고 있는 인민이 소박하게 자기 당에 투표하고, 그것을 통해서 현상을 변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일 뿐이다. 적어도 지난 30년 동안의 역사를 뒤돌아보더라도, 노동자․인민이 안고 있는 잠재적인 불안이나 불만을 대중운동을 통해서 투쟁의 이론으로까지 단련시켜내고, 그것을 운동론의 수준까지 고양시키고, 매일 매일의 실천을 통해서 그 이론을 강화하고, 동료들과 함께 자신도 변하는, 그러한 운동이 없이는 우리에게 승산은 없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대중의 의식은, 운동 속에서 대중 자신이 그것을 대상화하고, 자신이 무엇에 묶여 있는가를 깨닫는 계기가 없다면, 매스컴이 마구 흩뿌리는 이데올로기에 계속 침식되고, 결국 공산당원이면서도 고이즈미를 지지해버리는 것과 같은, 기묘하면서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도착(倒錯)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투쟁이 투쟁하는 주체를 단련한다


신자유주의 '개혁'을 통해서 인민에게 부담을 강요하는 또 하나의 수법은 사회보장․사회복지 분야의 권리 박탈이다. 짧은 기간에 너무나도 많은 개악이 강행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과거에는 어떠했는가를 기억해내는 것이 곤란할 정도이다. 의료, 연금, 간병, 보육, 장애자 복지 등, 모든 분야에 공통적인 것은 국고(세금) 부담의 삭감, 보험료나 이용시 자기부담의 증액, 지급액이나 지급 수준의 인하, 요컨대 지불액은 증대하고 받는 금액은 감소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2005년] 6월 22일의 각 조간신문은, 정부세제조사회(수상 자문기관)가 소득세(국세), 개인주민세(지방세) 개혁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전하고 있다. 급여소득세 공제, 배우자 공제를 '고치는' 이번 제안이 고령자 사회의 도래를 대비하고,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대폭적인 증세 노선을 의미한다는 것을 대표인 이시(石弘光, 一橋大學 명예교수)가 태연한 얼굴로 말하는 모습이 TV에도 방영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매년 3만 명 이상이 자살하고 있다. 1997년 이후 7년 연속 3만 명 이상이기 때문에, 7년 동안에 21만 명이다. 21만 명의 자살자! 너무나 자살자가 많아서 최근 정부는 '자살예방'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인민을 자살로 몰아넣고 있는 장본인이 "자살예방" 운운하니 어처구니가 없다. 덧붙여 말하자면, 일본 이상으로 인구에 비해서 자살자가 많은 나라는, 러시아를 위시하여 옛 쏘련을 구성했던 국가들, 구 사회주의권의 작은 나라이다. 사회구조의 격변 때문에 인민의 생활기반이 파괴된 결과, 사람들이 살아갈 희망을 잃고 죽음을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노동자에게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 외에는 싸우는 길이 없는가?

대중투쟁의 축적이 노동자․인민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들의 사회의 바람직한 상을 생각하게 하여 마침내는 헌법을 선택하는(혹은 거부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주체가 성장하면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적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다는 실례를 최근 유럽에서 볼 수 있었다.

유럽연합(EU) 헌법의 비준을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이를 부결시킨 프랑스의 경우, 1990년대를 통해서 지배계급은, 일본의 지배계급이 그랬던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내세워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차례로 가해왔다. 그 수법은 우리가 일본에서 경험한 것과 전적으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일본과 다른 것은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서 광범하고 강력한 반격투쟁을 전개하여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일정한 양보를 불가피하게 만든 점이다.

예컨대, 일본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일본적 경영'"이 발표되고, 지배계급으로부터 노동법 개악이라는 선전포고가 이루어졌던 1995년 가을에 시라크 정권이 재정적자 삭감을 위해서라며 내세운 사회보장제도의 개악 및 공무원 임금동결 등의 정책에 대하여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1개월에 걸쳐 대파업을 전개, 이를 저지하였다. 이 투쟁에는 프랑스 전역에서 철도를 위시한 공공운송기관, 학교, 병원, 우체국, 전화, 은행, 항공 등의 노동자가 참가하여, 1968년의 '5월혁명' 이래의 대투쟁을 벌였다.

일본에서 하시모토(橋本) 정권이 '6대 구조개혁'을 호언장담했던 1996년, 프랑스 정부는 다시 공무원의 임금동결, 인원삭감 등을 포함한 긴급예산안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 프랑스의 노동자들은 다시 반격으로 결집하여, 공무원 노조는 "임금동결이 아니라 임금 인상, 해고가 아니라 고용 확대"를 내걸고 24시간 파업을 감행했는데, 전국에서 160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했다. 이러한 투쟁을 축으로 한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의 결과, 1997년에 좌익정권이 탄생했던 것이다.

미국공산당의 기관지 [피플스 위클리 월드](Preople's Weekly World)의 기자였던 윌리엄 포메로이(William Pomeroy)는 1997년까지 유럽연합의 11개 국가에서 좌익정권이 들어선 배경에 관해서, "과거 사회주의 세계체제라는 우산 속에서 근로인민이 쟁취해온 사회적 획득물을 일소하는 한편, 노골적인 착취와 탐욕스러운 이윤추구의 부활을 노리는 자본주의에 대한 대중적인 반격의 기운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9) 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좌익정권이 발족하면서 이에 참가했던 프랑스공산당은 "어떠한 성격의 투쟁이든, 그 와중에서도, 그 투쟁을 지지하는 경우에도, 공산당 활동가로서의 우리의 투쟁에 대한 참가 자세는 전면적인 것이며, 그들 투쟁의 제 요구의 정당성을 인정시키는 데에 공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회계급적, 시민적 운동의 발전은 우리의 사회변혁 사업에서 '분규'가 아니다. 그것은 필요한 조건이다"10)라고, 대중투쟁과 관련한 전위당의 역할에 관한 인식을 올바르게 서술했다.

일본공산당까지를 포함해서 일본의 좌익 중에는, 유럽연합에는 일본에는 없는 무언가 이상적인 것이 있는 것과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예컨대, 고용의 종류의 차이에 따른 차별적 대우를 금지한 EU 지령이나 남녀평등원칙의 철저성을 들어 유럽연합이 일본에 비해서 "전진해 있다"고 평가하면서, 일본의 운동의 지침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다름 아니라 그것들은 모두 노동자를 축으로 한 인민의 대중투쟁이 축적된 성과이고, 노동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립되는 이야기이다.

EU 통합을 추진하고, 나아가서는 구(舊)사회주의권까지 이를 확대하려는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EU를 구성하는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이며, 그 목적은 역내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고, 구 사회주의권의 인적자원이나 자연을 수탈, 대국의 자본가를 더욱 비대하게 만드는 데에 있다. 프랑스의 노동자는 EU가 발족함에 있어서 그 가입조건으로 된 재정적자의 삭감이나 사회보장 부담비율의 삭감을 위해서 이 정부가 취한 정책―노동자계급을 희생으로 한 제 권리의 박탈정책―을 반격하는 투쟁 속에서 EU의 목적을 이해하게 되었다. 권리를 빼앗으려는 적을 앞에 두고, 권리를 지키는 투쟁을 몇 번이고 거듭함으로써 마침내 유럽연합 헌법을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헌법의 어떤 조항이 문제라는 식의 협소한 파악방식이 아니라 그것이 누구를 위한 헌법인가를 이해한 위에서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역사의 필연


사회주의 세계체제는, 내부에 다양한 모순을 안고 있긴 했지만, 자본의 세계적 이동에 제약을 가했고, 자본주의 국가 내의 노동자․인민의 권리를 증진시키는 투쟁의 후원자였다. 이 체제가 존재하고 있음으로 해서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계급은 개량투쟁이 혁명으로 전화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체제의 붕괴와 함께 출현한 것은, 지배계급에 의한 피지배계급에 대한 압도적․일방적인 공격일 뿐 아니라, 자본주의적인 질서의 붕괴이고, 전쟁의 위기의 증대이다.

일본 군국주의는 60년 전에 한번 패배했다. 그러나 군국주의를 낳은 근본적인 토대는 살아남았고, 부활했다. 오늘날 이 체제는 더욱더 기생성과 부후성(腐朽性)을 높이고 있다. 우리의 개헌 저지 투쟁은 궁극적으로는 이 체제를 타도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까지 전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개헌문제를 개별 조항의 문제로 축소하거나, '개헌세력'과 '국민' 간의 모순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애매하게 만들거나, "전쟁은 싫다"고 하는 사람들의 소박한 사고에 기댄다거나, "9조를 지키고, 살리자"라는 슬로건으로 시종하는 것으로는 전적으로 부족하다.

EU 헌법을 부결시킨 프랑스 노동자들의 투쟁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그 헌법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은 누구이며,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가, 노동자가 시달리고 있는 것은 무엇에 의해서이고, 자신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가를 직장이라는 생산거점의 투쟁 속에서 노동자 자신이 확실히 자각할 때까지 함께 학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최강의 무기인 파업으로써 자신들의 권리를 박탈하는 적과 싸우는 것이다.

[2005년] 6월 15일, 자민당의 헌법조사회는 EU 헌법의 비준을 둘러싼 국민투표에서 패배한 프랑스와 네덜란드를 시찰한 나카야마(中山太郞) 중의원헌법조사회 회장 등의 보고를 듣고, 의회에서의 압도적 다수와 대중의 선택의 역전현상에 위기감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이것 하나를 보더라도, 적측의 계급의식은 철저하고, 그 국제적 감각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에 따른, 전세계적 규모에서의 운동의 후퇴, 제국주의의 전면적 지배라고 하는 일시적 현상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급투쟁을 기초로 한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이끌고 있는 베네수엘라의 신국가 건설 과정에서도 그것을 볼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쿠바의 사회주의와 연대하여, FTAA(미주자유무역협정)를 반격하기 위해서 ALBA(미주를 위한 볼리바르식 대안)을 제창하고 있다. ALBA를 기초로, "남(南)은행을 설립, 이로써 자신들의 국제준비금을 갖고, 북측의 은행에만 그것을 예치해둘 필요가 없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남(南)발전은행의 창설, 나아가서 장래에는 남미 공동통화를"([社會評論] 제141호, 2005년 봄, "ベネズエラ革命は眞の代案であり, 希望である!")이라고, 제국주의의 전면적 지배에 대항하는 투쟁을 한 걸음 한 걸음 전진시키고 있다.

"[사회주의 세계체제의 붕괴로 인한 ― 역자] 힘 관계의 변화는 사회주의로의 이행의 시대라고 하는 우리 시대의 성격을 바꿀 수 없다"고 하는, 그리스공산당 제17차 대회가 강조하는 강력한 선언을 우리도 지지한다. 이러한 세계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우리도 새로운 사회주의 건설의 일익을 담당할 개헌 저지 투쟁을 선두에 서서 담당하자. (번역: 편집부) <노사과연>


특집 : 혁명―20세기, 그리고 21세기


패전 60년과 개헌 저지 투쟁

―신자유주의와의 대결, 그리고 사회주의



가와나 미유키 | 혼코(本鄕)문화포럼 여성노동연구회



[편집자 주: 이 글은 [社會評論] 第142號 (2005年 夏)의 "<特集> アジアの革命と反革命"의 한 꼭지로 게재된 고(故) 河名みゆき 씨의 "敗戰60年と改憲阻止の鬪い"를 번역한 것이다. 이 '특집'은 고 가와나 미유키 씨의 이 글 외에 "中國社會主義再建への道 ― 帝國主義の一元支配下で苦鬪する中華人民共和國"(新田進), 韓國勞動者階級の現況と課題 ― その主要な論爭點をさぐる"(蔡萬洙), インド--共産黨分裂から統一行動, ゼネストへ ― 左翼統一戰術によるたたかいを中心に"(佐々木辰夫), "ツナミ, マングローブと市場經濟 ― アジア․太平洋地のエビ養殖場とツリズム産業"(D. シャルマ), "朝․日近代史と日本國憲法改惡 ― 日本社會の反動化と朝鮮蔑視の歷史"(卞宰洙․松岡慶一)로 이루어져 있다.]




1) [역자 주] 이 글은 일본 도쿄에서 발행되는 계간 [사회평론] 2005년 여름호에 실린 것입니다.


2) [역자 주] 현재의 일본헌법을 '평화헌법'이라고 규정짓도록 하는 핵심적 조항으로서, 비무장, 즉 군대의 비보유와 전쟁을 통한 국제분쟁의 포기를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군'이 아닌) '자위대'라는 이름의 실질적인 군대, 특히 거대 중국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의 전투력을 갖는 자위대의 보유․육성이나, 사실상의 미일군사동맹, 그리고 예컨대 필자가 방금 언급한, '테러대책특별조치법' 등과 같은 특별 입법으로 실질적으로는 많은 점에서 사문화되어 있는 조항이지만, 군국주의의 강화에는 장애가 되는 헌법상의 조항으로서, 극우세력에 의해서 끊임없이 그 개폐가 주장되고 있다.


3) [역자 주] 한국의 '근로기준법'에 해당하는 것.


4) [역자 주] 한국의 '변형근로제'에 해당하는 것.


5) [역자 주] "화이트 칼라 노동자 예외제".


6) [역자 주] "외부의 자극이 없어 안이해진 나머지 '국가를 등에 업고 방만한 경영을 일삼는 기관'이라는 의식"으로, 신자유주의 정부가 국공유기업을 사유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국공유기업에 대한 날조된 매도.


7) [역자 주] 2005년 4월 25일 오전 9시 20분께 일본 효고현(兵庫縣) 아마가사키(尼崎)시 JR 후쿠치야마(福知山)선 다카라쓰카(寶塚)-도시샤(同志社) 구간에서 7량 편성의 고속열차가 탈선, 전복되면서 앞쪽 2량이 선로변 아파트에 충돌한 사고. 당시의 보도에 의하면, 사고 당시 이 열차에는 약 580명이 타고 있었는데, 이 가운데 69명이 사망하고 417명이 부상했다. 이 사고는 열차 정면충돌로 42명이 숨진 1991년 시가(滋賀)현 시가라키(信樂) 고원철도 사고를 웃도는 것으로서, 161명이 사망한 1962년 도쿄 시내 미카와시마(三河島) 사고 이후 43년 만의 최악의 철도사고로 기록됐다.


8) [역자 주] "민족주의적으로밖에"의 뜻.


9) William Pomeroy, "The leftward political trend in Europe", People's Weekly World, 21 June 1997.


10) [思想運動] 1997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