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와나 미유키 동지의 죽음을 곡(哭)함

가와나 미유키 동지의 죽음을 곡

가와나 미유키 동지의 죽음을 곡(哭)함



채만수 | 소장




지난 6월 말, 개인적인 일로 미국에 다녀오는 길에 책도 구할 겸, 일본의 동지들도 만나 정보도 교환하고 회포도 풀 겸, 하룻밤 도쿄에 들렀다가 참으로 놀랍고 슬픈 소식을 들었다.

나이 이제 겨우 서른여섯, 우리 나이로는 서른일곱의 젊은 동지 가와나 미유키(河名みゆき) 씨가 지난 5월 24일에 이 세상을 떠났다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얼마나 청천벽력 같았던지, 마치 내가 그날 "괜히(?) 일본에 와서 이 소식을 듣는 것이 그의 죽음에 어떤 조그마한 원인이라도 되는 것" 같은, 제정신이면 들 수 없는 황당무계한 죄의식조차 떨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상당히 오래 전이긴 하지만 한국을 방문한 적도 있기 때문에, 그리고 나는 내 주위의 여성 동지들이 혹시 도쿄를 방문할 기회가 있으면, "내가 무척 존경하는 분이므로 꼭 그녀를 만나서 안부도 전하고 많이 배워오라"고 권유했기 때문에, 비록 소수이긴 하더라도 알 사람은 알 것이다. 여성․노동,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회복지 문제 등에 대해서 그녀가 얼마나 해박하고, 정통하고, 깊은 이론과 불굴의 투쟁정신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뿐만 아니라, 얼마나 당당했던가를!

연배는 나보다 훨씬 아래지만 나는 진심으로 그녀를 존경했고, 한국의 여성 동지들한테는 눈총을 받을지 모를 얘기겠지만, "한국에도 저런 여성 활동가 동지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가슴 속에 숨겨진 작은 소원의 하나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것도 달리가 아니라, 그제야 알았지만, 작년 11월에 발병한 우울증으로!

이건 분명 자본주의라는 사회의 타살이다!

오늘날 세계가, 오늘날의 일본 사회가, 오늘날 일본의 노동운동, 사회운동이 얼마나 암울하고, 혁명의 희망이 없어 보였으면, 그토록 해박하고, 투철하고, 당당하던 그녀가 우울증으로 이 세상을 떠났겠는가?!

우울증에 이르기까지 겉으로는 당당했지만, 오랜 기간 가슴과 정신을 짓눌러오는 절망의 중압감에 시달렸을 그녀의 고통을 생각하면, 눈물을 참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하지만! 그녀는 바보였다!

칠흑처럼 어둡게 보이고 절망의 중압감이 짓눌러올 때, 바로 그때가 해방의 전야임을

왜 몰랐단 말인가?!

하기야 그녀는 일본인이지만, 한국인인 우리는 일제 하에서 꿋꿋하던 투사, 지식인들이 언제 좌절하여 일제에 부역했는가를 알고 있다.

바로 해방 전야, 그러니까 해방의 전망은 없는 듯이 보이고, 그리하여 일제의 지배가 천년만년 갈 것처럼 보이던, 그렇게 절망의 중압감이 짓눌러오던 바로 그때 아니었던가?!

아니, 그녀도 그것을 알았어야 했다, 바보가 아니었다면!

일본의 노동자․인민에게도 같은 시기에 일본 제국주의, 일본 군국주의의 위세와 광폭함이 그렇게 절망의 중압감으로 짓눌러왔었을 것이니까 말이다.


그녀의 남편은, 내가 한국에서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라는 제목으로 변역해낸 똑 같은 책을, 일본에서 "쏘련은 왜 붕괴됐는가"(ソ連はなぜ崩壞したのか)라는 제목으로 나보다 앞서 번역해낸 무까이(向井 亨) 동지이다.

하루 빨리 그가 충격과 슬픔을 극복하고 일어서 일하기를 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일했던 "활동가집단 사상운동", '오가와마치 기획'(小川町企劃)의 동지, 활동가들의 슬픔과 충격 또한 나의 그것에 비할 바 없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역시 하루 빨리 충격과 슬픔을 극복하고 해방의 전선 사업에 전념할 수 있기를 빈다.

그녀를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이 암울한 사회의 어두운 장막을 찢어 헤치고 해방의 그날을 여는 것, 그날을 열기 위해 우리가 가진 모든 힘을 다하는 것.

필시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랑하는 동지를 뜨겁게 기억하고, 다시 잃지 않는 길일 것이다.



                                      2006년 7월 26일 채만수 泣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