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노동자

확보해야 할 ‘독자성’은 노사협조주의, 개량주의로부터의 ‘독자성’이다

*원문에 있는 사진은 편집상의 문제로 삭제하였습니다. 사진이 포함된 원문은 하단 관련자료-원본 파일을 참조하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현대자동차, 그리고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가면 어김없이 천막이 쳐있다.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좁은 공간이지만 버젓이 노조 사무실이 있지만, 기아자동차비정규직 지회는 아직까지 노조 사무실이 확보되지 않아 천막이 사무실이다.


이렇듯 천막은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투쟁의 ‘상징’이다. 값비싼 자재들로 세워져 그럴듯한 위용을 자랑하는 자본의 건물 앞에서 시위하며, 현장 노동자들의 투쟁의 심지에 불을 붙이며, 또 그렇게 현장에 버티고 있다. 그곳은 투쟁의 ‘대가’로 해고되고 수배된 노동자들의 ‘또 다른 현장’이고 안식처이며, 연대온 동지들의 거처이기도 하다.

천막의 등장은 투쟁의 긴박함을 알리고, 끝나지 않는 자본과의 전쟁 속에서 일시적으로 천막은 걷힌다.


아직 승리를 장담하는 것은 녹녹치 않다.

민주노총이 어용노조로부터 ‘독립’하였던 것은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원칙과 투쟁의 교훈들을 지켜왔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과거의 경험들은 새롭게 조직되고 있는 비정규직 투쟁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일관되게 노동자적 원칙과 태도를 견지하지 못함으로써,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리시켜 대응하는 자본의 전술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내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이 비정규직 투쟁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규직 노조 중심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것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해결하려는 조합주의적 경향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민주노조운동의 지도력과 운동성을 새롭게 새우려는 모든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투쟁의 문제나 현장에서 자행되고 있는 자본의 정리해고,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 등 현재의 투쟁들을 노동자운동의 전진과 단결을 위한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정규직 노동조합(들)


자동차노동조합들의 올해 투쟁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그 결과는 정리해고, 단협개악 등에서 보여지듯이, 또 한번 구조조정에 대한 투쟁에서 노동자 대중이 보여준 투쟁의 활력은 민주노조운동이 다시금 전진할 수 있는 계기로 끌어올려지지 못하고 좌절하고 말았다.

위로부터는 산별전환에 따른 체계 재편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고, 아래로부터는 자본의 탄압과 통제에 대한 분노가 투쟁의 물결에 합류하여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하기도 전에 노사협조주의, 조합주의적 힘에 눌려버리는 상황이 또다시 연출된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상하이자동차자본이 추진하는 정리해고에 전체 조합원들의 ‘옥쇄파업’으로 맞섰다. 이번 정리해고 투쟁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이후에도 2차, 3차의 구조조정이 몰아칠 것이라는 위기감이 현장에 존재했고, 더 이상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무더운 여름의 막바지에 공장을 집삼아 2주간의 옥쇄파업을 전개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노동조합은 9월로 예정된 정리해고와 선거에 따른 현장의 공백기라는 명분을 들어 8월 25일 사측의 개악안을 수용하고 현장에 제시했다.

일단 자본이 시도한 554명에 대한 정리해고는 철회되었다고 하나 이미 희망퇴직으로 현장을 떠난 노동자들이 있다. 또한 임금 및 수당 동결은 물론이고, 잘 팔리는 차종을 중심으로 생산하고 그에 따라 ‘여유’ 인력을 자본이 마음대로 운영할 수 있도록 백지위임했고, 작업중지권 또한 제한받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심지어 ‘회사정상화’를 위해 파업투쟁을 배제하는 내용까지를 합의하였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잠정합의안에 1차례 부결이라는 심판을 내렸지만 별다른 진전없는 일부 문구만 수정한 2차제시안에 결국 가결표를 던졌다. 그리고 옥쇄파업 중에 치러진 위원장 선거에서 정리해고의 칼바람 속에서도 ‘전투파’를 자신의 새로운 지도부로 선택하지 않았다.


이것이 쌍용자동차노동조합에서 최근에 진행되었던 상황의 개략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올해의 ‘전쟁’은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작년에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판정이 나자 법․제도의 허점을 최대로 이용하여 비정규직을 ‘진성도급’화시키려는 자본의 이해를 수용했다. 그것으로 ‘비정규직 불법파견’이라는 투쟁의 불씨를 제거하고 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그러나 “불법파견 판정”이라는 계기를 단일한 자본의 통제와 착취하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기회가 아니라 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안전판으로 삼는 노동조합은 자본에게 그리 위협적인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실토한 것이었고, 결국 자본은 노동자에게 있어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정리해고’라는 카드를 휘두른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와 정규직화 문제를 기업별 노조의 한계에서는 해결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세력들과 마찬가지로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또한 자신의 조합원들만을 챙기는 것으로써 쌍용자동차 전체노동자의 일부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그 결과는 현재의 고용을 일시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구조조정 투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들고만 것이다.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대대적인 노조의 사업으로 선포했던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6월 산별전환 투표에서 가결된 이후 임투에 집중하였다. 주간연속2교대제, 신규투자와 모듈화 등 야간노동 철폐, 노동강도 완화, 외주화/비정규직 확산저지를 위한 요구안을 쟁취하기 위한 파업은 ‘98년을 제외하고 역대 최장을 기록’할 정도로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결과는 ‘최저’의 임금인상율, 생산성 연동에 따른 성과급 지급으로 ‘도요타 방식’을 수용한 것이라는 비판 속에서 합의안은 54.7%의 낮은 찬성율로 통과되고 임투는 마무리되었다.

작년부터 현대자동차 앞에서 ‘선진화정책운동’이라는 단체가 중심이 되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고임금, 귀족노동자’ ‘집단이기주의’로 몰아가며 ‘임금동결과 생산성향상’ 등 자본의 이해를 수용하라는 여론을 조장했었다. 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한 이윤을 비자금과 노무관리 비용으로 활용한 정몽구 회장의 구속 수감으로 자본의 본질이 폭로되는 계기를 맞으면서 국면 전환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노동자에게는 바로 죽지 않을 만큼의 노동을 강요하고, 그에 저항하면 물리적 폭력을 남발하면서 노동자 내부를 분할, 갈등을 조장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고도 남을 돈으로 뒷거래를 해왔음에 노동자들은 분노했다. 그러나 지도부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활용하여 투쟁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다.

노동조합 집행부가 어떤 현장조직으로 바뀌었는가는 자본에게 있어서 일정정도 활용의 태도를 달리하게 한다. 하지만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단결의 계기를 스스로 놓아버린 정규직 노조에게 자본은 더 이상 양보를 하지 않았다.


여름 휴가를 한 달이나 넘긴 8월말 임단협을 마무리한 기아자동차 노동조합도 다르지 않다. 단체협약은 이전보다 더 후퇴한 것이었고, 조합원들은 <임금>에 대한 찬성율 75.4%에 비해 단협은 59.5%의 찬성으로 답했다. 현재의 노동조합이 자본의 끊임없는 탄압과 도발에 대한 전면적인 투쟁을 밀어갈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가결로 투쟁을 접고 말았다.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는 징계할 수 없다는 조항에 ‘정당한’이라는 문구를 삽입하여 노조의 ‘공식지침’을 따르지 않는 현장의 자발적 투쟁을 제어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신차종 전개와 관련하여 라인중지권의 제한과 외주모듈화를 통한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수준으로 단협을 개악시키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불법파견과 관련하여 불법파견으로 판정난 공정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신차종 도입시 6개월 내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합의를 했지만, 이는 자본이 비정규직 공정을 ‘진성도급화’(합법도급화)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뿐이다.

올해 들어 자본이 노동자 투쟁을 통제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도입하였던 ‘파업코드’가 노동조합에 의해 투쟁대오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 파업 미참가자, 파업파괴자를 통제하고 파업참가자에 대한 불이익을 줄이며, 조직력의 하락을 막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는 현재 노동자 내부의 단결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정규직 노조는 임단투가 마무리되면 한결같이 “부족한 부분은 채워가며” “하반기 투쟁(사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한다.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이라는 이해’를 위해 노동조합이 존재한다는 개량주의, 조합주의자들의 주장마저도 현실에서는 무참히 깨져 가고 있는 지금, 노동조합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산별노조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은 어디에서 전진의 현실적인 계기를 발견하고 있는 것일까?




원하청연대회의


자본이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단결을 파괴하는 데에서 나온다. 이러한 시도는 크게 두 가지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다. 전체 사업장(공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고립시키는 전술.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정규직 노동조합(활동가)를 고립시키는 전술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나타났으며, 후자는 정규직 노동조합 차원에서 비정규직투쟁에 적극 나섰던 GM대우 창원공장에서 성공한 바 있다. 사측의 이러한 고립화 전술은 일차적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공격하는 데 맞춰져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정규직 노동조합의 전체 혹은 일부를 매수함으로써 노사협조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다. 후자가 노동자들에게 더 큰 위협이 된다. 원하청연대회의는 이런 전술에 맞서기 위한 노동조합 차원의 최소한의 방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원하청연대회의는 원래 노동조합 대 노동조합의 ‘연대회의’라는 의미임에도, 현실적인 운영은 정규직 노조가 ‘우위’를 점하려는 태도 속에서 비정규직 투쟁과 관련된 부분으로 역할이 제한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조합(노동자)가 비정규직 투쟁에 ‘개입’하고 ‘연대’하는 첫 번째 방식은 ‘원하청연대회의’라는 기구를 통해서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은 투쟁에의 직접적 결합으로 ‘연대’ ― ‘공동투쟁’을 실천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투쟁의 대상을 원청자본으로 삼는 것은 과도한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정규직 공정을 비정규직으로 돌린 것도, 외주업체로 넘긴 것도, 어떤 하청자본이 자신에게 유리한가를 ‘선택’하고 이윤을 나눠주는 것도, 하청노동자들을 관리․감독․통제하는 것도 원청자본의 이해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임금, 노동조건, 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 또한 원청자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청자본은 정규직 노조와 ‘유일교섭단체’라는 합의를 맺었다는 명분으로, 자본의 대표를 분할하였다는 것으로 비정규직노조에 대해서 자신들은 교섭대상이 아니라는 헛소리만 되뇌었다. 현장투쟁의 압박에 의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해야 할 때에도 정규직 노조와만 협의를 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를 무시하려했다.

이러한 조건이 변화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단결의 힘을 강화하면서 투쟁이 더욱 거세지고, 생산라인을 멈춰 직접적인 이윤에 타격을 가하자 자본은 어떻게든 투쟁이 더욱 확대되는 것을 무마시키기 위해서라도 유화적인 제스춰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압력은 자본에게만 가해진 것이 아니라 정규직 노조에게도 동일하게 작용하였다. 정규직 조합원의 ‘정서’를 핑계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적정한 선에서 자본의 이해와 절충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던 정규직 노조의 입장이 한 발씩 나아가게 된 것이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조가 쟁취한 불파특별교섭에서의 3자교섭은 이러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이에 연대한 정규직 노동자들의 압력에 의한 것이다.

또한 올해 좀 더 전진한 것이 있다면, 비정규직 파업시 대체인력 투입에 대한 정규직노조의 방침이다.

작년의 경우 비정규직 공정에 들어온 대체인력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가 자체적인 투쟁 속에서 정규직 활동가들과 저지해야만 했다. 관리자들의 투입에 대해서 정규직 노조의 태도는 그들도 조합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던 것이다.

지난 8월, 현대-기아노동조합은 원하청연대회의를 통해 원청구사대에 대해서는 정규직노조가, 그리고 하청구사대는 비정규직 노조가 막기로 하였다. 당연한 것 같은 이러한 지침의 변화 또한 작년 투쟁에 이어 더욱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투쟁과 현장으로부터 정규직 노조에 제기되는 비판과 투쟁이 주는 압박의 힘에 의한 것은 분명하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동자


그러나 기아자동차에서는 06년 투쟁방향과 전술을 둘러싼 문제로 원하청연대회의는 종결되었고, 정규직 노조의 임단투가 끝나면서 현재는 비정규직지회의 독자적인 파업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작년 단체협약 쟁취 투쟁에서 원하청연대회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힘이 배가될 수 있도록 하기는 커녕 ‘공동3원칙’이라는 이름하에 ‘합의’되지 않는 투쟁에 대해서는 방관하고 발목잡는 역할을 해왔었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해 할 만큼 했다고 볼멘 소리를 하지만 그것은 정규직 노동조합이 조합원 대중을 공동투쟁의 대열로 조직하기 위한 자기계획을 갖지 못하고 노동조합이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를 개량주의, 노사협조주의 속에 가두고 노동자계급의 전진을 막아 온 것에 불과하다.

이에 대해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 지회장은 다음과 같이 얘기하고 있다.


“원하청연대회의 할 때 솔직히 사측과 교섭을 하는 것 같아요. 파업투쟁을 하는데 어떻게 하면 잘 할거냐를 얘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우리의 파업 수위를 낮추려고 해요. 우리가 투쟁할 때 한 번도 동의된 적이 없구요. 제일 힘든 자리가 원하청 연대회의 자리였어요.” … “비정규직 지회를 통제할 수 있어야 원청 사측과 교섭력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에요. 심지어 어떤 간부는 화성공장 비정규직을 비정규직이 아니고 업체의 정규직이라고 했어요. 회사와 똑같은 논리죠.”(레디앙, 2006.08.24)


원하청연대회의가 그 이름에 걸맞게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의 연대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섭을 통해 자본으로부터 어떤 양보를 받아낼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 뿐만 아니라, 노동자 대중의 투쟁을 계획하고 지도할 수 있는 힘을 형성하는 자리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하다.

기아자동차노조 위원장은 지난 7월 19일, 하이닉스 청주공장 앞에서 열린 ‘산별전환 후 첫 비정규-정규 연대집회’라는 ‘하이닉스 투쟁승리 결의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었다.


“대기업노조 연대투쟁 못한 것 반성”

기아자동차 남택규 위원장은 “비가 오면 폭우에 파업한다고 비난하고 비정규직과 연대해 파업하면 불법파업이라고 고소하고 가만 있으면 귀족노동자라고 비난하고 이것이 대기업노동조합이 처한 현실”이라며 “대기업노조가 비정규직과 연대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기아차노조가 이 연대투쟁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가기 위해 이 자리에 왔다”며 “16만 금속노조의 중심에 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현장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확실하게 연대투쟁하겠다”고 역설했다. (레디앙, 2006.07.19)


그러나 기아자동차노동조합 화성지부에서는 8월 30일 기아비정규직지회의 식당노동자 파업을 앞두고 “벼랑끝 전술 ‘식당파업’”이라는 “일방적 결정에 유감을 표명”하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협박했다.

‘연대’파기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독자투쟁 탓으로 돌리면서 자본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정규직 노동자의 식사가 파업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 많은 것을 한꺼번에 얻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이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면화 될 수록, 자본의 이해를 정규직 노동자의 이름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강제하며,그것을 거부하는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악선동으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것은 이제야 노동조합이라는 단결의 무기를 부여잡고 노동3권을 쟁취하면서, 더 나아가 민주노조운동의 위기를 불러온 원인에 맞선 투쟁으로까지 전진하고자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자신들이 빠져있는 위기의 늪으로 주저앉히고자 하는 것에 다름없다.

자본이 유포하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노동자적 관점을 명확히 부여잡지 못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투쟁, 기습투쟁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민주노조 운동이 성장해왔던 과거를 망각한 것에 다름아니다. 정규직 노동자들 또한 민주노조를 건설하던 시기, 관리자들의 억압과 통제로 억눌려왔던 공장내 질서를 깨뜨리고 지시받지 않은 자발적인 행동을 통해서 노동자 의식을 갖게 되고 노동자들이 가진 힘을 자각해 오지 않았던가.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의 공동의 적인 자본에 맞서 싸우는 데에서 공동행동의 유일한 기준은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끌어올리는 것에 두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노노 분열을 기회로 삼으려는 자본의 시도가 항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조직화는 비정규직 노조의 독자적인 활동만큼이나 독자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노동자계급


민주노조운동으로부터 이탈하여 자신의 기득권과 이해를 위해서 ‘사회적 합의’라는 이름으로 죽음으로 항거하는 노동자 투쟁을 정리하도록 압박하고, 노동조합을 자본과의 ‘교섭기구’로 전락시키려는 자들, 교섭에서의 더 많은 힘을 가져다 줄 ‘조직률’을 높이기 위해서 비정규직,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산별노조를 말하는 자들은 상급단체만이 아니라 단사 현장에서도 그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현장의 분노가 노사협조주의, 조합주의자들에 의해 조절되고, 통제당하면서 절망으로 바뀌어 왔다. 그 결과 정규직 ‘조합원’이면서도 투쟁을 외면하고 있는 노동자들, 그리고 50%에 육박하지만 아직도 노동조합으로의 단결보다는 자본의 사탕발림과 협박에 자신의 고용-생존권을 자본에게 위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은 현재 민주노총이 처해 있는 위치를 잘 보여준다.


징계, 고소고발에 손배가압류, 해고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맞서고 ‘정당한 요구’를 위해, 민주노조운동의 전진을 위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현장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은 비정규직 투쟁에 또한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자본의 노동자분할 책동에 맞서 왔다. 그러나 아직 이러한 부위는 소수에 불과하다. ‘비정규직 투쟁에의 결합 정도가 정규직 노조의 전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말은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직화 초기에 정규직 노동자들의 연대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으며, 그 긍정적 의미를 보여주었다. 이제 비정규직 노동자 운동이 성장하면서 비정규직․정규직 노동자들을 공동으로 조직하는 사업을 요구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확보하고 있는 최소한의 현장권력은 민주노조운동의 산물이다. 이를 개별활동가들의 헌신성의 문제로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비정규직 투쟁에서 이 권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기 계획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교섭기구’로 전락한 노동조합을 다시 ‘투쟁기관’으로 세워내는 것, 생산현장에 도입되는 자본의 물리적, 이데올로기적 억압들에 맞선 현장의 대중투쟁을 조직하는 것이다. 소수의 조직과 활동가들만의 결집을 넘어서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 조직’들로 노동자들을 묶어 세우는 것, 예를 들어 기존의 대의원, 소위원과 같은 체계(공투위/공소위)를 활용하면서도 현장의 조합원들이 최대한 결합하고 자신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는 계기들을 끊임없이 제공하고, 투쟁의 기반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노동자 내부에 침투해 들어와 노동자들을 무력화하고,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온갖 경향과 세력들에 맞서는 것은, 소수의 의식적 부위가 어떻게 대중 속으로 촉수를 펼쳐내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는 가에 달려있다.


한편 노동3권의 확보로부터 민주노조운동의 일부로 스스로를 조직해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온전히 민주노조운동의 주체로 서기 위해서는, 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투쟁을 통해 민주노조운동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지 비정규직 투쟁의 전투성과 구호의 계급성으로 침체되어있는 민주노조운동에 활력과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다. 비정규직 투쟁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노동조합주의는 노동자가 자본과의 대적전선에서 현실의 요구와 투쟁으로부터 한 걸음 앞을 내다보는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의 계기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에게 ‘독자성’은 중요한 문제이다. 투쟁의 동지가 되기보다는 자본과의 중재자로, 노동조합의 ‘나이’라는 권력으로 ‘연대’를 말하고, 형식적인 활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노동조합, 상급단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독자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확보하여야 하는 ‘독자성’은 정규직 노조와의 관계에서의 독자성, 조직 체계의 독자성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을 좀먹고 있는 개량주의, 노사협조주의로부터의 ‘독자성’이다.


지금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자본으로부터 날아오는 총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무력해지고 있는 노동조합, 노사협조주의에 자신의 무기를 무디게 만들고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퍼부어지고 있다.

지금은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노동자의 이해를 넘겨주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총알받이로 활용하여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노동자들을 다시금 투쟁의 대열로 합류시키는 것, 그로부터 나오는 현장의 투쟁력만이―투쟁기관으로서가 아니라 교섭기구로 변질되고 있는―노동조합을 ‘혁신’시키는 힘이며, 민주노조운동이 자본의 착취를 끊어내는 투쟁의 전선을 다시 한 번 세워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노사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