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민주노조운동의 현실과 고민

들어가며

구조조정이 일상화ㆍ전면화되고 있는 현 시기에는 민주노조인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바뀌었다.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실천적 태도에 따라 어떤 노조가 진실로 민주노조인지 아닌지 그 성격이 갈라지는 것이다.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다. 이는 모두 자본의 이윤율 확대를 위한 노동자 공격이 핵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조조정의 결과가 비정규직이기도 하다.

철도공사는 지금 이른바 ‘수평적 분사화’를 내걸고 전면적 외주화 계획을 가동하고 있다. 이미 그 첫 사업으로 승무사업을 ‘철도관광레져’라는 자회사에 이관시키고 있다. 이에 맞서 KTX 승무원은 300일이 넘게 투쟁하고 있고, 새마을 승무원도 투쟁에 돌입했다. 이철 사장은 공공연하게 비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까지 분사화하겠다고 공언한다. 악명 높은 철도사업법의 내용을 실행하겠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나섰다. 노선별, 사업별, 지역별로 찢어서 외주화(사유화)하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현 시기 철도노조의 핵심적 과제이다. 철도노조가 걸어온 길을 매우 거칠게 돌아보면서, 철도노조가 당면해 있는 과제를 중심으로 단상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흐름과 현실


�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부침: 해방 이후부터 2001년까지

해방 후 철도노동자는 두 차례에 걸친 총파업 투쟁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은 기나긴 단절의 역사를 경험했고,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에야 철도에서도 1988년 7.26 기관사 파업투쟁이 자생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후 목적의식적인 활동가들은 전국기관차협의회(전기협)를 만들어 1994년 전지협 공동파업(철도기관차직종, 서울지하철, 부산지하철)을 조직한다. 그리고 1994년 파업 이후 한 직종만의 투쟁으로는 요구관철도, 철도노조 민주화도 이룰 수 없다는 자각에 기초하여, 해고되고 전출된 동지 200여 명을 규합하여 철도노조민주화추진위원회(노민추)를 만들게 된다. 기관차외에 다른 직종을 포괄하기 위한 몸부림의 세월을 겪게 되었고, 1996년 조합비 인상철회 범대위투쟁으로 발전한다. 단일 현장조직 노민추는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철도발전연구회(철발연)가 분화해 나간다. 특정 직종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진 운수마을(운수노동자 별도의 조직)을 비롯해 3개의 현장조직이 존재하는 형국이었다. 3개의 현장조직은 1999년 민영화 방침 발표 이후, 본격적이고 공세적인 노조민주화 투쟁 전열을 세우기 위해 철도민주화추진위원회(철민추)로 전격 통합하게 된다. 이후 직종과 지역을 망라한 투쟁주체가 형성되었다. 그 힘으로 직선 쟁취 공동투쟁본부를 대중적으로 결성하여 치열한 투쟁을 벌여낸다. 그리고 2001년 끝내 3중 간선제를 무너뜨리고 직선을 쟁취, 54년 만에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게 되었다.


� 민주노조 이후 6년:  주요 파업과 현장투쟁

2001년 11월 철도노조(김재길 집행부)는 민영화 법안 상정저지를 둘러싸고 투쟁을 본격화했다. 그런데 2002년 2.25파업은 성사되었지만 조기 퇴각하면서 함께 파업하던 발전노조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발전노조 파업이 파괴된 이후 정부(철도청)는 철도노조에 대한 무력화 공세를 지속했다. 이에 대해 노조 집행부(이명식 직대 집행부)는 주춤주춤 물러났고, 결국은 굴욕적인 4.30산업평화선언까지 이어졌다.

민주노조 초기의 역동성은 대단한 것이었고 지도부에 대한 신뢰도 가히 최고치에 달했으나,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현장의 힘을 하염없이 갉아먹었다.

이에 2002년 8월 위원장 보궐선거에 현장 활동가들은 김형균 선본을 구성, 선거공간을 통해 ‘민주노조 1년에 대한 평가를 대중적으로 조직하고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선동’하면서 문제제기를 전면화하는 과정을 겪었다.

하지만 선거 결과는 천환규 집행부의 성립으로 나타났고, 철도노조는 무단협의 굴욕적인 상황을 상당히 경과해야만 했다. 그러나 현장 활동가들이 기획하고 주도한 서울지역 수색지구의 현장투쟁, 즉 안전운행집중투쟁이 승리(2002년 12월)하게 되면서 무기력한 철도노조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 이후 병점기지 자회사 기도에 맞선 차량투쟁, 성북투쟁, 부산차량 투쟁 등 현장투쟁은 철도노조 현장의 힘을 지키는 주요한 동인이었다.

현장투쟁의 힘으로 공간이 열린 철도노조는 2003년 4월 20일 파업돌입 직전 정기 단체협약을 비롯한 요구안을 일괄 타결했다. 이후 민영화법안 상정을 둘러싸고 대중 동력은 수직 상승했으나 천환규 집행부는 투쟁 기조를 변경했고, 이에 맞선 서지본의 투쟁이 진행되었다. 현장의 이러한 노력과 투쟁으로 결국 6.28파업이 조직되었으나 지도부의 백기항복으로 노조와 현장의 중심 지도력은 사상초유의 해고와 징계 등 집중포화를 맞았다.

현장은 패배의식으로 다시 일어서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노조는 직무대행 체제로 가다가 2004년 1월에 조기선거를 치렀다. 이 과정에서 현장 활동가들은 전병배 선본을 구성하여 이전 집행부의 활동에 대한 대중적 평가를 조직하고 구조조정 저지투쟁을 선전ㆍ선동했다. 그러나, 이러한 투쟁에 대해 서울지역과 차량직종에서는 환호했으나 다른 직종에서의 반응은 저조했다.

새로 성립된 김영훈 집행부는 공사전환을 앞두고 특단협 투쟁을 진행했다. 그러나 2004년 12월 3일의 특별단체교섭 합의는 그 추상성으로 인해 임금, 인력충원, 해고자 복직 등 어느 것 한 가지도 명확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5년 1월 정부는 상업형 공기업 체제인 철도공사를 출범시켰다.

2005년 9월부터 시작된 정기단협(과 특단협) 갱신투쟁은 12월 파업계획을 유보하는 곡절을 겪었다. 그러나 한풀 꺾인 파업투쟁 의지는 다시 상승곡선을 그리며 2006년 3.1파업에서 18,000명에 달하는 파업대오를 형성했다. 그러나 파업은 거점농성 후 산개 투쟁전술은 구사했으나 공사의 교란책을 이기지 못하고 3박 4일을 고비로 합의안 없이 복귀했다. 다만, KTX 승무원 파업이 견결하게 지속되고, 서울차량, 수색차량, 부산차량을 필두로 차량분야의 작업거부 투쟁이 확산되고, 여타의 직종에서 투쟁결의가 속속 터져 나오며 재파업의 가능성을 열어갔다.

그러나 집행부는 KTX승무원 파업지속과 차량직종의 작업거부 투쟁에 힘입어 공사를 교섭장으로 이끌어 냈으나, 지사개편, 성과급제, ERP구축 등의 구조조정에 동의하는 합의안 체결에 도장을 찍고 말았다. 이후 공사는 광범위한 징계국면을 끌어가면서 17개+3개 지사체계를 예정대로 안착시켰다.

2006년 11월. 철도노조는 임금교섭 투쟁을 맞아 쟁의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쟁의행위를 가결시켰고, 더불어 산별전환을 가결시켰다. 그러나 노사합의는 조합의 안보다는 공사안을 대부분 수용하는 것으로 조인되었다. 비정규직 임금요구안은 휴지가 되었고, KTX 승무원 투쟁을 방기했다. 해고자 복직요구안 역시 후퇴했다.



07년, 철도노조가 처한 현실, 그리고 단상


� 철도노조의 노자(노정)관계의 위기 때마다 현장투쟁은 그 돌파구였다.

결정적 시기에 지도부의 나약함은 대중의 역동성을 지속적으로 갉아 먹는다. 파업 이후 한없이 무기력으로 빠져들 때마다 어김없이 현장투쟁은 그 활로를 열어왔다. 그 중심에는 헌신적인 현장활동가들(간부역량)이 있었다.

한편 공사의 구조조정은 그것이 현실화 될 때마다 언제나 직종과 현장의 문제로 구체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합의 중앙지도력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언제나 뒤에서 지지 엄호하는 모양새를 취해 왔다. 이 때문에 단위 현장과 직종별 현장은 중앙지도력과 무관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이곤 했다. 비정규직문제 역시 새롭게 형성된 현장이고, 스스로 단결하고 투쟁하고 있다. 그나마 각급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지 못하면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고 구조조정은 관철되어 왔다.

이러한 사실과 정황은 매시기 터져 나온 각급의 현장투쟁이야말로 민주노조를 사수하고 구조조정을 저지하는 핵심적인 역량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동시에 구조조정에 대한 철도노조의 계획적이고 종합적인 대책과 치열한 실천적 태도는 늘 뒤쳐져 왔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후에도 현장투쟁을 위한 지도력 구축은 철도노조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우리는 모두 단위 현장(지부, 지구, 지역)의 활동력 구축을 위해 각고의 특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이미 단순한 노조간부 정도의 인식으로는 현 시기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분명하고 단호한 태도를 취하기 어렵다. 투쟁 회피와 보신주의를 극복하고 헌신적인 활동과 투쟁을 조직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공격에 대한 본질적 인식에 다다를 수 있는 활동가들을 양성해야 할 것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투쟁과제야말로 모두가 교육과 훈련의 소재이지 않은가!


� 철도노조 골간대오가 확고히 설 수 있다면 조합원 대중은 걱정할 것이 없다.

6년의 철도민주노조 운동은 투쟁의 역사였다. 지도부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는 매시기 투쟁에 나섰다. 철도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이 투쟁할 수밖에 없는 객관조건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오늘날 철도(공공부문)에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속도전에 가까울 정도로 몰아치고 있다. 그리하여, 비정규직이 늘어났을 뿐 아니라, 비정규직화에 반대하는 그리고 비정규직 내부에 투쟁의 주체가 형성되었다. 아직 정확한 통계조차 없으나, 철도에 종사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이미 1만여 명에 달하지 않을까 추산된다. 직접고용 비정규직도 3,000여 명이다. 더구나 이들 직접고용 비정규직은 또다시 외주화 공세에 시달리고 있으며, 공사는 정규직의 분사화(외주화)를 위해 포위해 오고 있는 실정이다.

철도공사가 그 첫 분사화를 시도한 것이 승무자회사다. 처음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인 KTX 승무원을, 다음에는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새마을 승무원을 자회사로 내몰고 있다. 그 다음은 정규직 승무원일 것이다. 철도공사는 약한 부분을 시작으로 점차 비정규직화, 분사화(외주화)를 확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구조조정의 파상공세는 철도를 사업별, 노선별, 지역별로 갈가리 찢어 놓겠다던 그 끔찍한 철도사업법을 급기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철도 공공성을 깡그리 훼손할 뿐 아니라 철도노동자의 생존권을 벼랑으로 몰아갈 것임을 철도노동자는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철도노동자는 매시기 놀라우리 만큼 대중적 역동성을 발휘해 왔다.


� 간부층의 지역적 편차를 극복할 특별한 방안과 계획이 필요하다.

철도는 이미 17개 지사와 3개 차량관리단으로 재편하여 지사별 무한경쟁을 제도화했다. 그 경쟁의 내용은 곧 비용절감이며 구조조정 경쟁이기도 하다. 약한 직종과 지역을 먼저 공격하는 공사의 생리,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현장의 힘, 기본단위의 역량배가가 더욱 긴요한 현실이다.

그런데 서울지역을 제외하고는 간부층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간부층의 심각한 지역적 편차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에 활동역량 배가를 위한 지속적이고 특별한 계획을 요구받고 있다 할 것이다.

한편 철도 민주노조의 저변은 모든 직종으로 확장되었으나, 투쟁의 역사성을 자랑하는 기관차 직종의 상대적 후퇴는 우려할 만하다. 그것은 지도적 인사들의 우경화를 의미한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래도 훌륭한 단결력을 보여 주고는 있지만, 철도노조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기관차 직종의 전투성을 다시 복원해야 한다.


� 핵심적 과제는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다.

현 시기 철도노동자의 핵심적 과제인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확대 저지를 중심으로 투쟁의 총역량이 발휘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제를 병렬적으로 나열하면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핵심적 과제를 중심으로 모든 활동이 배치되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그 결과로 빚어진 비정규직 문제다. 이미 정부는 철도의 상하 분리에 성공했고, 철도공사의 본사와 지사개편을 완료했다. 통째로 사유화하는 정책은 수정되었으나, ‘수평적 분사화’를 내걸고 노선별, 사업별, 지역별 분사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미 비정규직에 대한 구조조정부터 전면화하기 시작했고, 역무, 시설-전기 유지보수, 차량관리단 등 모든 직종에 대한 구조조정도 곧 시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노조는 지도부의 거듭된 실기와 나약함을 보여 왔다. 이는 활동역량 내부의 사안에 대한 태도와 정책적 입장 차이뿐 아니라 소통의 부재로 나타났다. 이로부터 조합원 간, 활동가 간 정서적 단절이 심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과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분명한 과제를 중심으로 총노선의 핵심을 설정한다면, 이로부터 총량의 역량이 발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한다면, 방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정부의 구조조정 파상공세 앞에 민주노조운동은 그 기로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철도노조 중앙의 올곧은 지도력, 총역량이 발현될 수 있는 지도력 구축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나가며


철도노조는 12월 26일 운수노조 창립 대의원 대회를 진행했다. 1월 중순이면 철도노조 정기 총선거를 진행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논의는 과제를 중심으로 접근해야 해야 할 것이다. 차이는 분명히 하되 공동지반은 지속적으로 넓혀가야 한다.

민주노조 운동의 위기가 심심찮게 운위되고 있는 즈음에 철도 민주노조 역시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따라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나아갈 방향을 다 같이 만들어가야 한다. 그리하여, 공사측의 완강함으로 볼 때 결코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2007년 투쟁을 능동적이고 자신 있게 준비해야 가야 할 것이다. <노사과연>



철도 민주노조운동의 현실과 고민



김형균 |회원 , 전국철도노조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