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비정규 악법 시행 전후

―'비정규직 투쟁을 거세하라'(?)



"파업 하루면 내 피 같은 일당이 날아가지만, 더 이상 당하고만 있을 수 없다”, “우리는 너무 많은 불법 부당한 방법으로 자기 생계가 달린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기 때문에 파업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이랜드와 뉴코아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하면서 했던 말이다. 올해 초 현대차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에 맞선 성과급 투쟁이 서막을 장식하는가 싶더니 어김없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다. 학교 비정규직과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노동3권 쟁취 투쟁에 나섰다.

올해 들어 작년 말 개악된 비정규직 악법 시행이 7월로 다가옴에 따라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초단기계약직으로 재계약되고 노동조건이 더 개악되거나, 해고되기 시작했다. 기간제법이 신설 제정되고 파견법이 확대 적용되는 것으로 개악되자마자, 경총은 이 비정규직법조차 피해가는 매뉴얼 지침을 냈고, 이에 질세라 노동부 역시 뒤지지 않을 시행령을 내놓았다.

비정규직 악법은 열우당과 정부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너무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 차원에서 법을 개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몇 년간 노동계에서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했듯이, 이 법에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한 내용이 결코 없었다.

실제로 기간제 법의 내용 역시 임시 계약직 노동자들을 2년이상 고용했다면 기간을 정하지 말고 무기계약직으로 채용해야 한다는 것이지만, 무기계약직이 곧 정규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장기간 비정규직을 고용했을 때 정규직화 하라는 강제 의무제가 아니다. 오히려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계속 비정규직 노동자로 고용을 ‘보장’하면서 정규직과의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법제도이다. 즉 원청 자본에게 직접 고용되거나 정규직화 되더라도 비정규직의 노동조건에 대한 정규직과의 동일 적용 등에 대해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 등이 향상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거꾸로 말하면 2년 전에 해고하거나, 2년 미만의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착취를 허용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한 파견업종 역시 허용 대상을 더 많이 늘렸다는 점에서 비정규직 ‘보호’법! !안이 분명히 아니다!

이 뿐만 아니다. 기간제 법은 ‘임금과 노동조건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리하게 처우하는 차별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의 차별금지는 “해당 유사 업무의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노동자들과의 차별”(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노동자가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경우에 차별을 하는 경우)을 금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거꾸로 말하자면 업무가 달라서 비교대상이 없어지면 차별이라 할 수 없다는 법 규정을 이용해서 비정규직 별도직군을 만들어 따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관리하면 ‘불합리한 차별’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최근 우리은행의 3천명 정규직화로부터 시작된 금융권의 ‘정규직화’ 사례 역시 정규직 노조의 대폭 양보교섭과 희생의 결과이며, 직군을 따로 만들어서 합리적으로 차별하겠다는 의미의 ‘정규직을 포함한 전체 노동자의 차별 합법화’이다!

이러한 개악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이 법을 피해서 비정규직 계약직을 계속 착취할 수 있는 방법들을 구상해서 매뉴얼로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기간이 정해진 사업이나 특정 프로젝트일 경우, 결원으로 인해 대체 근무하는 경우, 또 노동자가 직업훈련 교육 중이거나 전문직종 혹은 55세 이상의 고령노동자에 대해서는 임시 계약직이나 파견노동자를 계속 사용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이다. 이처럼 예외조항이 매우 포괄적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자본가는 언제라도 이러한 근거를 갖다 붙여서 비정규직을 거의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또한 2년 초과 시 무기계약직 전환 규정은 자본이 지키지 않아도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에 있으나마나 한 법이다. 이 법이 적용된다 한들 직군 분리를 통한 합법적 차별이 가능해, 노동자간 분열을 촉진시키는 법 제도임이 분명하다!

그나마 자본은 오히려 계약직 노동자들을 수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직으로 고용해 이 법조차도 교묘히 피해가고 있다. 2년까지만 임시직 노동자를 사용하고, 그 노동자들을 계약해지로 해고시켜버리고 다른 임시직 노동자를 다시 채용해서 2년 바로 전까지만 사용하는 방법을 반복할 수 있다! 이런 방법은 이미 파견제에서도 이용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서 어떤 노동자가 2년간 임시직으로 일했는데 그 회사에서 정규직을 채용하게 되면 다행히 우선 채용되어 정규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예외 규정에 걸리거나 정규직 채용계획이 없으면 결국 해고되고 다른 임시직 노동자들이 들어오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법 이전부터 외주 용역화에 저항하면서 투쟁해온 KTX 승무 노동자들이 있다. 얼마 전 500여일을 넘긴 KTX 승무원들의 투쟁은 정규직 내부의 구조조정 저지투쟁과 결합되어야 하는 중요성을 활동가들에게 깨우치는 투쟁이었다. 물론 개량주의 지도부의 백기항복에 의해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좌절되었을 때에도 굴하지 않고 투쟁해온 의미 있는 투쟁이다. 정규직 개량주의 지도부가 자신의 노사협조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위해 승무원들의 투쟁에 대해서 물심양면 지원을 했지만, 노동자들의 투쟁의 최대 무기인 단결과 파업투쟁을 공동으로 만들어내지 못한 한계를 갖고 장기 투쟁이 되었다. 또한 어용한국노총 산하의 신길운수 해고자 투쟁이 1000일을 훌쩍 넘겼고, 대한항공, 그 외 버스, 택시 등 많은 어용 산하 노동자들의 민주노조 건설과 해고자 복직 투쟁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 불과 10년 전만 해도 1년 이상 투쟁하는 일은 흔치 않았다.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500일이 넘는 투쟁을 시작으로, 이랜드의 정규직화 투쟁과 현대차 기아차 등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투쟁과 특수고용노동자들의 투쟁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는 이런 장기투쟁이 흔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최근 몇 년간 전개되는 투쟁의 99%가 비정규직투쟁이요, 장기투쟁이다.(최근에 전개된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2002년 발전노조 투쟁과 그 후 계속 백기항복해온 철도와 서울지하철 투쟁이 주요한 투쟁이었다. 그리고 금속자동차 사업장들의 임투 등이 아주 짧은 기간 전개되었다.)

그러면 왜 현시기 대부분의 투쟁이 장기투쟁이 되고 있는가? 그것은 자본주의의 위기의 심화에 따른 고통을 노동자 민중에게 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전가시키면서 위기를 해결하려는 것에 원인이 있다. 현 자본주의체제는 과잉생산이 극에 달하여 항상적 위기에 처해있다. 우리에게도 이미 90년대 말 이후로 경제위기는 항상 잠재되어 있다. 때문에 자본 역시 현재 호황이라 해도 상시적 구조조정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체제에서 비정규직의 확대와 정규직에 대한 비정규직화 공세, 구조조정 공격은 필연적이다. 전반적 위기의 시대에 처한 자본도 물러서지 못 하는 것이다. 자본은 가장 조직화가 덜 되어 있으면서 약한 고리라 생각되는 비정규직에 대한 공격으로부터 출발하며 노동자들의 저항을 짓밟고자 한다.

최근 일련의 비정규직 투쟁들은 투쟁 사안(요구)이 계약해지와 노동조건의 악화에 맞선 고용보장과 노동조건 개선 요구이다. 이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은 가장 열악해서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물러설 곳은 없다. 그만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격렬하고 단호하다. 한편 민주노총, 특히 과거 선봉에 섰던 금속노조를 보더라도, 장기투쟁,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의지와 전선구축은 매우 부족하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단위사업장에서조차도 고립되어 전체 노동자의 투쟁이 되지 못하여 생산을 정지시키지 못한다. 생산이 지속되는 한 자본은 얼마든지 버틸 수가 있는 것이다. 결국 소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극한적 투쟁에 의해 대치상태는 지속되어 십중팔구는 장기화된다.

그러나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들은 이러한 신생노조 혹은 초기의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다가 자본의 폭력이 자행되고 장기투쟁이 되면, 특히 개량주의자들은 사회적 대화 혹은 협상을 원활히 진행하기 위해서 장기투쟁, 비정규직 투쟁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하기를 원하게 된다. 이때부터 쟁점으로 떠오른 장기투쟁사업장문제를 사회적 협상의 의제로 제기하면서, 투쟁주체들에게는 투쟁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고, 협상에만 끌어들이려 한다. 그것을 수용하면 오로지 투쟁은 협상을 위한 압박의 수단으로 전락하여, 협상은 현장투쟁력과 파업의 힘으로 추진되지 않고 대국민여론전에 기대게 된다. 그리고 전국 혹은 해당지역의 노동자대회 등의 일회성 집회를 열고 다시 상급단위 자격으로 나서서 물밑협상을 진행하고 투쟁의 핵심요구와 목표와 상관없이 오로지 양보교섭으로 노사파트너관계! ! 형성에 주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현재 비정규직, 장기투쟁에 대해 대부분의 산별, 총연맹 협상주의자들이 보여준 태도이다.

이러한 관료주의자들의 투쟁을 회피하는 태도는 올해 민주노총의 핵심투쟁 중의 하나였던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쟁취 입법화 투쟁” 과정에서도 확인되었다. 화물연대, 학습지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그간의 투쟁들을 입법화투쟁에 쓸어담아 민주노동당에게 올인 했지만, 6월 국회 입법이 무산되자 민주노총의 특수고용노동자 투쟁 역시 잠잠해져버렸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투쟁을 통해 보여준 한계는 입법화를 위한 의회주의, 민주노동당과의 동거에 있다.



노사관계 로드맵 시행 전초전

―'비정규직 투쟁의 독자성을 거세하라!' 산별 종이호랑이 노조 만들기!


위에서 살펴본 바대로 현재 전개되는 다수의 투쟁이 구조조정 투쟁이며 그 한복판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체로 서 있다.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들의 파업투쟁은 이러한 외주 분사 확대에 맞서고, 비정규직 악법의 결과로서의 비정규직 대량 해고와 선별 무기계약직화에 맞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투쟁이다. 금융권과 서비스, 공공부문 등에서 이어지는 ‘정규직화’의 진실이 극히 부분적인 무기계약직화일 뿐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정권과 자본의 의도가 관철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연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과로 부분적인 성과지만 계약해지를 저지했고, 고용보장과 노동조합을 사수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하이닉스 투쟁의 사례와 같이 금속 본조의 양보교섭의 결과로 노조 자체가 사라지는 안타까움도 겪고 있다. 산별노조의 관료주의 세력들은 산별노조 시대라면서 산별노조를 자본과 정권으로부터 인정받겠다는 일념 때문에 노동자들의 무기인 파업 투쟁의 권한을 한발 양보하면서 산별교섭에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단적인 사례가 바로 기아차지부(기아차 정규직노조가 기업지부로 명칭이 바뀌었음)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직가입이다.

기아차지부는 작년 금속산별 완성 대의원대회의 규약 개정 사항 중의 하나인 ‘1사1조직 편제를 원칙으로 한다’는 것을 근거로 해서 비정규직지회의 조합원들을 지회에서 탈퇴시켜서 정규직지부에서 직가입을 받기 시작했다. 4월부터 직가입한 비정규직 노동자들 중에는 지난 몇 년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할 때 구사대 노릇을 한사람도 있고, 투쟁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하청업체와 정규직지부에 의해 조직된 경우들이 많다. 혹은 비정규직지회는 너무 투쟁만 하니까 정규직지부에 들어오면 투쟁을 덜해도 정규직과 같은 대우를 해주겠다는 회유에 넘어온 조합원들도 많다. 분명히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에서 1사1조직이 원칙이지만 해당조직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지회와의 합의나 존중 없이 조합원들을 빼내고 있다. 이러한 사실상의 선전포고!에 대해서 비정규직지회는 일찍이 조합원 총회를 통해서, 계급적 단결을 위한 조직통합은 공동의 투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와 투쟁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지부는 이러한 비정규직지회의 총회마저 무시하고 계속 직가입을 진행해왔다. 금속노조 중앙에서는 “논의가 정리되기 전까지는 직가입 추진을 중단한다”는 결정을 했지만, 정규직지부는 보란 듯이 계속 직가입을 추진했다. 물론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은 비정규직지회에 대해서도 총회를 중단하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공문을 직권으로 여러차례 보내기도 했다.

정규직지부가 비정규직지회에 대해서 조직적인 논의와 공동투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오히려 일부 조합원들을 빼내는 방식을 취하는 것은 분명하게 비정규직지회라는 조직에 대한 파괴공작이다! 그것은 단순히 직가입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하나되어 투쟁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을 정규직 관료들의 손아귀에 쥐려는 수작인 것이다.


얼마 전 파업투쟁 건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비정규직지회 간부들에게 담당 검사는 “현재 기아차지부가 추진하는 조직편제는 비정규직지회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여, 당사자인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당혹해 했다. 도대체 어쩌자고 자본가의 첨병들에게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한단 말인가?”(기아차비정규직지회 조합원)


그 의도는 다른 사례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같은 기간 현대차지부(정규직노조)는 대의원대회에서 비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직가입 추진 안건이 부결되었다. 몇 년 동안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동투쟁을 외치면서 직가입이 추진되었지만 정규직 노동자들을 조직하지 못해 결국 직가입은 추진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기아차에서는 정규직이 집요하게 직가입을 추진하고 현대차에서는 여러 차례 직가입이 부결되어 추진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전에는 정규직 지부 관료들은 현대차의 경우처럼, ‘현장에서 조합원들이 비정규직과 함께 하면 자신들의 고용과 노동조건이 열악해질까봐 불안해한다’고 “현장정서”를 근거로 비정규직 직가입 추진을 회피했다. 그렇다면 지금 기아차의 경우는 현장 정서가 다른가? 물론 기아차에서는 2005년과 2006년 내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 파업을 통해서 라인을 세우면서 목숨을 건 파업투쟁과 노조 사수투쟁을 해왔고 그 과정에서 정규직노조 지도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협박을 하면서 양보교섭을 강요했다. 하지만 정규직 현장노동자들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현장에서 자발적이며, 활동가들의 의식적인 연대투쟁의 힘을 발휘하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해온 바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없던 연대감이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같은 노동자의식 하에서 자본이 분리 공격해오는 것에 대한 자기 방어력,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 등의 문제에서의 정도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라 본다. 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파업투쟁을 하는 것을 겪으면서 상호 신뢰와 단결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장노동자들의 연대감의 유무가 직가입여부를 결정하게 만든 것은 아닐 것이다. 어느 때는 현장에서 원하지 않는다고 직가입을 거부하다가, 어느 때는 상관없이 직가입을 추진하는 것은 “현장노동자들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조간부들이 자신의 필요-교섭주의-에 따라 방침을 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떤 산별노조를 만들어갈 것인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려고 하는 독자적인 투쟁, 현장조직력을 토대로 해서 상호 연대의식과 공동투쟁으로 계급투쟁을 강화해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국가와 자본은 노동자운동의 약한 고리라 생각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확대하여 자신들의 위기를 해결하려고 하고, 노동운동내에 관료주의와 개량주의를 강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비정규직 노동자운동은 현시기 자본주의체제에서 계급투쟁의 핵심이요, 비정규직의 독자적 투쟁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운동이 살아남는가, 강화되는가 여부는 전체 노동자운동의 존폐, 특히 산별노조의 계급적 강화를 가늠하는 핵심이다.

이번 07년 상반기 투쟁은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부터 끝까지 전면에 섰다. 민주노총은 정치투쟁을 산별노조는 산별중앙교섭투쟁을 전개했다. 그런데 민주노총과 산별노조는 FTA반대 정치파업에서도 국익을 위한 정치파업이라면서 생산에는 전혀 타격이 없도록 하겠다는 다짐을 여러번 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파업 자체를 반대하는 정권과 여론에 밀려서 현대차는 부분파업을 철회하면서 마지못해 상급의 결정이라 하루파업을 진행했고, 그 외의 금속노조의 핵심인 대공장 기업지부들은 파업을 수행하지 않았다. 심지어 삼호중공업 집행부는 당일 파업시간 직전에 일부 어용대의원들에 밀려 파업을 철회(실패)하면서 총사퇴했다. 이렇게 금속노조 대공장에서 정치파업은 실패했다.

그리고 이를 '거울'삼은 금속노조 관료적 지도부는 곧바로 산별중앙교섭 성사로 방향을 전환했다. 하지만, 이전의 금속노조에서 합의된 내용인 “고용보장과 구조조정시 합의 및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조건 개선” 조항을 새로 출범한 산별노조 전체에 적용하는 문제는 7월말 타결이라는 시한부 교섭조건에 밀려서 합의되지 못했다. 오히려 정갑득 지도부는 이번에는 완성차 자본들이 내년 산별중앙교섭부터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확약서 쟁취투쟁으로 투쟁기조를 전환시키고, 대공장 기업지부들의 독자적으로 임투를 진행하면서 산별교섭을 방치하는 것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용인해주었다. 기아차 지부가 교섭 막바지라 할 때는 금속노조 중앙이 숨죽여 기다렸고, 대우, 기아가 잠정합의를 했을 때는, 노사 공동으로 논의를 해봐서 내년 산별중앙교섭에 참여할지 말지 생각해보자는 것을, 산별중앙교섭 확약서를 쟁취했다면서 승인했다.

이처럼 현 시기 산별노조를 추진하고 산별교섭에 목매달았던 관료주의세력들의 산별노조에 대한 목표가 무엇인지는 올해 상반기 투쟁과정에서 더욱 분명해졌다!

이미 비정규직 악법이 시행되면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되고 투쟁하는 마당에, 그리고 노사관계 로드맵이 시행을 앞두고 현장에서는 물량 경쟁과 배치전환, 구조조정으로 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고용불안과 노동조건이 악화되는 양보교섭을 강요받는 판에, 산별노조는 이러한 현장의 문제들을 전국적으로 묶어세우지 못하고 추상적인 '고용보장 노력'이라는 문구에 매몰되고 최저임금의 형식적 인상을 근거로 정규직과 산별노조 전체의 양보교섭을 합리화시키고 있다.



현 시기 노동자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산별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을 포함하는 “동일 단협 쟁취”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는 장기투쟁을 적극 엄호하고 전국화 시켜야 한다. 대부분의 투쟁이 중소영세사업장이 매각되면서 발생하는 고용과 생존권 관련 투쟁이거나,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한 계약해지에 맞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다. 비정규직 확산 저지, 구조조정 저지와 비정규직 철폐투쟁은 언젠가는 쟁취되어야 할 것으로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실의 투쟁 속에서 임금과 단협 동일적용을 요구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공동투쟁이 산별노조의 투쟁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이는 산별교섭에서뿐만 아니라, 지부 지회 교섭과 구조조정 대응과정에서도 일관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현장의 구조조정 투쟁을 모아서 산별 노동자들의 공동요구로 대응해야 한다. 기업경쟁력과 능력별 대우라는 이름으로 다시 도입되고 있는 인사고과와 성과주의는 물론이거니와 물량 경쟁을 부추기면서 현장을 분열시키고 외주 도급화를 추진하는 자본의 구조조정 공격에 전면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현안문제들을 투쟁 요구로 받아 안고 현장투쟁들을 산별노조의 전국적 요구와 투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산별노조 본조만의 파업권만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투쟁을 엄호할 수 있는 현장파업권을 지켜야 한다. 현장투쟁을 전국화시켜 투쟁의 성과로, 그리고 다른 산업과 비정규직 등 전국의 노동자들의 성과로 확대시켜야 한다.

우리는 노동조합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것,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노동조합투쟁과 함께 전진해 갈 정치투쟁이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고 있다. 그러나 산별노조 전환 과정에서 ‘어려우니까 조직 통폐합으로 규모만 키우고 대화와 협상에만 매달리는’ 무늬만 산별노조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전망을 현실투쟁에서 결합시키는 것 역시 현장투쟁의 기반과 대중투쟁을 통한 검증 없이 조직들이 통합한다고 해서 전진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산별노조의 교섭에 대해서도 합의 가능한 요구와 교섭으로 후퇴시키는것이 아니라, 자본의 요구와 본질을 폭로하는 장으로 활용해야 한다. 산별다운 투쟁과 현장의 투쟁들을 제대로 엄호지지 하지 못하고 있는 현 시기 산별노조의 중앙교섭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사수하고 구조조정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울타리가 될 수 없다. 산별노조의 중앙교섭과 중앙지도부의 역할은 자본이 중앙교섭에 참여하도록 애원하고, 합의가 가능하도록 요구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교섭도 노동자들의 투쟁의 힘을 통해서만 효과를 발휘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앙교섭 역시 현장투쟁들과 결합하고 전국적인 요구와 투쟁기조를 모아내어 그 투쟁의 성과로 자본이 산별교섭에 참여하게 해야 한다.

교섭과 투쟁 방침은 조직력, 투쟁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쪽(그게 기업지부든 지역지부든 본조든 상관없이)이 공동투쟁을 유지하고 강화할 수 있도록 전체적으로 강제해 가야 한다. 산별교섭도, 산별노조도 노동자 해방투쟁의 수단임을 분명히 하자. <노사과연>



2007년 상반기를 되돌아보며



허은영 | 회원, 노동자정치협회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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