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본주의 축적양식의 변화와 노동자계급의 변혁 전략

한국자본주의 축적양식의 변화와

1. 머리말


세계경제가 가라앉고 있다. 유럽, 일본 등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고 중국은 주가가 반토막났고 미국의 경우 써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파장으로 경제가 침체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경제의 침체에 대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 혹은 전망과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세계 각국 정부가 이러한 경제의 침체에 대해 경기부양책으로 수십조 원씩에 해당하는 처방을 하지만 그러한 부양책이 세계경제를 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구나 세계경제는 투자처를 잃은 자본들의 석유, 식량 등에 대한 투기로 인해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지금의 세계경제는 신자유주의로 인한 금융자유화로 인해 그 부패와 기생성의 정도가 극 에 달해 있는 상태이다. 그에 따라 세계각지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은 투쟁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다.

1917년 인류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던 러시아 혁명은 제 1차 제국주의 전쟁 이라는 자본주의 세계의 전반적 위기의 결과였다. 따라서 세계경제 전체가 가라앉고 있는 지금은 다시금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가 격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이 변혁 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에서 분석했듯이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사슬이 끊어진다는 전망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수출주도의 경제 혹은 대외적 의존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국경제도 세계경제와 더불어 침체로 빠지고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의 관철로 인하여 투기자본들의 천국이 되었고 극단적 빈부격차, 비정규직의 확대, 농 업의 몰락, 사회보장의 미비 등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에 대한 착취와 수탈의 무대였다. 자본주의가 자신을 유지하고 정당성을 얻는 유일한 지점은 생산력의 발전이다. 그 러나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는 과잉투자에서 과소투자로 전환되어 생산력 발전이 일정하게 정체되고 있고 대신에 신자유주의 금융자유화로 인해 투기자본과 금 융자본의 약탈적 성격은 더욱 더 강화되어 갔다.

이러한 상태에서 맞게 되는 세계적 차원의 경제침체 혹은 공황의 시작은 변혁 운동을 촉진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변혁운동의 조건으로서 한국경제의 축적양식의 변화를 추적하는 일은 긴요하다. 이 글에서는 한국경제에 대한 접근에 있어서 축적양 식의 변화를 계급투쟁의 조건의 변화라는 점에서 고찰하고 다른 한편으로 ’80년대 운동을 과학적으로 정초했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을 계승하는 입장에서 한국 자본주의를 분석하고자 한다.



2. ’80년대 축적양식의 변화


지금의 세계경제의 침체에 한국경제가 긴밀히 연동되어 있고 같이 침체하는 것처럼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와의 관련 속에서만 고찰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맑스가 사적 유물론에서 정립했던 사회구성체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일국의 사회를 분석할 때 생산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토대분석과 그에 기초하는 상부구조, 즉, 국가, 이데올로기 등을 통일적으로 고찰하는 맑스의 방법론은 그 과학성에서 여전히 유효 하다. 따라서 한국경제를 고찰할 때 세계경제와의 관련 속에서 고찰하는 것은 맑스의 사회구성체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풍부하게 고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욱이 미국에 대한 신식민지성이 여전한 한국경제는 세계경제 특히 미국과의 관련성 속에서 고찰할 때 그 축적의 양식과 변화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


1) 세계경제의 조건의 변화

1980년대의 한국경제도 세계경제와 관련할 때 그 변화의 원인과 추이가 이해 될 수 있다. 1980년대의 한국경제는 1970년대의 세계경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즉, 1970년대 세계경제를 규정했던 석유위기와 두 차례의 세계공황의 결과 1980년대의 한 국경제의 구조가 성립했던 것이다.

1970년대의 세계공황은 달러체제의 붕괴, 케인즈 경제학의 파산, 자본주의세 계의 신자유주의로 전환을 가져왔다. 그리고 세계공황의 양상이 석유위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중화학공업의 구조조정이 세계적 차원에서 진행되었 다. 이는 국제적 분업구조의 변화를 야기했는데 기존에 에너지 다소비형, 원자재 다소비형의 중화학 공업이 미국, 유럽, 일본 등의 선진제국에서 발전도상국으로 이전되 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었다. 이러한 국제분업구조의 재편은 다른 한편으로 극소전자(ME)기술을 축으로 하는 과학기술혁명에 의해 촉진되었다. 컴퓨터, 전자산업을 축으 로 하는 과학기술혁명에 따라 선진자본주의국은 첨단산업을 특화하고 노동집약적 중화학 공업을 한국, 대만, 브라질, 멕시코 등에 넘겨주었던 것이다.


2) ’70년대 중후반 중화학공업화와 공황

국내의 강제저축, 국외의 차관 등을 도입하여 1970년대 중후반에 걸쳐서 철강 , 자동차, 석유화학, 기계, 전자 등의 중화학 공업이 급속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화학 공업화는 국내시장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니라 수출을 전제로 하는 것이 었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침체로 빠지자 이들 중화학 공업의 가동율은 매우 저조했다. 1980년 당시의 주요 중화학공업의 가동율을 살펴보면, 제 1차 금속만이 74.8%로 제조업평균 가동율 71.8%를 웃돌고 있을 뿐 기계 42.3%, 전기기기 58.6%, 비철금속 62.0% 등 대부분 업종의 가동률이 저조하여 투자과잉이 심각했다는 것을 보여준다1). 이러한 상황이 빚어진 것은 국내산업과의 관련 속에서 중화학공업화를 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 분업관련 하에서 중화학 공업화를 한 것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이 태생적으로 존재하였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이는 중화학공업의 주체로서 재벌 혹은 독점자본들이 그 생산물의 가치실현을 위해 제국주의에 예속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러한 재생산과정의 예속성이 한국경제의 신식민지적 성격을 규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과잉투자된 중화학공업화는 한국경제 전체의 거대한 부실화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1979년, 1980년의 세계공황이라는 상황에서 한국경제는 60년대 이후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의 정치상황을 극도로 긴장시켰고 부산ㆍ마산의 민중항쟁을 계기로 박정희 정권은 무너지게 된다.


3) ’80년대 전반기의 경제안정화 정책

1980년의 민주화의 봄과 광주민중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한 전두환 정권은 경제 에서 강력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이는 공황으로 확인된 중화학공업의 과잉투자를 해소하고 재벌들의 축적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거대한 자본을 특혜배분하고 인수합 병을 강제하는 것이었다.

5차례에 걸쳐 시행된 78개 부실기업정리에서 금융기관 여신이 9조 7,825억 원 , 원금면제, 원금 또는 이자유예ㆍ감면 등의 금융지원이 7조 2,824억 원, 조세감면 2,414억 원, 한은특융 1조 7,222억 원 등 총 19조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특혜 가 재벌들에게 이루어졌다. 이는 ’87년 당시 5인 이상 제조업 상용노동자 1년간 임금총액 11조 5천억 원의 1.6배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특혜였다. 그리고 이러한 부실기 업이 대부분 막대한 특혜와 함께 독점재벌들에게 인수되어 독점재벌이 해당업종별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2).

이렇게 경제안정화 정책을 통하여 한국의 독점자본은 축적의 위기를 극복하게 된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부실기업정리에서 드러나듯이 국가권력을 지렛대로 한 자본의 집중을 통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환율의 인위적 인상을 통한 수출의 증 대를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안정화 정책, 부실기업 정리, 독점재벌에 대한 특혜는 노 동자와 민중에 대한 가혹한 착취와 수탈에 기반한 것이었다. 노동자는 노동시간의 절대적 증가와 생산성 향상을 밑도는 실질임금으로 그리고 농민은 추곡수매가 동결과 농산물 수입개방의 확대로 착취와 수탈을 당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의 축적구조는 민중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87 년 6월 항쟁을 통하여 민중들은 지배체제에 도전했고, 노동자와 민중들에 대한 가혹한 수탈과 초과착취에 기반한 축적체제는 위기에 직면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정치 적 상부구조를 이루고 있었던 파시즘은 와해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독점자본과 미제국주의는 양보, 개량을 통하여 돌파구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 러한 개량확대의 물적 조건이 바로 1986-88년도의 3저 호황이었다.


4) ’85년 플라자 합의와 3저 호황

한국의 독점자본과 지배계급을 구원했던 3년간의 3저 호황은 한국자본주의의 내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저달러, 저금리, 저유가를 말하는 3저는 한국자본주의의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생적인 요인이었다. 이 점 또한 한국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을 세계경제와의 관련 속에서 진행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3저의 조건 중에서 핵심적인 저달러는 일본의 통화인 엔고(円高)와 맞물리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에 비해 수출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고 수출이 비약적으로 증대되고 한국경제 전체가 3년간에 걸쳐 연 10%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달러가 저평가되고 엔고가 시작된 것은 1985년의 플라자 합의에서 비 롯된다. 1980년대 들어 미국경제는 달러의 인위적인 고평가로 인하여 무역적자와 재정적자가 심화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쇠퇴하는 미국의 생산력을 반영한 것이었지만 여전히 군사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힘이 막강했던 미국은 자국의 이러한 문제점을 일본과 서독 등 성장하는 제국주의 세력에게 전가할 수 있었다. 그에 따라 달러를 저 평가하고 대신에 엔화와 마르크화를 고평가하여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확보하려한 것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경제가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 바로 3저 호황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3저 호황은 지배계급으로서는 위기를 탈출하는 것이었고 개량의 확대 를 가능하게 한 것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축적양식의 변화라는 점에서 보면 기존의 섬유와 신발 등 경공업의 가공무역형 경제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의 무역구조로 일대 비약을 하게 한 것이었다. 그에 따라 한국의 산업구조 또한 고도화의 길로 접어든 것이었다. 1980년대 중반기까지 이른바 경제안정화정책이라는 공황에 대한 수습 에 정신없었던 지배계급은 3저 호황으로 인해 공황의 상처를 치유하고 도약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를 계기로 한국은 전자, 자동차, 철강, 기계, 석유화학이 국제적 경 쟁력을 갖는 산업구조로 변모되었고 국제분업의 구조에서 한 단계 지위상승을 한다.

그러나 3저 호황으로 인해 한국의 축적 구조가 고도화되는 양상을 보이지만 근본적인 축적구조가 변한 것은 아니었다. 즉, 국내적 산업연관이 부실한 가운데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열위의 생산기술로 해외시장에 의존하는 축적구조는 여전한 것이 었다. 이러한 축적구조는 일시적인 양보, 개량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구조가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지배계급의 경제적 실력이, 따라서 정치적 힘이 증대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1989년의 3당합당, 나아가 민주화 투쟁을 했던 김대중 등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체제내적 포섭으로 나타났다.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에게 권력의 일정한 지분과 집권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었다. 이로써 ’80년대의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민족민주변혁은 유산되고 지배체제는 파시즘에서 제한된 부르주아민 주주의로 서서히 이행하게 된다.


5) 대외개방과 산업구조조정

그러나 3저 호황은 한편으로 무역흑자의 누적으로 인해 ’80년대 중반기까지 의 외채위기를 해소하고 축적구조의 고도화를 촉진한 것이었지만 대외적으로는 개방압력의 심화를 가져왔다. 무역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이 거세게 수입개방압력을 가중시 켰던 것이다. 이에 따라 농산물 등 수입개방이 시작되었고 나아가 ’80년대까지의 상품시장의 수입개방에 더해 이제는 자본시장의 개방압력이 심화되었다. 독점자본은 이전에 시장의 상실을 우려하여 개방에 반대했으나 이제는 개방이 대세라 인정하고 개방압력을 활용하여 산업구조조정을 하고 대외적 진출을 모색하는 계기로 삼는다. 1987년에 이르면 상품수입자유화율은 93.6%에 이르고 외국인의 직접투자 자유화율은 제조업의 경우 91.5%에 이른다3). 또 자본시 장 개방의 전제로서 외환자유화가 진행되었다. ’88년 11월 IMF 8조국에 가입하여 외환자유화가 실현되었다.

한편 이러한 대외개방압력을 지렛대로 하여 한국의 독점자본은 산업구조조정 을 진행한다.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1980년 51.2%에서 1989년 61.3%에 이른다. 그리고 산업생산은 1980년을 100으로 하면 1989년에는 276을 기록하여 생산규모가 2.8배 증가한다. 1인당 GNP는 1,592달러에서 4,968달러로 늘어난다. 노동생산성도 1980년을 100으로 할 때 1989년 279.5로 연평균 12.1% 증가한다4). 그러나 이러한 일정한 양적 성장은 있었지만 대외적 예속성을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오히려 대외적 예속성은 심화의 길을 걷는다 . 기술수준의 대외적 종속성을 결정하는 자본재의 경우 총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80년의 23.0%에서 1989년 35.9%로 높아졌다. 이와 함께 합작 및 외국인 기업이 늘 어났다. 1989년 합작 및 외국인 기업은 생산과 수출에서 각각 25.5%, 43.2%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대외적 종속성의 심화와 더불어 자본의 집중과 독점자본의 영향력 은 신장되었다. 중소기업의 독점자본에 대한 하청화 비율이 1977년의 16.1%에서 1988년 59.1%로 높아졌다. 이는 독점자본의 지배력의 강화를 보여주는 것인데 이에 따라 독점자본에 하청계열화되지 않는 중소자본은 축적의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편 3저 호황은 3저라는 가격변수의 조건이 작용하는 가운데 기존의 설비를 확장하는 방식이었다. 즉, 외연적 축적의 확대였던 것이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 등  노동자계급의 저항의 확대로 인해 자동화를 확대하는 내포적 축적의 확대가 강화되었다.

이렇게 1980년대 후반의 한국경제는 3저 호황을 배경으로 한층 축적구조를 고 도화했으나 그것은 자본, 시장, 기술의 측면에서 대외적 종속성을 심화하는 것을 통한 것이었다.



3. 90년대 축적양식의 변화


1) 아시아 NICS와 라틴아메리카의 차별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대만 등의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과 라틴아메 리카의 브라질, 멕시코 등의 경우는 신식민지적 규정하에서 제국주의에 수탈당하는 비슷한 경제구조를 갖고 있었다. 이는 198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브라질, 멕시코 등 이 외채위기에 내몰렸던 것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한국 등은 3저 호황을 겪으며 외채 위기를 해소하고 자본축적 구조를 고도화한 반면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외채위기로 IMF의 지배를 받으며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러면 이렇게 아시아 NICS와 라틴아메리카를 차별화시킨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그것은 한국과 대만이 미제국주의의 반공의 전초기지였다는 것으로 일부 설명 할 수 있으나 정치적 조건만으로 그러한 차별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따라서 아시아 NICS와 브라질, 멕시코 등과의 차별화는 국제적 분업구조의 변화에서 찾는 것이 타당하다.

멕시코, 브라질은 국토도 넓으며 인구도 많고 자원도 풍부하다. 즉,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할 능력이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미국 등 제국주의 자본의 직접투자가 많았고 이들 자본은 대외적 수출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브라질, 멕시코의 시 장 자체를 목적으로 투자된 경우가 많았다. 이들 나라의 경우 주요 제조업의 경우 제국주의자본의 장악력이 매우 강하다. 특히 1980년대의 경우 이들 나라들은 수입대체 공업화를 위하여 많은 외자를 들여왔으나 이것이 실패하면서 외채위기에 내몰렸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들 나라는 국제분업구조에서 전통적인 중화학공업은 이전받았으 나 전자산업 등 첨단산업의 이전은 거의 없었다. 반면에 한국, 대만 등은 1970년대 후반부터 전통적 중화학 공업만이 아니라 과학기술 혁명의 최근의 성과인 전자산업 등을 국제하청을 받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국제분업구조가 형성된 이유는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으나 동아시아의 경우 양질의 노동력이 저렴한 임금으로 존재했다 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1970년대 후반 ’80년대 초중반의 경우 한국과 대만은 파시즘 하에서 임금수준이 라틴아메리카의 1/2수준이었던 것이다. 이것이 노동집약적 중화학공업의 생산, 전자 산업의 성장을 규정짓는 것이었고 이렇게 양질의 노동력을 바탕으로 국제하청생산의 구조 속에서 동아시아는 ’80년대를 통하여 라틴아메리카 와 차별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2) 쏘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한 새로운 시장의 확대

국제분업구조와 더불어 한국 등의 자본축적구조에 영향을 끼친 대외적 조건은 쏘련의 붕괴와 중국의 자본주의화이다. 쏘련의 붕괴는 사회주의 운동의 약화를 가져왔고 이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의 약화를 가져왔으며 그에 따라 자본가계급은 절대적, 상대적 잉여가치의 취득을 가속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중국의 자본주의화로 인한 거대시장의 형성은 ’90년대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중국 은 1989년 천안문 시위를 강제진압 한 후에 1990년대 초반 사회주의 시장경제론을 주창하면서 시장경제로 즉, 자본주의로 이행하였다. 이로 인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사 양산업의 중국이전, 중국에 대한 수출, 중국에 대한 직접투자 등 자본축적을 위한 새로운 공간을 열 수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국의 수출이라는 것은 일부산업을 제외하고는 일본에서 자본재와 부품을 들여다 가공조립하여 미국 등에 수출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중국시장의 부상으로 한국은 중국보다 우위에 있는 기술을 바탕으로 축적을 가속화할 수 있 었던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새로운 시장의 형성이 국제적 분업구조에 예속된 한국의 자본축적 구조를 바꾼 것은 아니다. 중국 자체가 세계시장에서 저임가공품의 대거 수출이라는 분업구조를 형성하고 세계시장에 편입되어 있다. 한국의 경우 여전히 미국 과 일본의 자본과 기술에 예속되어 중위의 기술을 특화하는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에 따라 중국은 시장의 확대라는 양적인 측면에는 한국자본주의에 기여하고 있지만 미ㆍ일자본에 대한 예속 구조의 극복이라는 질적인 전환과는 거리가 있다.


3) ’90년대 초반의 내수에 기반한 성장

한국자본주의의 3저 호황은 1988년으로 막을 내린다. ’89년의 수출증가율은 전년의 28.4%에서 한꺼번에 2.8%로 내려가 실질 GDP성장율은 11.3%에서 6.4%로 떨어졌다. 그러나 ’87년 노동자 대투쟁이후 활성화된 노동자계급의 투쟁으로 임금의 실 질적 인상이 이루어져 1990-91년에 걸쳐 내구소비재, 주택 등을 중심으로 한국경제는 내수중심의 성장을 하여 9%의 성장률을 기록한다. 이 시기의 내수중심 성장은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상 드문 예외에 속한다. 그 이전의 시기에도, 그리고 그 이후의 시기에도 수출이 아닌 내수에 의존하여 자본축적을 했던 사례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 렇게 노동자계급의 소비력이 늘어났으나 이에 대해 자본은 부동산투기, 인플레이션 등으로 실질임금을 갉아 먹는다.


4) 긴축정책과 1994-95년 호황

1992년부터 1993년은 긴축으로 내수가 크게 둔화되어 성장률이 하락한다. 그 러나 1994- 95년에 일본의 엔화가 평가절상되어 한국자본주의는 다시금 수출의 신장을 경험한다. 수출은 1994년 전년 대비 16.7% 증가하고 1995년 32.4% 증가했다5). 그러나 이 시기의 수출확대가 ’80년대의 3저 호황과 다른 점은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악화되었다는 것이다. 1996년은 엔저로 인해 수출이 둔화되는 가운데 무역수지 적자는 153억 달러, 경상수지 적자는 237억 달러로 급증하여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렇게 무역적자가 나는 것은 반도체, 자동 차 등 일부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되고 있으나 기계류, 철강, 정밀 부품 등 고기술제품에 대한 수입이 급증한 탓이다. 이는 일본으로부터 자본재와 첨단 부품을 수입하여 가공하여 수출하는 구조에 기인한 것이다.

한편 ’90년대 중반의 시기는 투자가 고도로 진행되었던 시기이다. 특히 외자 도입이 거의 자유화되는 조건에서 석유화학, 철강, 조선, 반도체, 자동차, 산업용기계 등에서 설비투자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한국자본주의는 일부 수출주도 품목을 중심으로 한층 고도화되는 양상을 띠지만 이 시기의 과잉된 설비투자는 ’97년의 외환위기에 기초한 과잉생산 공황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5) ’80년대와 비교한 축적양식의 변화

1980년대와 1990년대 초중반의 축적양식의 변화에서 1차적으로 중요한 것은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 재래의 중화학 공업과 일부 첨단산업에서 산업구조가 고도화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경공업중심의 수출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다시 첨단산 업으로 이행이 서서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동차, 반도체 등의 경우도 그 기술수준에서 보면 미국, 일본 등의 선진자본주의 나라와 비교할 때 열위의 기술이 며 이는 한국자본주의의 고도화가 일부 제한적인 품목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들 일부 제품에 대한 수출시장이 악화될 경우 한국자본주의 전 체가 위기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와 비교할 때 커다란 특징의 하나는 국가와 독점자본의 관계에 변화 가 생겼다는 것이다. 이는 정치체제가 파시즘에서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한 것과 관련이 있다.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 1980년대 초중반의 부실기업정리 등 은 국가가 막대한 자본과 신용을 동원하여 자본축적의 공간을 열거나 자본의 집중을 통하여 위기를 돌파하고 독점자본의 축적위기를 해소하는 방식이었다. 신식민지국가 독점자본주의 하에서 국가 주도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의 대외개방의 시작 이후 그리고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하면서 소위 민간주도의 경제, 관치금융의 청산, 자본의 국제화 등이 소리높이 외쳐졌던 것이다. 이 시기 이후로 국가가 경제에 대해 개입하는 방식은 크게 변화하였다. 정책금융, 이자율의 강제조정 등 국가가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눈에 띄게 줄었고 재벌, 즉, 독점자본의 국가에 대한 주도권이 매우 강화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1980년대에 비해 독점자본의 국제적 진출이 눈에 띄게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1980년대까지 상품의 수출을 주로 했던 독점자본은 미국 등의 대외개방 압력을 지렛대로 하여 중국, 동남아, 인도 등으로 자본을 수출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특히 EU, NAFTA 등 세계경제의 블록화에 대응하여 현지생산을 시도하는 것도 그러한 자본수출의 예이다. 이에 따라 국내의 일부 독점자본은 초국적 자본의 양상을 띠게 된다. 이 점을 주목할 때는 한국자본주의가 아류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을 근거로 일부 논자는 한국자본주의 신식민지성 을 부정한다. 그러나 신식민지성 혹은 종속의 문제는 이러한 현상 일부만을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고 한국자본주의의 재생산구조 전체가 미국 등에 예속되어 있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자본주의가 국제분업구조에서 어떤 위치를 점하는가, 재생산구조의 예속성의 정도가 어떠한가, 축적을 진전시키기 위해 예속성을 필요로 하는 본질적 측면이 변화했는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6) ’97년 외환위기의 발생

1994-95년의 호황의 시기에 수출은 급속하게 증대되었고 투자도 확대되었다. 이 시기는 지금과 다르게 기업이 이윤을 창출하면 기업내부에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부분 투자로 돌려졌다. 특히 이 시기는 쏘련의 붕괴로 인한 자본주의 시장에 대 한 믿음의 확대, 미국의 신경제로 인한 수출시장의 확대 등의 조건이 있었다. 이에 따라 주요 수출업종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투자가 확대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1986-88년의 시기와 다르게 수출이 호조를 보임에도 불구하 고 무역수지와 경상수지가 크게 악화되었다. 특히 1996년 엔저로 수출이 악화되자 무역수지는 153억 달러 적자, 경상수지는 237억 달러 적자가 났다. 무역수지 외에 경 상수지가 이렇게 악화된 것은 여행수지의 적자, 자본도입에 따른 이자의 지급, 기술도입에 따른 로열티의 지급 등이 크게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산업에 특 화한 수출주도의 경제를 중심으로 한 상태에서 외자가 급격히 유입되는 가운데 외환위기는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97년 공황은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났지만 그 이전에 먼저 과잉생산 공 황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일본의 엔화가치가 떨어지면서 한국의 수출이 압박을 받는 가운데 철강부문에서 삼미와 한보 그리고 기아가 무너졌다. 또 긴축정책에 따 라 소비가 줄어듦에 따라 식품과 유통부문에서 진로, 두산, 뉴코아 등이 파탄하였다. 1997년 8월까지 30대 재벌 중 7개 그룹이 무너졌던 것이다6).

이러한 상황은 ’97년 위기가 과잉생산 공황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 나 그것이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은 ’90년대 들어 외환자유화가 이루어지고 ’80년대와 같은 관치금융, 정책 금융 등 국가의 주도성은 약화된 상태에서 외국의 단기자금을 끌어오는 양상이 지속적으로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한보, 기아, 진로, 등의 파탄은 그들과 연계된 은행의 부실화를 불러왔고 이러한 금융불안이 급속히 확대됨에 따라 원화가 급락하면서 국가의 통제력이 상실되었던 것이다.



4. ’97년 외환위기와 축적양식의 변화


1) 외환위기의 발생원인

’97년 위기의 본질은 과잉생산공황이다. 이는 ’97년 위기가 자본주의의 순 환적 공황의 일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축적양식의 파열을 의미한다. 기존의 축적양식은 일부품목을 중심으로 한 독점자본의 수출주도의 경 제가 한국자본주의 전체를 이끌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체제였다. ’80년대와 다른 점은 국가주도에서 독점자본 주도로 헤게모니가 변화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수출주 도의 경제에서 독점자본의 과잉투자는 수출이 약화되고 경제가 공황의 징후를 보이자 파탄되었던 것이다. 또한 재벌들의 사금고 역할을 했던 종합금융회사(종금사)가 막 대한 외국의 단기자금을 끌어들여 재벌에 돈줄을 대다가 이들이 부실화되어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김영삼 정권은 11조원을 쏟아 부었지만 금융위기의 진전을 막지 못했고 금융위기는 외환위기라는 형태로 폭발했던 것이다. 그러나 ’97년 위기가 발생했던 태국 등은 외자가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 일제히 빠져나가 위기 가 발생했으나 한국의 경우 그러한 외자의 급격한 이탈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양식의 취약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2) IMF의 구조조정정책과 자본시장 자유화

한국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IMF는 긴축정책에 따른 거시적 조정과 더불어 ① 금융ㆍ자본시장의 개방, ②금융개혁, ③재벌개혁을 요구했다. 이러한 IMF의 구조조정정책은 한국자본주의를 살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미제국주의의 이익, 즉, 미국 금융자본의 이익을 전면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자본시장은 전면 개방되었으며 이러한 자본시장의 개방은 주식과 은행 등 금융에서 미국의 금융자본에 철저히 종속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예를 들면 외국인 투자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10대그룹 상장사의 약 48.5%의 지분을 인수했고 8개 시중은행에 대해 평 균 65%의 지분을 확보한 상황이다7). 그리고 외환은행 사태에서 보듯이 투기자본의 은행인수로 인해 거대한 이윤이 이들에게 흘러 가고 있다.

노무현 정권이 강조했고 이명박 정권이 계승하고 있는 금융허브화라는 전략은 이들 국제금융자본이 한국의 노동자와 민중, 나아가 중소자본까지도 수탈하는 통로를 건설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이들 자본시장 자유화로 인해 한국의 자본주의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성을 더욱 심화하였고 또 이러한 금융의 자유화로 인해 경제 전체의 기생성과 부패성의 정도는 심화되고 있다. 주식시장이 원래부터 투기적이라는 것은 명확하지만 이에 대해 직접금융이라는 개념이 규정하는 대로 기업의 자금을 주식을 통해 끌어 모으는 것이 목적인데도 불구하고 ’97년 이후 한국의 주식시장은 신자유주의의 주주이익 극대화 라는 논리에 의해 직접금융이라는 역할을 상실하고 기업잉여의 거대한 유출 창구가 되고 있다. 2001년 이후 증시에서 조달한 자금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을 통해 유 출되는 규모가 2배 이상에 달한다8). 특히 자사주 매입은 주가부양과 경영권 방어를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3)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

이러한 IMF의 처방, 그리고 그것을 충실하게 집행한 김대중 정권의 정책은 기 본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공격을 기초로 하는 것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권은 정리해고제를 즉각 도입했고 이후 세계에서 최대로 노동이 유연한 국가를 만들 었다. 이는 사회보장제가 형편없는 한국의 상황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신종 노예제를 창출한 것이었다. 정규직과 똑같이 일하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고 절반의 임금으로 일하는 것을 강요한 것이었다. IMF가 미국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고 또 미국금융자본의 논리가 신자유주의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신자유주의는 외환위기 이후 전면적으 로 관철되었다. 그러나 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지배계급과 미제국주의와의 이러한 예속적 동맹은 노동자계급과 민중에 대한 초과착취와 수탈에 기초하는 것이 었다. 실제로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노동운동은 무력화의 길을 걸어왔고 이는 극단적인 빈부격차, 내수의 위축, 경기의 양극화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지 배계급은 이러한 양상을 치유할 의사와 능력이 없다. 신자유주의는 세계경제위기에 대응하는 제국주의국가와 자본가계급의 필연적인 산물이고 이는 후기국가독점자본주 의의 현상형태이기 때문이다.


4) 과잉투자에서 과소투자로

외환위기 이전에는 과잉투자가 문제였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에는 투자부진 이 문제로 되고 있다. 1987~1996년 연 13.0%로 증가하던 투자는 위기 이후 1998~2006년 연 1.7% 증가하는데 그쳤다9). 이러한 상 황에서 기업들의 목적은 장기적 투자를 통한 축적의 도모가 아니라 단기 실적에 급급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이는 국제금융자본의 요구가 주주이익의 극대화이기 때문 이고 이를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이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생산력 발전의 정체를 낳는 것이다.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생산력이 정체하는 것은 필연이기 때문이다. 물론 2004년, 2005년의 몇 년간에 걸쳐 주요 독점자본들은 수십조의 투자를 했다. 그러나 이는 투자의 양극화를 말 하는 것이고 한국자본주의 전체의 투자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그리고 주요 기업들은 투자보다 내부이윤의 유보에 관심이 있고 특히 자사주를 매입하여 주가를 끌어올 리는데 관심을 둔다. 경제의 흐름이 부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인 생산력 발전과 위배되는 것이다. 착취와 억압 을 강화하더라도 생산력을 발전시키면 자본주의는 유지할 여력이 있지만 생산력 발전이 한계에 도달하면 자본주의는 그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단기적 실적에 급급하여 투자에 소극적인 것은 자본주의 체제가 급속히 부패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자낳는 자본은 그 자체로 가치를 창조하지 못한다. 단지 신용을 창출하여 제조업과 농업 등에서 잉여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지원하고 그 대가로 잉여가치 중에서 분배몫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산자본 중심 아니라 이자 낳는 자본이 사 회전체의 헤게모니를 쥐게 될 때는 급속히 부패하고 기생적이 되는 것이다.


5) 종속문제에 대하여

한국자본주의의 종속성의 문제는 ’90년대 초반부터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것 이다. 한국의 독점자본들이 동남아, 중국, 인도, 나아가 미국과 유럽에까지 자본을 수출하는 상황에서 종속적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은 자연스레 떠오르 는 것이다. 이러한 자본수출의 현황만 보면 한국자본주의가 아류 제국주의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종속성의 문제는 이러한 자본축적의 양 적 문제는 아니다. 또한 종속성의 문제는 단순한 대외적 조건의 문제도 아니다. 즉, 종속성의 문제는 한국자본주의가, 특히 독점재벌들이 자본축적을 위해 미국을 핵심 으로 하는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종속성을 필요로 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종속성을 띠지 않고는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는 내적 요인, 재생산구조의 문제의 발현이다. 따라서 원조→차관→직접투자 및 자본자유화 등 외국자본의 형태변화가 있더라도 이러한 것이 국내 독점자본의 운동과 어떻게 맞물리는가가 중요한 것이다10).

자본의 측면에서 한국자본주 의의 대외적 종속성은 ’97년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심화되었다. 한국의 주식시장은 외국인투자자가 좌우하며 또 주요독점자본의 주식과 은행의 주식에 대한 외국자본의 지배력은 막강해졌다. 나아가 기술의 측면에서 한국자본주의가 반도체, 자동차 등에서 일부 높은 기술을 실현하지만 이는 부분적인 것이고 주요한 생산수단과 핵심부품 은 미국, 일본 등에서 들여와야만 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8년 7월 현재 한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적자는 200억 달러에 육박하고 연말까지는 300억달러에 육박할 것이 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기술수준이 첨단화되지 못하고 미국, 일본의 기술에 의존하는 것으로서 중위의 기술수준을 특화하는 상태임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 즉, 상품의 가치실현이라는 점에서 종속성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GNP 대비 수출의존도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어 세계경제의 부침에 따라 한국경제는 부침할 수밖에 없다. 이 렇듯, 자본, 기술, 시장의 면 즉, 재생산구조에 있어서 한국자본주의는 미국을 핵심으로 하는 제국주의체제에 종속되어 있고 이는 한국자본주의가 ’80년대 이후 국제분 업구조에서 한 단계 지위상승을 했지만 그것은 예속성의 탈피가 아니라 예속성의 강화를 통한 것이었음을 말한다.

이러한 상황은 ’80년대의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이 폐기되는 것이 아니 라 반대로 풍부화되어야 함을 말한다.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실천적 함의는 ‘축적의 진전은 예속의 심화’라는 테제를 중심으로 하여 한국의 독점자본의 축적 은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와 민중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한국의 정치체제가 파시즘에서 부르주아민주주의로 이행 했지만 그것은 변혁의 가능성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변혁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 노동자계급의 변혁전략에 대하여


1) 전략단계의 변화

’80년대의 민족민주변혁은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파시즘을 물러나게 했 지만 그 과정이 혁명적 방식, 평민적 방식이 아니었고 김대중 등 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민중 배신으로 인해 유산의 과정을 겪었다. 물론 이러한 민족민주변혁의 유산은 철저한 반공주의로 인한 사회주의 운동의 미약함,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역량의 부족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후퇴와 국가보안법이 온존 하는 제한된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이행이 이루어졌다. 이러한 정치체제의 변화는 ’80년대 한국자본주의가 3저 호황으로 인해 축적구조를 고도화한 것에서 그 경제적 기 초를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라 파시즘 주도하의 정책금융, 부실기업 정리 등과 같은 양상은 ’90년대 들어 사라졌고 국가와 독점자본의 관계에서 적어도 경제영역에서 는 독점자본의 헤게모니가 관철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축적양식의 변화는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이지만 그 정치적 상부구조가 더 이상 파시즘이 아니라 부르주아민주주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김대중, 노무현 등의 자유주의 부르주아지가 집권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토대와 상부구조에서 변화는 기존의 ’80년대의 민족민주변혁의 시대 가 ’90년대 이후로 사회주의 변혁의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말한다. 이는 한편으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모순이 전면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하고 노동 해방, 사회주의를 말하지 않고서는 변혁운동의 전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전체를 사회주의 노동운동으로 전환시키고 개량주의를 타격하 는 것이 변혁운동의 전진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의 자유주의 부르주아 주도의 10년간에 걸쳐서 확산된 개량주의를 척결하고 다시금 혁명주의를 고 취해야 하는 것이다.


2)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의 특수성의 관철

우리 사회가 사회주의 변혁 단계로 접어들었지만 그러한 변혁의 전망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에 기초하여 정립되어야 한다. 한국사회는 자본의 축적구조를 고도화하고 있지만 그것은 예속의 심화를 통한 것이었고 따라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초과착취 , 농민 등 민중에 대한 가혹한 수탈을 통한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 한국의 독점자본의 축적 구조가 고도화됨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취약성 또한 고도화된다는 것을 의 미하며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변혁성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2000년대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변 혁의 전망을 분명히 하면서도 동맹자로서 빈농, 소농, 중농 등의 농민, 그리고 몰락하는 소부르주아지 즉, 소부르주아지 좌파를 동맹자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들에게 자 본주의 체제,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설득하고 사회주의 변혁만이 민중에게 해방과 희망을 가져다준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한편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하에서 사회주의 변혁의 추진은 미제국주의의 축출을 이루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한국의 지배계급인 독점자본은 그 축적구조의 예속성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측면에서 미제국주의와 예속적 동맹을 맺지 않고는 지배체 제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러한 측면은 2008년 전 민중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체결하려는 모습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2008년 초반을 달구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를 강제진압하면서까지 이명박 정권이 한미 FTA에 매달리는 것은 독점자본의 축적을 위해 미제국주의에 대한 예속의 강화가 이들에게 필요하기 때문이 다. 


3) 세계변혁의 일부로서 한국의 변혁

자본주의 체제가 제국주의 체제로 전환한 20세기 초반 이래 한 나라의 변혁은 제국주의의 약한 고리에서 사슬이 끊어지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세계변혁의 일부이다. 즉,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연관을 떼어놓고는 한 나라의 변혁을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성에 더하여 한국의 경우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는 특수성을 논해야 한다. 즉, 한국의 자본축적 구조는 미제국주의를 정점으로 하는 국제분업구조에 예속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변혁은 미제국주의를 타격하는 투쟁이고 그런 점 에서 한국의 변혁은 제국주의의 사슬을 끊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한국의 변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세계적 차원에서 미제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성장하는 것이 필요하 다. 이 점으로부터 한국의 변혁과 세계변혁과의 연관의 특수성이 도출된다.

따라서 한국의 변혁이 성공하기 위하여 한국의 변혁운동 진영은 세계변혁에 기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20세기 중반 이래로 무너져 내린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세계적 차원에서 복원하는데 한국의 변혁운동은 기여를 해야 한다.


4) 다시금 변혁의 시대를 맞이하며

최근의 세계공황은 세계변혁을 위한 풍부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즉, 자본 주의 세계체제가 다시금 전반적 위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반적 위기의 지양은 21세기를 새롭게 여는 사회주의 변혁의 성공이 될 수밖에 없다.

쏘련이 붕괴한 후로 세계변혁운동은 급속히 쇠퇴되었다. 세계적 차원의 반동 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세계공황은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 있다. 세계적 차원에서 다시금 변혁운동이 성장할 토양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세계공 황이 세계동시공황이고 거기에 더하여 자본의 투기로 인한 석유,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있어서 세계 각지의 노동자와 민중들은 투쟁으로 나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의 역사적 사명은 생산력의 발전이다. 그러나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 제는 이러한 생산력 발전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유화로 인한 투기의 횡행, 경제의 부패를 불러오고 있다. 맑스가 말했듯이 한 사회구성체는 생산력 발전을 다할 때까지는 붕괴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자본주의체제는 신자유주의로 인해 생산력발전의 정체를 겪고 있고 부패할 대로 부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이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회복하고 20세기 사회주의의 교훈을 정확히 체득한다면 세계각지에서 변혁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6. 맺음말


한국자본주의는 태생적으로 예속성을 축적구조의 전제로 삼아왔다. 1950년대 의 원조경제, 1960년대의 차관경제, 그리고 1970년대의 수출경제와 중화학공업화, 1980년대의 외채위기 등 한국자본주의는 예속성을 탈피하는 것이 아니라 심화시키는 것을 통해 축적을 강화해온 구조를 갖고 있다. 이를 1980년대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라 정식화했던 것이다. 이후 1990년대에 한국자본주의는 축적구조를 고도화했 으나 이는 동시에 구조의 취약성도 고도화한 것이었고 이는 1997년 외환위기로 폭발하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미국 금융자본에 대한 한국경제의 예속은 더욱 심화되 었고 특히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으로 인해 금융자유화로 인한 경제의 부패성은 극도로 심화되었다.

나아가 이러한 한국경제의 전개는 노동자계급에 대한 가혹한 초과착취와 민중 에 대한 수탈에 기인하는 것이다. 비정규직이 50%를 넘는 상황, 세계에서 최고의 노동시장 유연성을 자랑하는 나라, 사회의 유지와 생산의 근본인 농업이 철저히 피폐해 지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보장은 턱이 없이 모자라는 상황, 이러한 상황을 독점자본을 핵으로 하는 현재의 지배계급은 치유할 의사와 능력이 없는 것이다 .

따라서 이러한 상황을 치유하고 사회의 새로운 구성을 위해서는 노동자계급이 주체로 나서는 변혁, 사회주의 변혁이 필요하다. 이미 자본가계급은 사회의 진보를 대변하지 못하고 반동을 대변할 뿐이다. 사회의 진보를 대변하는 노동자계급과 민중 이 동맹하여 사회주의 변혁을 성공시킨다면 억압과 착취없는 세상, 사적 소유가 아닌 공동체적 소유에 기반한 사회의 재편성,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닌 사회의 발전을 위한 노력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발전시키는 사회가 도래할 것이고 나아가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우리 사회는 도약을 하게 될 것이다. <노사과연>


1) 김진업 편,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형성과 해체��, 나 눔의 집 출판사, p. 167.


2) 한국사회연구소, ��한국경제론��, 백산서당, p. 98.


3) 한국사회연구소, ��한국경제론��, p. 105.


4) 앞의 책, p. 160.


5) 후카가와 유키코, ��대전환기의 한국경제��, 나남출판, p. 101.


6) 후카가와 유키코, ��대전환기의 한국경제��, 나남출판, p. 352.


7) 이병천 엮음, 참여사회 연구소 기획, ��세계화 시대 한국 자본주의 ��, p. 392.


8) 앞의 책, p. 53.


9) 앞의 책, p. 47.


10) 한국사회연구소, ��한국경제론��, 백산서당, p. 138


덧붙이는 말

"생각하며 투쟁하는 노동자의" 정세와 노동 제38호(2008.9)

많이 본 글
현장기자석
참세상 속보
진보매체광장 전체목록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