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검찰, 담임교사와 학생들 대질신문 논란
학생은 급성 우울증, 교사 ‘비참함’ 호소

‘여중생 자살’ 중학교, 압수수색 7일 전 이상한 ‘대면조사’했다

서울 남부지검 홈페이지.

지난 해 11월 여학생이 자살한 서울 한 중학교의 교무실을 지난 14일 수색해 학생의 반성문 등을 압수해간 검찰이 일주일 전에는 학교폭력 가해 혐의를 둔 학생 두 명(중3)과 방조 혐의를 둔 담임교사를 한 방에 모아놓고 9시간 동안 마라톤 대질신문을 벌인 사실이 18일 확인됐다.

대질신문 받은 학생 “지내기 힘들다”...최악의 사태 우려

이날 현재 대질 조사를 받은 학생들은 “선생님이 너무 불쌍했다. 죄송했다”, “지내기 힘들다”면서 이 중 한 여학생은 급성 우울증 진단을 받고 장기 결석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또 다른 최악의 사태가 우려된다. 해당 학교 교직원과 서울시교육청은 “학교폭력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 검찰이 반교육적이고 반인륜적인 수사행태를 벌이고 있다”면서 강력 항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 S중학교와 학부모, 서울 남부지검에 따르면 양 아무개 검사는 압수수색 7일 전인 지난 7일 오후 4시부터 8일 오전 1시 30분까지 9시간 30분에 걸쳐 이 학교 3학년인 A군과 B양 등 학생 2명과 지난 해 자살학생의 담임을 맡은 C교사를 대질 신문했다. 검찰이 가해자로 지목한 학생들과 학교폭력 방조 혐의를 둔 담임교사를 대면 조사한 것이다.

다음은 두 학생의 학부모 2명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기자는 조사받은 학생들의 동요를 우려해 해당 학생에게 소식을 전해들은 학부모와 조사를 직접 받은 C교사 의견만 취재했다.)

양 검사: 자살 학생(부모)의 피해 호소에 대해 적절한 지도를 했나?
C담임교사: ‘○○(자살학생)이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우리 반 학생들에게 얘기했다.
양 검사: 너희들이 말해봐라.
A군과 B양: ‘사이좋게 지내라’라고 하신 말씀은 기억나지만 ‘○○이랑’이라고 이름을 말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 같은 실랑이가 이어지고 결국 C교사는 다음처럼 말했다고 C교사와 학부모들은 전했다.

“우리 아이들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요. 제가 ‘○○이랑’이라는 말은 안 한 게 맞을 지도 모릅니다.”

조사를 받고 나온 학생들은 학부모에게 다음처럼 털어놨다고 학부모들은 말했다.

“선생님이 너무 불쌍해요. 죄송했어요. 힘이 빠져요. 이제는 학교 가기 싫어요.”(A군)
“너무 졸리고 더웠어요. 내일 (정신과 클리닉) 상담 받으러 가야할 것 같아요.”(B양)

B양은 11일과 14일 조퇴를 했고, 15일 클리닉 상담치료 과정에서 내내 울기만 했다고 한다. B양의 어머니는 “클리닉에서 급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당분간 휴양을 취해야만 한다고 했다”면서 “검찰이 선생님을 수사하는 자리에 학생들을 집어넣었으니 그 후유증이 정말 심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난 14일 남부지검 소속 수사관들의 서울 S중 교무실 압수수색 모습. @S중학교


서울시교육청 “대질? 무리한 수사방식... 강하게 대응할 것”

A군의 어머니도 “어떻게 검찰이 학생과 교사를 대면하게 한 뒤 담임선생님의 진술이 맞는 지 틀리는 지 판단하게 하는 수사를 할 수 있는 것이냐”면서 “지난 해 C교사는 평판이 좋고 생활지도에서도 훌륭하다고 학부모들이 칭찬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C교사는 “내가 가르친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조사를 받는 심경은 비통하고 비참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올해 3월 학교를 옮긴 이 교사는 올해 1월부터 이날까지 모두 14차례 조사를 받았는데, 스승의 날인 지난 15일 오후에도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아야했다.

이 같은 수사 방식에 대해 강영구 변호사(전교조 정책법률국장)는 “검찰이 혐의를 두어 자유롭지 못한 학생들과 또 다른 혐의를 받는 담임교사를 대질신문한 수사방식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담임교사의 진술을 부인하면 학생들이 유리하고 학생들의 진술을 부인하면 교사가 유리한 이런 대질신문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S중학교 한 교감은 “이번 검찰의 대질신문은 스승과 제자를 갈라놓는 반교육적이고 비인간적 행동이며 교사에 대한 인권유린”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시교육청 중견관리도 “교사와 학생을 대질신문한 것은 정도를 넘어선 무리한 수사방식”이라면서 “압수수색에 이어 대질신문 사실까지 확인되면 교육청으로서도 강하게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불편한 심기를 나타냈다.

이번 대질신문에 대해 검찰의 해명을 듣기 위해 남부지검에 전화를 걸어 양 검사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이 검사실 관계자는 “수사 중인 상황이라 검사님이 직접 얘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보담당인 한 차장검사실에 전화를 걸었지만, 이 검사실 관계자는 기자에게 해명 전화를 주기로 해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 검찰 쪽의 반론을 들을 수 없었다.

서울 S중이 작성해 교육청에 보낸 사안보고서.

한편, 서울 S중학교가 교육청 등에 보고한 ‘사안보고서’에 따르면 양 검사실 수사관 등 남부지검 소속 수사관 6명은 지난 14일 오후 4시 30분부터 7시 20분까지 이 학교 인성지도부실과 1학년부장실, 교무실의 교감 컴퓨터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학교를 방문해 강제 압수수색을 실시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압수물품은 A군의 반성문 사본을 비롯하여 징계 서류, 사회봉사활동 확인서, 상벌점 자료 등 4건과 학교폭력 학생설문지, 교사 교무수첩, NEIS(교육행정정보시스템) 결재 화면 갈무리 등 5건이다. A학생은 검찰이 학교폭력 가해 혐의를 둔 10명의 학생 가운데 한 명인데 지난 해 자살 학생과 관련 없는 다른 사건으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학생이다.

‘엉뚱한 반성문’ 갖고 간 압수수색도 말썽

이 학교 한 부장교사는 “검찰이 유독 A학생의 징계 서류를 갖고 간 것은 지난 해 자살학생과 전연 관련 없는 일로 징계를 받았는데도 이를 문제 삼으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학교가 학생지도를 위해 받아놓은 반성문까지 압수해버리니 교사들은 어떻게 교육하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검찰이 혐의를 둔 학생들 가운데 지난 해 징계를 받은 학생은 A군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올해 1월 시작한 양천경찰서의 수사 때 법원은 학생들의 폭행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판단해 구속영장을 기각한 바 있다.

압수수색에 대해 교원단체인 전교조와 한국교총은 일제히 반발했다.

전교조는 18일 성명에서 “검찰은 폭압적인 각본수사와 강압수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양○○ 검사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한국교총도 지난 15일 서울 남부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사의 과실이나 범죄행위를 입증하기 위해 학교 교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교육권과 교권침해”라면서 “검찰의 과잉수사에 대해 전국 50만 교육자와 함께 강력히 규탄 한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말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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