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난점’의 결론은 ‘난점’?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4호 후일담 2

 

‘난점’의 결론은 ‘난점’?
- 이데올로기 세미나 후기

 

김소이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술자리에서 나오는 얘기들이 깔끔하게 끝을 맺지 못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씁쓸하게 만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게임을 하거나, 연예인들의 가십거리들을 쏟아놓으면서 낄낄거리는 술자리는 워밍업 정도라고 생각하도록 하자. 내가 말하고자 하는 술자리에서의 얘기는 일상에서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던져놓고 서로 공감 내지는 논쟁을 하는 자리라고 편의상 한정하고자 한다. 우리 혹은 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가, 삶에 젖은 이야기들을 추상화 시켜서 논쟁하기에 술처럼 좋은 수단이 없기 때문일 테니 말이다. 그 풀리지 않는 질문을 풀어놓는 우리들의 대화 속에는 객관과 주관의 극단을 오가며 올바름의 극치를 찾아가려는 고된 시도가 담겨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하면서 명쾌한 해답이 차근차근 쌓여 올라갔으면 좋겠으나, 대게는 괜히 생각만 더 꼬여서 재떨이만 가득 채우고 집에 가기마련이다.

 

처음에는 맑스와 프로이트로부터 시작해서 엥겔스, 라캉을 읽고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 발리바르,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젝을 읽고, 지젝의 난점에 대한 진태원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세미나를 마무리를 지었다. 내가 세미나 멤버들을 대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술자리의 대화가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을 이번 세미나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세미나 중에 읽었던 세세한 내용들이 모두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매주 생성되는(?) 질문들과 그 질문에 대해 답하려는 노력들이 세미나를 구성하는 형식이었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왜?’라는 궁금증은 다음 세미나에 대한 묘한 기대감을 심어줬는데, 다음에도 그 다음에도 그 궁금증이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다보니 세미나가 마무리되어 갈 즈음에는 ‘난점’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난점’의 결론이라는 ‘난점’을 낳았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술잔 위에 생각들을 띄워놓고 유희하듯 고뇌의 고통을 즐기던 우리의 대화 형식으로는 난점에 난점을 눈 굴리듯 덧붙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참으로 난해하고 모호한 개념이 사람들에게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어떤 것도 참이라고 말했다가는 보수적이라든지, ‘아직도 모더니스트’라는 등의 비난을 받기일수다. 상대성이라는 일종의 윤리 하에 사람들의 부유하는 의견들은 술잔을 떠다니는 생각들처럼 고뇌의 유희라는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이제는 누구에게도 허락될 수 없는 해결이라는 난점을 남겨주었다. 누군가가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는 것은 이제 알튀세르의 인생의 결말처럼 비참하고 씁쓸한 평가를 감안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이렇게 필연적으로 난점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기피대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은 괜히 김칫국부터 마시는 종말론적 생각이다. 발리바르가 학자들에 대해 쓴 글에서도 읽을 수 있는 내용이지만, 현실에 참여하는 정치가 심지어 개념을 생산하는데 주력한다고 생각되는 학자들에게서도 필요하다. 아마 대학 강단의 교수들을 보다보면 누구든지 이런 생각을 떠올렸을 것 같다. 물론 여기에서는 정치를 또 어떻게 볼 것인가, 개개인들에게 정치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러한 질문들과 함께 가야하는 행동이지 않을까. 그래야 답답한 현실에 간헐적으로 숨 쉴 구멍을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담론이나 이야기상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것은 더 이상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같은 이름을 단 상황이라도 그것이 실현되는 현장에서는 셀 수도 없는 경우의 수들이 그 실현을 다른 것들과 같은 분류로 묶을 수 없는 잔재들을 남긴다. 요컨대 이런 실현을 가능하게 하는 행동, 좀 더 구체적으로 '정치적인' 행동이 탁상공론의 지루한 공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준다.

 

텍스트를 이해하는 과정은 물론 쉽지 않았지만, 세미나 도중에 나왔던 누군가의 말처럼 결코 우리가 이해하는데 고생하게 한 이들이 당연하지도 않은 글을 억지로 어렵게 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해의 과정은 힘들었으나 그 후에 얻게 된 것들은 맥 빠지게도 일상적이었다.

 

* 이데올로기 세미나는 알튀세르와 발리바르 텍스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시작한 모임입니다. 현재는 2차 세미나로 맑스 텍스트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3차 세미나는 스피노자에 대한 텍스트 연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문화사회연구소(02-745-1603)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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