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벌면 생활비, 여자가 벌면 반찬값? 생계에 성별 없다!”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남성 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 비판하는 기자회견 열려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로 설계된 한국 사회의 성차별 구조를 지적하며 제대로 된 일자리와 정당한 임금 지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국가정책마저 모두 남성생계부양자를 기준으로 해 여성의 노동을 보조적 벌이 수단으로 취급하고 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17일 오전 제3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생계에 성별은 없다”라고 외쳤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2018년 기준 남성 정규직의 월 평균임금 대비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이 37.5%에 불과하다”라며 “한국 사회는 ‘가장’으로 표상되는 남성 생계부양자를 받들어오며, 가족을 수직적 위계 구조로 만들고, 여성의 종속을 강화해왔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늘 남성이 ‘가장’으로 호명되는 한 여성은 보조자일 수밖에 없다. 보조자의 노동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노동 역시 보조자에게 맡기지 않는다”라며 “남편이 벌어오니까’ 등의 이유로 여성의 노동은 언제나 반찬값 취급을 받아왔다”라고 비판했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통계도 제시됐다. 이들은 “2018년 기준, 40세 미만 청년층의 맞벌이 가구는 61.8%에 육박하고, 특히 중, 고령층 여성들은 배우자의 퇴직이나 병으로 인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라며 “2015년 기준, 여성가구주는 29.6%, 1인 가구는 27.2%로 4인 가구인 18.8%를 넘어선 지 오래”라고 밝혔다.

이들은 “노동자들은 모두 각자 생계의 절박함을 갖고 노동 현장에 나선다. 모두가 독립된 개인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라고 주장하며 △여성노동의 저평가를 중단할 것 △제대로된 생활 임금 지급 △여성에게 비정규직, 시간제 노동을 강요하지 말 것 등을 요구했다.

여성 노동자들 직접 증언나서… “최저임금이 곧 여성 노동자의 임금”


이날 기자회견엔 시간제 노동자, 간호조무사, 청소노동자, 가사노동자 등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직접 증언에 나서기도 했다.

서울여성노동자회 소속 간호조무사 ㄱ씨는 “간호조무사 대다수가 ‘최저임금이 곧 간호조무사 임금’인 현실을 잘 알고 있다”라며 “10인 미만, 5인 미만 규모의 병원은 간호조무사 채용 시 경력과 근속 인정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저 운이 좋아 인심 좋은 병원장을 만나기를 기대해야 하는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ㄱ씨는 “경력 10년 차의 선배 간호조무사가 원장에게 임금인상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자 “남편 벌이가 시원치 않아?”라는 질문이 돌아왔다고 한다. “‘여자가 그 정도 받으면 됐지 뭐, ‘반찬값’은 보태겠네’, ’남편이 벌어오잖아? 애들 학원비는 빠지겠네’ 이런 말을 듣는 동료가 너무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수많은 여성노동자가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일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다수는 이를 의도적으로 까 내린다”라며 “남편이 벌어오는 돈은 ‘생활비’, 아내가 벌어오는 돈은 ‘반찬값’이라며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에 당위를 부여하고 이들의 노동환경을 점점 열악하게 만든다”라고 꼬집었다.

가사노동자 김재순 씨도 마이크를 잡고 가사 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하라고 요구했다. 자신을 50대 여성가장이라고 소개한 김 씨는 “가사노동을 하는 우리는 노동자로서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해 최저임금도 받을 수 없다. 일하다 다쳐도, 고객의 요구로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어도 구제받을 수가 없다”라고 하소연했다.

김 씨는 “최소한의 대우조차 받을 수 없는,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우리 가사노동자는 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다”라며 “잘 먹고 잘사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고, 인간답게 살 기회를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노동자들이 '가부장제' '남성생계부양자 이데올로기' '고용상 성차별' 등이 적힌 검은 천을 찢고 있다.

한편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의 고용불안정과 성별임금격차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기 위해 2017년부터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제정해 기자회견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전국 11개 여성노동자회 지역지부가 전국 각지에서 ‘생계에 성별은 없다’ 캠페인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