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이 된 삼성, 왕국의 지배, 이제 함께 끝내자

[기고]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의 강남역 철탑 고공농성 300일

사람을 죽이는 자를 살인자라 부른다. 그러면 살릴 수 있는데도 죽도록 내버려 두는 자는 뭐라고 부를까. 자기 자신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타자를 보면서, 그의 고통에서 자신의 우월함을 느끼고, 그 고통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힘도 크다고 여기는 자, 그런 자를 뭐라 부를까. 우리는 슬픔에도 고통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를 두고 괴물이라고도 하고, 악마라고도 한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고, 악행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며, 자기중심적으로만 사고하는 반사회적 인격을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가 강남역 철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삼백일이 된다. 키가 180cm인 그가 지름이 1미터밖에 안 되는 철탑에 누워서 손을 내밀면 한쪽으론 머리와 어깨가 밖으로 나오고, 반대쪽으로는 종아리 아래 다리가 빠져나온다. 여름에는 폭염에 타고, 겨울에는 혹한에 어는 곳. 노조하지 말라는 삼성의 법을 어긴 자, 노예로 살라는 자본의 명을 거역한 자가 이 땅 어디에도 삼성의 힘이 닿지 않는 곳이 없어 마지막으로 오른 곳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지상 25미터 0.5평의 높고 좁은 철탑이다.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는 그곳에서, 그는 날마다 죽어가고, 날마다 살아난다. 형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그는 철탑에서 삼백일을 보낼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장기농성을 예상했다면 애초에 그런 철탑으로 올라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모진 고생을 하고도, 그만큼 세상을 믿었던 노동자다. 삼성은 그런 그를 삼백일을 내버려 두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함께 가슴을 졸였던가. 그런데도 삼성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마치 너무나 작아서 자기가 밟아서 짓뭉개놓고도 죽는 줄도 모르는 개미 한 마리를 밟은 인간처럼,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다는 듯이.

‘기업의 숨겨진 진실’이란 다큐멘터리 영화는 자본주의 기업의 숨겨진 진실을 폭로한다. 그 중에 ‘사이코패스 기업’에 대한 것이 있다. 국가에 공적 지원을 요청할 때는 기업의 사회적 성격을 강조하면서도, 경영권과 재산권에 대해서는 국가의 개입을 일체 거부하고, 기업이 ‘법적으로는 개인’이라고 주장하는 기업들은, 편리에 따라 “개인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을 가져와 ‘법인’을 사적 개인으로 둔갑시킨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기업을 개인이라고 볼 수 있다면, 그들의 행동 유형을 심리학적 테스트에 대입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 결과는 충격적이다. 기업이라는 이름의 개인은 ‘타인의 감정에 대한 냉담한 무관심’, ‘지속적인 관계 유지가 불가능함’, ‘타인의 안전에 대한 불감’ 등 거의 모든 문항에서 사이코패스로 나타났다. 만약 이런 사이코패스가 사회의 부와 권력을 장악하고 제도와 정책에 개입하며 막강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면, 그런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얼마나 위험한 상태에 놓여있는 것인가? 영화 속의 질문은 김용희의 고통을 외면하는 삼성에 대해서도 유효하다.

지금도 삼성은 마치 주인의 명을 어긴 노예를 엄벌로 다스리듯이, 자신의 통치를 거역한 자를 다스리고 있다. ‘감히’ 삼성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김용희의 죄는 무엇인가? 87년 민주화운동의 흐름 속에서 수많은 민주노조들이 만들어질 때, 노동자의 권리에 눈뜨고, 노동조합을 만들고자 한 죄.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는 회장님의 명을 어기고, 삼성에서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한 죄. 해고를 당하고도 가만히 있지 않은 죄.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법의 판결을 구한 죄. 돈으로도 회유당하지 않고, 폭력과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은 죄. 한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불행이란 불행은 모조리 겪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는 죄. 그것이 삼성 왕국이 그를 살리지 않는 이유다. 앞으로도 그런 노동자는 나와서는 안 되기에.

삼성은 살릴 수 있음에도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의 권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무자비한 왕들이 반역자의 시체를 성문 밖에 내걸어 백성들에게 복종을 가르치듯이, 이 나라에서 삼성의 법을 거역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아무리 탄압해도, 법도 도와주지 않을 것이고, 국가도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고, 어떤 시민도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시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삼성이 기업이 아니라 국가였다면, 벌써 파면당하고 탄핵됐을 것이고, 정치적 사법적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의 독재자는 법 위에 서서 민주주의를 농락한다.

한 명의 사이코패스가 반인간적 범죄를 저지를 때는 악마다, 괴물이다, 엄벌하라, 분노하는 사람들이, 거대한 기업이 한 개인에게 그와 같은 일을 저지를 때는 그만큼 분노하지 않는다. 국가폭력에는 연대하여 저항하는 사람들도 기업의 폭력은 사적인 문제로 치부한다. 선한 사람들은 괴물에게 희생당한 자를 보며 그의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슬퍼하고, 동정한다. 그러나 동정과 연민은 괴물의 힘을 키워줄 뿐이다. 괴물은 자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을 두려워한다.

지금 삼성이 김용희를 대하는 방식은 이 기업이 노동자를 어떻게 대하고 탄압해왔는지 생생히 보여주는 증거다. 또한 앞으로도 노동자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를 보여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용희에게 사과하지 않는 것은 무노조 경영을 철회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고, 삼성에서 민주노조는 꿈도 꾸지 말라는 뜻이다. 선거의 계절이 돌아왔지만 이 자리를 찾아오는 정치인은 드물다. 삼성은 무섭고, 노동자는 우스운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자본가인가 노동자인가? 노조 없는 삼성은 천국인가 지옥인가? 자본가에겐 천국이고 노동자에겐 지옥일 것이다. 그 지옥을 겪어본 해고노동자 김용희는 그 지옥이 자신의 지옥만이 아닐 것을 알았기에, 철탑 위의 지옥 길로 올라갔다. 노동자의 질문을 시민의 질문으로 바꿔보자. 삼성이 지배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이겠는가?

내 손으로 대통령 뽑고, 국회의원 뽑는다고 민주주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 권력과, 재벌 독재를 해체하지 않으면, 민중은 영원히 노예일 뿐이다. 김용희의 삼백일에 대한 침묵은 삼성의 또 하나의 범죄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국가는 직무유기다. 삼성 적폐부터 청산해야 한다. 그 적폐의 수족인 삼성의 정권, 삼성의 정당, 삼성의 국회를 심판해야 한다. 그래야 삼성 왕국의 노예가 아니라 민주 국가의 시민으로 살 수 있다. 이제 우리가 김용희가 되어, 이 땅의 수많은 김용희들과 함께 싸우자. 왕국의 지배는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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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저자)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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