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쓸모를 자꾸 묻는다: 키오스크 무인화 서비스의 파급력

[워커스] 기술문화비평


페이스북에서만 아는 한 친구가 투덜거렸다. 오랜만에 학교 앞에서 옛 친구들과 만나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출 기대를 잔뜩 안고 노래방을 찾았는데 예전의 그 유명한 노래방은 사라지고 코인노래방들만 남았다고. 좁디좁은 코인노래방에서 춤은커녕 숨도 맘껏 쉬지 못해 한 곡 부르곤 문을 여닫고 또 한 곡 부르고 여닫곤 했다고. 한 시간 노래 부르면 주인아저씨가 추가로 십분 씩 시간을 더 넣어주곤 하던 그 시절 단골 노래방들은 어느새 동전 한 움큼을 쥐고 한 곡 한 곡 자기가 부르고 싶은 만큼만 직접 동전을 투입구에 넣는 좁은 코인노래방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코노’에서 ‘혼노’하는 것은 완전 셀프로 진행된다.

노래방뿐만이 아니다. 고객으로서 우리는 이미 일상의 여러 서비스 영역에서 주인이나 종업원과 대면할 필요를 잃어가고 있다. 사람보다는 기계와 대면할 일이 점점 느는 추세다. 요즘 작은 동네 식당이나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려면 먼저 주문을 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이 든 분들은 적잖이 당황할 수도 있다. 주문을 받아야 할 사람이 왜 어디 가서 주문을 하고 오라는 건지. 뒤를 돌아보면 한쪽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게 되고, 그 끝에는 웬 기다란 스크린 하나가 눈높이에 세워져 있다. 사람들은 자기 차례가 되면 그 스크린에 손가락을 대고 뭔가 하고 있다. 화면에 뜬 메뉴를 넘기면서 음식을 정하고 주문한다. 신용카드를 밀어 넣고 결제를 하면 영수증과 주문번호가 종이에 인쇄돼 나온다. 자리를 잡고 앉아 카운터 위에 내 주문번호가 뜨면 가서 음식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와 먹는다. 이런 일련의 행동 과정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진행되지 않으면 금세 뒷사람들의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요즘 소형 점포나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몇 번의 터치로 주문과 결제가 완료되고 영업이 끝나면 자동으로 정산까지 해주는 무인 키오스크 시스템 도입에 적극적이다. 기계의 대여료도 저렴한데다 기능까지 뒷받침이 되니 매출이 적고 인건비가 부담되는 업체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런데 따져보면 이런 무인화 기기들이 등장한 것이 근래의 일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있다. 사람이 직접 대면하지 않고 거래가 가능하도록 만든 자동판매기, 전자오락기계, 동전세탁기와 같은 기계들의 ‘셀프서비스’에서 시작해, 이제는 만인이 소유하는 스마트폰만 있다면 예약이나 예매에서 쇼핑과 스트리밍까지 고객이 매장에 나가지 않고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그렇지만 무인 키오스크 시스템은 또 다른 차원에서 걱정거리를 함께 안겨준다. 주문에서 정산까지 이어지는 사업의 모든 사이클에서 효율성을 높여 줄지는 모르지만, 이 기계가 소규모 비즈니스에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면 노동과 고용의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키오스크 무인시스템의 광고 문구는 현재 상황을 짐작하는데 충분해 보인다.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 4차 산업혁명 도래, 외식/유통업계 대응 방안 시급, 빠른 속도로 확대되는 ‘무인화 서비스’. 합리적인 비용과 기존 POS 시스템과 연동되고 설치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쉽게 사용하는 무인 주문 시스템이 모두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키오스크 무인시스템이 보여주는 모습은 조금 과장하자면 우리 사회에서 4차 산업혁명이 실제 어떤 식으로 도래하는지를 실감케 하는, 4차 산업혁명의 한국적 실현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재료 주문과 준비, 고객 응대, 재정 결산 등으로 이어지는 소규모 사업의 전체 사이클을 이 시스템을 통해 해결할 수 있고, (아직 가능한지 모르지만) 수집된 데이터를 통해 고객 취향 분석 및 시간별, 요일별, 계절별 메뉴에 대한 통계 등 할 수 있는 일들이 상대적으로 대폭 확장될 수 있다. 그리고 최저임금과 같은 인건비가 자영업자들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무인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매우 어리석은 일처럼 되고 만다. 게다가 단기 알바처럼 고용주의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근무 중 딴짓을 하거나 손님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절대 일을 금방 그만두지 않는 충직한 일꾼, 식비가 들지도 않고 보살펴 줘야 할 인간적 책임감도 생기지 않고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 효율적인 대체 노동자라고 한다면, 그것이 “모두 해결해” 준다는 것이 어쩌면 과장이 아닐 수도 있다.

전체 400만 명이 넘는 단기(시간제) 노동자 중 100만 명 정도가 음식점, 숙박 등의 도소매업에 고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키오스크와 무인 접수 시스템은 이들 단기 노동자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거창하게 4차 산업혁명이나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일자리를 점점 줄여갈 것이라는 예고를 굳이 되새기지 않아도, 이미 현실에서는 단순한 기계들이 인간의 대면 노동을 대신하는 것으로 실현되고 있다. 조악한 형태지만 키오스크 무인 시스템에서는 그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대면은 인간과 기계의 인터페이스(interface)로 대체되고, 사람의 노동과 소통은 화면상의 인터랙션(상호작용, interaction)으로 변모하고 있다. 국민 누구나 화면을 터치하는 프로세스에 익숙하기에 키오스크의 인터페이스는 보편적인 인터랙션이 통용되는 평면이다.

키오스크 무인 시스템은 그리 세련되거나 정교한 혁신적 인공지능 로봇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수준과 사용자·고객들의 경험 정도에 걸맞으면서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분위기가 조합되어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적화된 장치인 셈이다. 그래서 더욱 강력해 보이기도 한다. 인간의 쓸모, 인간 노동의 쓸모가 줄어들고, 그런 만큼 인간의 (노동의) 가치가 축소돼 가는 시대에 어떤 대비가 필요할지 앞당겨 생각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4차 산업혁명 같은 것은 있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거창하게 오지 않는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조그마한 변화들이 일상에 누적되면서 어느새 사회를 바꾸어 놓는 것이리라. 어느새 가장 값싼 노동력부터 서서히 대체하고 있는 스마트한 기계들은 사실은 우리 모두의 일상적 삶의 방식을 새롭게 조직하는 중이다.(워커스 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