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삼성 납품업체 노동자 백혈병 발병..."산재 인정해야"

"화학물질 정보 제한적, 장시간 노동도"...회사, "근무환경과 무관"

“저는 저의 남은 인생의 절반 이상을 그저 치료와 검사를 하며 일반인처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이 살아야 된다는 것에 정말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봉동공단의 화학공장 H사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30대 초반 노동자 이씨의 편지 중에서>

  전북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전북 완주군 봉동공단에 위치한 화학공장 H사의 노동자 백혈병 사안에 대해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에 산재를 신청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전북 완주군 봉동공단에 위치한 화학기업 H사에서 일하던 30대 초반의 노동자가 삼성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들과 동일한 백혈병에 걸린 것이 알려지면서 전북지역에서도 전자산업 노동 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H사 전주공장은 LCD 등 전자제품 생산공정에 필요한 전극보호제와 세정제 등을 생산하며, 삼성전자에도 납품하는 화학공장이다. 백혈병에 걸린 이창호(가명, 33)씨는 지난 2012년 28살의 나이에 전자재료팀에 입사하였고 백혈병(급성림프구성) 발병을 안 것은 지난 2015년 10월이다.

이 같은 사실은 28일 오전, 민주노총 전북본부 등 전북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근로복지공단 전주지사(노동부 전주지청)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개됐다. 이날 기자회견을 마치고 단체들은 이씨의 산재 신청도 대리로 수행했다.

이 자리에 투병 중이라 이창호씨가 직접 나오지 않았지만, 이씨가 작성한 편지가 공개됐다.

“첫 아이가 태어난 무렵부터 제품의 출하량이 급격히 늘었고 그 출하량을 맞추기 위하여 거의 자는 시간 외에는 일만 했습니다. 하루 12시간 근무가 잦았고, 제품에 문제가 있으면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20시간 이상 근무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장시간 지속된 근무와 엄청난 작업량에 하루가 다르게 지쳐가고 있었고 둘째아이를 가진지 4개월 만인 2015년 10월 중순부터 몸에 반점이 생기고 감기와 같은 증상으로 동네병원을 다니다 증세가 호전이 없었습니다.”

“피검사를 해보니 염증수치가 높아 회사에 쉬기를 요청하였으나 근무를 더하라는 말에 그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종합병원에 입원하였고 하루 만에 염증수치는 더 올라 있었습니다. 서울의 큰 병원에 가보니 의사는 단순 감기가 아니라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이라는 30대 나이에 믿을 수 없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씨가 다룬 물질에 대한 정보 제한적...장시간 노동 흔적도”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이씨는 자신이 사용하는 물질이 어떤 물질이고 어떤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 모른 채 작업을 했다”면서 “화학물질을 혼합하는 과정에서 용액이 눈과 피부에 튀기도 했으며, 분진을 흡입하기도 했다. 충분한 안전교육과 안전 장비가 마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인권단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활동하는 임자운 변호사는 “공장 내부에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 제대로 알리지 않고 스스로 피하거나 대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야만적인 행위”라며 “이씨가 다룬 화학 물질을 취급한 (삼성전자) 공장에서 수많은 백혈병 피해자들이 나왔다. 전체 전자산업의 현실은 제대로 (유해정보 등) 알지 못한 상황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임 변호사는 “만약 이씨가 발암 물질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 공장에서 나왔거나 대피했을 것이다. 혹은 적절한 보호구를 요구했을지 모른다”면서 “국내에 취급되는 화학물질 중 단 15프로만이 유해정보가 확인된 채 들어온다. 노동자가 병들면 그때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드러내는 상황이다. 노동자가 그런 존재인가”라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유해한 화학물질을 다룬 문제 뿐 아니라 삼성이 요구하는 납품 물량을 맞추기 위해 월 100시간 이상의 잔업과 밤샘 노동 등 장시간 노동도 있었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근로복지공단은 조속히 산재를 승인하여 피해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치료에 전념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초 인천의 삼성전자 하청업체에서 메틸알코올을 사용하다 20대 비정규직 노동자 5명이 실명 등 심각한 질병에 이르는 사고가 벌어진 바 있다. 또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이 당초 약속과 달리 일방적인 보상절차를 강행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에 항의하며 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에 납품하는 화학제품을 생산하는 H사의 백혈병 문제는 전자산업 전반의 생명과 안전 경시 풍토를 보여준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근로복지공단 전주시자는 전자산업 전반에 만연한 노동재해를 감시하고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조사와 재발 방지 대책을 주문했다.

“이씨의 백혈병 회사 근무환경과는 무관”

한편, H사 경영지원팀은 “이씨의 백혈병 발병은 회사 차원에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으며 휴직하고 치료에 전념 중인 이씨의 회복과 복직을 위해 회사 차원에서 지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이 진행한 기자회견은 사실과 다르다”면서 “이씨가 작업한 공정은 국내 삼성전자에 납품하지 않으며, 삼성 디스플레이 중국 법인에 소량 납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동안 안전 보호가 부족하거나 근무 환경에 문제가 된 사례는 없었으며 유해한 물질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하고 검증하고 있다”면서 이씨의 백혈병과 회사 관련성을 부인했다.
덧붙이는 말

문주현 기자는 참소리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참소리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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