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 발전전망에서 공단조직사업의 의미

비정규직 세상보기

민주노조운동은 무엇을 목표로 ‘발전’해왔는가

‘운동’은 계속 발전해나갈 때 의미가 있다. 민주노조운동이라고 할 때 그 발전의 지향과 전망을 어떻게 두고 있는가에 따라서 발전의 방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은 조직적으로 보면, 조합원 수가 70만 명에 불과하고,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민주노총이 자신을 대표하는 조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 등에 능동적인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영향력도 약하고 노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도 매우 안 좋기 때문에 사회적 인정도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1996년 건설 당시부터 이런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별노조 건설’과 ‘정치세력화’라는 두 가지 목표를 설정해왔고, 이를 위해 매진해왔다. 산별노조 건설은 기업 단위의 투쟁을 넘어서 전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조직적으로 통일시켜나가기 위한 방향에서 제기된 것이었고, 정치세력화는 정치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세력으로 등장하기 위한 계획이었다. 민주노총은 산별노조라는 형식은 조금씩 갖춰가고 있으나 산별교섭을 하지 못하는 점에서 제도적인 한계에 봉착해있고, 여전히 개별기업 단위의 노사관계 중심이라는 점에서 ‘무늬만 산별’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정치세력화도 민주노동당의 사실상 종료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상태로 머물러 운동의 방향을 잃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제조업의 노동력이 축소되고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이 밀려들어오며 서비스산업이 저임금 노동력 중심으로 재편되는 상황에 대해서 노동운동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부와 자본이 노동을 위계화하고 전체 노동자들을 ‘불안정노동’으로 내몰며 제도적으로 노동권을 박탈하는 정책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여전히 ‘개별 현장의 투쟁을 모으는 방식의 투쟁’을 채택함으로써 사회적인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노동조합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도 노동시장 구조개악이 밀려오고 있는데 이런 상태를 적극적으로 바꾸면서 운동의 전략을 세우지 못한다면 노동운동이 ‘발전’하기는 어렵다.

노동운동 발전전략으로서 ‘계급대표성 확장 전략’

외국에서도 노동운동의 쇠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대표적으로 SEIU(Service Employees International Union, 전미서비스노동조합)와 같은 조직은 ‘전략조직화’를 운동의 발전전망으로 세운 조직이다. 미국은 다수노조에 대해 사용자들이 의무적으로 단체협약에 임해야 하는 제도가 있기 때문에 노동자 다수를 조직함으로써 권리를 향상시키는 전략을 택했고, 그 다수 조직화를 위한 전략조직사업에 조직 전체가 매진하기도 했다. 유럽의 노조들은 도구적 집합주의로 흐르는 기존 노조운동을 넘어 평화, 생태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와 네트워크 조직 활용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조혁신전략으로 제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은 어떤 발전전략을 세울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는 ‘계급대표성 확장 전략’을 제기하고자 한다. 한국은 노조에 대한 법적 제약과 탄압이 크기 때문에 대대적인 조직화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또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과 민주노조 파괴 전략에 적극적으로 맞서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이 살아남기도 어렵다. 따라서 민주노조운동은 함께 투쟁력을 높이는 단위들을 선택적으로 조직하고, 자신의 활동 의제를 전체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의제(최저임금 등)로 전환시키며, 청년유니온 등 세대별 노조, 다양한 청년조직, 시민사회단체, 의제별 조직 들을 ‘재벌에 대한 통제’ 등 사회적 이슈로 연결하여 연대를 확장하고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런 점을 전제한다면 ‘계급대표성 확장 전략’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하나는 핵심주체의 조직화로서 ‘전략조직화’로 명명되어 있는 것이다. 2003년 이후 진행된 전략조직사업이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를 핵심의제로 설정했고, 화물연대나 덤프연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등 대중적 조직화를 이루어냈다. 인천공항 등 공공부문의 대규모 조직화 시도, 서비스유통에서 대형마트 노동자들의 조직화 시도, 그리고 제조업에서 원청과 하청업체의 비용전가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공단중심 조직화 시도’에 이르기까지 민주노조운동의 의제를 전환시키고, 정부와 자본에 맞서는 투쟁을 함께 해나가는 주체를 조직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었다.

또 하나의 조직화는 ‘노동조합’이 아니더라도, 혹은 민주노총 소속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대중적 조직화의 흐름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역할이다. 청년유니온이나 알바노조 등과 각 학생조직을 연결하여 ‘최저임금’이나 ‘청년실업’ 문제에 대한 대중적 흐름을 만들어보려는 시도,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들의모임) 등 대기업으로부터 수탈당하는 자영업자들을 조직하는데 힘을 보태려는 노력,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에 ‘노동권팀’이 만들어지도록 제안하고 조직하는 과정, 또한 사회적 의제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활동을 통해서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원을 확보해나가는 노력 등이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회적 힘을 확보해나가는 것이다.

전략조직사업으로서 공단조직사업의 의미

전략조직사업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 전략조직사업은 말 그대로 재정과 인력을 투여하여 장기적인 기획을 갖고 진행되는 사업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는 매우 큰 희생과 결단을 필요로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핵심대상에 대해서 긴 안목으로 집중적인 역량을 투여하여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그 대상선정과 조직화 기획에 있어서 매우 집중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노동자들이 위계화되어 있고 분절화된 상황에서 전략조직사업은 아래로부터 권리를 끌어올리는 사업이 되어야 하며, 그 조직대상의 중요한 의제들을 민주노조운동 전체가 받아 안고 싸우겠다는 결의가 함께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악에 맞서 공동투쟁을 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할 수 있는 대상이어야 한다.

철폐연대는 위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공단노동자 조직화’를 전략조직사업의 내용으로 제출한 바 있다. 그것은 기업규모에 따라 노동자들이 위계화된 현실 때문이다. 30인 미만 사업체에 전체 비정규직의 70%가 일하고 있으며, 기업규모가 커질수록 비정규직 비율도 낮아진다. 제조업은 산업구조가 대부분 대기업의 하청계열화되어 있고 대기업의 개입과 단가인하 압력 등으로 점점 열악하고 규모가 작아진다. 3월 통계청 자료에서는 300인 이하 중소기업이 300인 이상 대기업에 비해 62%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하며, 단가인하 등 원하청 불공정거래가 원인이라고 이야기한다. 2015년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30인 미만 사업장의 조직률은 3.9%, 31~100인 사업장은 16%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 조직률이 38%인 것과 확연하게 비교된다(2016. 2. 비정규직노조 가입 의향과 현황-한국노동연구원). 이런 위계화된 구조를 바꾸는 것은 밑에서부터 조직화를 해야 가능하다.

둘째로, 전면적인 불안정노동의 시대에서 기업 단위를 넘어서는 조직화가 필요하며, 그것의 가능성은 ‘공단’이라는 지역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자본은 조직된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자극하여 기업에 얽매이게 하고 통제력을 강화한다. 대다수 노동자들에게는 ‘고용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점을 이용하여 불안정노동으로라도 일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러므로 불안정노동의 시대에서는 ‘기업의 고용’을 뛰어넘는 노동자들의 요구를 조직하고, 다양하고 집단적인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의 가능성을 ‘지역’에서 찾고자 했고, 그것이 ‘지역중심의 공단노동자 조직화’로 제안된 것이다.

셋째로, 공단조직사업은 투쟁의 힘을 확장하는 매우 중요한 고리이다. 완성차 등 대공장 중심의 노동조합 활동은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중소하청업체에 대한 수탈 및 비정규직과 하청업체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 강화로 이어졌다. 대공장 노동조합의 투쟁이 사회 전체적으로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그 투쟁을 멈추려는 기업의 담합 시도를 뛰어넘지 못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전체 계급적 이해에 입각하여 운동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이미 쉽지 않다. 책임을 아래로 흘려버리고, 노동자 투쟁으로 인한 성과를 아래로 떠넘기는 구조에 맞서 전체 기업을 흔드는 힘을 발휘하려면, 대공장 노동자들의 계급성에 의존하기보다는 다단계 하청구조에 놓여있는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공동투쟁의 가능성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공단조직사업이 부딪친 한계들

그런데 민주노총에서 2기 전략조직사업에 이어 3기 전략조직사업도 진행을 했고, 철폐연대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아직 이렇다 할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직 주체형성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가지 한계에 봉착해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조직된 노동자들이 공단노동자들의 의제를 갖고 함께 싸우지 못하는 점이며, 두 번째는 기업 단위 임단협이 아닌 개별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활동에 대한 상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 때문에 지역의 의제를 담은 여러 투쟁을 하면서도 이것을 ‘조직화’의 성과로 연결시키는 ‘집단적 조직화 시도-노조가입운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 단위 활동을 넘어서는 활동을 해보자는 문제의식이 공단조직사업의 핵심적인 과제이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전형을 만들지 못하면 이 조직사업의 문제의식은 살아나지 못한다. 기업 단위 임단협이 아닌 지역사업이라고 한다면 투쟁의 대상도 원청과 지자체, 산업단지관리공단, 지역 자본가단체 등으로 확대되어야 하고, 투쟁의 내용도 단위사업장의 노동조건만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사회문화적 요구까지를 포괄할 수 있어야 하며, 지역 노동자 전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활동과 조직화의 방식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철폐연대를 비롯한 공단사업을 하는 단위들이 서로 소통하며 가능성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공단사업이 힘을 받으려면 돈과 사람을 집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민주노조운동이 활동을 집중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공단사업이 ‘조직문화 혁신’과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노총이 조직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의제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공단노동자 등 자본 연쇄고리 말단에 있는 노동자들의 의제를 중심으로 사업을 해나가고, 그것이 공단노동자들에게 전달되고 힘이 될 수 있다면 공단노동자들을 조직하는 단위들도 큰 규모의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투쟁과 선전전을 공단에 집중하거나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 대대적인 정치사회적인 여론전을 하고 고용노동부를 대상으로 하는 집단투쟁을 벌이는 등 사업의 규모를 크게 하고 집중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조금 더 힘을 더해보자

사회운동을 하는 동지들은 중소영세 제조업 노동자들이 던지는 삶의 질문에 귀를 기울이자.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라고 몸을 사르면서 노동자의 현실을 알렸듯이, 공단노동자의 삶을 밑바닥으로 끌어내린 카르텔에 대해 사회적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원청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 파견과 단기기간제 등 극심한 고용불안정, 복잡하고 왜곡된 고용구조, 손쉬운 휴폐업, 정부 관리감독의 부재, 작업장에서의 인권침해, 저임금과 장시간노동, 가족해체, 환경문제, 노동재해와 같은 사회적 타살, 공단노후화로 인한 사회적 위험 등 수많은 문제들이 공단에 산적해 있다. 이런 과제를 사회적으로 제기하면서 함께하는 ‘연대’를 조직하는 과정이 노동운동의 사회적 역할을 되살리는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단노동자 조직화 과정에서 사회적 연대를 조직하는 일에 모든 이들이 힘을 더해보자.

조직된 노동자들은 구조조정에 맞서는 투쟁을 공단노동자와 함께하기 위해 노력해보자. 정부와 자본은 노동자들을 갈라놓고 각개격파한다. 현 시기 투쟁에서 대공장, 공공부문 중심의 대응으로는 이 전술에 맞서기 어렵다.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과의 공동투쟁을 고려하고 그것을 위한 공간을 계속 만들어나가야 한다. 공단조직사업이 완성된 이후 원청대공장과 함께 투쟁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공단조직사업단이 대공장 중심의 투쟁을 하더라도 중소영세사업장 의제를 내걸고,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참여하고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그를 통해서 공동투쟁의 시도를 해나가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의 조직화는 파업과 가두투쟁의 결합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

지역의 활동가들은 기업별 노조 형식과 다른 새로운 형태의 조직화 실험을 시도해보자. 원청사업주와 지자체와 산업단지관리공단 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단체들을 교섭의 대상으로 확장하며, 사업장 단위를 넘어서는 단체협약을 조직해보자.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이미 기업 단위의 노사관계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불안정성이 일상이 된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인 발언력을 갖기 위해 공단셔틀버스나 근로자건강센터 설치, 공단 노동인권가이드라인 구성, 무료노동 금지 등 공단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의제를 설정하고, 낮게는 서명운동에서부터 높게는 지역파업까지 다양한 형태의 지역투쟁 방식을 개발해보자. 불안정성의 시대, 새로운 노동운동의 가능성을 만들어보자.
덧붙이는 말

/이 글은 민주노총의 3기 전략조직화사업 중 서울남부 ‘노동자의 미래’에서 공단조직화 사업에 함께했던 권순만, 오상훈 집행위원과 김혜진 상임활동가가 함께 논의한 결과를 정리해 작성하였습니다.
/ 이 글은 철폐연대 기관지 ‘질라라비’ 2016년 7월호(통권 15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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