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드라마 <그새죽> 슬레이트 뒤의 사람들

[워커스] 불온한 인터뷰

지난 1월 10일 민주노총이 만든 웹 드라마 <그새죽>이 SNS에 떴다. 당일 직장갑질119 오픈채팅방에도 공유될 만큼 전파력이 강했다.

제목 <그새죽>은 드라마 속 메인작가가 내지른 외마디 비명 “그 새끼를 미리 죽였어야 하는데”에서 따왔다. <그새죽>은 드라마 제작을 둘러싸고 CP와 비정규직 PD, 메인작가, 서브작가, 신입작가의 대화를 엮은 웹 드라마다. <그새죽>에서 음주운전으로 하차한 배우 때문에 제작에 차질이 빚어지자 메인작가는 그 배역을 드라마 속에서 미리 죽여 하차시키지 못한 걸 한탄한다.

[출처: <그새죽> 1화 장면]

민주노총은 시트콤 형식의 웹 드라마 <그새죽>을 ‘노조할 권리’라는 주제의 홍보영상으로 만들었다. 2년전 금속노조도 영상을 만들었고, 얼마 전 공공운수노조도 권해효, 변영주, 허지웅 같은 연예인이 나오는 노조홍보 영상을 만들었지만, <그새죽>만큼 파격을 보여주진 못했다.

<그새죽>이 나오기까지 민주노총은 4개월 넘게 회의에 회의를 거듭했다. 민주노총은 우선 20~30대 젊은 미조직 노동자를 타깃으로 잡았다. 그러기 위해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20일 청년조합원 간담회를 열었다. 노조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조합원이 모인 이날 간담회는 날 것의 대화가 오갔다.

젊은 조합원들의 생각

7명의 간담회 참가자들은 “노조가 만들어져서 어떤 게 좋아졌는지” “민주노총 하면 떠오르는 느낌”들을 털어놨다. 동시에 민주노총은 스스로를 욜로족이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젊은 조합원들의 생각을 통해 홍보의 포인트를 잡아갔다.

첫 파업을 준비하던 철도노조 코레일관광개발지부 이대열 조합원과 금속노조 만도헬라 지회 한샘 조합원은 노조하면서 “못 가본 곳에 자주 가는데, 국회 갈 일이 없었는데 너무 자주 갔다”고 했다. 만도헬라 홍광수 조합원은 노조 만들기 전엔 “거지같은 임금을 회식 때마다 말했는데 변하지 않더니, 노조 만드니까 갑자기 5% 올려준다고 하더라. 파업 얘기도 안했는데”라며 노조의 장점을 소개했다.

청년 노동자의 고립된 노동도 엿볼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 간호사인 최원영 문화부장은 “노조를 안 했으면 파업기간에 온 병원이 떠들썩해도 중환자실에 처박혀 컴퓨터 앞에서 일만 했을 텐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최 부장은 병원 노동자의 고립된 노동을 대학 때부터 설명하며 “간호학과를 나와서 병원에 취업했는데 풀이 되게 좁다. 간호학과는 고등학교처럼 다같이 수업 듣고 다 같이 병원 입사하고, 부서이동도 드물고 병원 내에서도 행동반경이 좁다. 나는 중환자실 간호사인데 하루 종일 침대 2개에 누운 환자 2명 사이만 오간다. 만나는 사람도 한정적인데 노조를 하니 여러 사람을 만나 신기했다”고 했다. 최 부장은 지난해 파업 때 SNS에 쓴 글이 떠서 유명세를 치렀다.

서울지하철 9호선 메트로지부 신상환 사무국장도 비슷한 경험을 털어놨다. 신 국장은 지하철 9호선에 입사하기 전 생산직으로 2조 2교대를 하며 공장도 다녔고, 20대 중반엔 병원에서 간호조무사로 1년 정도 일했다. 두 곳 다 노조가 있었지만 머리띠하고 싸움질이나 하는데 질려 가입조차 안 했다. 그랬던 신 국장은 정규직이란 안내문에 혹해 9호선에 시험 쳐 들어왔지만 3년 계약직이었다. “지하철이니 땅 속에서 두더지처럼 그냥 일하면 일하고 월급주면 받고 그런 무미건조한 삶을 살다가, 노조 하니 새로운 시야가 생기더라. 노조 일에 재미가 들리니, 회사 업무에도 도움이 되더라.”

신 국장은 지난해 첫 파업 때 얻은 소중한 경험을 말했다. “파업 준비할 땐 우리끼리 이쑤시개 하나로 싸울 줄 알았는데 뒤에서 탱크를 끌고 와 도와주더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등 연대를 엄청나게 받았다. 그 힘으로 우리가 사장도 몰아냈으니.” 신 국장은 연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봤다. 그저 먹고살기 급급했던 인생을 되돌아 볼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청년 노동자들은 국가정책을 집행하는 관료들과 현장의 공기업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지도 털어놨다. 코레일관광개발지부 이대열 조합원은 “코레일은 기획재정부 지침 중 자기들에게 유리한 건 무조건 해야 한다고 현장에 강요하면서도, 지들에게 안 좋은 지침은 ‘배 째라’고 버텼다”고 했다. 서울대병원 최원영 문화부장도 “병원이 박근혜 정부 땐 성과연봉제를 정부지침이라며 그렇게 앞장서서 열심히 하더니, 문재인 정부 들어선 같은 정부지침으로 ‘정규직 전환’하라고 해도 안 하다더라. 자기 좋은 건 정부지침이니 따라야 한다면서 정규직 전환 12차 전략기관으로 선정해주겠다는데도 안 했다”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교육과 홍보로 이어졌다. 9호선 메트로지부 김시문 지부장은 “현장 노동자는 노조가 왜 필요한지 잘 모른다. 민주노총이 정기적으로 CF를 찍어 홍보해야 한다. 국가가 나서 노조를 홍보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민주노총이 만들 홍보영상이 “드라마처럼 재밌게 만들어 오늘 1화 보고, 내일 2화 보고 싶도록 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 지부장의 바람대로 민주노총 홍보영상은 현재 번외 편까지 6편이 소개됐고, 이후 계속 이어진다.

“당신이 함께해서 가능했다”

청년 조합원 간담회에 이어 민주노총은 지난해 9월 28일 영상 전문가들과 함께 아이디어 회의를 열었다. EBS에서 지식채널e를 만들었던 김진혁 PD와 오정훈, 주현숙 감독이었다. 영화감독을 하다가 최근 공공운수노조 교육선전실에서 일하는 태준식 국장도 함께 했다.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했던 전문가들은 정규직 귀족노조, 레드컴플렉스, 패권주의가 떠오르는 민주노총의 그간의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발언했다. 하지만 노동운동이 어떻게 한국사회를 발전시켜 왔는지, 노동시간 단축, 25일제, 건강보험 확대가 노조운동의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회발전을 민주노총이 했다. 당신(조합원)이 한 거다. 당신이 함께해서 가능했다”는 설정의 영상제작을 주문했다.

태준식 감독은 “노조에 노크하는 순간 달라지는 것들을 보여주고, 조직률 30%가 되면 뭐가 바뀌는지 보여주자”고 했다. 동시에 회사(자본)가 얼마나 많은 권력을 갖고 있는지를 부각시키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런 게 부각되지 않으니 젊은 미조직 노동자들의 분노가 오히려 민주노총으로 향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홍보영상의 형식은 민주노총이 끌고 간다는 느낌보다는 20대가 지지하고 공감하는 방향을 주문했다. 20대를 잡기 위해 재미와 반전은 필수였다. 이런 요소를 두루 갖춘 ‘약치기 만화’가 직장 내 부당한 관행을 바꾸는 모습에서 한발 더 나가 “직장에서 부당한 지시나 폭언 당했을 때 노조에 노크하세요”라고 말하면 어떨까.

민주노총 정나위 교육선전차장은 청년 조합원 간담회와 전문가 아이디어 회의까지 전 과정을 주관한 뒤 영상제작의 큰 방향을 4개로 유형화했다. ①미조직 청년 노동자에게 쉽게 다가갈 친근한 영상으로 ②노조가 사회와 우리 삶을 바꾸는 걸 보여주고 ③노조의 가치와 철학을 담고 ④노조 결정을 가로막는 장벽이 무엇인지 담아내는 쪽으로 작업계획을 잡았다.

누가 만들지는 아이디어 회의에 참석했던 오정훈 감독으로부터 출발했다. 오 감독은 2007년 <은하해방전선>으로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을 받은 윤성호 감독을 소개했다. <은하해방전선>은 연애도, 영화도 말만 베테랑인 초짜 감독 영재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리면서 만들어 가는 코미디 멜로 영화다.

민주노총을 만난 윤성호 감독은 노조를 만들라고 부추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노조를 보여주는 시트콤 형식을 권했다. 윤 감독은 자신도 “40대에 들어서 트렌드도, 감각도 떨어졌다”며 이런 형식을 잘 소화할 젊은 감독들을 소개했다. 이렇게 만난 게 ‘시트콤 협동조합’이었다. 윤 감독도 이곳에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홍보영상 총괄제작을 관리했던 시트콤 협동조합의 송재영 PD는 “민주노총이 먼저 제안해서 이번 영상을 만들었는데, 웹드라마 형식을 지향하는 우리와 맞아 떨어져 즐겁게 작업했다”며 “이번 작업 이후 여러 곳에서 제안을 받고 있다”고 했다. 민주노총은 시트콤 협동조합과 시즌2 제작도 논의 중이다.[워커스 4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