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여름휴가의 독버섯 기억

[연속기고] 차광호의 굴뚝일기(4) 여름휴가를 가지 못하는 투쟁사업장 노동자들

어제의 비바람은 종전에 알던 비바람이 아니다. 비바람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무섭던 바람이 지금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이 뜨거운 햇빛에 바람이라도 불어주지 않는다면 끔찍하다.

휴대폰 전원을 켜니 한 통의 문자 메시지가 들어왔다. KEC지회에서 보낸 문자다. 5년 투쟁의 고단함을 여름휴가로 잘 보내고 건강과 운전을 조심하기를 바라는 내용이었다.

한국합섬에 입사하고 여름휴가를 몇 번 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3교대 사업장이라 한 명이 여름휴가를 가면 앞, 뒤 조에서 각 한명씩 2명이 12시간씩 일을 하기에 4조3교대가 되기 전에는 여름휴가를 몇 번 가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몇 번 안 되는 여름휴가 중 특별히 잊을 수 없는 기억이 있다. 입사한지 3년, 결혼하고 처음 맞는 여름휴가였다. 1997년도로 생각된다. 형님의 제안으로 형수와 조카 둘, 옆지기와 같이 텐트2동과 먹고 마실 것, 물놀이 준비물을 챙겨 자가용 두 대에 나누어 싣고 소백산 계곡으로 향했다.

바다를 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옆지기가 물을 워낙 무서워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계곡으로 간 것이다. 안전사고에 대비해 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텐트를 나란히 쳤다. 2박 3일의 일정으로 첫 날과 둘째 날은 계곡에서 조카와 형수를 물에 빠뜨려가며 즐겁게 보냈다. 물론 엽지기는 발만 물에 담그고 있었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여서 그때까진 좋았다. 문제는 마지막 날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화장실을 가는 것이 습관이라 구석진 곳으로 들어갔다. 볼일을 보러 갈 때는 몰랐는데 돌아오는 길에 버섯을 발견하고 한 되는 좋게 땄다. 학교 다닐 때 아침에 일어나서 뒷산에 올라 버섯을 따서 아침 반찬으로 먹었던 바로 그 버섯이었다.

텐트로 오니 아침 준비로 분주하다. 하지만 3일째 아침이라 준비했던 식재료도 얼마 남지 않았다. 형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섯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다들 꺼려하다 맛을 보고는 게 눈 감추듯 다 먹어 버렸다.

그렇게 아침을 맛나게 먹고 짐을 챙겨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형수와 옆지기가 배가 아프다며 화장실을 간다. 그것을 시작으로 형님과 나도 설사로 화장실을 출입해야 했다.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형수와 엽지기는 구미순천향병원에 일주일을 입원해야만 했다. 조카들에게 몇 번을 권했지만 입에 맞지 않았는지 먹지 않아 천만다행이었다.

그때 만약 형수와 옆지기와 잘못 되었다면, 지금도 아찔하다. 그러고도 지금까지 곁에서 나를 지켜준 옆지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차광호가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옆에서 노동자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준 옆지기 이현실 님께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감사함을 전한다. 앞으로 쭉 같이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그 이후 형님네와 여름휴가를 보낸 기억이 없다. 물론 형님네가 전라도로 이사를 간 이유도 한몫했지만 독버섯의 기억은 잊히지 않는다.

가족과 같이 여름휴가를 보낸 것이 10년도 넘은 것 같다. 한국합섬 파산 5년 투쟁, 공장가동 2년 동안 진행했던 임금과 단체교섭, 스타케미칼 공장이 가동 중단 이후 1년 7개월째 투쟁의 세월을 보냈다. 집에 있는 옆지기와 가족들에게 안타까운 여름이지만 지금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간이라 다시금 투쟁의 주먹을 쥔다.

30도를 넘는 불볕더위가 계속된다. 현대차를 비롯해 많은 사업장에서 일주일 동안의 휴가를 떠난다. 바닷가든 계곡이든 가족들과 함께 잠시라도 쉬면서 1년 동안 힘겨운 노동의 피로를 풀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행복한 시간이다.

하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휴가를 떠나지 못한다. 스타케미칼 조합원들만이 아니다. 코오롱정투위와 기륭전자 조합원들을 비롯해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은 올해도 여름휴가가 없다. 밀양과 청도, 강정마을도 마찬가지다. 정권과 자본의 탐욕에 맞서 힘겹지만 아름다운 투쟁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이 하루빨리 승리하고 여름휴가를 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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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광호 , 굴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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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합원

    ㅅㅈㅇㅌㅁㅌㅂ민주노조 활동가 조합조직,,,,,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