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를 기다리는 굴뚝광호

[기고] 23일 스타케미칼 희망버스, ‘우리가 차광호다’

5월 27일 새벽 4시경 잠든 나를 급하게 깨우는 목소리가 있었다. “광호형이 지금 공장 굴뚝에 올라갔답니다” 5월 말인데도 굴뚝 밑은 찬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45m 굴뚝 위에서 겨울 파카를 입은 광호가 손을 흔들었다. 광호는 동지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동지들, 투쟁의 피곤함으로 잠들어 있을 시각에 이렇게 문자를 보내 미안합니다. 스타케미칼에서 해고된 지 1년 5개월입니다. 싸우고 싶어도 자본가와 싸우기는커녕 어용과도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 못했습니다. 한국합섬 5년 투쟁 때 지금보다도 훨씬 어렵고 힘들었지만 우리는 하나되어 자본에 맞섰고, 이긴 경험이 있습니다. 스타케미칼 김세권 사장은 폐업 공포를 가진 노동자들을 이용해 노노분열을 획책했고, 자본의 앞잡이가 된 어용지회는 조합원의 고용과 권리를 지키기는 고사하고 우리 투쟁의 가장 큰 장애물이었습니다.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고, 노동자로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스타케미칼 김세권은 우리의 고용을 책임져야 합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고공농성에 나섰습니다. 힘차게 싸우겠습니다. 투쟁!”

광호가 굴뚝에 오른 날은, 금속노조 구미지부 스타케미칼지회 집행부가 사표 쓴 자들의 위로금을 챙기고, 해고자들에게 한마디도 없이 위로금 1천만 원에 해고자를 팔아넘기는 합의를 하고, 회사와 모든 계산을 정산하고 보따리를 싸서 공장을 떠난 날이었다. 명치를 누르는 통증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김세권 너 두고 보자. 어용 니들 용서 못한다.

[출처: 뉴스민 자료사진]

광호는 굴뚝농성이란 고립된 투쟁을 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자랑스런 민주노조의 정신을 갖고 장기폐업에 맞서 투쟁했던 옛 동지들과 함께 구미공장을 지키며, 서울로, 음성으로, 김세권의 집으로 찾아다니며 전국의 동지들과 연대하며 투쟁하고 싶었다. 그러나 어용노조는 조합원에게 폐업하는 공장에서는 위로금을 챙기는 게 실리라며 사표를 강요했고, 168명의 조합원 중 139명이 사표를 내고 떠났다. 이를 거부한 광호와 28명의 동료들은 해고됐다. 그러나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를 구성해 자본과 싸운다는 이유로 어용지회와 금속노조 구미지부는 광호와 5명의 해고자를 징계제명했다.

해고되고 정당하게 지급받아야 할 금속노조의 신분보장기금조차 그들은 신청하지 않았다. 그렇게 처절하게 지회와 지부로부터 내쳐지면서 광호는 스스로 자신의 투쟁을 결단할 수밖에 없었다. 5월 26일 어용조차 모두 떠난 공장에서 김세권 사장에게 노동자로서의 자존심을 걸고 마지막 투쟁이라도 벌여야 했기 때문이다. 20년 청춘을 바친 공장이다. 그 청춘을 바친 세월 모두가 민주노조와 함께 했던 세월이다. 광호에게, 스타해복투에게 민주노조는 청춘이자 삶 그 자체다. 그것이 흔들리는 충격! 광호를 굴뚝에 세운 건 바로 우리다. 아무도 이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는 지금 혼자 86일을 보내고 있다. 아침이면 굴뚝 위에서 노래소리가 들린다. “음치인 광호가 뭔 짓이고?” 했더니 “말을 잊어버릴까 봐 노래를 부른다고 하네요” 한다. 그랬다. 광호의 노래는 노래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지난 토요일, 광호의 페이스북을 보며 억장이 무너졌다.
“누나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생신이라 형제가 다 모였다. 빨리 내려오라고 한다. 96년 결혼 후 우리 부부는 어머님 생신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나 오늘은 둘 다 같이하지 못했다. 나야 그렇다 치고, 처는 장모님 병수발 갔다. 난소에서 자란 암세포가 장기 전체로 퍼져 말기라고 한다. 마음이 무거운 밤이다.”
나는 이 글을 보고 마음이 가라앉음과 동시에 미칠 듯한 분노를 느꼈다.

며칠 뒤 광호는 페이스북에 “굴뚝농성 84일차 계속 비가 내린다. 해복투 동지들이 전국을 다니며 희망버스를 조직하고 있다. 비가 많아 동지들이 걱정이다. 23일은 비가 오지 않기를”이라고 썼다.

굴뚝광호는 지금 신혼 첫밤을 앞둔 새신랑같은 마음으로 희망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스물다섯 파릇한 청춘의 광호가 웃고 있다. 희망버스가 싣고 올 희망을 간절히 기다리며!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 광호는 목놓아 함께 외치고 싶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