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8.18 합의서’ 내세워 불법파견 선고 연기한 이유는?

“고의적 지연, 정규직화 판결 무력화시켜 노조 와해시킬 것”

지난 21일로 예정돼 있었던 현대차 불법파견 선고가 9월로 연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현대차 사측이 선고를 이틀 앞두고 현장에서 원고들의 소취하서를 취합하는 등 의도적으로 선고를 지연시켰다는 비판이다. 법원 역시 선고 하루 전 무더기로 취합된 소취하서에 피고인 현대차의 동의가 미비하다는 점을 들어 선고를 연기하기로 했다. 노조는 사법부조차 현대차의 선고 지연 전술에 힘을 싣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선고는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1,596명의 불법파견 여부가 판가름 나는 1심 판결이다. 대다수의 공정에서 불법파견이 확인되고 정규직 전환 판결이 난다면 회사로서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때문에 회사는 선고를 3일 앞두고 현대차 울산을 제외한 아산, 전주 비정규직지회와 불법파견 교섭에 전격 합의했다. 이후에는 법원에 합의서를 내세우며 선고연기를 요청했다. 노조에서는 회사가 선고까지의 시간을 벌어, 판결을 무력화시키고 현장에 합의안을 관철시켜 불법파견 혐의를 은폐하기 위한 의도라고 보고 있다.

현대차 대리인 김앤장, ‘합의서’ 내세워 불법파견 선고 연기 요청
“합의에 따라 현차지부가 소취하서 취합해 제출할 것”


현대자동차 소송대리인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선고 하루 전인 20일, 재판부에 ‘선고기일 연기신청서’를 제출했다. 이 자료에는 지난 18일, 현대차가 아산, 전주 사내하청지회와 체결했던 특별채용 합의안을 근거로 한 연기신청 요구 내용이 들어 있다.


회사는 연기신청서를 통해, 향후 전주, 아산지회 조합원들 역시 소취하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회사는 “노조는 합의 즉시 전주, 아산 지회 조합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등에 관한 취하서와 위임장을 현대자동차지부에 제출하기로 했다”며 “취하서와 위임장 등 제반 서류는 당사자의 특별고용이 확정된 날 법원에 취하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 18일 노사 합의에 따라 오는 9월 400명 규모의 특별채용 절차를 완료할 것이며, 특별채용 된 원고들이 9월내로 소취하서를 제출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법원이 선고 전날 무더기로 접수된 소취하서에 피고인 현대차의 동의가 미비하다는 점을 들어 선고를 연기한 만큼, 9월 18일로 예정된 불법파견 선고 역시 또 다시 지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게다가 회사는 “첫 번째 특별채용절차가 완료되면 회사는 합의주체와 두 번째로 연내에 약 600여 명을 추가로 특별채용하는 절차에 들어갈 것이고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에 소속된 원고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할 예정”이라며 “200~300명의 원고들은 2014년 9월 내로 소를 취하한 후, 나머지 원고들에 대해서도 향후 특별채용 절차에 따라 추가적으로 소를 취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판결을 기약 없이 연기시켜 이번 합의에 참여하지 않은 울산비지회 조합원들에게도 ‘특별채용-소취하’를 관철하겠다는 의도다.

“고의적 연기, 정규직화 판결 무력화시켜 노조 와해시킬 것”

노조는 회사의 선고 지연 전술이 불법파견 선고를 무력화시키고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라 보고 있다. 소송에 참여한 인원과 조합원 수가 가장 많은 울산비지회가 이번 노사 합의에서 빠진 만큼, 시간을 벌어 노조 와해 및 소취하 작업을 벌이며 소송 규모를 축소시킬 것이라는 설명이다.


회사는 연기신청서를 통해 ‘원고들이 소속돼 있는 울산비지회와도 원만한 합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 교섭이 진전될 가능성은 적다. 현대차 사측은 “울산지회와 예정된 (교섭관련) 일정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사측 관계자는 “울산 비지회가 격앙돼 있는 상태라 대화를 할 분위기가 아니다”라며 “현대차지부가 나서야 하는데 그 쪽도 임단협 등 코가 석자라 (당분간 교섭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울산비지회 관계자 역시 “(교섭이 열릴) 여지는 있지만 실현될 지는 미지수다. 노조에서 받을 수 있는 안을 던지면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교섭을 해도 아산, 전주비지회와 동일한 안을 제시할 것이기 때문”이라며 “현대차지부 역시 또 다시 교섭에 나설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교섭의 방식이 아닌 일방적인 합의안 관철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교섭에 불참했던 울산비지회는 노사합의 대상에서 울산비지회를 빼 줄 것을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합의서에는 ‘아산, 전주 지회 조합원 이외의 지위확인소송 제기자 중 공고에 지원한 자는 동일 적용한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회사가 법원에 제출한 연기신청서에서도 “(특별채용 절차에) 울산공장 비지회에 소속된 원고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지금도 현장에서 회사가 업체 또는 원청 관리자를 통해 신규채용을 권유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노조 분열을 꾀하려는 것”이라며 “소송을 연기시키면서 조합원들의 심리를 무너뜨려, 아산, 전주와의 합의에 따른 신규채용을 관철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회사에서는 울산공장에 있는 비조합원들을 상대로 특별채용을 실시할 방침이라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울산에는 지회조합원을 제외하고도 3천 명이 넘는 비조합원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합의안을 폭넓게 열고 가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다만 합의대상에는 울산비지회 조합원들이 빠져 있기 때문에, 지회 조합원들이 (특별채용을) 신청하는 것은 안 된다. 조합을 탈퇴하고 비조합원 신분으로 신청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럴 경우 특별채용을 조건으로 노조 탈퇴 회유 등 노조와해 작업이 일어날 가능성도 높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은 “현대차는 사상 최대의 정규직화 판결을 앞두고 선고를 연기시켜 판결을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라며 “회사는 시간을 지연시키며 노조 탈퇴와 소송 포기를 요구할 것이며, 울산역시 평 조합원 중심으로 흔들리게 되면 나중에는 극소수만 남게 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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