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법질서 확립’의 이면

분신까지 부른 노인병원 사태 무엇이 문제

청주시가 2일 ‘법질서 확립’ 의지를 밝혔다. 지난 해 6월 병원 폐원으로 해고된 청주시노인전문병원(아래 노인병원) 노동자들이 ‘시청광장을 점령하고 분신 위협을 가하는 등 정상적인 시정업무를 마비’시켰다는 이유다.

이날 28일째 단식 농성중이던 권옥자 분회장(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청주시노인전문병원분회)은 고용승계를 촉구하며 분신을 시도했다.

시는 또, 노인병원 노동자들이 고용승계를 주장하고 있지만 법대로 해도 맞지 않다고 했다.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폐원한 병원의 경우 노동자의 고용 자체가 단절돼 지난 해 12월 선정된 새로운 민간위탁자인 의명의료재단이 기존 노동자들의 고용을 승계할 법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시는 새 위탁자에게 올해 1월 고용승계를 강제하지 않고 권고만 했다.

청주시 노인병원TF팀 관계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노인병원 근로자들은 해고자로 고용관계가 없어 고용승계란 용어 자체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시 관계자도 “고용 문제는 사용자와 근로자간의 계약 문제이기 때문에 청주시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고 했다.

“법에 따라 고용승계 해야”

하지만 법제처가 시의 질의에 대해 지난 해 10월 26일 ‘노인병원은 사회복지사업법과 시행규칙에 따라 시가 고용승계 조항을 포함하는 위탁계약을 체결할 의무가 있다’고 회신한 일이 뒤늦게 드러났다.

법제처는 “노인병원은 구 노인복지법에 따른 노인복지시설로서 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시설”이라며 “사회복지사업법 제34조제4항에 따라 사회복지시설을 위탁하여 운영하려는 때에는 그 위탁계약에 ‘시설종사자의 고용승계에 관한 사항’이 포함된 계약을 체결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복지사업법 시행규칙 제21조의2 제1항 5의2호에 따르면, 시는 이 법에 따라 노동자의 고용승계에 관한 사항을 포함해 위탁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법률원은 “노인병원은 사회복지사업법으로 고용승계가 의무화되어 있다”면서 “청주시는 지방자치단체로 무엇보다 법령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더불어 헌법과 고용보호를 규정한 근로기준법에 부합하도록 업무를 집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법률원의 김영광 변호사는 “노인병원이 폐원을 했든 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시는 위탁계약을 체결할 때 고용승계 조항을 마련할 법률적 의무가 있다”면서 “또한 폐원의 원인 자체가 병원 측에 있기 때문에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가하는 행위는 부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청주시가 법제처 검토 은폐?

시는 법제처의 이 같은 법률적 견해를 사실상 무시한 것으로 보인다. 노측에 따르면, 시는 지난 해 10월 법제처의 견해를 확인하고 한 달 뒤 노인병원 민간위탁 공고에 고용승계 의무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새 위탁자가 선정된 이후에도 이 내용을 알리지 않았다.

민주노총 충북본부가 “청주시는 지금까지 법제처 회신 내용을 은폐했다. 고용승계에 대해 강제 없는 권고만 할 수 있다며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를 우롱했다. 시는 노조 간부가 1월 6일 무기한 단식에 돌입하는가 하면 집단 동조단식, 규탄 집회 등 불필요한 사회갈등 비용을 치르도록 내몰았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가 1월 22일 노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노인병원 조항을 삭제하고 요양병원으로 명칭을 바꾸겠다고 조례개정을 추진하자 ‘고용승계 계약 체결 의무 자체를 피하려는 탈법 의도’라는 반발까지 불렀다.

법제처가 노인복지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노인병원은 구법 적용이 유효하다고 밝혀, 조례를 개정할 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상한 법 해석과 ‘시각 차이’

시는 여전히 ‘고용승계는 의무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사회복지법에 관한 법제처의 견해에도 불구하고 “고용승계는 의무가 아니라 위탁 계약시 집어넣으라는 의미로 가이드라인과 같은 것이다”고 해석했다.

특히 ‘시의 주장처럼 고용이 단절됐다 하더라도 시기가 늦춰졌을 뿐 위탁계약이 진행되고 있고, 고용단절의 원인은 폐원에 있지 않냐’는 질문에는 “시각의 차이”를 들었다.

시 관계자는 “시와 전 병원운영자와 노조 등 3자 모두 책임이 있고 잘잘못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예전 CCTV를 봤는데 근로자들이 연두색 노조 조끼를 입고 근무했던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이 노인병원에 입원해 계신데 연두색 조끼를 입고 진료하고 간병하면 누가 좋아하겠는가?”라고 되물었다.

시가 권 분회장의 분신 시도 직후 ‘불법시위에 대해 법질서 확립’ 차원에서 엄단하겠다는 입장도 사실관계가 불분명해 보인다.

시 관계자는 “분신 시도 자체와 시청 밖에서 열린 집회에 대해 불법시위라는 게 아니다. 분신 시도 직후 오후 2시30분께 노조원들이 시청광장에서 구호를 외쳤는데 이는 명백한 불법”이라며 “청사 안에서는 구호를 외치는 등 집회를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청주시가 고발 조치하지 않아도 경찰 측에서 진행할 것이다”고 말했다.

시의 이 같은 입장대로라면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친 행위에 대해 ‘시청광장을 점령하고 분신 위협을 가하는 등 정상적인 시정업무를 마비’시켰다고 보기엔 과도하기 때문이다.

김영광 변호사는 “권 분회장이 분신을 시도하고 탈진해 다른 사람들이 불상사가 생길까봐 지켜보거나 권 분회장 주위에 앉았고,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치면서 다른 일반민원인의 불편이 줄어든 상황이었다”면서 “또한 집시법에 따라 명백한 사정이 없으면 우발적인 집회라 하더라도 불법집회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이다”고 전했다.

한편, 청주시가 국비 등 157억 원을 들여 2009년 설립한 노인병원은 민간위탁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전 수탁자가 지난 해 6월 5일 일방적으로 폐원하면서 전 직원이 해고됐다. 시는 의명의료재단을 새로운 민간위탁자로 선정했지만 이전 위탁자와 새 위탁자 간의 병원 장비와 설비 인수인계 비용과 관련해 입장 차이가 컸고, 2월 1일 개원 목표는 무산됐다.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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