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여성의 날, “학교 성폭력의 역사를 끝내자”

2년 전 문재인 대통령의 페미니스트 선언 꼬집어 “선언만으로 성평등 완성될 수 없어”

“1990년 K여중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잘 안 벗겨지는 바지를 입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2000년도 N중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중년의 남성 미술교사는 체벌을 할 때마다 남학생은 허벅지 안쪽 살을, 여학생의 경우 겨드랑이 안쪽 살을 꼬집었습니다.”

“나는 2010년도 H여고 학생이었습니다. 선생님 한 분이 수업시간에 여성의 누드사진을 보았습니다. 누드사진이 스크린 가득 보였는데 동료 교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2016년 제주J여고에서 ‘한국 여성들이 깨끗하기 때문에 위안부로 데려간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성차별 고발 제보함 캠페인은 20시간 만에 철거됐고 교장은 저를 불러 ‘거짓 고발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교장은 지금 제주도의회 교육의원입니다.”



학교 안에서 벌어진 성폭력은 1990년대와 2010년대가 별반 다르지 않았다. 3.8 여성의 날을 맞아 스쿨미투 고발에 나선 이들은 학내 성폭력의 역사를 끝내자고 외쳤다. 이들은 지난해 제기된 학내 성폭력 고발은 몇몇 학교의 개별 사례가 아닌 역사적으로 반복된 뿌리 깊은 구조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노동당,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등은 8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기자회견을 열고 “여성 청소년들의 삶을 바꿀 실효적인 대응책을 만들고 한국 사회의 강간 문화를 뿌리 뽑을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며 “학교로 돌아간 스쿨미투 고발자들에게 연대의 메시지를 보낸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정부가 침묵하는 열 달 동안 스쿨미투 고발자들은 백래시 등으로 고통받았고, 지난 12월 나온 정부의 대책은 반쪽짜리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유경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활동가는 “정부는 양성평등 교육 강화와 학교 성폭력 표본 조사 시행 등을 대책으로 내놨지만 양성평등 교육으로는 사회에 뿌리내린 성차별을 해결하지 못한다. 페미니즘 시각의 교육으로 재편돼야 한다”라며 “교육부에선 학교가 너무 많기 때문에 전수조사가 어렵다고 한다. 하지만 숨어있는 스쿨미투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기 위해선 응당 전국 단위의 전국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 운영위원은 학교 구성원이 느끼는 ‘불편함’이 성폭력 표본 조사를 하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고도 했다. 양 운영위원은 “교사들이 불편해한다며 전수조사를 못 하겠다고도 하는데, 그 불편함이 핵심”이라며 “차별과 폭력에 둔감했던 이들이 이제는 불편함을 느끼고 달라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성평등 관련 말만 앞서는 정부의 태도 또한 비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2년 전 오늘,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성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입니다’라고 선언했지만 문 대통령은 페미니스트 선언 이외에 성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실효적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라며 “한국 사회의 성평등이 선언만으로 완성될 수 있다는 믿음은 정부 내부에 젠더 감수성 자체가 존재하는지 의심스럽다”라고 질타했다.

또한 이들은 정부와 검찰에 △교육부의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 시행 △교육부의 (예비) 교원에 대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사립학교법 개정 통한 사립학교 교원의 징계 수위 강화 △스쿨미투 고발에 대한 검찰의 적극적인 수사 등을 요구했다.

이날 오후 노동당 등은 마포구청 대강당에서 스쿨미투 학내 성폭력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한편, 3.8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도심에선 다양한 행사들이 개최된다. 민주노총은 오후 2시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3.8 세계여성의 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한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서 ‘성별 임금격차 해소를 위한 제3회 3시 STOP 조기 퇴근시위’를 연다. 오후 5시엔 한국여성단체연합이 광화문 광장에서 ‘3.8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35회 한국여성대회’를 개최한다.

최근 진행되는 페미니즘 이슈를 담은 행사들도 있다. 오후 2시 광화문광장에선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이 주최하는 ‘정상연애’ 장례식 퍼포먼스가 열린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은 이성애, 정상연애 중심의 연애를 비판하는 한편, 데이트 폭력 및 이별 살인을 규탄한다. 오후 8시엔 신사역 2번 출구에서 불꽃페미액선 등이 주최하는 ‘클럽 내 강간문화 근절 페미니스트 시위’가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