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어느 날 우연히 북한산 근처에서 돌아다니던 들개 무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들을 조용히 그리고 자세히 관찰하였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개들은 나를 나무 보듯, 자신을 해치지 않을 산속의 또 다른 친구를 보듯 받아들여 주었다. 비봉의 흰다리, 족두리봉의 검은입, 숨은벽의 뾰족귀. 이 무리는 지금도 북한산을 오르며 저들끼리 으르렁거리다가 쫓고 쫓기다가 바위 위 낭떠러지 비탈에 서 있다.

도시의 들개 문제는 주로 재개발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했다. 주택가의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주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개들이 골목을 가득 채웠고, 순식간에 반려견에서 유기견이 된 개들은 거리를 떠돌았다. 이 중 많은 개가 식용견으로 개를 공급하는 개장수에게 잡혀가고, 가까스로 개장수를 피한 개들도 굶어 죽거나 질병으로 죽고, 추위를 견디지 못해 동사하거나 차에 치여 죽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남은 개들이 생존을 위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여긴 산으로 들어갔다. 현재 산에 사는 들개 가운데 비율이 높은 개는 진돗개이다. 소형견은 추위, 배고픔에 적응하지 못하고 심리적 신체적으로 쇠약해져 대부분 죽었기 때문이다.

(중략)

들개는 생태학적으로 뉴트리아나, 황소개구리, 배스와 같이 외래종으로 분류된다. 외래종이 들어와서 고유종을 잡아먹고 고유종의 개체 수를 감소시키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종으로 취급해 배스나 블루길을 잡아내는 것과 같다. 포획된 들개를 기다리는 건 죽음뿐이다. 암묵적이지만 잡힌 들개는 눈앞에서 죽이지 않을 뿐 대부분 죽는다. 북한산의 개들은 인간과 함께 한 공간에 살고 있지만 사실상 함께 살지 못한다. 관찰을 하면 할수록 이 산의 풍경은 어쩐지 낯설지 않았다. 풍경은 기만적일 수 있다. 종종 풍경은 거기서 살고있는 생명의 풍경이 펼쳐지는 무대라기보다는 하나의 커튼처럼 보인다. 그 뒤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 성취 그리고 그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는 커튼.

(작업노트 중 일부 발췌)

  권도연_01_18. Lion Hair, Seunggabong Peak, Oct. 2018


  권도연_02_1. Osan Ridge, Feb. 2018


  권도연_03_11. Black Mouth, Bibong Peak, Peak, Apr. 2018


  권도연_04_5. Bibong Peak, May. 2018


  권도연_05_20. Lion Hair, Seunggabong Peak, Oct. 2018


  권도연_06_6. Pointy Ears, Bibong Peak, Apr. 2018


  권도연_07_4. Spotted Dog, Tangchundae Ridge, Jun. 2018


  권도연_08_8. Sniffler, Munsubong Peak, Mar. 2018


  권도연_09_22. Sniffler, Seunggabong Peak, Apr. 2019


  권도연_10_23. Black Mouth, White Leg, Lion Hair, Sniffler, Seunggabong Peak, Jun. 2019


  권도연_11_15. White Mouth, Jokduri Peak, Jul. 2018

권도연은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사진을 이용해 지식과 기억, 시각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탐색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전으로는 《북한산》(갤러리누크, 서울, 2019),《섬광기억》(갤러리룩스, 서울, 2018), 《고고학》(KT&G 상상마당, 서울, 2015), 《애송이의 여행》(류가헌, 서울, 2011)이 있으며, 미국 포토페스트비엔날레, 스페인 포토에스파냐 비엔날레, 대구사진비엔날레, 고은사진미술관 등에서 다수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1년의 사진비평상을 비롯하여 제 7회 KT&G 상상마당 SKOPF 올해의 최종 작가(2015), 영국 브리티시 저널 오브 포토그라피의 ‘Ones to Watch’(2016), 제 10회 일우 사진상(2019)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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