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아닌 ‘긴급재난생활비’를 계급선별적으로 분배해야

[사파논평]

코로나19가 한국을 덮친 지 3달째다. 긴급재난으로 인해 실물경제가 얼어붙고, 일터는 가동율이 곤두박질치고, 노동자들은 해고되거나 무급 휴가를 강요당하고 임금이 자연 삭감되고 있다. 소득이 줄고 있는 가운데 저축한 돈도 얼마 없는 사람들은 코로나19보다 생계난이 더 두렵다. 이들을 위한 ‘긴급 생활비’ 지원이 필요하다. 역병이 재난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취한다는 조치가 자기 임금 30% 줄이기다. 4개월 동안 대통령과 장관 임금을 30% 삭감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참으로 구태스럽다. 누구는 깎을 임금이라도 있어 좋겠다만, 누구는 최저임금선 아래의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에게 저들의 임금 삭감분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리고 누가 적선해달라고 했나. 가난한 이들의 시민적 권리로서 주장하는 것이다. 이를 흔히 '사회권'이라고도 한다. 아직도 국민을 나랏님이ㅡ궁휼히 여기사 시혜 받는 백성처럼 대하련가.

그리고 행여 이 조처가 이후 노동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운운하며 임금을 동결 혹은 삭감하고, 장시간 노동을 유지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경총은 3월 23일 ‘경제활력 제고와 고용․노동시장 선진화를 위한 경영계 건의’를 발표했다. 그 내용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기업 경영 안정성 확보를 위한 법·제도 개선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위한 법·제도 개선 △고비용·저생산성 구조 개선 △합리적인 노사관계 구축 △지속가능 사회보장체계 확립 △선진 안전시스템 구축 △경영책임의 적정성 확보와 형벌 개선 등이다.

대통령과 행정부는 지금 당장 제대로 된 행정 권력을 동원해 행정적인 일을 해야 한다. 행정적으로 실효성 있는 사회경제적 조처를 취해야 한다. 그게 정치권력이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흉내 내는 쇼는 그만두고 말이다.

하지만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국민에게 정액 얼마를 지급하는 식의 ‘보편적 기본소득(universal basic income)’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현재 재난기본소득 교수연구자들 청원서명이 돌고 있다. 왜 모든 국민이 기본소득으로 동일 액수의 긴급소득을 받아야할까? 지금 필요한 것은 재난 앞에서 가장 확연하게 드러난 재난 불평등이 인간 참극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국가가 비상 개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재난의 계급성을 이해하는데서 출발해야한다. 모든 국민이 아니라, 최저임금선 이하의 노동자들, 자영업자중 하위 20% 소득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은 ‘국민’이 아닌, 이 땅에 사는 모든 ‘인간’에게 생존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매우 배제적이고 선별적인 복지다. 일각에서는 보편적 기본소득이야말로 보편적이고 탈배제적이라고 하지만, 전 지구적 전염병 앞에서 ‘국민’됨이라는 자격조건은 역설적으로 얼마나 배제적인가.

그러므로 지금 지급되어야하는 것은 재난기본소득이 아닌 첫째, 생존유지가 버거운 하층 소득민에게 긴급한 구호기금으로서, 둘째,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건강할 권리를 가진 이들의 당연한 사회권으로서, 그리고 셋째 ‘국민’이라는 배제적인 보편기본소득이 아닌 이 땅에 코로나19로 인해 생존권이 위협에 처한 사회 구성원 모두를 대상으로 한 긴급재난생활비여야 한다. 그리고 이는 정확히 기본소득과는 구분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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