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⑥]

[이슈] 시설에 숨겨진 여성들

① 마녀사냥이 벌어지는 시설에서 겨우 1년을 살았습니다
② ‘교회에 가겠다’는 서약서를 쓰고 모자원에 입소했습니다
③ 15년간의 내부고발, “다시 싸워보려 합니다”
④ 토착 기업이 된 모자원, 비리와 세습의 역사
⑤ 미혼모는 탄생과 동시에 어머니로서 추방됐다
⑥정부가 시설에 숨긴 0.3%의 한부모 여성들


지난 11월 16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이날 정부가 내놓은 한부모가족 주거 지원 대책은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의 입소 대상과 기간을 연장하는 것이었다. 입소기준을 현재 ‘중위소득 60% 이하’에서 ‘100% 이하’로 확대하고, 입소 기간을 현행 3년(추가 2년)에서 5년(추가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나흘 뒤인 11월 20일. 부산광역시의회 행정사무 감사에서 한부모가족복지시설 내 인권침해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구경민 부산광역시의회 의원은 부산의 한부모가족복지시설이 3대에 걸친 가족경영 방식으로 운영하며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혜택을 악용했다고 밝혔다. 시설 이용자를 상대로 한 인권유린과 부당 퇴소까지 발생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이후 12월 1일, 한국한부모연합을 비롯한 28개의 여성단체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의 시설 입소 확대 정책을 비판했다. 단체들은 “지난 60년간 이어져 온 시설 중심의 정책, 정상가족 중심의 가족 정치는 한부모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낙인을 씌우고, 사회적 가족 질서를 해치며, 남성 가장이 없어서 사회에서 부양의 부담을 지우는 존재로 낙인찍어 왔다”며 “더 이상 시설 거주가 답이 아니다. 한부모 탈시설 정책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탈시설’을 가로막는 정부의 정책

대다수의 한부모복지시설들은 한국 전쟁 이후 무려 60년간 지역과 사회에 뿌리내려왔다. 종교단체나 사회사업가 등이 설립한 시설은 ‘보호’와 ‘시혜’ 차원의 수용정책에 머물렀고, 시설은 사유화돼 갖가지 비리와 횡령, 인권침해 등에 무감해졌다. 현실과 정책이 괴리되면서, 과거 시설 중심의 한부모정책은 더 이상 실효성을 잃게 됐다. 실제로 한부모시설 중 모자가족복지시설(기본생활지원형) 수는 지난 2009년 41곳에서 2019년 42곳으로 거의 변동이 없다. 하지만 연중 입소자 수는 같은 기간 805명에서 488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입소자 수가 점점 줄어들면서, 연중 퇴소자 수 역시 같은 기간 858명에서 606명으로 다소 줄었다. 시설을 퇴소하는 사유도 변하고 있다. 2009년까지만 해도 ‘생계 독립’을 위해 퇴소하는 비율이 60.8%(193세대)로 가장 많았다. 기타 사유는 35.3%(112세대)였다. 반면 2019년 들어서는 생계 독립을 위해 퇴소하는 비율은 1.6%(4세대)로 크게 줄었다. 대신 기타의 여러 가지 이유로 퇴소하는 비율이 90.87%(219세대)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2019년 12월 말 기준, 42개 모자가족복지시설의 입소자 수는 1588명이다.

미혼모자가족복지시설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해 16개 시도별 미혼모자시설 입소율은 평균 64.08%에 불과하다. 정부 역시 한부모복지시설 입소자 수가 계속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아무래도 청소년이나 젊은 한부모들은 공동생활에 불편함을 느낀다. 시설의 위치 접근성도 떨어지고, 노후한 시설들도 있어 입소를 주저한다. 특히 개인 생활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기 때문에 시설에 들어가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한부모가족 중 시설에 입소하는 가구는 매우 극소수다. 하지만 한부모가족과 관련한 정책 및 예산은 여전히 시설을 중심으로 집행된다. 한국한부모연합 등에 따르면, 전국의 한부모시설은 122곳. 그곳에 약 1천여 가구의 3099명이 거주하고 있다. 시설 정원대비 입소율은 약 60% 남짓이다. 18세 이하 아동을 양육하는 전체 한부모가구가 38만4천 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시설 입소 인원은 고작 0.3%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한부모가족 시설에 대한 국고보조금은 지난해 64억9300만 원에서 올해 1.7%가량 증액됐다. 중앙정부의 국고보조금은 시설 기능보강이나 개보수, 상담 치료 등의 사업비로 쓰인다.

중요한 것은 지자체가 지급하는 시설 운영비다. 시설장 및 직원들의 인건비와 시설 운영비 등은 모두 지자체 예산으로 집행된다. 지자체마다 지원 규모도 다르다. 서울시의 경우 올해 한부모시설 25개소에 총 89억 원을 지원했고, 부산은 10개소에 약 39억 원을 지원했다. 시설 한 곳 당 연간 3억 5천-4억 원의 지자체 예산이 투입되는 셈이다. 예산은 중앙정부와 시에서 지원되지만, 정작 시설에 대한 관리 감독은 구청에서 진행한다.

한부모에게 지급하는 생계비 또한 시설거주자만이 수령할 수 있다. 2019년 아이 돌봄 예산 44억 또한 시설에 전액 지원돼, 여전히 정부가 한부모가족을 시설에 묶어두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사실상 ‘한부모가족’이 아닌 ‘시설’에 지원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구경민 부산시의회 의원은 “(현재 정부 정책은) 100% 탈시설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시설에 거주하며 근로소득 중 70%를 저축하면 생계 급여가 지원되는데, 시설을 나오면 생계 급여가 박탈된다”며 “이것이 누구를 위한 자활인지 묻고 싶다. 여가부 고위 공무원과 센터장들이 카르텔을 만들어 당사자의 목소리를 철저히 배제하고 있는 구조가 가장 화가 난다”고 강조했다.

“복지시설의 외주화, 정부가 비리를 키웠다”

60년간 한부모복지시설이 민간에 맡겨지면서, 법인 세습과 깜깜이 운영, 입소자에 대한 인권유린 문제도 끊이지 않고 있다. 구경민 부산시의회 의원은 “(시설) 퇴소가정을 만났는데, 퇴소 후 숨통이 트인다고 했다. 아이도 정서적으로 안정됐다고 한다. 시설에서 원장이 애 버릇을 잡겠다며 한 시간 동안 밖에서 세워둔 적도 있었다고 들었다. 엄마들은 시설의 위계와 공포 때문에 감히 대들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시설 정책이 과거 전쟁미망인과 고아를 수용하던 시혜적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정상가족 중심의 사회에서 한부모 여성들을 격리‧배제하는 성격이 짙다는 점도 문제다. 한부모가족 정책이 여성의 양육과 돌봄, 노동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 없이, ‘가난’을 증명하는 것에만 매몰돼 있는 것도 한계로 꼽힌다. 오진방 한국한부모연합 사무국장은 “정부의 한부모가족 정책은 아동 양육수당을 받는 중위소득 52%, 약 18만3천 가구에만 해당된다. 나머지 134만5천 가구에 대한 정책은 없다” 라며 “가난을 증명해야만 간신히 정책대상이 되는 구조다. 이외의 한부모 여성의 노동, 주거, 돌봄 정책이 전무하다” 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복지시설을 용역업체처럼 외주화하는 행정 편의적 발상으로 복지 재단은 비리의 온상이 됐다. 개인의 욕망을 다스릴 수 있는 강력한 법적 제재와 종교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시대에 ‘생명 정치’는 가난한 사람을 계속 가난하게 만든다”라며 “좀 더 강력한 공적 영역에서 생명 정치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한부모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부모가족 중 모자가족은 2012년 46.9%에서 2018년 51.6%로 증가 추세다. 한부모가족 내에서도 모자가족은 부자가족에 비해 취약하다. 부자가족의 평균 소득은 247만4천 원인 데 반해, 모자가족은 169만4천 원에 불과하다. 주거에서도 모자가정의 자가 비율은 16.7%, 부자가정은 26.9%로 차이가 크다. 임대주택 거주 비율도 모자가정이 30.9%로 부자가정(19.2%) 보다 훨씬 높다.

때문에 여성단체들은 더 이상 시설 위주의 정책이 아닌, 주거 및 고용안정 등 한부모가족의 권리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고안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오진방 사무국장은 “가부장적 가족 정상성을 기반으로 하는 여성가족부의 가족정책, 보건복지부의 복지정책, 국토해양부의 주거 정책이 큰 틀에서 바뀌어야 한다”며 “아울러 지원 이외의 인권과 돌봄, 비혼들의 성적 권리, 계급의 격차 등의 담론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현재 탈시설화 추세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점차 시설보다는 임대주택 주거 지원 사업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아울러 내년부터 한부모복지시설 공동생활규칙 운영위원회에서 입소자의 요구를 반영하는 지침을 만드는 등 민주성을 높여갈 예정” 이라고 밝혔다. 한편 《워커스》는 시설의 인권침해 및 폐쇄적 운영, 세습, 탈시설 요구 등과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임은희 한국한부모가족복지시설협회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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