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나눠 먹으면 누구나 식구

[유하네 농담農談] 유하네와 식구하실래요?

  유하와 백기완 할아버지 [출처: 이꽃맘]

모두가 행복하게 밥을 먹는 세상

“엄마! 주원이는 우리 식구지?” 유하가 묻습니다. 밑 담에 사는 8살 난 주원이가 우리 집에서 점심을 먹은 날 유하가 웃으며 던진 질문입니다. “그렇지! 밥을 나눠 먹었으니 우리 식구지. 그러니까 동생 잘 챙겨주고 사이좋게 지내야 해”하고 답합니다.

유하네는 ‘밥을 나눠 먹으면 다 우리 식구’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유하네가 농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였습니다. 정성껏 키운 채소들로 맛난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꿈, 굶는 사람 없이 모두가 행복하게 밥을 먹는 세상을 만드는 꿈. 유하네가 강원도 원주 끝자락 작은 마을에서 꾸는 꿈입니다.

3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유하·세하와 함께 만드는 꾸러미

유하네가 본격 농사를 시작한 지 3년을 꽉 채웠습니다. 여전히 어려움이 많지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고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씩 알아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밥을 나눠 먹는 식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하네는 농사를 시작하자마자 밥을 나눠 먹을 식구를 모집했습니다. ‘유하네 꾸러미’를 함께 할 식구를 찾았습니다. 농사 첫해, 걱정 반 응원 반 유하네를 지켜보던 열 가족이 유하네 꾸러미 식구가 돼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던 유하네에게 최고의 힘이었습니다. 농부로 살아갈 힘이었습니다. 유하네는 얼른 꾸러미 식구들에게 보낼 반찬들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땅이 녹아 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는 3월, 산으로 들로 다니며 야생 달래를 캤습니다. 하우스에서 큰 달래와는 다르게 가늘고 작은 달래들을 모아 야생 달래 김치를 담아 보냈습니다. 연둣빛 나뭇잎들이 움트기 시작하는 4월, 유하·세하와 온 마을과 뒷산을 다니며 봄나물의 왕 두릅을 따서 모으고, 야생 원추리를 끊어 모아 장아찌를 담았습니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5월이 되면 첫 수확물인 열무와 총각무로 김치를 담았습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 되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알을 키운 양파로 장아찌며 김치를 담았습니다. 미리 담아 놓은 매실청, 오미자청도 보냅니다.

태양이 가까워지는 7월이 되면 풋고추로 장아찌를 담고 선배 농부가 키운 복숭아로 쨈과 조림을 만듭니다. 너무 뜨거워 밭에 나가기 어려운 8월에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푸른 깻잎을 따서 깻잎 김치를 담습니다.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 이리저리 엉켜 자라는 고구마 줄기를 모아 김치를 담습니다. 유하파파가 장작불로 로스팅한 원두를 갈아 커피도 내립니다. 배추가 쑥쑥 자라는 시원한 10월에는 생강을 캐 유기농 설탕을 넣어 생강차를 만듭니다. 11월, 어느새 어른 종아리만큼 자란 무와 알이 찬 배추를 뽑아 김장포기김치를 담습니다. 겨울에 들어서는 12월이면 저장해 놓은 무로 동치미를 담고, 배추로 백김치를 담습니다. 유기농 햅쌀로 식혜도 만들어 보냅니다. 땅이 얼어 식물들이 모두 잠이 든 1월, 장작불에 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우고 돼지감자를 캐 장아찌로 만듭니다. 따뜻해지고 추워지기를 반복하는 날씨에 땅이 이리저리 갈라지며 스스로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하는 2월, 한 알 한 알 털어 모아둔 들깨로 기름을 짜고. 잘 보관해 둔 맷돌 호박에 팥이며 콩을 넣어 호박죽을 끓입니다.

이렇게 열두 번의 꾸러미를 만들어 식구들에게 보냈습니다.

이웃과 나누는 꾸러미

꾸러미를 보내는 날이면 유하네 여덟 평 작은집은 유하·세하까지 동원된 반찬 공장으로 변신합니다. 유하 엄마가 미리 만들어 놓은 김치와 장아찌 등을 나눠 담으면 유하·세하가 개수에 맞춰 아빠에게 전달합니다. 유하 파파는 테트리스를 하듯 상자에 차곡차곡 넣습니다. “엄마! 김치가 하나 더 필요해요” 유하가 외치면 유하 엄마는 얼른 포장해 둔 김치를 전달합니다. 어느새 박스가 쌓이고 꾸러미 식구들의 주소와 이름을 적은 택배 용지까지 붙이면 유하네 반찬 공장은 다음 달을 기약하며 문을 닫습니다. 꾸러미를 보내는 날이면 유하네는 작은 파티도 엽니다. 이번 달도 무사히 보냈다는 안심과 꾸러미 식구들과 밥을 나눠 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유하네가 만든 고추장, 된장, 간장 [출처: 이꽃맘]

꾸러미 식구들에게 반찬을 보낸 후 음식이 남으면 옆집 선배 농부께도, 앞집 반장님 댁에도, 대추밭 작은집 삼촌에게도 조금씩 나눕니다. “뭐 이런 걸 자꾸 갖다주냐”고 하시지만 나누는 기쁨이 웃음으로 배어납니다. 마을 분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는 날이면 유하·세하 손에는 대모 할머니가 만든 들깨강정이며, 앞집 참깨 아줌마가 주신 과일이며, 대추밭 삼촌이 주신 아이스크림이 들려옵니다. 참 재밌고 행복한 꾸러미입니다. 또한 유하네는 함께 해주는 꾸러미 식구 숫자의 10%를 더 만들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는 분들과 나눕니다. 두 번째 해에는 열다섯 꾸러미 식구가 함께해주고 세 번째 해에는 스무 집의 꾸러미 식구가 함께해 주었습니다. 올해는 더 많은 식구가 함께해주길 은근히(!) 기다려 봅니다. (유하네 꾸러미 식구 신청은 페이스북 ‘유하네 농담’에서^^)

소농으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

유하네가 포천 산골에서 5년 동안 시골에 적응하며 귀농을 준비할 때 가장 큰 고민이 ‘유하·세하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였습니다. 유하네가 가장 많이 받은 질문도 “뭐 먹고살 건데”라는 것이었습니다. 농민이 먹고살기 힘든 한국에서 아이들까지 데리고 시골에서 농민으로 산다니 당연한 걱정입니다. 땅만 파먹고 살 순 없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도 유하·세하와 함께 살려면 최소한의 돈이 필요했습니다. 유하네가 고민 끝에 낸 결론이 김치, 장 등 한국 사람이라면 꼭 먹어야 하는 각종 가공품을 담은 꾸러미를 만들어 나눌 식구들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하며 찾아보니 이미 많은 수의 작은 농부들이 꾸러미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빵 기술이 있는 농부는 밀 농사를 지어 빵으로 꾸러미를 만들고, 마을 주민이 함께 모여 두부와 김치를 만드는 언니 농부들도 있었습니다. 지천에 나는 풀들을 모으고 집닭이 낳은 달걀을 넣어 만든 꾸러미도 있더군요. 작은 농부들이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유하네는 이런 작은 농부들의 몸부림이 땅을 살리고 하늘을 살리고 지구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이제 봄입니다! 땅들이 갈라지고 마당 한쪽 체리 나무 눈들이 뚱뚱해집니다. 유하네도 겨울의 차가운 기운을 툭툭 털어내고 따뜻한 봄맞이에 나섭니다. 유하네를 축복해 주셨던 백기완 할아버지가 “유하네 아리아리” 하셨던 힘차고 큰 목소리를 기억하며 새로운 봄을 맞이하려 합니다. 우리 모두 아리아리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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