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도 ‘주택공급 만능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특집호]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인터뷰

차례

① 안전한 곳에 살고 있습니까?
② 무주택자만 ‘빚더미’ 앉게 만드는 ‘갭투기’
③ 부동산 법인, 주택임대업에 뛰어들다
④ 청년들, 부동산 ‘몰수’와 ‘사회화’를 가리키다
⑤ 문 정부 5년, 주거의 질은 나아졌나요?
⑥ 문재인 정부의 ‘주거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⑦ [인터뷰] 문재인 정부도 ‘주택공급 만능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⑧ 인포그래픽 세계 집값 지도
⑨ 재벌의 부동산 투기 50년사, 서울 두 개를 사들였다
⑩ [인터뷰] 모든 무주택자에게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법
: 전장호 사회변혁노동자당 서울시당 대표
⑪ 워커스 사전: 성장
⑫ 한국의 주거권 운동과 실험들
⑬ [인터뷰] 도시 난민들의 운동, ‘사적소유’를 흔들어야 한다
: 김상철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 정책팀장
⑭ ‘의료 사회화’처럼 ‘주택 사회화’도 가능하다
⑮ [인터뷰] 빌라왕 잡는 유일한 대안, “주택 사회화와 탈 상품화”
: 이안 클로트워시 베를린 주택 사회화 운동 활동가


문재인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꼽히는 부동산 정책. 올해 3월 기준, 중위 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평균 가격대의 집을 사려면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17.8년을 모아야 한다. 지난해와 비교해 벌써 3년이 늘었다. ‘주택 공공성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무색하게, 무주택자들은 ‘깡통전세’로 내몰렸다. 어째서 한국 사회는 안정적인 주거가 불가능한 ‘부동산 지옥’이 된 걸까. 한국도시연구소, 빈곤사회연대,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주거권 운동을 이어온 이원호 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 [출처: 이승훈]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다주택자 등 투기꾼을 잡는다는 기조하에 ‘핀셋 규제’ 중심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풍부한 유동성과 전반적인 주택 가격 상승 국면에서는 개인들도 모두 투기 대열에 가담한다. 이를 정부가 예측하지 못했거나 방치했던 문제가 있었다. 특히 정부는 2017년 말,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한다며 ‘임대사업자 등록 활성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실제 세입자를 보호하는 효과보다 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으로 투기를 더욱 촉발하는 결과를 낳았다.

부동산 규제와 과세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불로소득 환수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 소득에 대한 세금을 강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합부동산세 강화로 엄청난 시련을 맞았던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정부이다 보니, 과세 강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 같다. 언론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부동산 세제 강화 얘기가 나올 때마다 ‘세금 폭탄론’을 쏟아냈다. 그리고 마치 전반적 여론이 세제 강화에 반대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계적으로 주택 소유 가구가 56%로 무주택 가구보다 많은데도 부동산 과세 강화 여론이 더 높다.1 그런데도 정부는 ‘세금 폭탄론’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4·7 재·보궐선거 이후에는 정책 기조를 완전히 바꿨다. 정부는 올해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려 했지만, 민주당이 이에 후퇴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애초에 정부가 강화하려던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도 확실히 밀어붙이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이런 모습은 주택 소유자들에게 ‘버티기 신호’를 줬다. 정권 출범 초기만 해도 주택을 팔지 않으면 엄청난 세금을 물리겠다는 식의 세제 강화 정책을 발표했는데, 그에 대한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이다.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은 일관성이 없었고, ‘찔끔’ 혹은 ‘뒷북’ 정책은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집값이 오르면 단골로 나오는 얘기가 ‘공급부족론’이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 집값이 상승한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공급부족론’은 교과서적인 얘기다. 우선 주택보급률은 이미 10여 년 전에 100%를 넘었다. 서울의 경우 100%가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정권에서 집값이 폭등한 것은 아니다. 또한, 주택공급은 역대 정부에서 꾸준히 있었다. 한국은 단기간에 많은 주택을 공급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주택 공급의 목적으로 부수고 짓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그 공급 정책이 누구에게 돌아갔는지를 따져 물을 수밖에 없다. 계속된 공급에도 주택 소유 가구 비율은 56~58% 수준에서 더 늘지 않는다. 서울에서 노동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17년을 모아야 중형 평수의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것은, 노동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말과 같다. 결국 엄청난 빚을 내야 집을 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집을 두 채 가진 사람이 주택담보대출을 통해 집 한 채를 늘리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주택공급 정책이 투기 수요를 충족시키는 것에 이용됐다고 본다.

역대 정권들의 부동산 정책은 어떤 차이가 있나.

넓게 보면 역대 정권들의 부동산 정책은 똑같았다. ‘주택공급 만능론’이었다. 차기 집권을 하려면 임기 내에 경제성장 수치를 올려야 유리하다. 그래서 단기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토건 중심의 사업을 선택했다. 이 때문에 부동산 정책이 주택 정책보다는 경제 성장 정책으로 흘렀다. 좀 더 세부적으로 보면, 국민의힘 전신인 보수 정당은 규제 완화를 통한 민간 중심의 주택공급을 활성화했다. 민주당 정권은 시장 규제를 강화하면서 공공이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 개발 정책을 펼쳤다.

민간사업자들이 수천억 원의 개발이익을 챙긴 ‘대장동 개발사업’은 민관합동 개발 방식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

대장동 개발사업 같은 도시개발 사업은 공공이 민간 소유의 토지를 공익적 목적으로 수용한 뒤 도시를 만들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적 성격이 강한, 공공이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민관합동개발 방식은 공익적 목적과 민간의 수익적 목적이 함께 가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민간에 막대한 이득이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쪽방촌에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할 때, 공공은 수익이 덜 나더라도 주거권 보호라는 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민관합동개발 방식으로는 그러기가 어렵다. 주택공급의 목적이 주거 안정보다 경제 활성화와 연결되는 문제가 있다.

올해 주거의 날을 맞아 국공유지인 용산정비창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땅은 2007년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을 발표했던 곳이다. 어떤 의미가 있나.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은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불렸다. 삼성물산 등 30여 개의 기업과 은행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위기로 부동산값이 하락하면서 컨소시엄은 부도 선언을 했고, 용산정비창 부지는 15년 넘게 허허벌판으로 방치됐다. 그런데 경기가 살아나니 정부는 용산정비창에 주택공급 사업을 하겠다고 했다. 덩달아 오세훈 시장은 국제업무지구를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정부의 용산정비창 계획 중 공공임대주택은 전체 8천 호 중 2천 호에 불과하다. 심지어 오세훈 시장의 개발 계획은 상업시설에 중점을 둔다. 과거 용산의 대규모 개발 프로젝트는 ‘용산참사’라는 비극을 낳았다. 이 때문에 주거 운동 단체들은 이곳에 상업적인 개발은 불가하며, 적어도 공공택지의 80% 이상은 개인 소유로 귀결돼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용산정비창을 점거하게 됐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9위로, 지난 2019년 10위에서 한 단계 올랐다. 한국의 공공임대주택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8%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여기에는 전세임대주택처럼 공공이 소유하지 않는, 전세 임대 대출과 다름없는 것들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주거 운동 단체들은 장기공공임대주택만 보면 5%밖에 안 된다고 추산한다. 이는 주거 취약계층을 다 포함할 수도 없고, 민간 전·월세 시장을 통제할 수준도 못 된다. 유럽 복지 국가들은 20% 전후의 사회주택을2 소유하고 있다. 대도시일수록 비율이 높다. 오스트리아의 경우 사회주택 비율은 20% 수준이다. 수도인 빈은 50%에 달한다. 주택 문제가 심각한 대도시일수록 사회주택 비율을 높게 설정하는 거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다.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계층이 임대주택을 이용할 수 있도록 오는 2022년부터 ‘통합공공임대주택’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영구임대, 국민임대, 행복주택 등 복잡한 공공임대주택 유형을 통합한다는 내용이다. 입주 대상도 현재 기준 중위소득 130%에서 150%까지 확대하고, 임대료율도 35~90% 범위 내 차등 적용할 예정이다. 저소득층 주거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주거 운동 단체에서도 오랫동안 공공임대주택의 유형 통합을 주장해 왔다. 역대 정권들은 자신의 치적을 위해 임대주택 모델들을 만들었다. 영구임대주택으로 시작해 김대중 정부의 국민임대주택, 노무현 정부의 매입·전세임대주택, 박근혜 정부의 행복주택 등을 만들다 보니 임대주택 유형이 너무 복잡해졌다. 또한 소득은 같은데 어떤 유형의 주택에 입주해있느냐에 따라 임대료 격차가 극심했다.

문재인 정부의 통합공공임대주택은 중산층도 주거 곤란을 겪으니, 이 계층까지 입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거다. 마치 보편적 주거 복지인 듯 보이지만, 현재 주택 물량 수준에서 대상을 확대하면 경쟁이 더 심해질 우려가 있다. 즉, 열악한 계층이 입주할 수 있는 비율이 줄어드는 거다. 주거 운동 단체들이 통합공공임대주택을 주장했던 것은, 어떤 유형에 입주하더라도 소득에 따라 임대료를 부과하자는 취지였다. 현재까지 정부가 발표한 입주 대상을 보면 소득분위 7, 8분위까지 포함한다. 유럽 사회주택이 소득분위 70~80%까지 포함한 것은, 그만큼 공공임대주택의 물량이 전제됐기 때문이다.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5%에 불과한 상황에서 입주 대상 소득 기준을 늘리면, 저소득층 물량이 줄어드는 일종의 ‘계층 역진’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공공임대주택이 확대되면 집값에는 어떤 영향을 줄까.

공공임대주택 재고율이 20~30%, 도심의 경우 30~40% 정도가 되면 민간에 대한 가격 통제가 발생할 수는 있다. 다만 공공임대주택을 획기적으로 확대하기란 어렵다. 시간이 걸릴뿐더러, 그만큼의 택지도 필요하다. 그래서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통제도 함께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은 그런 정책들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해에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면서 세입자 권리가 조금 강화됐다.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도입이 주된 골자다. 그러나 갱신권은 1회에 그쳤다. 갱신권을 적용하는 국가들은 ‘기한의 정함이 없는 갱신권’을 갖도록 하는데, 이 점에서 한국은 여전히 미흡하다. 이렇듯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민간임대주택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임대주택은 집값 안정 측면이 아닌,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중요할 것이다.

향후 주거 정책에서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부동산 정책이 아닌 주거 정책이 돼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주거권 보장을 위해 수립돼야 한다.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정책’이 바로 그것이다. 2020년 정부의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집을 소유해야 한다’라는 응답이 87.7%로 비율이 매년 늘고 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가 ‘주거 안정 차원’(86.7%)이다. 그다음 이유가 ‘자산 증식 수단’인데 8.9%에 불과하다. 집을 사지 않고서는 주거 안정을 누릴 수 없는 구조라면 사람들은 계속 소유하는 방식으로 내몰리게 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정책을 강화해도 집값을 떠받드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공공임대주택이 중요하다. 하지만 국가가 토지를 환수하지 않는 이상 재고율을 20~30% 이상 높이기는 쉽지 않다. 아니면 다주택자에 대한 과세를 강화해 주택 소유를 부담스럽게 하는 방법도 있다. 이후 주택 소유자들이 내놓은 주택을 정부가 매입해 공공주택으로 만드는 정책을 펼 수 있다. 이와 같은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각주>

1 정부 산하 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은 ‘2020년 토지에 관한 국민의식조사’에서 과세 대상(부과 기준)을 확대하고, 세율을 높이는 것에 69.4%와 63.9%가 찬성했다고 밝혔다.

2 유럽에서의 사회주택 개념은 공공이 공급하는 주택과 공적 성격을 갖는 민간인 비영리 협동조합 등이 공급하는 주택을 포함한다. 한국의 사회주택 개념은 민간영역에서 저렴하게 공급하는 주택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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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장동 개발사업 같은 도시개발 사업은 공공이 민간 소유의 토지를 공익적 목적으로 수용한 뒤 도시를 만들어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공적 성격이 강한, 공공이 추진해야 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민관합동개발 방식은 공익적 목적과 민간의 수익적 목적이 함께 가는 구조다. 이런 구조에서는 민간에 막대한 이득이 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쪽방촌에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할 때, 공공은 수익이 덜 나더라도 주거권 보호라는 공적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민관합동개발 방식으로는 그러기가 어렵다. 주택공급의 목적이 주거 안정보다 경제 활성화와 연결되는 문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