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소수자 노동자입니다

[연재] 일터는 나의 벽장(2)

[편집자주] 동성애자인권연대 성소수자노동권팀에서 성소수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에 대한 연재를 시작합니다. 그 첫번째 시리즈인 '일터는 나의 벽장'에서는 3회 동안 일터에서 일하는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일터라는 벽장에 갇혀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게이·레즈비언·트랜스젠더·HIV/AIDS감염인 노동자들의 사례를 통해, 성소수자 노동권을 보장하는 것이 모두가 평등한 일터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과제임을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어느 날 저의 친한 여자친구가 저에게 일하는 곳에서 “나 레즈비언이야! 저 레즈비언이에요!!” 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만약 당신의 친구가 이런 바람을 당신에게 이야기 했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수 있었을까요? 혹은 당신의 친구가 “사실은 나 레즈비언이야.” 혹은 “나 남자한테는 관심이 없어. 원래부터 여자 좋아해.” 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뒤집어 저의 친구는 늘 고민했습니다. 만약 내가 일하는 일터에서 커밍아웃을 한다면 동료들의 반응이 어떨까? 어떻게 반응할까? 용기를 내어서 한번 도전해볼까? 하지만 그 오랜 고민들은 동료들의 평소 행동 앞에서 좌절을 맛봐야만 했습니다.

2011년, 어느 방송국에서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가 한창 방영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제 친구가 일터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주의 남자라는 드라마 제목을 공주의 여자라고 잘못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직장 동료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공주의 여자요? 어머 징그러워. 여자가 어떻게 여자를 좋아해? 진짜 이상하다.”

하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인 제 친구는 애써 태연한 척 얼른 이야기 화제를 전환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듯 말실수라고 웃어보였다고 자신이 너무 이중인격자 같다고 우울해하며 퇴근 후 저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일터에서 겪게 되는 혹은 겪어야만 하는 사소한 일상의 경험담이기도 합니다. “있는 존재이나 없는 존재처럼 있기” 라는 말장난 같은 일상을 마주해야만 하는 일터라면 당신은 어떻게 그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매일 매일 마음을 감추는 것에 익숙해져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일터라면 당신은 그 일터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좋은 일터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좋은 일터란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일터라고 많이들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그런 직장은 많이 드러나 있지도 않으며 그런 일터가 많지도 않습니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사람은 돈을 벌어야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느 노동자들이 그러하듯 성소수자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찾게 됩니다. 좋은 학력 아니 이렇다 할 기술이라도 있었으면 좋은 일자리에 취직하기 좋았겠으나 그렇지 않은 노동자는 비성소수자나 (성소수자가 아닌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 성소수자나 일자리를 찾는 것에 있어 사정이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노동자는 구인광고의 모집요강에서부터 벽을 느낍니다. 모집항목의 성별: 여성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만 읽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 앞에 생략된 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전부터 면접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킵니다. 그 여성이라는 말 앞에는 머리가 길고 화장을 하며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는 이왕이면 예쁜, 성격이 모나지 않은 친절하고 밝은이라는 여러 수식어들이 삭제되어 있을 뿐이고 면접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머리가 짧은 여성에게 머리를 기를 생각은 없는지 화장을 진하게 하지 않은 여성에게 화장을 할 생각은 없는지 면접 시에 바지를 입은 여성에게는 치마를 입을 생각은 없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가장한 요구를 강요받게 됩니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일터지만 그래도 일자리를 구해야지 라는 생각은 한 사람의 자존감을 무너지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 존재를 가리고 포장해야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어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요 자신의 존재를 지우며 유령 노동자가 되기를 자처합니다. 그래야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기전 이경이 쓴 성소수자 노동자 차별, 어디서 시작되나? 라는 글을 읽다가 옆에 있는 애인에게 피부양자가 무엇인지 알고 있냐고 물으니 그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돈을 벌어서 너를 벌어 먹일 때 너를 나의 피부양자라고 하지.”

그리고 문득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내가 애인의 피부양자가 되는 날이 올까? 애인이 나의 피부양자가 되는 날이 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게이입니다. 남성 동성애자입니다.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입니다. 하지만 저의 일터에서 동료들에게 이런 말을 해본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일터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 한 번도 나는 성소수자를 지지해 라거나 나는 동성애자들 이상하지 않던데? 그게 뭐가 문제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일터에나 성소수자 노동자는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존재는 너무나 쉽게 없는 취급당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자연스럽게 삭제되거나 언급된다고 하여도 비웃거나 비아냥되는 일터에서 성소수자 노동자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최근에 회식자리에서 어떤 동료가 그러더군요.

“00씨는 개그코드가 남다른 것 같아요.”

그러자 어떤 동료가 사람들이 웃으라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게이코드요? 00씨 게이에요?”

그러자 회식자리의 모든 사람이 웃었습니다. 물론 저만 빼고요. 이런 일터에서 저는 일을 하며 성소수자 노동자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일터에 저의 바람이 닿기를 바라며 퇴근 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집에 돌아와 글을 씁니다. 그리고 저런 말을 하는 동료에게 아무런 불안감 없이 이렇게 말했으면 하고 희망합니다.

“그래 나 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