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살인 멈춰라!" 근로능력평가 피해 유족 인권위 진정

잘못된 근로능력평가 때문에 강제노동 내몰린 수급자 사망

  28일 인권위 앞 기자회견에서 잘못된 근로능력평가로 사망한 최 씨의 아내 곽혜숙 씨(가운데)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빈곤사회연대]

국민연금공단의 잘못된 근로능력평가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 가운데,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개선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버스 운전기사였던 故 최인기 씨(60)는 2005년 회사 정기검진에서 심장혈관 이상을 발견해 늘어난 대동맥을 인공혈관으로 바꾸는 치환수술을 받았으며, 2008년 2차로 같은 수술을 받았다. 이후 최 씨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기초생활보장 수급 신청을 했다.

수술 후 최 씨의 상태는 노동하기에 무리가 있었으나, 지난 1월 근로능력평가에서 일할 수 있다는 판정을 받았다. 국민연금공단은 조건부 수급자가 된 최 씨에게 ‘일하지 않으면 수급비를 받을 수 없다’라고 독촉했다. 이에 최 씨는 정부의 ‘근로빈곤층취업우선지원사업’에 참여해, 지난 2월부터 집 근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청소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최 씨는 지난 5월 일하던 중에 다리가 심하게 붓고 고열이 나며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됐다. 최 씨는 6월에 또 한 차례 쓰러져 입원했고, 인공혈관 부위의 감염이 심각해져 지난 8월 세상을 떠났다. 그 사이 국민연금공단 직원이 최 씨에게 전화로 ‘왜 일하지 않느냐’고 독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물의를 빚기도 했다.

이에 최 씨의 부인인 곽혜숙 씨와 반빈곤운동 연대체인 민중생활보장위원회(아래 민생보위)는 28일 이 사건을 잘못된 기초생활보장제도에 의한 '행정살인'으로 규정하고, 제도를 운영·시행하는 보건복지부장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수원 권선구청장, 고용노동부장관 등을 피진정인으로 진정서를 제출했다.

곽 씨 등은 진정서에서 잘못된 근로능력판정에 의해 가족을 잃은 유족들의 정신적, 물질적 손해를 배상하고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할 것과 기초생활보장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진정서 제출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들은 수급자를 강제 노동으로 내모는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정숙 활동가는 “故 최인기 님이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취업성공패키지를 수료한 후 취업에 이르기까지 당사자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다. 이는 명백한 살인”이라며 “걸어 다니는 시한폭탄과 같은 흉부대동맥 환자를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한 것은 전문가인 의료인과 담당 공무원의 질 나쁜 의도적인 살인과 같다. 어떻게 당사자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있는가”라고 규탄했다.

곽혜숙 씨는 “아직도 남편이 죽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꿈만 같다.”라며 “남편이 직장에서 갑자기 쓰러지고, 사망에 이르기까지 시청, 구청, 보건복지부는 다들 ‘자신의 소관이 아니다’, ‘(시장, 구청장을) 만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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