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200일 ‘안전 대책’ 사기극, ‘안전 장사’로 둔갑

친기업 규제개혁위원회·국민경제자문회의, 강력한 규제완화와 안전 상업화 추진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겠다던 박근혜 정부가 규제 완화 정책에 속도를 내며 안전사회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다.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된 안전규제 완화 문제는 6개월이 넘도록 해결하지 않은 채, 오히려 법적으로 강력한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걸며 안전 규제 완화를 고착시키고 있다.

참사 이후 정부가 마련한 안전대책의 허구도 드러나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부처, 여당 등이 진행해 온 숱한 안전 대책 논의는, 기업 활성화를 위한 ‘안전산업 육성’으로 방점이 찍혔다. 안전사고에 대한 기업 등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 아닌, 이번 기회에 국내 안전 산업을 키워보겠다는 의지다.

참사 이후 안전사회 건설은 고사하고 정부의 규제완화 강공책이 이어지면서, 시민사회의 우려도 깊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와 민주노총은 29일 오후 2시,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의 안전대책과 문제점’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정부의 안전규제 완화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친 기업 인사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 내세워 강력한 규제완화 드라이브

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개혁 장관회의에서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로 안전규제 완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지만, 정부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지는 못했다. 실제로 지난 5월까지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된 규제개선과제는 852건이며, 그 중 안전관리 규제 개선과제는 119건에 달한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안국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문제가 됐던 주요한 안전규제 완화 문제들은 단 한 건도 바뀌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요 참사의 원인이 됐던 선박 과적과 육상 과적 문제, 철도 및 지하철 차량의 내구연한 문제, 수직 증축 문제, 1인 승무제 문제는 아직 개선되지 않았고, 일부는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대신 정부는 자본 측 인사들로 구성된 ‘규제개혁위원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며 강력한 규제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대통령이 위촉한 민간위원들로 구성되며, 위원장은 국무총리와 민간위원장 2명이 공동으로 맡고 있다.

최명선 국장은 “규제개혁위원회 민간위원들은 재벌 대기업의 이해를 반영하는 인사로 구성돼 있다.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들이 직접 개입하며, 노동계와 시민사회의 이해를 대표하는 방안은 전무하다”며 “위원회가 개편되기 전인 지난 5월까지 민간위원 대부분은 재벌대기업 사외이사거나 이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7월 “박근혜 정부의 규제개혁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갈 규제개혁 추진 체계와 사령탑을 전면 개편한다”고 밝히며, 규제개혁위원회를 개편했다. 규제개혁 사령탑인 제9대 민간위원장으로는 서동원 현 김앤장 법률사무소 상임고문이 위촉됐다. 규제개혁위원회는 모든 행정기관의 규제 신설과 강화에 대한 직접 심사와 기존 규제의 정비를 심사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다.

실제로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구급차의 노후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급차 운행연한의 규제를 강화하고 구급차 의무 보유대수를 늘리는 시행령 시행규칙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규제개혁위원회의 반대로 좌초됐다. 사업자 부담을 늘리는 규제를 시행령이나 규칙으로 도입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명선 국장은 “규제 강화에 대한 심사에서, 위원회가 이업 이익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이를 철회시키면 행정부는 이를 모두 따라야 한다. 위원회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방법이 없고, 오히려 위원회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 이에 대해 소명을 해야한다”며 “민간위원들로 경청, 대한상의, 전경련 인사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재계는 노사정 협의 과정을 우습게 생각한다.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반대를 하는 것이 손쉽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안전대책’은 ‘안전산업 육성’으로 둔갑...‘안전’으로 장사하겠다는 정부

정부는 규제개혁위원회를 전면 개편하는 동시에,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규제완화 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명선 국장은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 3개월도 안 돼,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며 “이는 규제완화를 가속화하기 위해 제출됐던 ‘규제 비용 총량제’, ‘네거티브제’, ‘일몰제’를 아예 법령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비용 총량제는 규제의 총량을 설정하고, 새로운 규제가 도입되면 합리적 판단 없이 기존의 규제를 무조건 줄여나가는 방식이다. 규제일몰제 역시 존속기한을 정해놓고, 시한이 지나면 규제를 자연적으로 소멸시키는 방안이다. 가장 큰 문제는 네거티브 규제방식이 시장에 도입될 경우, 식품 및 의약품 등 안전 관련 규제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점이다.

최명선 국장은 “정부는 행정규제 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안전에 관한 문제를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규제의 원칙’ 조항에 ‘재난, 재해’라는 단어를 추가했을 뿐이며, 규제개혁위원회가 안전 규제의 신설, 보완, 강화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 뿐”이라며 “정부는 단 두 개의 선언적인 조항을 가지고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박근혜의 안전사회와 규제완화는 사기극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지어 세월호 참사 이후 숱하게 진행된 청와대와 여당, 정부부처의 안전 대책 회의가 ‘기업 활성화 대책’으로 둔갑하기도 했다. 참사 이후 청와대와 총리실, 당-정, 당-정-청, 안전정책조정회의 등이 개최한 안전 관련 대책 회의는 50차례에 달한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8월 26일 제5차 국민경제자문회의 이후 정부 부처들은 안전산업육성방안을 발표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시민의 안전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 너무 많다. 대부분이 안전산업 육성과 관련된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8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규모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으로 ‘민간 재난보험 상품’을 개발한다고 발표했다. 민간의 방재기능을 강화하겠다며 ‘방재컨설팅 업무’를 보험사의 부수업무로 허용한다는 계획도 나왔다. 기획재정부의 경우, 소방헬기를 내년부터 국산 헬기로 도입해 국내 안전산업을 육성성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명숙 활동가는 “심지어 9월 19일, 산업통상자원부의 발표를 보면 민간보험상품 개발, 보안장비 개발 외에도 실시간 원격의료라는 의료법 개정의 쟁점을 안전산업에 집어넣었다”며 “안전 대책이 안전 산업으로 둔갑했다. 안전을 상업화해서 기업에 돈을 벌어주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서 “가장 큰 문제는 안전사고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묻는 방안이 없다는 것”이라며 “중대재해 및 대형사고의 경우 기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정부대책에는 빠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 유족 김성실 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장성요양병원에서, 고양종합터미널에서, 판교 공연장에서 지속적으로 안전사고가 벌어지고 있다. 진실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런 사고가 계속 벌어지는 것”이라며 “진상조사소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회 구성 등을 포함하는 유족들의 특별법 제정 요구는 단지 유족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이 안전에 직접 참여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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