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사고, 피해자 구할 수 없다면 예방하는 수밖에 없다"

[인터뷰] 하라 가즈토 일본반핵의사회 대표 간사

기자는 지난 11월 1일 이틀간 일본 후쿠오카에서 열린 25회 핵전쟁을 반대하고 핵병기의 폐절을 요구하는 의사, 의학자의 모임(반핵의사회 PANW)에 참석했다. [관련기사: 일본 지열발전 0.1%인 이유, “원전 하나로, 핵마피아 탓”] 당시 반핵의사회의 대표 간사 (反核医師の会代表世話人)인 하라 가즈토(原 和人)씨를 만난 것은 좋은 경험이었다.

인상 좋은 아버지 같은 그는 한국에서 간 우리 일행을 친절히 맞이해 주었고 손님에게 주는 일본의 전통이라며 일본 전통술과 자신의 지역에서 나는 팥이 들어 있는 전통 빵을 선물해 주었다. 일정이 빠듯하여 몇 가지는 그 자리에서 질문하고 나머지 질문은 서면으로 진행했다. 그는 인터뷰를 <뉴스민>에 싣는데 흔쾌히 동의했다. 인터뷰 기사가 늦어진 데는 번역 문제도 있었지만, 그의 개인적 사정 때문이었다. 마음이 어지러울 텐 데도 친절하게 답변해 주신 하라 씨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그의 이야기가 일본의 사정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우리 동아시아의 비핵화 과제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 하라씨는 전 전일본민의련 부회장(全日本民医連元副会長), 비핵 정부를 만드는 회의 상임간사(非核の政府をつくる会常任世話人), 공익사단법인 석천노동자의료협회 이사장(公益社団法人石川勤労者医療協会理事長)을 맡고 있다.


  하라 가즈토 일본반핵의사회 대표 간사

PANW에 대해 소개해 주십시오. 언제 어떤 목적으로 생겼고 현재 회원 수는 얼마인지요? PANW는 원래 핵무기 반대라는 이름을 걸고 있었는데 핵무기 반대에서 핵발전소 반대를 함께 주장하는 것은 후쿠시마 이후의 일인가요?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지만, 의사는 그들은 구할 수 없었습니다. 구할 수 없다면 예방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1987년 8월 1일에 '핵전쟁에 반대하고 핵무기의 폐기를 도모하는 의사, 의학자의 모임'이 개최되었는데, 그 모임에 2,000명 이상의 의사, 치과의사, 의학자가 동참하고, 297명의 의사가 모였습니다. 그것이 PANW(반핵의사의 모임)의 시작입니다. 현재 각 현에 반핵의사회의 지부가 있고, 전국 회원이 400명, 각 현의 지부 회원을 포함하면 회원은 1,000명이 넘습니다.

PANW는 '핵무기의 폐기'를 위해 활동하는 모임입니다. 원전문제에 대해서는 모임 결성 초기부터 관심을 가지고 논의해 왔습니다. 많은 회원이 원전에 반대는 했었지만 PANW로서 원전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PANW가 원전 반대 입장에 선 것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입니다. PANW의 활동에 '동일본 대지진에 의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경험으로부터 원자력 발전소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원자력 발전소의 폐로를 요구한다. 또 원전 사고의 피해자를 지원한다'라는 내용을 추가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후쿠시마와 그 주변의 환경, 주민들의 상태를 가장 궁금해합니다. 지금 그곳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아베 총리는 2020년의 동경 올림픽을 유치할 때, 후쿠시마 사고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거짓말로, 오늘도 후쿠시마 원전에서는 방사능 오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원자력 압력 용기와 격납 용기의 파손으로 멜트-다운(melt-down)된 핵연료가 원자로 시설 밖으로 대량의 방사능 물질을 세어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누출은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현재도 매일 400톤의 오염수가 계속 고여 있습니다. 오염수를 '알프스'라는 방사능 물질을 제거기기를 사용해서 깨끗이 제거하려는 계획이었습니다만, '알프스'가 자주 고장이 나서 계획대로 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지하수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 주변 지하수를 퍼 올려 유입량을 적게 하거나 원자로 시설의 주변 지하에 빙벽을 만들어 오염수가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하는 시도도 하고 있습니다만, 이 또한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유출되는 방사능 물질의 양은 3.11부터 5월까지의 사고 초기에 비하면, 상당히 감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히는 생선에 함유된 방사선의 양도 감소하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지금도 어쩔 수 없이 피난을 떠나고 있습니다. 애초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20km 이내는 경계 구역으로서 피난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후, 각 지역에서 방사능 오염을 제거하는 제염이 행해져, 연간 방사선 적산선량에 따라 피난 지시 해제 준비구역, 거주제한구역, 귀환곤란구역으로 구분되어 귀환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단, 귀환을 권하는 지역이 연간 피폭선량 20m㏜(밀리시버트)로, 일본의 방사선 관리 구역의 기준인 연간 5m㏜ 이하를 훨씬 웃돌고 있어 귀환에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재 후쿠시마 현(県)민의 4.6만 명이 후쿠시마 현(県) 밖으로 피난을, 7.8만 명이 후쿠시마 현(県)내에 피난을, 합계 12.4만 명이 살던 동네에서 피난을 떠나 있습니다.

일본인들에게 후쿠시마 이전과 이후는 어떻게 다른가요? 만약 다르다면 즉, 현재의 핵정책을 반대한다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일본인 다수인가 아니면 소수의 사람인가요? 한국 텔레비전에서 ‘나는 강하기 때문에 방사능 따위는 이길 수 있다’는 사람의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혹 이것이 일본인의 보편적 정서는 아닌가요?

일본에서 원자력 발전소 설치는 국가 정책으로 행해져 왔습니다. 일본인은 과거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핵에 대한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로, 핵에 대한 것을 원자력으로 바꿔 말합니다. 일본은 자원이 적은 나라이기 때문에 원자력이라는 에너지가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원전 입지 지자체에는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여 수용하도록 해 왔습니다. 그리고 국회 등에서 원전 사고의 위험성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이번 후쿠시마와 같은 가혹한 사고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설명을 해 왔습니다. 따라서 후쿠시마 이전에는, 많은 국민은 일본의 경제 유지를 위해서는 원전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원전 사고는 일어날 수 있고, 자신들의 생명까지 위협받는다는 것을 국민이 알게 되었습니다. 3.11 당시는 민주당 정권이었는데, 원전에 의존하지 않는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거나 가장 위험하다는 하마오카(浜岡)원전의 운전 정지를 지시하는 등 원전 반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원전 직후에는 국민적 합의로 반(反) 원전 의식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후 자민당 정권으로 바뀌어 원전을 재가동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 움직임에 반대하여 전국 각지에서 원자력 반대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현재도 여론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0%가 원전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나는 강하기 때문에 방사능 따위에는 지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일본 국민 대부분은 방사능의 무서움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국민이 원전의 재가동에 반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 정부의 핵 정책의 방향과 이에 대한 일본의 반핵 운동의 흐름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주십시오.

현재 일본 자민당 정권은 원전 관련 대기업과 전력 회사의 요청에 부응하여 원전을 재가동시키는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존 기준은 국민이 납득하지 않기 때문에, "더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심사하여 "안전"이라고 인정된 원전을 차례대로 재가동시킬 방침입니다. 이 기준에 제일 먼저 합격한 것이 가고시마 현(鹿児島県)의 센다이(川内)원전입니다. 그 지역은 불안을 느끼면서도 지역의 경제가 유지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가동에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는 재가동을 불허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올해 5월에는 후쿠이(福井) 지방 재판소의 오이(大飯) 원전의 운전 금지 재판에서 "개인의 생명, 신체, 정신 및 생활에 관한 이익은 인격권이라는 것으로, 인격권은 헌법상의 권리이며 최고의 가치를 가진다"며, 원자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반핵 운동에서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일본의 젊은이들은 내가 어렸을 때, 1970년을 경계로 하여 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적어지고 정치 이탈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조직적이지는 않지만, 자신들의 의사로, 젊은이들이 다양한 운동에 참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3.11 이후 매주 금요일에 국회 주변에서 열린 '반 원전 시위'의 중심은 젊은이였습니다. 

2012년부터 후쿠오카에서 방사성 물질 소각이 있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요? 이러한 일들이 일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가요? 후쿠시마의 방사성 물질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여기에 대해 일본은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요?

'후쿠오카에서의 방사능 물질 소각'은 지진으로 발생한 '파편'을 말하는 것일까요? 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대량의 '파편'(쓰레기)이 발생했습니다. 피해 지역은 이 '파편'(쓰레기) 처리 없이는 부흥이 없다는 이유로, 소각이 가능한 전국의 자치 단체에 의뢰하여 처리했습니다. '파편'(쓰레기)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이유로, 전국에서 반대 운동이 있었습니다만, 잘못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먼저, '파편'(쓰레기)의 처리에 대해서는, 원전 사고를 일으킨 후쿠시마 현의 '파편'(쓰레기)은 후쿠시마 현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현(県) 밖으로는 옮겨지지 않습니다. 후쿠시마 현 이외의 동북 각 현의 '파편'(쓰레기)'도 방사능을 측정, 안전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후쿠시마 현의 '파편'(쓰레기)은 후쿠시마 현 안에서 처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현재 '파편'(쓰레기)등은 임시 보관소를 마련하여 일시적으로 보관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모든 것을 처리하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최종 처분장을 어디로 할지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국가는 후쿠시마 원전 주변의 지자체에 처분장을 설치하고 싶은 것 같습니다만 그 지역과 합의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인은 식재료 문제를 궁금해합니다. 한국에서는 그 어떤 명태도 먹지 말자고 하고 있습니다. 일본 식재료의 해외 수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재 후쿠시마 현 앞바다의 어업은 재개되고 있지 않습니다. 해산물도 농작물도, 일본에서는 생산자, 유통업자들이 방사선량을 측정하여 기준을 밑도는 것만 시장에 나와 있습니다. 3.11이 일어난 그해, 이듬해는 기준을 웃도는 쌀이 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만, 최근에는 거의 없습니다. 따라서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식품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반핵 운동에 뛰어들게 되었습니까?

나는 13살 때, 오키나와 전쟁의 비극을 그린 영화를 보고 전쟁의 비참함을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18살 때 히로시마에 가서 원자 폭탄의 불행을 보고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의사가 되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평화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에 全日本民医連의 임원이 되어 구소련의 핵 실험장인 세미팔라틴스크와 미국 핵 실험장인 네바다에 갔다 온 이후 全日本民医連의 평화 담당으로서 반핵 운동에 참여,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내가 평화 활동에 참여하는 이유는 전쟁이 비참하다는 것도 있지만,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의사로서 전쟁에 반대하는 것, 그리고 핵무기를 없애는 운동을 하는 것은 의사로서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전쟁 피해자의 입장에서의 평화 운동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본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의 실상, 오키나와 전쟁의 비참함 등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아시아와 세계의 모든 사람과 평화의 소중함을 공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가해자 입장에서 평화의 소중함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태평양 전쟁 때, 일본의 침략 전쟁으로 아시아의 많은 사람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는 역사 인식의 입장에 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반핵 운동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반핵 운동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반핵 운동의 중심 과제는 핵무기를 폐기하는 것입니다. 일단 핵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지구 규모에서도, 지역적인 핵전쟁에서도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되고, 지구 환경이 파괴됩니다. 또, 핵은 식량 생산을 감소시켜 기아라는 상황을 일으키고, 인류의 생존마저 위협하게 됩니다.

핵무기 폐기를 위해서는 비인도적 무기라는 인식으로 핵무기 금지 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핵무기 금지 조약은 현재 세계 160여 개국이 찬성하고 있지만, 핵무기 보유국 및 핵이라는 우산 아래에 있는 나라들이 저항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일본도 미국의 핵우산에 있습니다.

또 다른 운동으로 비핵 지대 조약이 있습니다. 일본, 한국, 북한, 중국 등이 참여하여 동북아 비핵 지대 조약을 체결하는 것입니다. 동북아에서 핵무기를 없애고 핵 반입 사용을 금지할 수 있다면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전을 종료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본해에는 많은 원자력 발전소가 있습니다. 내가 태어난 후쿠이 현(福井県) 와카사(若狭)에는 15기(基)의 원전이 있습니다. 그 원전이 일단 사고를 일으키면, 일본해(동해)가 오염되어 버립니다. 또한, 한국도 동해안에 많은 원전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공동으로 일본해(동해)로부터 원전을 없애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핵문제’에 관해 한국인들에게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람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그중 핵무기에 대한 약간의 인식 차이를 느낍니다. 일본인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의 경험으로 다시는 핵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다시는 피폭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로 한반도가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비참한 실상을 말할 때 왜 일본에 원폭이 투하된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일본 정부는 한국이나 중국 사람들에게 행한 잔혹한 행위를 인정,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일으키지 않을 것을 맹세해야 합니다. 다만,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해 처벌하는 것으로, 미국의 원폭 투하를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는 종전 직전에 일본에 참전한 소련에 대한 견제이며, 미국이 전후 일본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는 게 역사적으로 분명한 사실입니다. 핵전쟁은 비참합니다. 지금도 많은 피폭자가 방사능 장애의 영향으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핵무기는 악마의 무기입니다. 전쟁 당시 일본에 있었던 많은 한국 사람들도 원폭의 희생이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핵무기의 비인도성에 대해 배우고, 토론하고, 핵무기 폐기 운동을 진행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

노태맹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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